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시나리오 작가]
영화 ‘코코’
영화 ‘코코’
주름진 마마 코코가 어른거렸다.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영화관을 나서고 거리를 걸어도 쉬이 멈추지 않았다. ‘코코’를 본 날의 필자는 누가 보아도 사연 많은 여자처럼 비쳤을 것이다. 7년 전 ‘토이스토리3’를 보고 울먹이던 어른들도, 그때는 어른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어슴푸레 이별을 아는 어른이 된 친구들도 울음이 터질 영화가 바로 ‘코코’다.

익숙한 디즈니의 배경음이 라틴풍으로 깔리면서 영화가 시작한다. 영화 속 영화처럼, 미겔의 또랑또랑한 내레이션과 함께 파펠 피카도(종이 장식)에 리드미컬하게 오랜 가족사가 담긴다. 멕시코에서 대를 이어 신발을 만드는 리베라 가문의 금기는 음악이다. 고조모인 이멜다와 증조모인 코코를 버리고 음악의 길로 떠난 고조부 탓이다.

손자인 미겔도 음악의 길로 떠나고 싶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죽은 자의 날’에 우연히 저승으로 발을 들인 미겔은 고조부로 확신하는 에르네스토의 축복을 받기 위해 질주한다. 혼자는 아니다. 이승에서 잊혀지고 있는 망자 헥토르가 미겔의 길잡이가 된다. ‘신발 vs 음악’으로 양립되는 갈등은 이승과 저승 양쪽에서 날을 세우는 듯싶지만 ‘코코’를 향해 하나로 모아진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미겔’이 아닌 ‘코코’인 것이다.

‘코코’는 좀 특별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티(E.T)’에서 이티와 엘리어트가 손가락을 맞대며 교감하듯, 이 영화는 관객에게 손가락을 내밀고 있다. 관객이 그 손가락에 대기만 하면 잊고 있던 소중한 순간들이 따라붙는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본 그 어떤 실사 영화보다 뭉클했다.

오랜 시간 잊고 지내던 꽃, 금잔화도 다시 만났다. 필자의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학교 화단에 심을 꽃씨를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다. 꽃씨를 사러 가서는 사진 속 금잔화의 강렬한 오렌지색에 반했다. 금잔화 꽃씨 봉투를 양손으로 잡고 싱글싱글 웃는 필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주 잠깐이지만 미겔 나이쯤의 어린 필자를 마주한 듯싶다. 영화에서 금잔화는 제단에도, 죽은 자를 맞이할 때도, 저승과 이승을 잇는 다리에도 숱하게 등장한다. 살아서 저승에 간 미겔이 가족의 축복을 받은 금잔화 한 잎이 있어야만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기에 주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첫 만남이 강렬했던 금잔화는 ‘코코’ 덕분에 기억에 남을 꽃이 될 것 같다.

필자에게도 마마 코코와 같은 이가 있다. 돌아가신지 10년도 훌쩍 넘은 외할머니다. 마마 코코처럼 천진한 눈빛과 미소를 가졌던 분이다.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갔던 오래 전 그날, 외할머니의 얼굴에서 밉살스런 죽음의 그림자가 보였다. 가쁜 숨을 가르며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자야……” 먼 길을 온 손녀를 살피며 당신 곁에 누워서 자라는 그 한마디가 마지막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대부업체의 광고 문구처럼 나를 지켜주던 그녀의 한마디가 있다. “우리 미영이가 최고랑께.” 사실 외할머니는 그 많은 손자와 손녀에게 최고라는 말을 고루 들려주었다. 그 말은 주문처럼 삶의 고비마다 주저앉은 마음을 일으켰다. 헥토르가 어린 코코에게 불러주는 ‘Remember me’에서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에 눈물이 차올랐다. ‘Remember me’의 가사에 포개지는 외할머니의 마음은 필자의 지친 하루를 꼬옥 끌어안았다.

사무치는 그 이름을 생각하며, 적어도 오늘은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볼 듯싶다.

박미영 시나리오 작가 press@tenasia.co.kr

[작가 박미영은 영화 ‘하루’ ‘빙우’ ‘허브’의 시나리오,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의 극본,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의 동화를 집필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입문 강사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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