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배우 김진우 /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배우 김진우 /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그는 연신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막을 올린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연출 정태영)로 큰 기쁨을 맛보고 있어서다. 2006년 연극 ‘아담과 이브, 나의 범죄학’으로 데뷔해 방송, 영화를 거쳐 다시 무대로 돌아온 김진우 이야기다. 그에게 무대는 고향 같은 곳이다. 추억이 담긴 곳을 떠나 드라마를 접했을 땐 배우 인생에 한 차례 고비가 왔다. 무대에서의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가 익숙해진 탓에 앵글 속 섬세한 연기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타고난 승부욕으로 악착같이 작품을 하며 단련했다. 비로소 굳은 어깨가 펴지고 옆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다시 무대를 찾았다. 김진우는 “과거엔 내 것 하기에도 벅차 상대 배우를 이해할 시간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빛나는 상대로 인해 나도 반짝인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의 무대는 감동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10. 오랜만에 선 무대인데 분위기는 적응했나?
김진우 : 모든 배우들이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부분을 파악해서 극의 속도를 늘리고 과장도 한다.

10.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 변화를 줬나?
김진우 :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가 워낙 재미있는 공연이라 웃음 포인트가 많다. 내가 맡은 지킬은 최선을 다해 연구하지만 실패해 좌절하는 인물이다. 어째서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상황을 비틀어 보여주면서 관객들을 설득한다. 연습실에선 관객들이 지루해할까 봐 속도를 빠르게 했다. 실제 공연에서 천천히 편안하게 설명하니까 관객들이 더 많이 웃더라. 당초 예상했던 러닝 타임보다 5분 정도 길어졌다. 관객들이 충분히 웃을 수 있게 기다리는 시간도 있다.

10. 드라마와 영화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다 연극, 게다가 코믹극을 선택한 이유는?
김진우 : 뮤지컬 ‘삼총사'(2011)를 마지막으로 드라마와 영화에 집중했다. 무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기회가 잘 닿지 않았는데 마침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의 출연 제안을 받았다. 데뷔작인 뮤지컬 ‘그리스'(2008) 때 만난 정태영 연출이 “연기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와닿았다.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지킬 역할이라 더 끌렸다. 마침 영화 ‘쇠파리’를 다 찍고 2개월 정도 휴식이 있었는데 선물처럼 찾아온 작품이다.

10. 오랜만의 휴식이었을 같은데.
김진우 : 2년 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달리는 동안에 발전하고 싶은 욕심은 더 커진 모양이다. 여행을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소양을 쌓고 싶었다. 그때 연출의 한마디가 마음을 움직였다. 이 연극을 통해 연기 경험의 폭을 넓히고 다른 극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다시 고향 같은 무대에 돌아와서 새로운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한 달 반 정도 대학로 연습실에서 공연을 준비했는데 그것만으로 신났다. 연습실에도 더 일찍 오고 그랬다.(웃음)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 중인 김진우 / 사진제공=㈜티앤비컴퍼니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공연 중인 김진우 / 사진제공=㈜티앤비컴퍼니
10. ‘돌아왔다’는 생각에 즐거웠던 걸까?
김진우 : 대학로에 있다는 것만으로 설?다. 무대에 올라가려고 준비하는 모든 순간이 감동이었다. 예전엔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이 강해서 누구보다 잘하고 돋보이려고 했다. 지금은 작품을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고 다른 배우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도 커졌다. 그렇게 하니 배우들과의 사이도 돈독해졌다.

10. 여유가 묻어나는 것 같은데.
김진우 : 예전엔 부담과 책임감 때문에 자세도 딱딱했다. 인터뷰를 할 때도 단답형으로 말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행복하다는 걸 계속 말하고 있지 않나.(웃음) 마찬가지로 무대에서도 얼어있었고 긴장한 것이 표정에도 드러났는데 지금은 충분히 즐기고 있다.

10. 쉬지 않고 작품을 계속했는데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꼈나?
김진우 : 첫 시작이 연극이었는데 관객들 앞에서 마치 옷을 벗는 것 같이 무서웠다. 희한하게도 배우들은 그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도 카메라 앵글 안에서 밀도 있는 연기를 하지만 무대 위에서처럼 즉각적으로 반응을 느끼고 교감할 수는 없지 않나. 그걸 갈망했다. 배우들이 저마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분석해온 것이 다르기 때문에 두 달 동안 연습을 하면서 수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부딪히면서 말이다. 그렇게 소통하는 것이 우리만의 세상이고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마냥 기쁘다.

10.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속 지킬의 분석 결과는?
김진우 : 사실 이 극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인데(웃음) 그중에서도 지킬은 열정이 넘치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다만 그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매우 순수하다. 자신이 믿는 걸 다른 이들에게도 옳다고 우기고 설득한다. 코믹극의 특성상 지나치게 깊게 들어가진 않았다. 상황 속에 웃기는 요소가 충분히 갖춰져 있기 때문에 진정성에 초점을 맞췄고, 극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10. 주로 진지하고 무거운 캐릭터를 연기했던 이전 작품들과 달라서 신선했다.
김진우 : 일부 작품을 제외하곤 중후하고 무게감 있는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인지 실제 성격이랑 달라서 힘들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사실 굉장히 활발하고 밝다.(웃음) 드라마 ‘리멤버’를 같이한 오진석 감독도 이 작품을 보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하더라. 새로운 게 아니라 분명 내 안에 있는 모습이다. 연습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면에 갖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자고 생각했다.

10. 이 작품으로 답답함을 해소하고 있나?
김진우 : 맞다. 해소된다는 말이 적합한 것 같다. 일일극의 주인공을 맡았을 때 진정성을 유지하면서 작품을 끌고 가는 것을 배웠다. 지금도 다지고 배워가는 과정이다. 이 연극을 본 관객들 중 나를 드라마에서만 봤거나 혹은 모르는 사람들도 ‘이런 면이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10. 옆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때 이 작품을 만나서 더 행복한 게 아닐까?
김진우 : 배려라는 단어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앞으로의 연기가 더 넓어질 것 같다. 사람이 욕심을 내면 옹졸해지고 생각하는 공간도 줄어든다. 다음 작품부터는 더 넓은 시야로 많은 걸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된다. 표현도 풍성해질 것이고 말이다.

10. 데뷔 초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내려놓기와 배려인가?
김진우 : 예전에는 내 것 하기에도 바빠서 상대방을 이해할 시간이 없었다. 상대의 대사와 생각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이젠 그게 들리고 다 이해된다. 그만큼 여유가 쌓인 것 같다.

10. 무대를 떠나 있던 7년 동안 내적인 갈등과 충돌은 없었나?
김진우 : 드라마를 처음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어려웠다. 무대 연기와 장르가 다르니 우선 카메라부터 익숙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실생활 연기에 무너진 거다. 자괴감이 들 정도로 버거웠다. 드라마 연기를 이해하고 편안하게 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공연했었구나?”라는 제작진의 질문이 “공연도 했었어?”로 바뀌기까지 말이다. 작품을 많이 한 것도 그래서였다. 정체기는 계속 있었고, 이겨나가려고 했다. 부족함을 깨려고 작품을 쉬지 않았다.

김진우 /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김진우 / 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10. 그 5년 간 마음의 상처나 스트레스도 컸을 텐데.
김진우 : 상처를 많이 받았다. (연기를 전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대를 다녀온 뒤 바로 연극부터 시작해서 제대로 연기를 배우지 못했다. 빨리 주연을 맡게 돼 행복하지만 기회를 얻은 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압박이 컸다.

10. 어떤 배우는 연극을 하다 드라마 촬영장으로 돌아가면 무기를 잔뜩 준비해 가는 느낌이라고 한다. 현재 드라마와 연극을 병행하고 있는데 어떤가?
김진우 : 확실히 자신감이 생긴다. 활력소랄까 행복한 기운을 갖고 가는 기분이다. 무너진 자존감이 무대에서 충전되니까 그 열정을 받아서 드라마나 영화 현장을 가면 더 빛날 수 있다.

10. 드라마와 연극을 병행하는 건 힘들지 않나?
김진우 : 사실 뮤지컬 ‘삼총사’를 할 때 ‘지고는 못 살아'(2011)의 촬영과 겹쳤다. 무대 위에서 다 쏟아부어야 하니 힘들었다. 게다가 공연할 때 물을 자주 마시는 편인데 다음날 촬영 때 얼굴이 부을까 봐 참아야 했다. 생각해 보면 그땐 방법을 잘 몰랐다. 중압감이 심해서 힘을 분배할 줄도 몰랐고, 즐기지도 못했다. 지금은 내가 아닌 다른 배우들이 빛나야 하는 순간도 알고 모두와 부담을 나눈다. 집중력이 높아져 힘을 쓸 수 있는 공간도 넓어졌다.

10. 영화에 드라마, 연극까지 모든 장르를 섭렵했으니 올해를 잊지 못할 것 같은데.
김진우 : 연극 연습을 하면서 드라마 출연 제안을 받았다. ‘이런 날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때라 더 좋다. 이런 배움의 자세로 간다면 나의 40대는 어떨까 궁금해진다. 먼저 길을 가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난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꾸준히 잘 가고 싶다. 지금까지의 삶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면 마흔부터는 진정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을까.

10.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관객들에게 한마디 남긴다면?
김진우 : 공연이 8월20일까지인데 마지막 공연을 생각하면 벌써 울컥해진다. 정말 행복했던 작품이었다. 다시는 이런 배우들을 못 만날 것 같고, 만약 삼연을 한다면 흔쾌히 또 할 거다.(웃음) 그간 드라마나 영화로 보여드리지 못한 색깔을 보여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실컷 웃을 수 있는 공연이니까 주저 없이 와서 편안하게 즐기시길 바란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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