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위대한 쇼맨’ 포스터/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위대한 쇼맨’ 포스터/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내가 내 인생의 편집장이라면, 가장 지지부진한 코너인 ‘직장’을 과감하게 폐지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지금 이 곳, 나의 일상이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오늘과 내일로 반복될 때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과거의 내 꿈을 향해 한 발 내딛고 싶지만 결국 우리는 주춤하게 된다. 지금 내가 떠나 내딛는 새로운 길 위의 발걸음이 정말 나를 꿈으로 향하게 할지 막연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꿈꾼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활기차고, 멋진 나. 단지 헛된 꿈일지라도 빙그레 웃음을 짓게 만드는 다른 나의 모습.

‘위대한 쇼맨’은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향해 무모하지만 힘찬 도전을 하는, 그리고 성공하는, 거기에 더해 ‘가치’까지 찾는 주인공 바넘(휴 잭맨)의 이야기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게 하는 경쾌한 뮤지컬 영화다.

영화는 줄곧 사람들의 잃어버린 꿈,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품고 가족의 소중함과 끝내 지켜야할 마음까지 고루 담아낸다.

그래서 잃어버린 꿈을 찾아 떠나는 길에 꽃을 뿌려주고,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양지로 이끌고, 삶이 힘들어도 끝내 마주잡은 손이 위로가 된다는 메시지는 상투적이지만 묵직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오롯이 그렇게 믿어주는 진심으로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은 1년을 힘겹게 버티고 걸어오면서 너덜너덜해졌을 사람들의 마음을 솜씨 좋은 바느질로 기워준다.

영화 ‘위대한 쇼맨’ 스틸컷/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위대한 쇼맨’ 스틸컷/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는 쇼 비즈니스의 창시자라 불리는 P.T. 바넘의 성공 신화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사실 사기꾼, 노이즈 마케팅의 창시자로 폄하되기도 했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상품화했다는 비판 속에 있었다.

영화는 바넘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고, 철저히 그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냉혹한 쇼 비즈니스의 현실 대신, 바넘이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워 이뤄낸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상류층에게만 허락된 고급 예술이 아닌, 대중들을 즐겁게 하는 보편적인 예술의 가치를 증명한다.

마이클 감독은 바넘을 쇼 비즈니스계의 냉철한 선구자로 그리는 대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품고 그들을 세상에 당당하게 이끌어낸 인류애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으로 그려낸다.

‘쇼’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아니라 ‘쇼’를 보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감성에 초점을 맞춰 본다면 ‘위대한 쇼맨’은 관객들이 뮤지컬 영화에 바라는 모든 것을 반전 없이 매끄럽게, 흔히 표현하듯 ‘교과서처럼’ 풀어낸다.

교과서 같다는 말은,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담아낸다는 긍정적인 표현도 있지만, 융통성이 없고 뻔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다. ‘위대한 쇼맨’ 역시 관점에 따라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한 영화다. 보편적 정서와 감흥, 다수의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한 이야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풀어낸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 하지만 미국 상업영화 혹은 뮤지컬 장르의 뻔한 속성들(쉽게 봉합되는 갈등, 가족의 가치가 최우선인 결말, 그럼에도 사람이 최우선이라는 메시지)은 착하지만 너무 흔하고 느슨하다.

그럼에도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가 사람들이 어쩌면 가장 믿어보고, 안아보고 싶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위대한 쇼맨’이 내민 손은 꽤 따뜻하다.

최재훈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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