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조작된 도시’ 오정세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작된 도시’ 오정세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오정세의 마음속에는 인물 저장 창고가 있다. 주변을 관찰하다가 특이한 색깔의 캐릭터나 재미는 상황 속 설정들을 기억해두고 연기를 할 때 이를 꺼내서 활용한다. 영화 ‘조작된 도시’(감독 박광현)에서 반전의 키로 활약한 오정세는 감독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제안을 하면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 그간 감초 역할로 대중들의 눈도장을 찍어왔던 오정세는 작정이라도 한 듯 광기를 드러냈다.

“왜소증을 떠올렸는데, 제작비가 2배로 든다고 하더라고요. 골룸처럼 머리숱이 비정상적으로 없는 모습은 가발 제작이 쉽지 않았죠. 꼽추도 생각했어요. 살짝 불편한 모습으로 자세를 잡았는데, 허리가 나갈 것 같더라고요. 제 허벅지에 큰 오타반점이 있는데 이걸 얼굴에 큼지막하게 그리면 어떨까했죠. 민천상의 결핍을 잘 드러낼 장치가 되겠다 싶었죠. 9대 1 가르마는 히틀러에서 착안했어요. 이마가 넓었으면 해서 앞머리 부부만 좀 깎았어요. 묘한 인물로 만들려고 노력했죠.”

‘조작된 도시’에서 오정세는 승률 0%의 별 볼 일 없는 국선 변호사 민천상 역을 맡았다. 어리숙하고 소심한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건을 배후에서 조정 하는 역할이다. 권유(지창욱)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고 평범한 이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삐뚤어진 욕망과 분노로 가득 찬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민천상은 처음부터 오정세의 역할이 아니었다. 오정세는 극 중 다른 역할을 제안 받았지만 민천상 역할이 욕심났다. 하지만 오정세는 “100억짜리 대작에 박광현 감독이 연출하고 지창욱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 다음이 오정세라고 하면 투자사나 배급사에서도 조심스러울 거란 생각은 했다”면서도 “민천상 역이 크랭크인 2주전까지도 공석이었다. 언급되는 배우가 있었는데 안 되면 내가 오디션을 봐도 상관없다고 의욕을 내비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광현 감독에게 자신이 생각한 민천상에 대해 여러 설정들을 제안했고, 촬영 2주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그가 최종적으로 민천상 역에 캐스팅이 됐다.

‘조작된 도시’ 오정세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작된 도시’ 오정세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너무 기뻤어요. 사실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에서도 다른 역할에 캐스팅됐다가 최종적으로 남자주인공을 연기했거든요. 까이기도 하고 어렵게 캐스팅 되는 것이 저에게는 더 의미가 있어요. 쉽게 가는 것보다 여러 난관을 겪는 것이 배우로서 더 좋더라고요.”

오정세는 자신이 있었다. 민천상 역에 대해 그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최종적으로 내가 캐스팅된 뒤 부담감은 있었지만 나를 힘들게 하거나 그것이 내 마음을 흔들 지는 않았다. 불안감보다 나에 대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영화와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사랑, 자부심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런 영화와 인물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커요. ‘남자사용설명서’ 때에도 제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결국 뿌듯했거든요. 힘들게 높은 산에 올라가서 야호를 부르는 기분이에요.”

지창욱과는 액션신을 펼치다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다친 걸로 끝난 게 아니라 다친 뒤 진짜 아픈 감정이 영화로 쓰여서 좋았다”고 말했다.

‘조작된 도시’ 오정세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작된 도시’ 오정세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에게 ‘조작된 도시’가 터닝포인트가 되는 작품이냐고 물어보니 그는 “터닝포인트가 됐던 작품들이 있었다. 터닝포인트가 될 줄 알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작은 역할이든, 큰 역할이든 저에게는 다 똑같은 선 안에 있어요. 역할이 작아서 혹은 관객이 들지 않아서 속상할 수 있는데, 거기에 휘둘리지 않으려 저를 채찍질하는 편이에요. 기존에 했던 작품들보다 캐릭터가 입체화되고 롤이 큰 작품들도 있지만 제 몫은 이 인물을 열심히 연기 하는 거죠.”

1997년 영화 ‘아버지’에서 단역인 손님2로 데뷔했다. 점점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넓혔고, 2006년 독립영화 ‘팔월의 일요일들’을 통해 첫 주연을 맡았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맹활약하고 있는 그는 “손님2를 연기할 때도 행복했다. 그때처럼 지금도 앞으로 행복하게 작업을 하고 싶다”며 “기회가 오면 도전하고 깨지기도 하고 칭찬도 받으면서 열심히 해내고 싶다”는 다부진 포부를 드러냈다.

“제 욕심은 평생 즐겁게 연기하는 거예요. 가늘고 길게 가야죠! 하하.”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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