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배우 진구 / 사진제공=NEW
배우 진구 / 사진제공=NEW
남자다운 외모에 울림이 큰 낮은 목소리. 매료될 것 같은 짙은 눈매까지. 배우 진구에게는 특유의 선 굵은 남성미가 묻어 있다. 그런 그가 흰 이를 드러내고 눈꼬리를 구기며 서글서글하게 인사를 했다. 이럴 때 ‘출구 없는 매력’이라는 표현을 쓰나보다.

지난해 KBS2 ‘태양의 후예’로 ‘한류스타’가 됐지만 진구는 “위험하게 폭발한 작품”이라는 표현을 썼다. 마음의 중립을 지켜야지 평생 상실감 없이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원라인’은 그런 진구의 연기적 갈증을 해소시켜준 작품이다. 베테랑 사기꾼 장 과장을 만난 그간 보여줬던 우직하고 강렬한 연기톤을 내려놓고 가벼우면서도 매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유쾌하면서도 정직했고, 가볍게 웃으면서도 진지했다. 영화 ‘원라인’ 속 장 과장과 은근히 닮은 듯한 배우 진구의 이야기.

10. 능청스러운 장 과장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했다.
진구: 사실 처음엔 장 과장의 매력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을 고사했었다. 회사에선 새로운 캐릭터라는 점에서 내 출연을 바랐고, 결국 양경모 감독님을 만나게 됐다. 아, 감독님한테 감겼다. 감독님이 영화를 준비하며 실제로 만났던 작업 대출 업계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해주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다. 장 과장은 글자 몇 개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10. ‘태양의 후예서 상사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원라인촬영 중에 태양의 후예가 공개됐다. 색이 다른 캐릭터를 위해 고민도 했을까?
진구: 워낙 두 캐릭터의 성향이 달랐다. 내가 어떤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다른 인물이었다. 특히나 양경모 감독님은 날 방목하는 스타일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편안하게 연기를 하라고 주문해서 정말 맘대로 했다.

10. 극 중 장과장은 사기로 은행 돈을 빼내는 사람이었다. 배우 진구에겐 돈과 명예,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진구: 어려운 질문이지만 명예라고 답하고 싶다. 예전에 지갑에 돈이 한 푼도 없던 시절이 있다. 그래도 난 행복하고 배불렀다. 남에게 밥을 얻어먹고 돈을 빌리고 굽신 거리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돈에 대한 강박은 없다. 명예라는 건 사실 누군가에게 좋은 이미지로 기억된다는 것 아닐까. 그게 내 꿈이다.

10. 촬영 중 수많은 돈에 둘러싸여봤다. 욕심나진 않던지.
진구: 실제 지폐는 아니었지만 당연히 내 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시완이랑 돈다발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다 세어지지도 않았다. 내가 언제 그 많은 돈을 보겠나. 한 다발에 100만 원이었는데 대충 계산해보니 1,000억 정도 있더라. 어마어마했다.

10. 그런 돈이 생긴다면 뭘 할까?
진구: 글쎄. 피규어나 사지 않을까. 농구화도 살 것 같고.

10.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진구: 엔딩 장면이 떠오른다. 유독 여러 버전이 있는 장면이었다. 높은 계단을 배경으로 한 촬영이었는데, 내가 혼자 올라가는 장면과 시완이가 올라가는 장면이 있었다. 우리 둘이 함께 계단을 오르는 장면까지 찍었었다. 결국 완성된 버전에선 내가 시완이를 바라보며 한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그 미소와 뒷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관객들도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면 아닐까.

10.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진구: 삭제된 장면이 있다. 제일 마지막 엔딩으로 나올 신이었다. 극 초반에 민재(임시완)와 송차장(이동휘)가 대출 사기로 시합을 벌이지 않나. 송차장은 실패했고 민재는 성공했다. 사실 그 비하인드가 있었다. 민재가 장 과장한테 받은 스카우트비용으로 직접 대출을 해주고 성공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거다. 장 과장은 민재가 뒷골목에서 시민과 돈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10. 임시완과의 케미도 좋았다. 임시완은 계속해서 완구커플을 지지하던데.
진구: 나도 좋아한다. 최근에 술을 마시면서 시완이 생각을 했지만 드라마 촬영 중이라 바빠 내가 ‘감히’ 연락을 할 수가 없다.(웃음) 시완이는 배역에 대한 연구를 굉장히 많이 한다. 과할 정도다. 나랑 (박)병은이 형은 시완이를 말리느라고 바빴다. 현장에서 조금 더 편하게 연기해도 된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 현장을 무서워하지 않아야 연기를 더 잘 할 거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시완이가 촬영 초반이랑 후반이 달라지더라. 점점 여유가 넘쳤다. 베테랑 냄새가 났다. 아마 다음 작품은 더 잘 할 거다.

배우 진구 / 사진제공=NEW
배우 진구 / 사진제공=NEW
10. ‘태양의 후예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질주 중이다. 때문에 오는 공허함이나 초조함은?
진구: 없다. 내 주변엔 참 바보 같은 사람이 많다. 내가 방심하거나 자만하거나 조바심을 내려고 할 때마다 나보다 더 열악한 고민으로 날 찾아오는 바보들이다. 그들과 얘기하다보면 나 스스로 더 붙잡고 각성하게 된다. 가장 큰 바보는 소속사 손석우 대표.(웃음)

10. 어떻기에.
진구: 나도 나에 대한 믿음이 있지만, 손 대표는 나에 대한 믿음이 더 큰 사람이다. 내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날 끌어올린 은인이다. 다시 태어나도 손 대표 밑으로 갈 거다. 종신계약도 자신 있다. 은퇴를 한다고 한지 10년도 넘었는데, 왜 안하냐고 물으면 ‘너 잘되는 거 보고가야지’라고 했었다. ‘태양의 후예’ 이후에 다시 물어봤는데 ‘네가 잘되는 걸 보니 끝이 궁금해졌다’고 하더라. 내가 무명 때부터 날 지지해준 사람이라 애착이 있는 것 같다. 소속사 회식자리에 나가지 못하는 이유도 그거다. 다른 배우들도 있는데 나만 편애하는 것 같다. 나만 사랑받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좀 그렇더라.(웃음)

10. 다른 작품들을 보며 저 배역 내가 했으면싶은 적은 없는지.
진구: 내가 감히? 후배들의 연기라도 존경스럽고 신기한 적이 많다. 팬이 된다. 욕심을 부리면 맞을 옷도 맞지 않더라. 내일, 내년에 더 잘할 자신이 있으니 천천히 내공을 쌓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10. 다시 태어나도 배우라는 직업을 택할 것 같다.
진구: 다른 직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론, 고3이 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미친 듯이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너무 심심하던 차에 집에 굴러다니는 언어영역 문제를 풀게 됐다. 1번 문제를 보고 다시 덮었다. 지문이 생각보다 길더라. 작가가 의도한 걸 찾으라고? 전혀 모른다. 공부는 포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10. 배우로서 목표하는 지점은?
진구: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는 게 최고 목표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연기할 수 있는 역할도 작아질 거고, 내 체력도 떨어지겠지만 그 시점에 다다랐을 때 주어지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상실감 없이 연기하고 싶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배우 진구 /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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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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