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tvN ‘하백의 신부 2017′(연출 김병수, 극본 정윤정)에서 소아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신세경. / 사진제공=나무엑터스
tvN ‘하백의 신부 2017′(연출 김병수, 극본 정윤정)에서 소아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신세경. / 사진제공=나무엑터스
“tvN ‘하백의 신부 2017’(이하 ‘하백의 신부’, 연출 김병수, 극본 정윤정)의 소아를 연기하면서 ‘로맨틱 코미디 여자주인공’이라는 테두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조심했어요. 소아는 마냥 밝은 친구는 아니었으니까요. 짜증도 잘 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툭툭거리기도 해요. 그 배경에는 소아의 과거, 트라우마 등 뚜렷한 서사가 존재했죠. 소아는 제가 일부러 사랑스러움을 연기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 아이였습니다.”

배우 신세경은 자신이 연기한 소아 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하백의 신부’ 종영 인터뷰에서다.

‘하백의 신부’는 동명 원작 만화의 스핀오프 버전이다. 2017년 인간 세상에 내려온 물의 신 하백이 대대손손 신의 종으로 살 팔자를 타고난 소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극 중 소아는 신경정신과 의사로, 가족애보다 인류애가 강했던 아버지 때문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렸을 적 자신과 어머니를 두고 아프리카로 난민구호 활동을 떠난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지 않아, 그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어른이 된 소아는 아버지가 남긴 빚에 허덕여야 했다.

“1부에서 소아가 사랑스러움을 연기하는 대사는 한 마디도 없어요. 오히려 늘 지쳐있고 돈에 쫓기고, 그래서 짜증을 내고 한숨을 쉬고, 유 간호사(신재훈)에게 시비를 걸고… 보통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여자주인공은 허둥대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잖아요. 그런데 우리 드라마는 여자주인공이 1회 내내 화만 내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저도 PD님도 고민이 많았어요.(웃음)”

그러나 역할에 대한 고민은 2회 대본을 읽으며 확신으로 바뀌었다. 2회에 나오는 횡단보도 신이 신세경의 마음을 움직였다.

신세경이 말한 소아와 노인의 횡단보도 신 /사진제공=’하백의 신부 2017′ 방송화면
신세경이 말한 소아와 노인의 횡단보도 신 /사진제공=’하백의 신부 2017′ 방송화면
“소아가 걸음이 느린 노인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면이 있거든요. 휴대폰을 보는 척하면서 노인과 발을 맞춰 걷는 거예요. 신호가 바뀌고 차들이 클랙슨을 울려도요. 사실 소아는 아버지 때문에 ‘다른 사람 도와주겠다는 생각 따위 하지 말고 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게 된 아이인데, 그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 신이었습니다. 확신이 생겼어요. 소아의 감정이 작품에 꼼꼼하게 그려져 있구나, 사랑스러운 척하지 않아도,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이해받을 수 있겠구나… 제가 느낀 것을 PD님에게 말씀드렸더니 믿어주시더라고요.”

‘하백의 신부’는 방송 초반 혹평을 듣기도 했다. 원작과의 비교되기도 했고, CG 연출이 허술하고 배우들의 분장이 어색하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신세경은 “배우를 하며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완벽하게 맞출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저는 방송에 앞서 대본 리딩, 촬영 등을 통해 작품의 세계관에 충분히 적응됐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던 시청자들에게는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인물간의 관계가 발전되고, 큰 그림이 그려지면 좋아해주실 거라 믿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신세경의 믿음이 맞았다. ‘하백의 신부’는 회를 거듭할수록 소아와 하백이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 사랑을 느끼는 모습이 애틋하게 그려지고 다른 캐릭터들의 서사가 어우러지며 마니아를 형성했다.최종회 시청률은 3.15%로, 직전 회인 15회 시청률 2.21%보다 0.94%P 상승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PD님의 연출력, 작가님의 아름다운 대사, 여러 요소 덕분에 ‘하백의 신부’가 사랑받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떠올려도 많이 아끼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신세경은 인터뷰 내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소아가 느끼는 감정들에 깊이 몰입한 모습이었다. 신세경은 “소아와 5개월을 함께 했기 때문에, 그와 저를 분리해 생각하기가 어렵다”며 웃었다.

신세경 / 사진제공=나무엑터스
신세경 / 사진제공=나무엑터스
“드라마에서 소아가 거실이나 부엌에서 혼자 있는 장면을 보면 마음이 미어지게 아프더라고요. 극 초반에 소아가 퇴근을 하고 돌아가면, 항상 기다리고 있는 건 불 꺼진 외로운 집이었어요. 그 안에 혼자 있는 소아의 외로움이 속속들이 와 닿았죠. 사실 다들 그렇잖아요. 저는 가끔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외로울 때가 있거든요. 제가 배우라서 느끼는 외로움은 아니고요. 아끼는 친구들과의 갈등 때문일 수도, 또 다른 문제들이 있어서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제 캐릭터에 연민을 갖게 되더라고요.”

소아가 그 외로움을 하백과의 사랑으로 해소한 데 비해 현실 속 신세경은 취미 생활로 달랜다.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고, 때로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한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들깨 수제비라면서 반죽이 쫄깃해지는 팁까지 전수했다. 신이 난 듯 웃는 신세경의 모습이 동네 친구처럼 친숙했다.

신세경은 이전까지 ‘사연 있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딘지 처연한 눈망울과 낮은 목소리, 차분한 말투, 성숙한 외모가 그에 한 몫을 했다. 아역으로 데뷔 후 MBC ‘지붕 뚫고 하이킥’ SBS ‘뿌리깊은 나무’ ‘냄새를 보는 소녀’ 등 시트콤, 사극, 로맨틱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연기했으나 ‘우울한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그런 그가 ‘하백의 신부’를 통해 “제 나이처럼 보인다”“밝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웃었다.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죠. 그런데 사실 저는 한 번도 어른스러워 보여야겠다는 강박을 가진 적이 없어요. 워낙 어렸을 때 키가 빨리 컸거든요. 지금 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키와 같으니까요. 타고난 분위기가 그랬을 뿐 성숙함을 의도한 적은 없어요.(웃음)”

신세경이 처음 얼굴을 알린 것은 9세 때였다. 서태지의 ‘테이크 파이브(Take Five)’ 뮤직비디오에 출연했고, 어린 나이였는데도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로 화제를 모았다. 신세경은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는 작품 활동이 없었다. 대신 학창시절을 알차게 보냈다. 덕분에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는 귀하고 소중한 시간을 얻었다. 그때의 친구들과 아직도 절친하다”고 했다.

신세경 / 사진제공=나무엑터스
신세경 / 사진제공=나무엑터스
“최근 서태지 선배님의 25주년 프로젝트 포스터를 다시 촬영했습니다. 완성된 결과물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시간이 참 빨리 간 것 같아요. 이제 제 나이가 서른을 향해 가고 있어요. 어느 현장에서든 막내였던 제가, 이제 언니가 되고 동생들이 생기는 거예요. 지금 이 기분이 나쁘지 않아요.(웃음) 이대로 계속,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끄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