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배우 배소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승현 기자lsh87@
배우 배소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승현 기자lsh87@
배우 배소은이 다시 출발점에 섰다. 영화 ‘중독노래방’(감독 김상찬)은 좋은 신호탄이 됐다. 이 영화로 지난해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파타스틱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태어나서 처음’ 상을 받아본 배소은은 “책임감이 들었다. 칭찬을 받으면서 자란 적이 없다. 좋은 평가가 낯설기도 하지만 또 받기 위해 노력하자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독노래방’은 한적한 지하 노래방에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이 모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판타지 영화다. 배소은은 단벌 트레이닝복에 다듬지 않은 긴 머리, 언제나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하숙 역을 맡아 열연했다. 초보 노래방 도우미로 어두운 방안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 배소은은 남들에게는 말 못할 상처를 가지고 있는 하숙을 미스터리하면서도 기묘하게 표현하며 관객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삶의 무게를 견디면서 살아가잖아요. 하숙의 드라마가 좋았죠. 저처럼 유명하지 않은 배우가 이렇게 좋은 역할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닥터’ 제작사 대표님이 ‘네 연기는 별로였는데 눈빛이 기억이 났다. 다른 작품에서 또 써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해줬어요. 그렇게 오디션을 봤는데, 솔직히 제가 될 것 같았어요.(웃음) 시나리오를 보고 내가 어떻게 연기해야 될지가 그려지더라고요. 하숙은 저한테 딱 맞는 옷이었습니다.”

게임중독자 역을 위해 가장 먼저 한 건 컴퓨터 배우기였다. 핸드폰으로 영화 예매도 못하고, 온라인 쇼핑도 해본 적 없다는 그는 컴퓨터를 배우고,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 이들의 눈빛이나 손동작 등을 유심히 지켜봤다. 게임 중독에 빠진 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하숙에게 점차 동화됐다. 무엇보다 하숙의 깊은 상처를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배소은은 “분명 하숙과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자칫 잘못하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항상 기억했다.

배소은은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노출 드레스로 주목을 끌었다. 영화 ‘닥터’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그는 레드카펫을 밟았고, 영화제 최고 이슈 스타가 됐다. 배소은은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는 배우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섣부른 판단”으로 배소은은 본의 아니게 출발점에서 다시 뒤로 후진했다. 한 번 생긴 이미지를 지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적은 나이가 아니었는데 내 자신이 주체적으로 한 일은 아니었다. 바보였던 것이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배우 배소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승현 기자lsh87@
배우 배소은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승현 기자lsh87@
그는 “유명해지고 사람들 앞에 서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알았다. 나에게 맞는 옷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 감당이 안 됐다”며 “그러면서 내 자신을 알아갔다. 내가 누구인지 생각했다. 이후의 시간은 나를 찾는 과정이었다. 두각을 나타낼만한 일은 없었지만 혼자서 뭔가를 계속했다. 정말로 좋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데뷔작인 ‘닥터’를 찍고 나서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놀기도 하고 연애도 했다. 그러다 영화 ‘사돈의 팔촌’(2016) 출연 제안을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배우들이 함께 만드는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연기에 열정을 느꼈다.

“연기도 재밌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게 좋았어요. 조연출도 하고 제작부 일도 하고 스크립터 일도 하면서 같이 만들었어요. 개봉한 뒤에는 관객들과의 만남도 많이 가졌고요.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게 이건가보다’고 느꼈죠.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영화로 만들고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일을 하고 싶었던 거더라고요. 그렇게 제 자신이 원하는 걸 알아갔어요.”

엄청난 열망으로 연기자가 됐던 건 아니었다. 때문에 한예종에 입학하고 나서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자신을 돌이켜보며, 주체성을 찾기 시작했다. ‘중독노래방’은 배소은의 의지가 100% 반영된 작품이었다. 그렇게 다시 출발점에 섰다. 그리고 그 출발을 축하하기라도 하듯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상을 받으니까 주변에서 이제 너 유명해지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돈 도 벌고, 편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더 좋은 사람들과 작업할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또 그러기 위해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는 제가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분들은 몰라요. 전 열심히 오디션도 보고, 연기도 해요. 다만 유명하지 않을 뿐이죠. 그렇다고 배우가 아니지는 않잖아요. 그게 불행하지는 않아요. 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갈 거고, 그게 행복해요.”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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