[텐아시아=김하진 기자]
3453453
3453453
드라마에서 김남주는 주로 당당하거나, 똑 부러지는 역할을 했다. 도회적인 외모까지 더해 다가가기 어려운 차가운 이미지였다. 하지만 화면 밖 그는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고 누구 하나 불편한 사람은 없나, 눈치를 보기까지 한다. 지난달 막을 내린 JTBC 드라마 ‘미스티’의 고혜란을 떠올리면, 더욱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2005년 배우 김승우와 결혼한 김남주는 중학교에 다니는 딸과 초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다. 어쩐지 집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일 것 같지만, 집에서는 여느 엄마들과 똑같단다. 엄마와 배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선택과 집중을 잘 한 덕분에 김남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10. 대본을 고를 때 기준이 있습니까?
김남주 : 극이 재미있는지, 공감되는지를 봐요. 공감이 안되는 대본이 있어요. 읽으면서도 ‘뭐야, 얘가 왜 이런 말을 해?’ 싶은 것 말이죠. 반감이 생기면 연기도 제대로 할 수 없거든요. 신인 때 작품을 하면서 캐릭터가 무너지고 산으로 가는 경험을 했어요. ‘미스티’는 반 사전 제작에 6회 대본을 받고 촬영을 시작했어요. 4회까지 정말 좋았는데 내심 ‘5회가 관건인데’ 싶었죠. 남편이 5회를 먼저 보고 “괜찮다”고 하더군요. 단 한 회도 이상하다고 한 적이 없어요.

10. 후배에게 앵커 자리를 물려주는 극의 상황은 배우로서도 공감하지 않습니까?
김남주 : ‘내 자리를 지켜야 돼!’라고 고혜란처럼 노력한 건 아니지만, 배우도 마찬가지죠.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니까요.(웃음) 그래도 배우는 좋은 게 그 나이에 맞는, 신인은 가질 수 없는 관록과 깊이가 나오잖아요. 그 나이에만 표현할 수 있는 느낌이 분명 있어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미스티’를 ‘5년 만 젊었을 때 했으면 어땠을까?’ 하고요. 그런데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러면 지금의 느낌이 안 나왔을 거라고요. 극중 시어머니로 나온 김보연 선배님도 “배우 같으려면 나이를 먹어야 돼. 그래야 훨씬 깊이가 있어, 보기 좋다”고 해주셨어요.

10.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주어지는 역할의 폭이 줄어들고, 공백이 길어지면 잊힐까 봐 두렵기도 할 것 같은데요?
김남주 : 신인 때부터 저는 훨씬 안 좋았을 때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긍정적으로 살았어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우울증에 걸렸을 거예요. 자신은 A급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C급 정도로 여긴다면, 얼마나 속상한 일이에요? 좌우명이 ‘후회하지 말자’예요. 힘든 일이 생기면 더 힘들었을 때를 생각해요. 그러면 지금이 가장 행복하죠. 6년간 작품 활동을 안 했을 때도 초조하지 않았어요. 그런 성격 덕분에 좋은 작품을 여유롭게 고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급했다면, 적당히 괜찮은 대본을 골라서 일을 시작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거든요. 엄마로서의 삶에 집중하면서 진짜 하고 싶은 작품, ‘미스티’ 같은 대본을 받으면 선택하는 거죠.

10. 이번 공백기에도 잊힌다는 불안함은 전혀 없었겠군요?
김남주 : 신인 때부터 빨리 결혼해서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어요.(웃음) 그런 여유가 배우로서 조급증을 안 부리게 된 것 같아요. 애들 키우기만 열심히 하니까,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도 몰랐어요. 세어 보니 그렇더군요.(웃음) ‘미스티’는 제가 시간을 투자하면서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잊힐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서 공백기도 길어지고, 작품의 실패율도 그만큼 적은 게 아닐까요?

10. 엄마로서 느끼는 행복이 큰가요?
김남주 : 너무 신기해요. 아이들이 배우면 못했던 걸 막 하잖아요. 이번 드라마 마치고 나니까 큰 애가 훌쩍 커서 키가 제 눈높이 만큼 오더라고요. 자랑스럽죠. 딸이 묻더라고요. “20대로 돌아가고싶어?”라고.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다시 돌아가서 이렇게 열심히 살 자신도 없고, 지금이 정말 행복해요. 큰 딸이 있다는 것도 좋고 뿌듯해요.(웃음)

10. 공백기 동안 엄마 김남주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김남주 : 다른 엄마들처럼 애들 아침에 학교 보내고, 간혹 엄마들끼리 만나서 수다 떨다가 “어머, 애들 마칠 시간이다”라면서 일어나 다시 데리러 가고요.(웃음) 애들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해서 남편 김승우 씨가 맨날 삐졌어요. 자기는 뒷전이라고요. 하하. 이번에 ‘미스티’하면서는 아이들에게 신경을 거의 못썼어요. 봄방학 때 다른 친구들은 어디 놀러도 가고 그러는데, 우리 애들만 못 갔잖아요. 그래서 작품 마치자마자 애들 데리고 어딜 갔다 왔더니, 김승우 씨가 또 자기는 버리고 애들이랑 어디 갔다고요.(웃음) 사는 건 정말 다른 엄마들과 똑같아요. 고혜란을 준비하면서 덕분에 몸매도 되찾고 그런 거지, 딸이 제 배를 보고 항아리 배라고 놀렸다니까요. 딸아이 눈이 정말 예리해요, 살 빼니까 좋아하더라고요. 일을 위해서 뭔가 열심히 하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10. 엄마로 살다가 배우로 돌아가려니 걸음걸이부터 다시 고쳤다고 했어요. 이젠 다시 엄마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떤 기분인가요?
김남주 : ‘미스티’를 할 땐 엄마로서 빵점이었어요. 이 작품만큼 신경을 못 쓴 건 처음이에요. 병행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이고, 너무 몰입을 하고 있었죠. 방송되기 전에 김승우 씨가 “이 작품으로 연기력 재평가를 받을 거다”라고 했어요. 잘 해내면 말이죠. 순간, “내가 그동안 연기력으로 평가를 못 받았어?”라고 되물었죠.(웃음) 그랬더니, 연기는 코믹 연기가 가장 어려운 건데 보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고요. 그런 것처럼 지금까지 대상을 받으며 연기를 했어도 인정 안 할 수 있다고요. ‘미스티’는 정극에 장르물이어서 또 다를 거라고 말이죠. 아니나 다를까, 첫 회가 나가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극찬을 해주셔서…어떡하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웃음) 기억에 남는 기사 제목은 ‘김남주, 연기력 이정도였나?’예요. 잊을 수가 없어요. 배우로서의 점수를 제가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후회 없고, 여한도 없어요. 만약 제가 ’70점’이라고 하면, 그게 제 능력의 전부인 거예요.

10. 여느 여배우들은 가족들 이야기 하길 꺼려 하는데, 남편과 아이들 이야기를 해서 보기 좋아요.
김남주 : 성격이 솔직해서, 거짓말을 못해요. 사실 ‘오늘은 김승우와 애들 이야긴 빼겠어’라고 생각해도 나와요.(웃음) 그걸 좋게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엄마로서의 꿈이 배우로서의 꿈보다 더 커요. 엄마들은 그렇잖아요, 내가 상을 받은 것보다 아이가 받아쓰기 100점 받아온 게 더 기뻐요. 제가 낳은 아이니까 선택과 집중을 해야죠. 책임을 지고, 큰 사랑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랬더니 6년이란 시간이 저도 모르게 흐른 거고요.(웃음) 여배우로서의 모습은 집에선 하나도 없어요. 멋짐이란 건 찾아볼 수 없죠. 저는 꾸미면 꾸밀수록 더 예뻐지는 스타일이에요. 옷도 화려하면 더 잘 어울려요. 고혜란을 하기 전에, 그걸 다시 찾느라 애를 먹었어요. ‘미스티’ 태국 촬영을 마치고, 하루 더 머물다 왔어요. 저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배우 김남주를 위해 썼죠. 예전엔 ‘내가 이거 할 시간에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 운동 하루 안 간다고 엉덩이가 많이 쳐질까, 아이들과 같이 어디 가야지’ 그랬다면 이번엔 운동에 태닝, 손톱 관리까지 저를 위해서 썼습니다. 태국에서 총 일주일 있었던 건데, 아이들은 엄마 얼굴을 못 보니까 얼마나 서운했겠어요. 지금 다 확인은 못했는데, 제가 신경 못 쓴 사이에 아이들에게 어딘가 구멍이 있을 거예요. 다 잡아내야죠.(웃음)
234234234
234234234
10. ‘미스티’를 시작으로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등 어른들의 멜로를 다루는 드라마가 속속 나오고 있어요.
김남주 :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스티’를 통해서 나이 든 연기자도 엄마만 하란 법이 없다는 걸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그걸 깨고 싶었던 게 저의 소심한 포부였어요. 인물이 명확히 살아있으면서 엄마인 것과 그냥 단순하게 엄마인 건 달라요. ‘미스티’를 하기 전에 “이제 엄마 할 나이잖아”라는 말도 들었어요. 나이 든 여배우가 엄마가 아닌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10. 김희선, 고소영 등 동시대에 활동한 배우들이 활약해서 반갑죠?
김남주 : 우리가 결혼하고, 애까지 낳고도 활동을 하니까 요즘 후배들이 결혼을 겁내지 않는 것 같아요. 예전엔 재기를 못할까 봐 두려워했거든요. 요즘은 왕성하게 잘 하니까, 후배들도 턱턱 결혼을 잘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여자, 엄마, 배우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거죠. 얼마 전에 미용실에서 김선아 씨를 만났어요. 후배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면서, 반성하고 자극받았다고. 앞으로도 계속 작품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김선아 씨도 좋은 작품에 계속 나오고 있어서 얼마나 보기 좋아요.

10. 다음 작품 고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습니다.
김남주 : 고혜란에게 뜨거운 반응이 왔을 때, 드라마가 끝나기 전부터 걱정했어요. 다음에 뭘 해야 하나, 어지간한 캐릭터 가지고는 신선하다는 생각도 안할텐데…. 사극을 해야 하나(웃음). 저는 사극도 안 해봤고요, 신인 땐 외모가 화려해서 그런지 노출 장면이 많은 영화만 주로 들어왔어요. 그래서 거절하니까 ‘김남주는 영화 안한다’고 퍼진 것 같은데(웃음), 안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시나리오는 보는 눈이 좀 부족한가 봐요, 거절한 작품 중에 잘 된 것들이 정말 많아요. 드라마와는 다르게 말이죠. 하하.

10. 어떤 작품을 하고 싶습니까?
김남주 : 팬들이 또 6년 기다려야 하냐고 하더군요.(웃음) 저도 빨리 차기작을 선택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당한 대본으로 타협할 순 없죠. 당기는 작품에 도전할 거예요. 좋은 작품이라면 언제든 하고 싶습니다.

10. 나이든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습니까?
김남주 : 늙어간다는 것, ‘어떻게 하면 조금 더디게 늙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죠. 연구해보니 운동뿐이더라고요.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데(웃음) 어쩔 수 없죠. 시간은 흐르는데 혼자 우길 수는 없으니까요. 시간의 흐름을 인정하고 멋지게 늙어가고 싶어요. 왜 남자들에겐 나이드니까 더 멋있어지네, 하는데 여자들한테는 안하잖아요. 그저 곱게 늙었네요, 정도죠. 멋있게 늙는 여자가 되고싶어요.(웃음)

10. 후배 연기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나요? ‘미스티’ 초반에 진기주(한지원 역)와 붙는 장면도 많았죠?
김남주 : 후배들이 저보다 더 나은 것 같아서 제가 감히 뭐라고…(웃음) 후배들은 표현이 정말 좋아요. 다양하고 맑고. 국한돼 있지 않고 표현 방법이 다채롭더라고요. 진기주는 똘똘한 친구예요. 극 초반에 저도, 그 친구도 서툴잖아요. 그래서 몇 장면은 재촬영한 것도 있어요. 서서히 극중 한지원의 옷을 입어가더군요. 그 친구도 이번에 경력에 비해 큰 역할을 맡아서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도 똘똘하게 잘 이겨낸 것 같아요. 후반엔 고혜란 편으로 돌아서면서 시청자들에게도 사랑받았잖아요. 초반엔 “세상이 잔인하다고 느꼈다”고 하더군요. 이겨내라고 했죠.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야, 굳은살이 생겨야지 어쩔 수 없다고요. 그래도 “촬영 현장에 나와서 욕먹는 게 낫지, 집에서 시청하고 있는 게 낫니?”라고 이야기했죠. 이후 영화 ‘리틀 포레스트’도 잘 되고, 지금 MBC 드라마 주연도 꿰찼던데요? 잘 이겨냈죠.(웃음)

10. 다른 이야기지만, 자신의 부케를 받은 배우 최지우가 최근 결혼을 했어요. 아셨나요?
김남주 : 전혀 몰랐어요. 주변 사람들 아무도요.(웃음) 당연히 축하했는데, 기사로 접하고 당황했죠. 어머, 지우가 결혼했대! 하고요. 제가 벌써 결혼한 지 13년이 됐어요? 시간이 참…(웃음)

10. 데뷔한 지는 24년이 됐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나요?
김남주 : 데뷔 24년…. 참 대단하죠. ‘미스티’ 촬영하면서 옛날에 만난 촬영 감독님들 만날 때, “우리 참 오래 해 먹는다” 그랬어요.(웃음) 감사하죠. 우리 직업이 정년퇴직이 없다는 게 좋은 거니까요. ‘미스티’ 촬영하면서도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할 수 있다는게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 앞으로, 시청자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까?
김남주 : (고혜란 말투로) 앞으로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겠습니다. 하하. 좋은 작품이 생기면 또 최선을 다해서 새로운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노력하는 모습이 말이죠. 박수 쳐주실 수 있도록 준비해서 진실하게, 가짜 연기 말고 진짜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