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 역을 맡은 배우 정선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 역을 맡은 배우 정선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다가, 공연에 올라간 순간부터 모래주머니 없이 훨훨 나는 느낌이에요. 당연한 거지만 노력하면 무대 위에서 빛난다는 걸 배웠습니다.”

지난 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연출 알리나 체비크)에서 안나 역을 맡은 배우 정선아의 말이다. 지난 26일 서울 이태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국내에서 그동안 시도하지 않은 러시아 작품이어서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안나의 삶을 들여다보며 가족과 사랑 등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2016년 러시아에서 초연돼 인기를 얻었고, 해외 라이선스 공연은 한국이 처음이다. 러시아의 오리지널 창작진이 참여해 완성했다. 안나 역에 올해 데뷔 15주년을 맞은 정선아와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자리 잡은 옥주현이 이름을 올려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알리나 연출가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분이어서 처음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충돌도 했어요. 지금까지 호흡을 맞춘 연출가들과 달랐기 때문이죠. 보통은 장면, 배우별로 따로 연습을 하다가 맞춰보는데 알리나 연출가는 처음부터 다 같이 연습하는 걸 좋아하더군요.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배우, 제작진이 함께하면서 육체적으로 쏟아내는 게 힘들었죠. 마이크도 없이 연습실에서 16곡을 부르니까 목소리를 아낄 수도 없었어요.(웃음)”

정선아가 “강한 신여성”이라고 소개한 알리나 연출가의 힘 덕분에 ‘안나 카레니나’는 런스루(Run Through, 실제 공연처럼 하는 연습)를 개막 25일 전에 했다. 개막을 10일 앞두고 하는 것도 빠른 편에 속한다고 한다.

반전은 개막 이후다. 정선아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데뷔 15년 만에 처음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는 “안나의 긴 여정이 몸에 배어 편안하게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곡을 부르는데 그 어떤 작품보다 부담이 없다. 자연스럽게 내가 안나가 됐다”며 “이 작품은 조금의 요행도 바라지 않고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서 관객을 만나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두 달의 연습 기간 동안 알리나 연출가에게 따져 묻고 싶은 순간도 여러 번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좋은 연출가라는 걸 알았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같이 작품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첫 공연 때 떨리지 않은 건 이 작품이 처음입니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날 준비가 충분히 돼 있었어요. 보통은 첫 공연 때도 대본을 들고 다녀요. 이번엔 없어도 될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연습실에서 연습하듯 편안하게 공연을 마칠 수 있었죠.”

정선아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는 것처럼 나는 작품을 하나씩 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모든 작품을 즐기고 있다”며 15년을 돌아봤다. 지금은 ‘안나 카레니나’가 주는 황홀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안나 카레니나’는 소설의 방대한 분량을 축약해 보여주기 때문에 소설 혹은 영화로 접하지 않아서 내용을 전혀 모르는 관객에게 다소 난해할 수도 있다. 정선아도 “간결하고 사건을 굵직하게 나눴기 때문에 친절한 극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메시지와 음악, 드라마가 어떤 작품보다 잘 융화돼 있다. 특히 등장인물의 마음을 고스란히 녹인 음악은 나를 안나로 만들어준다”고 강조했다.

정선아는 첫 등장부터 커튼콜 때까지 줄곧 안나 그 자체로 무대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안나는 자신의 감정과 처한 상황, 솔직하지 못한 것에 대해 힘들어하는 여자입니다. 저 역시 무대 위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안나로 살면서 싸우고 있어요.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의 가치를 찾는 건 관객의 몫이에요.”

정선아는 “‘안나 카레니나’를 보는 관객들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싶다”며 “이 작품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 관객들이 인생의 여러 감정과 가치를 뜨겁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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