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나문희 / 사진제공=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방송화면
나문희 / 사진제공=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방송화면
인생의 깊이를 담아낸 나문희 표 어록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연출 김진원, 극본 류보라, 이하 ‘그사이’)가 반환점을 돌아 2막을 열었다.

시련 앞에 더욱 단단해진 강두(이준호)와 문수(원진아)의 재회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은 바로 할멈(나문희)이었다. 할멈이 강두와 문수에게 전했던 위로는 두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력이 됐다.

평범하지만 삶의 깊이가 고스란히 녹아 든 할멈의 대사들은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나문희였기에 더 진한 잔상을 남기는 나문희표 어록을 짚어봤다.

◆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타인의 아픔

문수가 사고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자 강두는 혼란스러웠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그냥 덮고 넘어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할멈은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것을 아는 게 힘이랬다”라는 말로 강두의 고민을 시원하게 정리했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자신과 달리 모든 것을 잊고 편한 듯 보이는 문수에게 내심 섭섭했던 강두의 속내까지 짚어낸 할멈은 “그 속이 편한지 네가 어떻게 알아? 우는 소리 크다고 더 아픈 거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타인의 아픔과 상처는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다. 인생 내내 밑바닥에서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이들을 만났던 할멈의 현명한 답이었다. 지난 9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뽑았을 만큼 시청자들과 배우들의 마음에도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 명대사이기도 했다.

◆ 씁쓸한 인생의 민낯 뒤 뭉클한 진심

인생을 뒤흔든 쇼핑몰 붕괴사고로 꿈과 가족을 잃고 거친 뒷골목 인생을 살게 된 강두가 가진 상처와 아픔은 결코 쉬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 좋았던 거 기억 안 나. 나중에 거지같았던 것만 생각난다”는 강두에게 할멈은 “언젠가 다 잊고 괜찮아지겠지 기다리며 살다가 알게 된 게 뭔 줄 아느냐? 그런 날은 안 온다”고 인생의 쓴 맛을 먼저 알려줬다. 이어 “억지로 안 되는 건 그냥 둬라. 애쓰지 마. 슬프고 괴로운 건 노상 우리 곁에 있는 거야. 받아들여야지 어째”라는 할멈의 말은 현실, 그 자체였다. 할멈의 위로에는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싹을 틔워내는 삶의 모습이 담겨있었기에 더욱 따뜻했다.

◆ 심장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현실

산호장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온 할멈은 검사 한 번 받아보자는 문수의 걱정을 일축했다. 재영(김혜준)은 할멈에게 “계속 방치하면 죽는다”고 말했지만 할멈은 송곳 같은 말로 말문을 막았다. “사람들이 뭐 때문에 제일 많이 죽는지 아니? 사람은 가난해서 죽는다. 가난해서 병이 있어도 치료를 못 받고,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험한 일 하다 사고로 죽고, 가난이 고통스러워 지 목숨 지가 끊고. 그깟 종양? 난 하나도 안 무섭다”는 말은 너무 현실적이기에 시청자들의 가슴에 날카롭게 꽂혔다. 할멈이 뒷골목에서 이주노동자, 신용불량자와 같은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약을 팔고 치료를 해주는 이유가 담겨있는 대사였다. 우리 사회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뼈아픈 대사이기도 했다.

◆ 투박하지만 가슴에 스미는 위로

할멈의 위로법은 언제나 그렇듯 시니컬하지만 따뜻하게 가슴을 울린다. 강두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문수에게도 그랬다. 사고 당시의 기억을 잃은 채 살았던 문수는 뒤늦게 붕괴된 건물에 함께 갇혀 있었던 소년이 강두였음을 깨달았다. 강두가 사고 트라우마로 받았던 고통을 알기에 더 미안해하는 문수에게 할멈은 뜻밖의 다람쥐 이야기를 꺼냈다. 땅속에 묻어둔 도토리를 기억하지 못한 덕분에 나무로 자라고 숲이 된다고. “너무 힘들면 다 잊어버리고 묻는 것도 방법이야. 나중에 어떻게 풀릴지 어떻게 아니? 인생사 새옹지마라 안 해?”라는 위로는 문수 역시 과거의 사고로 힘든 삶을 보낸 것을 알고 있는 할멈의 배려가 담겨있었다. 더욱이 문수와 시청자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온 몸으로 부딪쳐온 할멈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투박한 듯 보이지만 따뜻한 할멈의 온기는 그렇게 스며들었다.

◆ 나문희가 전하는 살아가는 이유

병원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가장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할멈을 바라보며 강두는 지난 대화를 떠올렸다. “사는 건 후회와 실패의 반복”이라는 할멈의 말에 강두는 빈정거리며 “그럴 거 살아 뭐하냐”고 물었다. 이에 할멈은 “더 멋지게 후회하고 실패하기 위해서” 산다고 대답했다. 이뤄놓은 것이 많은 주원(이기우)과 자신을 비교하며 문수에게 멀어지려하고, 현실 앞에 자꾸만 움츠러드는 강두를 향한 할멈의 말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위로이자 “쫄지 말라”는 응원이었다. 강두가 힘든 삶 속에서도 보다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애틋한 바람이 담겨있기도 했다. 이는 강두와 다를 것 없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도 위로와 응원이 됐다.

이를 연기한 나문희는 모든 대사가 와 닿았다면서도 “슬프고 괴로운 건 노상 우리 곁에 있는 것”이라는 대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꼽았다. 이어 “슬프고 괴로운 일들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아픈 현실이지만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나가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말이었기에 강두와 같이 상처받은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11회는 오는 15일 오후 11시 JTBC에서 방송된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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