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에서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진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 / 사진=조준원 기자wizard333@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에서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진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 / 사진=조준원 기자wizard333@
좋든 싫든 대답은 “네~”. 몇 개 있는 다른 대사도 그리 길지가 않다. 두 시간 동안 하나의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다소 힘든 조건이다. 배우 박정민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진태 역을 맡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전문 서적을 읽으며 서번트증후군의 정확한 명칭을 파악했고 관련 봉사활동을 하며 마음가짐을 바꿨다. 짧은 대사 한 마디에도 고민을 담아냈다.

그렇게 탄생한 진태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이야기에 오롯이 녹아들어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역시 박정민’이라는 반응엔 손사래를 쳤다. 화려한 수식어가 나열되자 “소속사가 손을 쓴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안주하지 않기에 더욱 기대되는 박정민을 만났다.

10.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진태 역을 맡았다. 어려운 역할이다. 어떤 마음으로 배역에 접근했나?
명확한 명칭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다. 그런데 이런 장애를 가진 분들 가운데 하나의 요소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서번트증후군은 10% 안팎이다. 내가 이 영화에 참여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원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가족, 사회복지사들이 불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전엔 나도 모르게 그들을 동정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마음이 달라졌다. 존중하게 됐다.

10. 영화 안에선 영화적인 표현이 필요하다.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하게 표현하면 희화화될 수도 있고, 너무 힘을 뺀다면 관객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진다. 때문에 각 장면의 대사를 철저히 설계했다.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가 ‘네~’인데 이건 ‘예스’의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 때문에 이전의 상황과 상대방의 대사들을 분석하며 진태가 어떤 마음일지 생각했다. 사회적 약자로 표현하기보단 자기만의 세상에서 행복해하는 한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10. 관련 봉사활동도 하고 전문 서적도 많이 찾아 읽었다고 들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연구한 책만 10권 이상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직접 쓴 책도 읽었다. 그 책에 ‘왜 사람들이 내게 치매에 걸린 70세 할머니에게 말하듯 얘기하지?’라고 쓰여 있었다. ‘아차’ 싶었다. 나 역시 봉사활동을 갔을 때 장애 친구에게 ‘오늘은 기분이 어때~’라면서 또박또박 크게 얘기했다. 책을 읽은 후엔 친구들을 만나 더 편안하게 대하게 됐다.

배우 박정민은 서번트증후군 진태를 연기한 것에 대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자기만의 세상에서 행복해하는 한 인물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배우 박정민은 서번트증후군 진태를 연기한 것에 대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자기만의 세상에서 행복해하는 한 인물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이번 영화에서 많은 피아노곡을 직접 쳤다. 힘들진 않았나?
감독님과 첫 미팅에서 내가 연습해서 치겠다고 실언을 했다.(웃음) 그때 ‘라라랜드’가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악보도 볼 줄 몰랐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수밖에 없었다. 6개월 정도 피아노와 싸우다 보니 어느 정도 칠 수 있게 됐다.

10.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피아노 연주가 압권이었다. 어떻게 준비했나?
그 곡은 준비를 오래 했기에 약간의 자신감이 있었다. 연주에 자신감이 생기니 연기 설계도 할 수 있게 됐다. 언제 엉덩이를 들지, 언제 웃어야 할지 등 다른 연기도 신경 쓸 수 있었다.

10. 이 기회에 피아노를 취미로 삼는 건 어떤가?
촬영 당시 감독님이 피아노도 사줬다. 한참 피아노를 연습할 땐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요즘은 집에서 가끔 친다. 정준일의 ‘안아줘’ 등 몇 개 연습했다.

10. 이병헌과 형제 케미를 보여줬다. 그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초반엔 내가 설계한 연기를 하느라 굳어있었다. 하지만 병헌 선배가 먼저 새로운 아이디어도 제안해주고 테이크마다 다른 연기를 보여주며 나를 풀어줬다. 나도 고민해온 것들을 소심하게 툭툭 던지면 선배가 탁탁 받아줬다. 그러다 보니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졌다. 선배를 더 좋아하게 됐다.(웃음)

10. 이번 작품으로 차세대 연기신()’이라는 수식어를 다시 한 번 입증한 느낌이다. 화려한 수식어에 대한 생각은?
전혀 내 귀에 꽂히지 않는다. 우리 소속사에서 날 위해 손을 쓴 건가 싶다.(웃음) 칭찬은 감사하지만 나는 자신에게 ‘안심하지 마라, 언젠가 실력이 들통 날 거다’라며 채찍질한다.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하고 일을 계속 할 수 있어서 좋다.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계속 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10. 올해 개봉을 앞둔 영화만 5, 현재 작업 중인 영화가 2편이다. 지치진 않나?
2017년엔 쉬는 날 없이 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힘든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어서니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은 ‘쉬어서 뭐해, 일해야지!’라는 마음이다. 특히 황정민 선배가 ‘내가 네 나이에 데뷔했다. 넌 빠른 거다. 조급할 필요가 없다. 쉬고 싶으면 쉬고 하고 싶을 때 하면서 재미있게 연기해라’라고 조언을 해줬다. 조금은 즐기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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