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개그맨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힌 윤진영 / 사진제공=정동극장
개그맨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힌 윤진영 / 사진제공=정동극장
2003년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윤진영(35)은 4년 간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활약했다. 힘 있는 목소리와 능청스러운 연기로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2009년 군에 입대한 그는 제대 후 1년 간 쉬어야 했다. 활동 무대였던 ‘웃찾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2011년 tvN ‘코미디 빅리그’로 옮기고 윤진영은 다시 종횡무진했다. 자리를 되찾고 사람들을 웃기는 그의 모습을 계속 볼 줄 알았는데, 2013년부터 개그 무대에서 사라졌다. 대신 tvN ‘환상거탑'(2013), tvN ‘푸른거탑 제로'(2014), OCN ‘신의퀴즈4’ 등 드라마에 나타났다.

올해는 ‘판'(연출 변정주), ‘서른즈음에'(연출 조승욱)로 연달아 뮤지컬 무대에 오르며 새로운 면을 보여줬다. ‘서른즈음에’에서는 진영 역할로 극을 매끄럽게 만들었고, ‘판’은 지난 3월 초연에 이어 오는 31일까지 공연되는 재연에서도 이조와 사또를 오가며 작품의 묘미를 살린다. 개그 무대를 벗어나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정이 쉽지는 않았으나 돌아보니 그 또한 배움이었다.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과 더 빨리 자리 잡고 싶다는 조바심을 내려놓은 지금, 윤진영의 2막이 올랐다.

10. ‘서른즈음에’에 이어 ‘판’의 재연 무대까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겠네요.
윤진영 : 두 달 반 동안 쉬지 못했어요. 좋은 거죠.(웃음) ‘판’은 초연에 이어 두 번째이긴 한데 새롭게 하는 작품처럼 연습했어요. 체력관리는 하려고 노력했는데, 잠을 못자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다행히 성대가 튼튼한가 봐요. 목 상태는 괜찮아요. ‘판’은 하면서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작품이라 더 좋고요.

10. 올해 두 작품을 연달아 하며 ‘뮤지컬 배우’란 수식어를 얻었죠?
윤진영 : 데뷔 초부터 장르의 구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배우라는 큰 굴레 안에 희극, 영화, 뮤지컬로 나눠지긴 하지만 저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었죠. 아무래도 개그맨이기 때문에 선입견이 있어요. 그걸 깨는 것이 저의 숙제이자 목표입니다. 조금씩이라도 시선이 바뀌길 바라면서 열심히 해야죠.

10. ‘웃찾사’ ‘코미디 빅리그’에서 워낙 활발하게 활동해서 뮤지컬 무대에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언제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나요?
윤진영 : 활동 영역은 늘 열어놓고 있었는데, 용기가 없었어요. 10년 전부터 조금씩 시도했지만 선입견이 심했어요. 연기 범위를 넓히고 싶은데, 개그 무대는 5분 정도에 콩트가 끝나잖아요. 뮤지컬이나 영화, 드라마처럼 긴 호흡을 갖고 연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군대를 30대에 늦게 다녀오면서 더 깊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10. 결심을 굳힐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습니까?
윤진영 : 개그 무대에서 잘 하고 있을 때 내려와서 동료들이 걱정하기도 했죠. 군대에 있을 때 가수 강타 형과 같이 생활했는데, 여러 시선이 걱정된다고 털어놓으니 “아티스트는 구분이 없어야 한다”고 말해줬어요. 덕분에 큰 용기를 얻었죠. 전역 후 드라마부터 출연하면서 차근차근 시작했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조바심도 생겼지만 지금은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판’에 출연하는 배우 윤진영 / 사진=정동극장
뮤지컬 ‘판’에 출연하는 배우 윤진영 / 사진=정동극장
10. 용기를 냈지만 현실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윤진영 : 막 넘어왔을 땐 선입견도 심했어요. 그때 임하룡 선배님을 찾아가서 의논 드렸죠. “잘하면 상관없다”고 하시더군요. 그 뒤로 더 활발하게 움직였어요. 영화사에 직접 프로필을 들고 찾아가서 오디션 있으면 보게 해달라고 했죠. 한 번이 아니라 계속 찾아가니까 오디션 볼 기회도 얻었고요.

10. 뮤지컬은 2011년 ‘김종욱 찾기’ 이후 6년 만인데, ‘판’으로 무대에 섰을 때 벅찼겠습니다.
윤진영 : 6년 전 제대 직후 ‘김종욱 찾기’를 변정주 연출과 같이 했는데, 이후 좀처럼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어요. 쉬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힘이 떨어졌죠. 그러다 올봄 ‘판’을 만났죠.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제 안에서는 충돌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오랜만에 무대에서 연기를 하니까 생각도 많이 했고, ‘내가 의욕이 넘쳐 하는 것들이 작품을 가볍게 만드는게 아닐까?’라고 내적 갈등을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판’ 초연 때는 대본에 충실했어요. ‘판’에 이어 ‘서른즈음에’를 하면서 몸이 조금씩 풀렸어요.

10. 반면 ‘서른즈음에’에서는 대놓고 관객들을 웃게 만들었죠.
윤진영 : 우선 ‘서른즈음에’는 현대의 이야기인데다, 제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웃겨야 하는데도 개그맨이라 다른 이들보다 과장돼 보일까봐 재미없게 한 적도 있었어요. 오디션에서였는데, 돌아오는 말은 ‘연기를 잘 못하네’였죠. ‘서른즈음에’는 맡은 역할의 개성을 살려서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웃겨야 하는 장면에선 웃음을 주면서 힘 조절을 했습니다.

10. 익숙한 개그 무대가 아니라 다른 환경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없었나요?
윤진영 : 집에 돌아갈 때 발걸음이 무거워졌을 때도 있었고…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무대에 오랜만에 서는데 그 정도 압박은 당연한 거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빨리 적응한 것 같아요. 되돌아보면 공백기에 많은 공부를 했죠.

10. 강박이나 갈등이 무대 위에서 긴장감으로 이어지진 않습니까?
윤진영 : 긴장은 없어요. 대신 설레요. 자칫 긴 호흡의 작품을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데, 저는 점점 재미있어요. 특히 ‘판’은 더 그렇고요. 관객도 매번 다르기 때문에 분위기, 호응도 제각각이죠.

10. 지난 7월 결혼도 했습니다. 아내가 큰 힘이 되겠죠?
윤진영 : 가정이 생기고, 아내가 ‘잘 될 거야’라고 응원해주고 믿어주니 힘이 나죠. 덕분에 조바심은 없어졌어요. 더 편안하고 자신 있게 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판’ 공연 장면, 윤진영 / 사진제공=정동극장
뮤지컬 ‘판’ 공연 장면, 윤진영 / 사진제공=정동극장
10. 개그 무대에서 호흡했던 동료들은 어떤 말을 해주나요?
윤진영 : 사실 개그계에도 연기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물론 초반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경제적인 부분을 걱정하기도 했지만 이젠 “즐거워 보인다”고 하더군요. 개그를 하면서도 연기를 할 거라고 했기 때문에 “진영이는 하네”란 말도 듣고요. 배우 짐 캐리나 주성치같이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싶어요.

10. 내년 계획과 목표는요?
윤진영 : 단편영화에도 출연하고 있어서 좋은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고요, 공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디션도 계속 보면서 주어지는 역할을 잘 소화해내는 게 목표예요. 어릴 때는 무작정 웃어주고 환호 받는 것이 즐거워서, 그 맛에 했어요. 지금은 의미도 찾고 책임감도 생겨요. 저를 기억하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무대를 가득 채워서 확실하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때론 크게 웃게 만들고, 때론 진지한 얼굴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아가서 5년 후 즈음엔 자리를 잡고 개그를 하는 후배들이 저를 보고 용기를 갖고 다른 분야에 도전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고 싶어요. 제가 임하룡 선배에게 힘을 얻었듯 말이죠.(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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