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래퍼 이그니토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래퍼 이그니토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이그니토는 천천히 나아간다. 싱글 음원의 시대에서도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정규 앨범을 통해 하나의 완전한 서사를 구축한다. 그의 눈으로 보고 느낀 세계를 랩이라는 장르를 통해 하나의 또 다른 세계관으로 풀어낸다. 하드코어 힙합의 팬들은 물론 완성도 높은 음악을 좋아하는 청자들은 시적인 섬세함으로 쌓아올린 이그니토의 독특하고 강렬한 세계를 찾는다. 그 어떤 래퍼와도 다른 길을 걷는 이그니토를 만났다.

10. 1집부터 곡에 화자와 상징을 설정해 랩을 해 왔다. 이처럼 문학적인 장치를 둔 이유는?
이그니토: 래퍼들은 주로 자신의 이야기, 즉 개인사에 집중을 한다. 그것은 힙합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랩으로 보다 객관화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랩으로도 영화나 소설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내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이자 목표이기도 했다. 내 나름의 규칙이다.

10. 그동안 보여준 음악 속에서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도 그것인가?
이그니토: 그렇다. 인생과 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랩으로 풀어내도 치기 어리다고 느끼지 않았을 때 해야 그것이 듣는 이에게도 성숙하고 무게감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청자들의 눈물을 짤 만한 이야기는 많이 갖고 있지만 어린 나이의 불만과 투정으로만 집중되어 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웃음)

10. 개인사를 음악으로 풀어낼 때가 되면 또 다른 정규 앨범으로도 만날 수 있을까?
이그니토: 삶이 좀 더 깊어졌다고 생각되면 정규 앨범으로도 발매할 수 있을 것 같다.

10. 그간의 정규 앨범을 통해 형성하고자 하는 세계가 분명히 있음을 보여줬다. ‘Gaia’ 다음으로 가고자 하는 세계는 어디인가?
이그니토: ‘Demolish’에서 ‘Gaia’까지는 세계, 지구의 역사, 우주와 같이 거창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내 욕심이 드러나는 앨범이기도 했다.(웃음) ‘Gaia’까지 거대해보이는 외부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면 이제는 인간의 내부, 즉 정신에도 외부 못지 않게 방대한 공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내부의 심연으로 파고 들어가보고 싶다.

10. ‘Gaia’는 기본적으로 망하고 시작하는 서사다. 1번 트랙부터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이그니토: ‘Gaia’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인간들이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인류사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스스로에 의해 파괴되든 기계 문명에 의해 파괴되든 인류가 끝나는 순간 인간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에 대해 랩을 하고 싶었다.

10. 디스토피아에 대한 애착은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
이그니토: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디스토피아적인 문화 창작물들을 많이 봤다. 밀레니엄이 오면 세계 멸망이 올 것이다라고 경고하는 노래들이 많았고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도 심심찮게 등장했다.(웃음) 스스로 인간의 기본 속성은 이기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에서 오는 절망이나 분노도 언제나 내 음악에 내재됐다.

이그니토 ‘Gaia’ / 사진제공=(주)스톤쉽
이그니토 ‘Gaia’ / 사진제공=(주)스톤쉽
10. ‘Gaia’를 Mnet ‘쇼 미 더 머니6(이하 ‘쇼미6)’가 시작하기 전에 낸 이유는 무엇인가?
이그니토: ‘쇼미6’로 인해 얻어지는 홍보 효과를 계획적으로 누리려했다는 느낌을 주기 싫었다. ‘Gaia’는 ‘Gaia’ 자체로만 평가받고 싶었다. 사실 ‘Gaia’를 ‘쇼미6’ 종영 이후 내라는 조언을 주변에서 많이 해줬지만 ‘무조건 빨리 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앨범 발매일도 급하게 잡았다.

10. ‘쇼미6’에서 너무 빨리 탈락해서 아쉬웠다는 평이 많은데.
이그니토: 못 보여준 것들이 내게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사실 본선 무대에 가기 전까지는 기존에 내가 해왔던 것들을 보여주고 본선 무대부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었는데 본선까지 못 갔다.

10. 어떤 새로운 모습이었을까?
이그니토: 지금까지 전혀 하지 않았던 트랩을 도끼 씨의 비트로 보여준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또 평소에 디스 랩 배틀도 전혀 할 일이 없기 때문에 팀배틀을 함께 했다면 나도 모르는 모습이 나왔을 것 같다.

10. 우원재와 붙었을 때 악마 래퍼들의 대결이라고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악마 래퍼가 본 악마 래퍼는 어땠나?
이그니토: 모든 래퍼들이 서로의 랩을 다 볼 수 있는 2차 예선에서부터 우원재는 화제였다. 원재는 신선하고 아무도 하지 않는 방식의 랩을 보여줬다. 어리고 새로운 느낌이라고 래퍼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또 2차 예선하기 전에 원재랑 같은 버스에 탔는데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내 앨범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고 ‘리스펙’ 한다고 얘기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잘 지냈다. 서로 뽑지 말자고 했는데 원재가 날 뽑아서 당황했다. 그의 패기도 한 수 위였다.(웃음)

10. 여러 래퍼들과 같이 부른 ‘S.M.T.M(SHOW ME THE MONEY)’에서 보여준 가사도 신선했다.
이그니토: 제목에 ‘Money’가 들어가는 만큼 대부분의 래퍼들이 돈, 스웨그(자기 만족과 자아 도취, 자유로움, 가벼움 등을 뜻하는 힙합 용어), 욕망 등을 주제로 랩을 썼지만 내 스타일로 받아들여서 ‘마땅히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돈이 돌아가야 된다’라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다. 현실에서도 돈은 정의롭지 않으니까.

⇒인터뷰②에서 계속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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