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더 킹’ 한재림 감독 / 사진=NEW 제공
‘더 킹’ 한재림 감독 / 사진=NEW 제공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은 용감하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과 서거가 영화의 출발점으로 역대 대통령들의 얼굴이 스크린에 패기 있게 담긴다. 더 나아가 관객들에게 ‘대한민국의 왕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격동의 현대사를 직접 경험했던 한재림 감독이 던진 화두는 꽤나 강렬했다. 그렇지만 서민의 애환과 풍자를 담은 마당놀이처럼 ‘더 킹’은 유쾌하고 신명난다. 스크린 속에서 박태수(조인성)와 한강식(정우성)이 꿈꾸는 권력과 욕망의 덩어리는 유려하고 우아하게 흐른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관상’ 등을 선보였던 한재림 감독은 이번에도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0. 이런 시국을 예상 못하고 영화를 만들었을 텐데, 흔들린 점은 없었는지.
한재림 감독(이하 한재림) : 개봉 전에 시국 때문에 (영화가) 잘 될 것 같다고 해주는 분도 있었고, 시국 전에 개봉했으면 더 폭발력 있었을 거란 말도 있었다. 현 시국은 영화 막바지 작업 때 터졌다. 혼란스러웠다. 이 시국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이 됐다. 결론은 시국은 예상하지도 않았던 거고, 그걸로 인한 흥행은 기대하지도 말고 원래 의도대로 영화를 만드는 게 최선이라는 거였다. 영화를 찍고 난 뒤 수정을 할 때가 고민이 되는데 잘못 고치면 나중에 엉터리가 되더라. 신(Scene)이라는 게 유기적이라서 편의대로 바꾸면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변형되기도 한다. 원래 하던 대로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10.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등 전 대통령이 영화에 이렇게 나오는 작품은 처음이었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및 서거였다고 밝혔다.
한재림 : 내 나이가 40대 초반인데, 초등학교 때 대통령들이 해외에 나갔다오면 시민들이 동원됐다. 태극기를 휘날리면서도 퍼레이드를 하고 꽃가루를 뿌렸다. 9시 뉴스에 대통령이 나오고 극장에 가면 대한뉴스를 봤다.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서 자라왔다. 그러다가 김영삼 대통령 때 이런 게 싹없어졌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재판장에 서기도 했다. 세상이 변하는 과정을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봤다. 2002년 월드컵 때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축제를 벌일 때 감격스러웠고 행복했다. 이후 서민의 편에 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이 됐다. 그런데 그가 1년 만에 탄핵 위기에 섰고 많은 세력들이 공격을 했다. 퇴임 이후 잠시 행복한 모습을 보다가 서거를 했다. 그때 내가 느낀 건 세상이 바뀌었다는 건 내 착각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기득권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게 됐다. 세상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참혹함, 좌절감을 느꼈다. 기득권에게 노 대통령의 당선은 하나의 오류고 사건처럼 느껴졌다. 빨리 재정상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인상이었다. 그렇게 우리나라 기득권이 어떻게 권력을 쌓고 유지하는지 또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표현하고 싶어서 ‘더 킹’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더 킹’ 한재림 감독 / 사진=NEW 제공
‘더 킹’ 한재림 감독 / 사진=NEW 제공
10. 풍자와 해학으로 접근한 이유가 있는지.
한재림 :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사회적 의무감이라는 거창한 이유까지는 아니다. 장르적 호기심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전작인 ‘관상’은 관상가가 커다란 운명과 역사 앞에서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은 승자로 보이는 인물이 패배를 한다는 카타르시스를 주고 싶었다. 스토리를 집중해서 만든 영화였다. ‘더 킹’은 반대지점에서 만들고 싶었다. 낄낄대고 조롱하고 싶었다.

10. 극 중에서 검사가 조폭 같고, 조폭이 검사 같은 설정을 통해 말하고자한 바는.
한재림 : 지금 정치검사들이 하는 짓은 정의 없이 힘으로 사람을 누르는 거다. 조폭과 똑같다는 의미를 주고 싶었다. 정의와 신념, 유치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결벽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남을 함부로 짓밟는 건 조폭이나 다름없다. 조폭인 최두일(류준열)은 자기 신념을 지키고 의리를 지키니까 검사들과 더 대조가 되는 거 같다. 영화에서 최두일과 들개파는 시각적인 상징이다. 실제로 박태수가 그 공간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의 생각에서 묘사될 뿐이다. 최두일은 박태수의 욕망에서 등장해 그 욕망이 사라질 때 어둠으로 사라진다.

10. 배우들은 제안을 받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한재림 : 사실 거기서 꺾이면 (작품을) 못 한다고 생각했다. 조인성은 시나리오를 굉장히 유쾌하게 봤다고 했다. 오랜만의 영화 복귀작인 만큼 의미도, 재미도 있을 거란 생각에 흔쾌히 하기로 했다. 정우성도 망가지는 역이지만 용기 있는 작업이라고 전했다. 배성우 역시 이런 이야기는 꼭 해야 된다고 했다. 배급사인 NEW 같은 경우는 상업적으로 소구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해서 이렇게 선보일 수 있게 된 거 같다.

‘더킹’ 주역들/ 사진제공=NEW
‘더킹’ 주역들/ 사진제공=NEW
10. 방대한 현대사를 다루면서도 검찰 조직 내의 세밀한 부분을 다룬다. 취재 과정이 궁금하다.
한재림 : 각종 언론에서 다룬 검사들에 대한 내용을 주목했다. 자료를 조사하다보니까 법이라는 게 굉장히 무섭더라. 막연하게 정의와 진실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한 마디로 법리싸움이다. 변호사나 검사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판사를 잘 설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물론 판사는 증거들과 신문을 통해 사실을 판단하지만 그것이 실체적 진실인지는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진실이 조작되고 숨겨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무서웠다. 내가 만난 평범한 검사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중요한 업무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판단이 한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한 검사에게 선배가 ‘이 사건 좀 묻어줘’라고 하면 어떡하겠느냐고 물어봤는데, 그렇게 말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는 된다고 했다. 사건을 묻어달라고 하는 검사에 대한 소문도 안 좋게 난다고 전했다. 그런데 영화 속처럼 만약 무릎을 꿇게 된다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의 일로 바뀌는 순간 어떤 사건이 묻히기도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사한 사건들과 검사, 검찰 출입 기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권력이 어떻게 조정되고 라인이 바뀌고 유지되는지를 우화로 녹였다.

10. 러닝타임이 훨씬 길었다고.
한재림 : 현장 편집본은 3시간 30분 정도 됐다. 호흡을 줄여가다 보니까 2시간 40분정도가 됐고, 잘라내고 여러 신들을 들어낸 게 지금 버전이다. 편집된 부분에는 극 중 조인성·김아중 부부의 분량이 많았다. 한강식네 일당이 도심에서 말을 타고 노는 막나가는 장면들도 있었다. 김아중이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줘서 아쉽다. 굉장히 섬세하고 감독이 요구한 걸 정확하게 표현하는 배우더라. 감독판을 하려면 단순히 들어낸 신을 끼워 넣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호흡을 만져야 돼서 아마 감독판을 내는 건 힘들 거 같다. DVD나 블루레이로 보여주고 싶긴 하다.

10. 말 타는 장면은 정말 궁금하다.
한재림 : 모니터링을 했는데 너무 웃더라. 어이가 없는 거다. 한강식네가 말을 타고 도심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미친놈들 아니야’라고 반응하는 게 아니라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보더라. 영화에서 다들 빠져나왔다. 그래서 아예 빼버렸다. 아마 그 장면은 못 볼 거 같다.

‘더킹’ 포스터 / 사진=NEW 제공
‘더킹’ 포스터 / 사진=NEW 제공
10. 마지막에 대한민국의 왕은 누구인가라는 메시지가 많이 와 닿았다.
한재림 : 권력자들은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안다. 그래서 정치혐오를 바라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부담스럽다. 우리가 관심을 가진 지금 테블릿PC 하나가 권세자들을 땅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촛불에 힘을 모아서 우리의 권리를 평화롭게 요구하고 그 결과가 투표로 나타 날수도 있다. 영화를 통해 권력자들도 별 볼일 없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니까 감시를 소홀히 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10. 한재림 감독이 꼽은 ‘더 킹’의 매력 포인트는.
한재림 : 부모님 세대들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본인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나오니까 향수를 느끼시는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이 봐야 된다는 말이 있는데 10대들의 평점도 높다. 류준열 팬한테 SNS로 쪽지를 받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이재용 부회장 기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자신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서 끝까지 그들을 지켜보겠다고 전해왔다. 세대별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영화이지 않을까 한다.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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