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뮤지컬 ‘모래시계’에 출연하는 배우 이호원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뮤지컬 ‘모래시계’에 출연하는 배우 이호원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스물 여섯 청년 이호원이 ‘생각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고 있다’고 깨달은 건 지난해 초였다. 미국 LA로 여행을 갔는데,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웃고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나치게 스스로를 가두며 지내온 날들을 돌아봤다.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지난해 6월, 이호원은 2010년부터 몸담았던 그룹 인피니트에서 탈퇴했다. 춤과 노래가 좋아서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후 또 한 번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두렵기도 했고, 혼자 은행가는 것조차 서툴고 버거웠지만 생각대로 사는 첫걸음이어서 버틸만했다. 2018년, 이호원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두 가지를 할 참이다. 자신이 작사, 작곡하고 안무까지 완성한 음악을 발표할 계획이다. 팬들과 만나는 자리도 자주 만들 것이다. ‘잃어도 좋다’는 절실함이 이호원을 다시 반짝이게 했다.

10. MBC 월화드라마 ‘투깝스’에다 뮤지컬 ‘모래시계’까지, 바쁘게 보내고 있죠?
이호원 : 바쁜 편인 것 같습니다.(웃음) 뮤지컬은 처음이어서 더 그런 것 같고요. 다른 분들은 여유롭게 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저는 더 긴장돼요. 공연 전날 잠도 잘 자려고 노력하고요. 드라마 촬영 때문에 못 잘 때가 있긴 한데, 그럴 땐 말을 안 하려고 해요. 자동차 안에서도 한 마디도 안 하고 있죠. 혹시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무대 위에서 실수를 할까 봐 조심스러워요. 집 화장실에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수건 여러 장을 뜨거운 물에 빨아서 널어놓고요. 안 하던 행동을 많이 하고 있죠.

10. 첫 뮤지컬인데 드라마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죠?
이호원 : 사실 뮤지컬을 먼저 하기로 해서 드라마는 고사하려고 했어요. 무슨 일을 할 때 한 가지에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사실 MBC ‘자체발광 오피스’, SBS ‘초인가족’을 끝으로 드라마를 못할 수도 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무대 역시 서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이죠. 연예인을 계속하느냐의 고민을 했는데,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거예요. 그래서인지 한 가지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보다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이 더 크더라고요. 두 번 다시 못할 줄 알았던 일이니까요. 몸이 고생을 하더라도,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다시 처음부터 한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10. 체력관리가 중요하겠죠?
이호원 : 방송을 시작하고 뮤지컬 연습을 하면서 구내염이 생겼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투깝스’ 촬영을 하면서 뮤지컬 연습을 할 땐, 매일 전쟁하는 기분이었어요. 저 혼자 괜히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못하면 안 좋게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한 상태였어요. 드라마 촬영장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연기, 노래를 잘해야겠다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마음도 컸어요. 또 새로운 소속사에 들어갔으니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고요.

10. 여러 뮤지컬 작품 중 ‘모래시계’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호원 : 뮤지컬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니었어요. 종종 뮤지컬을 관람할 땐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봤는데, 아무래도 춤이 중요한 소재가 되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었어요. 몇 차례 뮤지컬 출연 제안을 받아도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 선뜻 하겠다고 못했습니다. 이번 ‘모래시계’는 창작 뮤지컬인데다 우리나라 이야기어서 의미도 있고, 뭔가 부담 없이 잘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래도 약간 팝의 느낌이 있어서 편하게 부르고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습니다.

10. 역할이 경호원인 만큼 액션 장면이 많더군요. 역동적인 안무를 하면서 노래하는 게 쉽지는 않죠?
이호원 : 무술 장면이 많아서 힘들긴 한데, 오히려 호흡이 차올라서 소리가 더 편하게 나오는 면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여러 운동을 배웠어요. 몸이 약한 편이어서 아버지가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 태권도부터 검도, 유도도 배웠어요. 덕분에 운동신경이 좋아졌죠. 중학교 때는 액션배우를 꿈꾼 적도 있어요.

10. 드라마 ‘모래시계’는 봤나요? 원작의 이정재와 같은 역할인데 부담은 없었습니까?
이호원 : 드라마와 책도 다 봤어요. 오리지널 대본집도 봤고요. ‘모래시계’의 조광화 연출가에게 많은 걸 배웠어요. 학교 다니는 것처럼 말이죠. 꼭 저에게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다른 배우들과 이야기 나누는 걸 들으면서도 배웠어요. 그렇게 배운 건 ‘투깝스’ 촬영장에서도 써먹을 수 있었어요. 원작이 있다는 건 이미지가 정해져 있잖아요. 처음에는 일부러 드라마를 보지 않았어요. 대본을 보고 대본집을 보고 드라마는 연습시간이 끝난 뒤에 봤어요. 보고 싶었지만 잔상이 남아서 저도 모르게 따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 것을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봤죠.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부분이 많더라고요. 배울 부분은 확실히 배우고, 거기에 뮤지컬로 해석해야 하는 부분을 확실히 했고요.

10. 이번에 확실히 배우게 된 것이 있나요?
이호원 : 연기를 제대로 배워서 시작한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혼자 생각하고 결정 내렸죠. 대사를 하면서 움직임이 있으면 계산해서 하는 건지, 그때 순간의 감정으로 하는 건지 궁금했어요. 계산을 했는데, 어느 순간 ‘너무 짜놓은 대로 하면 가짜인 건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계산 없이 해보기도 했고요. 이번에 배운 건 무대 연기니까 작은 것 하나까지도 다 약속이 돼 있어야 하더군요. 짜놓는다고 해서 그게 가짜 연기가 아니라, 정해놓은 상태에서도 진짜 감정을 넣어서 연기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확신을 갖게 됐죠.

10. 같은 역을 맡은 김산호, 손동운에게도 의지를 하죠?
이호원 : 손동운, 김산호와 한 달 반 동안 같이 밥을 먹으면서 연습했어요. 각자 생각한 걸 이야기하고 연구해온 걸 의논했죠. 특히 (김)산호 형에게 많이 배웠어요. 뮤지컬이 처음인 저에게 동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마이크 차는 법 등을 많이 알려줬어요. 감사하죠.

10. ‘초인가족’과 ‘자체발광 오피스’, 이번 ‘모래시계’까지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나요?
이호원 : 생각이 많은 편인데, 사회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20대 초반에는 저의 꿈이나 진로에 대해 생각했다면 이젠 시야가 넓어져서 그 문제들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죠. 취준생,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는 친구들에게 많이 들어요. 제가 음악방송에 나가며 새벽 5시부터 대기해야 한다고 힘들다고 할 때, 친구들은 취업하기 어렵고 적은 월급이나 상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죠.

10. 친구들과는 완전히 다른 청년 시절을 보냈는데,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호원 : 사실 데뷔하고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도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누군가 “아쉽지 않냐”고 묻기도 하는데 분위기가 아쉽다고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렇다”라고 한 적은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학창시절의 추억을 버렸기 때문에 얻은 게 있거든요. 그런데 2년 전부터 문득 억울한 기분이 들었어요. 친구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갑자기 부럽더라고요. 이전까지는 그런 거 안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하면서 팬들과 소통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변하더군요. 잠도 안자고 일하면서 얻은 건 많지만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키는 걸 하는 게 익숙해졌던 것 같아요. 스스로 해야 할 결정도 어느새 누군가의 뜻에 의해서 정해졌고요. 점점 제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고등학교를 그만 둘 때의 저는 부모님의 말도 듣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변해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회의감도 느꼈고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했어요.

10. 갑자기 여러 생각들이 한꺼번에 들었군요.
이호원 : 음악을 워낙 좋아하니까,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말이죠. 좋아하는 음악은 알앤비(R&B) 장르예요. 더 후회하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휩쓸려서 진짜 하고 싶은 걸 놓치지는 않았나, 생각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무섭더라고요.

호야에서 이호원으로 2막을 시작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호야에서 이호원으로 2막을 시작했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10. 그 고민과 선택에서 연예인을 포기하려는 마음까지 먹은 건가요?
이호원 : 연예인의 생활을 하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건 정말 좋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죠. 돈을 버는 일이어서 여러 관계들이 얽혀있죠. 순수하게 노래하고 춤추고 싶은데 말입니다. 친구들과 댄스학원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했어요. 결국 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 생각을 진지하게 할 땐 댄서를 하면서 노래, 연기는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까지 했으니까요. 그때 혼자 결론을 내린 건 연기는 두 번 다시 못해도 된다였어요. 그만둘 마음의 정리를 했죠. 그런데 음악은 포기를 못하겠더라고요. 10년 넘게 꿈꿨고, 그걸 위해서 지금까지 해온 건데 안 하고 끝내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았어요. 한 번 사는 삶인데 누가 욕하지 않을까, 나쁘게 보지 않을까 생각하다 후회할 것 같아서 망하더라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10.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겠죠?
이호원 : 가수 에릭남 형과 자주 만났는데, 그 형이 공책에 가장 중요한 것과 절대로 포기하지 못할 것을 적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집에서 하루 종일 썼는데, 실제로 정리가 좀 됐어요. 포기할 수 없는 건 하고 싶었던 노래, 지금까지 저를 좋아해 준 팬들이라고 썼어요. 하고 싶은 노래를 하면서 팬들을 위해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혼자 곡을 만들어서 발표하는 방식으로 해볼까도 했는데, 좋은 기회로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10.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배우들만 소속된 회사에 새 둥지를 틀어 의아했습니다.
이호원 : 제법 큰 가요 기획사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고민을 해보니까, 그곳은 가서 음반을 만들기는 쉽겠지만 음악 전문가들이 있을 테니까 또 전과 비슷한 상황일 것 같더라고요. 단순하게 생각해서,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가수 회사가 아닌 배우들이 많이 소속된 기획사를 선택한 겁니다. 지금의 회사 대표님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 왜 저에게 관심을 표하는지 잘 몰랐어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를 ‘배우 장국영처럼 만들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가수와 배우 활동을 모두 하면 좋겠다고요. 여러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봐주신 거 같아 감사하죠.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팬들과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알겠다고 해서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속 사정을 모르면 연기자만 있는 회사에 가니까 배우로 전향을 하는 거냐고 할 수도 있죠. 확실한 건 음악을 계속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여러 말들이 나와서 속상했는데 대표님이 “보여주면 된다”며 다독여줘서 힘을 얻었어요. 올 상반기에 제가 직접 만든 음악을 발표할 거예요.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려니 10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10. 호야에서 이호원으로 사는 성취감이 느껴지네요.
이호원 : 변한 건 이제 얼굴을 안 가리고 다닌다는 사실입니다. 모자, 마스크 없이 말이죠. 이전엔 뭔가…자주 노출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네, 이호원 맞아요”라며 인사도 하고, 한결 편해졌어요. 옛날엔 온갖 상상을 다 했어요. 혹시 안 좋은 소문이 날까 봐요. 지금은 내려놔서 정말 다행이죠.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정신적으로 괴로웠을 것 같아요.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 없어져도 된다는 마음까지 먹었기 때문에 사소한 것도 감사해요.

10. 뮤지컬은 계속할 계획인가요?
이호원 : 사실 시작했을 땐 애착도 없었고 부담감만 가득했는데, 연습하면서 깊이 있는 장르라는 걸 알았어요. 노래와 연기, 춤 모두 세심하게 분석하고 깊이 있게 표현하는 걸 알고, 계속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에도 뮤지컬을 또 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예요. 보람이 큰 장르여서 스스로 풀어보고 싶은 욕구도 생겼고요. 콘서트를 하면 원래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오는 거지만, 뮤지컬은 좀 더 다양한 이들에게 저를 알릴 수 있어요. 저에 대해 1초라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는 게 참 감사해요.

10. 올해 활약이 기대됩니다.
이호원 : 착한 사람 콤플렉스 같은 게 있었나 봐요. 이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마음을 따라가려고 해요. 상반기 발표를 목표로 만든 곡도 그런 내용이에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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