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정현수 음악감독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정현수 음악감독이 서울 중구 청파로 한경텐아시아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노래만 듣고도 장면을 금세 떠올릴 것이다. ‘변호인’의 엔딩, ‘범죄와의 전쟁’의 하이라이트, 또 ‘신세계’의 클래이맥스까지. 이는 모두 정현수 음악감독의 손끝에서 나왔다. 듣기만 해도 무릎을 탁 칠법한 멜로디, 덕분에 장면 역시 한층 빛을 발했다.

정현수 음악감독은 영화 음악을 하고 싶어 클래식부터 전자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이유는 단 하나, 더 좋은 장면을 위해서다. 예상 가능한 뻔한 음악이 아닌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해 지난달 28일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솔로 음반도 발표했다. 그간 영화를 통해 들려줬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으로 또 한번 신선함을 안겼다.

10. 영화 음악만 만들어오다 처음으로 정규 음반을 냈다. 언제부터 계획한 것인가.
정현수 : 사실 꽤 오래전부터 내고 싶었는데, 시간과 마음적인 여유가 없었다. 이번에 조금 여유가 생겨서 준비를 시작했고 발표하게 됐다.

10. 수록한 OST의 경우엔 선별 기준이 궁금하다.
정현수 :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던 영화의 메인 테마곡 위주로 꼽았고, 또 스스로 만족하는 곡도 선별했다. 영화 ‘변호인’의 엔딩곡과 ‘신세계’의 메인 테마곡, 그리고 ‘돌연변이’ ‘백야행’의 OST도 수록했다.

10. 타이틀곡은 OST가 아닌 자작곡이다. 프러포즈 송이었다고.
정현수 : 6년 전 썼던 음악이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웃음) 거의 당시 만든 그대로이다. 정규 음반인 만큼 ‘나’를 담고자 해서 인생에 중요한 순간이었던 청혼곡을 타이틀곡으로 정했다. 프러포즈를 할 땐 악보에 편지를 썼고, 결혼식에서 직접 연주도 했다.

10. 인생에서 의미 있는 곡들을 넣어다고 하니, 음반의 구성이 이해가 된다. ‘백야행’은 첫 OST 작품이지 않나.
정현수 : ‘백야행’은 영화음악으로 처음 참여한 작품이고, 그 이유로 1번 트랙에 수록했다. 당시 영화 감독이 작곡가를 필요로 했고, 운 좋게 기회를 얻었다.

10. 영화음악에 대한 목표가 있었나 보다.
정현수 : 영화 음악을 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고, 클래식을 전공했고 이후 대학원까지 마치며 여러 장르의 음악을 배웠다.

10. 영화 음악에 끌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현수 : 영화를 좋아히기도 하고, 장면과 음악이 만났을 때 더 잘 전달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좋았다.

10. 사실 음악인으로서 OST 작업은 갈등의 연속일 것 같다. 돋보이고 싶지만, 또 마냥 음악을 중심으로 흘러서는 안되니까.
정현수 : 처음 시작했을 땐 음악이 도드라졌으면 해서 많은 시도를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오히려 음악이 좋지 않게 들리더라. 가장 첫 번째는 영화에 집중을 하는 것이니까, 그 이후 욕심을 버리고 시작했고 담백하게 만들었더니 아이러니하게 음악이 더 돋보였다.

10. 내려놓게 된 계기가 있을까.
정현수 : 영화 ‘베를린’의 곡 작업을 할 때 자꾸 욕심을 냈다.(웃음) 시나리오를 읽고 구상을 해보니, 웅장하고 큰 음악이 나오더라. 욕심을 내다보니까 다양한 악기를 집어넣었고, 결국 영화와는 멀어졌다. 감정이 넘치니 영화도 넘친다는 걸 깨달았다.

10. 주로 곡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
정현수 : 먼저 시나리오를 읽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린다. 찍으면서 편집본이 오는데 거기에 맞춰서 곡을 수정하고 또 만드는 작업을 이어간다.

10. 글을 읽고 곡을 만들었는데, 편집본을 보고 전혀 다른 분위기라 당황하기도 하겠다. 연출과 생각이 꼭 같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정현수 : 영화 ‘의뢰인’이 좀 그랬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음악을 웅장하고 세게 만들었다. 영상을 보니 예상과 달리 잔잔한 장면이 많았다. 처음엔 확실히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준비를 더 많이 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다른 느낌의 콘셉트로 다른 곡을 만들어 두는 식이다.

10. 지금까지 영화 음악과 이번 음반의 타이틀곡은 전혀 다르다. 물론 프러포즈 송이란 테마를 전제로 하겠지만.(웃음) 마치 동화 같은 느낌이었다.
정현수 : 평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내 안에 소녀 감성도 있고.(웃음)

10. 필모그래피를 보고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정보다.(웃음)
정현수 : 게임 음악을 만드는 작업도 했었고 기회가 된다면 애니메이션 음악도 만들고 싶다.

정현수 음악감독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정현수 음악감독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어느덧 음악감독으로 활동한지 7년이 흘렀다. 처음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현수 : 처음에는 음악이 돋보이게만 하려고 했다면, 이젠 의도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의뢰인’은 마림바가 들어가서 독특한 느낌을 줬다. ‘신세계’에서는 목관 악기를 썼고 ‘돌연변이’는 아코디언을 집어 넣었다. 처음엔 다들 생소해하다가도 신선함이 주는 매력을 알게 된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할 생각이다.

10. 선입견인지 모르겠으나, 클래식 전공자들은 순수음악에 대한 고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인 것 같다.
정현수 : 영화음악을 하려면 오케스트레이션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클래식을 배웠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영화 음악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는 없었다. 공부를 해야 된다고 해서 현대 음악을 알아가다 매력을 느낀 거다. 대학원을 통해서는 전자 음악도 배웠다. 다양한 장르를 접목해서 새로운 결과물이 나왔을 때 기분 좋다.

10.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의 음악에 욕심을 낼 수도 있겠다.
정현수 : 뮤지컬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또 말했듯이 소녀 감성을 쏟아낼 수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도.(웃음)

10. 다양한 시도의 첫걸음이 이번 음반일 것 같다.
정현수 : 하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냈는데, 사실 누군가의 피드백 없이 오롯이 혼자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내 이름으로 발표되는 음반이라 공도 많이 들였다. 맨날 의견을 받아 수정을 하다가 허락받지 않고 마음껏 생각을 펼칠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웃음)

10. 지금까지 작업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정현수 : 보통 영화를 한편 하면 3, 40곡이 들어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 100곡을 만든다. ‘부당거래’의 경우엔 20곡을 썼는데 모두 다 들어갔다. 다행히 감독의 마음에 들어서 써놓은 곡이 다 들어가게 된 거다. 드문 경우라 기억에 남는다.(웃음) ‘후궁’은 결혼 전에 참여한 작품이었는데, 19세 관람불가 영화인데 작업 중 방에 어머니가 들어오셔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일하던 중이었는데.(웃음)

10. 최근 작품으론 ‘4등’이 있다. 결혼 후 아이를 낳은 만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정현수 : 작업을 할 때는 자식의 입장에서 다가갔다.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그때의 감정을 이입했던 것 같다. 수영장 장면이 많았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풀까 고민을 했는데, 어쿠스틱보다 전자 음악으로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 물속 장면에 전자 음악을 많이 썼다. 우주 혹은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10. 영화음악을 한 뒤부터는 어떤 작품을 봐도 온전히 즐기지는 못하겠다.
정현수 : 작품을 보면서 최근 흐름도 알 수 있고, 요즘은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는지 배우기도 한다. 또 악기는 뭘 쓰는지, 어떤 생각인 건지도 확인하고. 최근 전임교수가 돼 학생들과 소통하면서도 얻는 게 많다. 곡을 쓸 땐 주로 혼자 작업을 했는데 요즘 대인관계가 넓어지고 있다.(웃음)

10. 창작을 한다는 건 불안한 순간이 많을 것 같다. 퍼뜩 떠오를 때도 있지만, 또 영감은 늘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 고갈되면 어쩌지란 불안함이 항상 있지 않나.
정현수 : 물론 있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걸 하려고 한다. 또 다른 시도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스트레스도 받는데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다. 돌아다니는 것보다 휴양지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걸 선호한다.(웃음) 가만히 있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처음엔 작업 도구를 가져가곤 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이젠 그러지 않는다. 정말 온전히 쉬기 위해 간다.

정현수 음악감독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정현수 음악감독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올해도 다양한 작품의 제안을 받았을 것 같은데, 계획이 궁금하다.
정현수 : 작곡가로서 욕심이 나는 작품도 분명 있다. 그런데 현재는 그간 염원하던 음반이 나와서 좀 쉬고 싶은 마음이 있다. 또 전임교수로 학교에도 뭔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그러다 또 좋은 기회가 오면 작품을 할 테지만. ‘겨울왕국’처럼 노래하는 애니메이션의 음악 작업도 해보고 싶다.(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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