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문근영 / 사진제공=샘컴퍼니
문근영 / 사진제공=샘컴퍼니
‘국민 여동생’. 배우 문근영을 있게 한 수식어이다. 참 감사한 말이면서, 또 한편으론 무거운 꾸밈이다. 올해 서른을 맞은 그는 여전히 맑은 눈망울로 소녀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연기에 대한 생각만큼은 누구보다 깊고 진해졌다. 늘 첫 번째 희망으로 ‘연기를 잘 하는 것’을 꼽는다.

6년 전 좋은 기억만 안겨준 연극 ‘클로저’에 이어 또다시 무대에 올랐고, 이번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으로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섰다. 스스로의 단점과 약점을 매회 발견하고 또 관객들의 냉혹한 평가도 피해 갈 수 없지만, 모든 걸 온전히 즐기고 있다. 작품마다 많은 눈물을 흘리지만, 이번엔 그럴 겨를이 없을 정도로 작품의 연구와 연습에만 애를 쓰고 있다. 머릿속에 연기, 또 줄리엣으로 가득 찬 문근영은 어떤 수식어를 바라기 보다 무색무취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하길 희망한다.

10.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다.
문근영 : 연극은 늘 하고 싶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 배운 것도 많고, 즐거웠던 순간도 많았다. 내게 있어서 굉장히 많은 걸 변화하게 했다. 연극이라는 건 참 멋진 일이고, 배우로서 정말 자신 있게 서고 싶은 무대인 것 같다. 항상 무대가 그리웠는데, 그간 기회가 잘 없기도 했고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6년이 흘렀는데, 마침 좋은 기회를 얻어 무대에 설 수 있게 됐다.

10. 상대 배우로서, ‘박정민’은 어떤가.
문근영 : 박정민에게 자극을 받으면서 연습을 하고 있다. 연기에 대해 굉장히 진지하고 깊이 고민하는 배우이다. 자신은 느리다고 하는데, 깊고 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뿐이지, 느린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고민해서 나온 결과물이 정확하고 깔끔하고 또 명확하다.

10. 반대로 박정민은 문근영에게 자극을 받는다고 하는데.
문근영 : 내가 하지 못하는 걸 박정민은 하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자극을 받는다. 서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 전에는 자극을 받고 있다는 걸 몰랐는데 이 기회를 통해 알게 됐다. 진짜 자극을 많이 받아서 자괴감에 빠진 적도 많다. 그런 맥락에서 좋은 동료, 좋은 파트너를 만난 것 같다.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고민도 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그런 점이 좋다.

10. 박정민의 인간적인 장점은 무엇인가.
문근영 : 박정민은 매우 진중하다. 말이든 행동이든 가볍지 않다. 그리고 재치 있고 센스가 좋아서 이야기를 나누면 유쾌하고 재미있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고, 진국인 친구다.

10. 워낙 여러 형태로 작품화된 ‘로미오와 줄리엣’. 어떻게 캐릭터를 분석했나.
문근영 : 원작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원작을 그대로 살리고자 하는 것이 연출의 첫 의도였다. 대사도 대부분 원작에 있는 걸 가져왔다. 원작이 갖고 있는 대사 자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말을 하고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산문체, 문어체적인 대사가 많고 아름다운 수사로 꾸며진 문장이 많아서 읽으면서 잘 그려지지 않더라. 관객들에게 그림을 그려줘야 하니까, 박정민과 둘이 만나서 변역본과 영어 대본 등 여러 가지 책을 깔아 놓고 공부를 했다. 서로 해석을 하면서 ‘이런 의미인가 보다’라고 찾아가는 작업을 열심히 했다.

10. 여기에 연출의 방향을 더해 완성됐겠다.
문근영 : 전체적으로 내가 분석한 호흡, 연기 등과 연출이 그리고 싶은 부분을 계속 조율하면서 만들어갔다. 특히 연극은 스스로 모니터를 할 수가 없으니까,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연출의 의도를 최대한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10. 문근영표 줄리엣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나.
문근영 : 그런 건 아니고, 다만 줄리엣이란 틀에 갇히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기존 줄리엣의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또 일부러 튀려고도 하지 말자고 말이다. 틀에 가둬놓고 생각하지 말자고 출발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흔히 알고 줄리엣의 모습이 보일 수도 있고, 또 아닌 모습도 보일 거다. 틀에 가두고 분석하고 연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런 지점을 찾아가며 버무리고 탄탄하게 만들려고 고민했다.

박정민(왼쪽), 문근영 / 사진제공=샘컴퍼니
박정민(왼쪽), 문근영 / 사진제공=샘컴퍼니
10.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불같은 사랑을 한 적이 있나. 혹 경험이 있어서 몰입에 도움이 됐다든지.
문근영 : 경험이 있다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없다고 해서 못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로미오와 줄리엣의 불같은 사랑이 관객들에게 잘 납득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10. 무대 연기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
문근영 : 무대에 오르면서 단점이 다 드러났다. 무대에 익숙하지 않고 경험이 서툴다는 게 온전히 다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매일매일, 하나씩 배워가면서 고치고 연습하고 있다.

10. 작품을 할 때 눈물을 많이 흘린다고 하던데.
문근영 : 사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다. 너무 많은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울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깝다. 그 시간에 대본을 한 번 더 보고, 선배님과 이야기하고 맞춰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두렵고 겁나고 또 창피하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하는데, 한편으론 기쁘다. ‘더 나아질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이 남았구나’하고 말이다. 깨닫고 고치고 변화하고, 그런 점이 기쁘다. 즐거운 시간, 순간이 될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순간에 감사하고, 무대를 소중히 하고 있다.

10. 무대만의 매력이 있을 테고.
문근영 : 무대가 가장 멋진 건 그 순간을 관객과 같이 공유한다는 것이다. 내용은 똑같고 연기도 같을 수 있겠지만, 같이 호흡하는 관객이 어떠냐에 따라, 또 배우와의 합에 따라 달라지지 않나. 그 순간 좋은 배우, 그리고 관객들과 보내고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행복한 일이다.

10. 그럼에도 냉정한 평가는 아플 것 같은데.
문근영 : 솔직히 평가를 찾아볼 시간이 없다. 간혹 누군가 리뷰를 보내주면 읽긴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주눅 들고 상처받고 위축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관심이라고 받아들인다. 좋은 점을 좋게, 안 좋은 점도 받아들이면서 잘 발전시켜야겠다,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무대에 서는 수간, 오늘의 무대를 책임져야 한다. 아무리 아쉽고 못 했어도, 아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관객에게 너무 죄송스러운 일이다. 아쉬운 건 혼자 속으로 알고 그칠 뿐, 관객들에게는 끝까지 멋진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내려오는 게 맞다. 무대 위에서는 그렇게 하고, 밖에선 치열하게 아파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치열하게 생각하면서. 무대에서만큼은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이다. 끝까지.

문근영 / 사진제공=샘컴퍼니
문근영 / 사진제공=샘컴퍼니
10. 연극을 하면서 연기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이 들기도 하나.
문근영 : 연극을 하는 게 수단, 도구처럼 보이는 것이 싫다. 영화나 드라마 연기도 잘 하고 싶고 무대 연기도 잘 하고 싶다. 무대에 오르면 당연히 단점이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간이 내겐 기쁜 시간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비판도 감사하다.

10. 무대 연기는 어떻게 다른가.
문근영 : 가장 크게 다른 건 카메라 앞에서는 내 감정에 따라 카메라가 알아서 잡아준다. NG, 컷, 편집도 있고. 무대에선 온전히 홀로 그걸 다 편집해야 한다. 어떤 장면은 바스트 샷처럼, 또 어떤 대사는 풀샷처럼 보이도록 해야 하는 거다. 확실히 무대에서 편집하는 능력, 기본적인 자질이 부족한 건 맞다. 어떻게든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것이고 열심히 할 것이다.

10. 서른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마무리한다. 20대를 돌아보면, 후회되는 것들이 있나.
문근영 : 20대를 돌아보면 후회할 것 투성이인데, 그래서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서른이 됐고, 그때는 매 순간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면서 살았다. 이제 와서 보니까 ‘왜 그렇게 살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꼽으라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후회하며 살았던 걸 후회한다.

10. 서른을 넘어간다는 것이 무섭지는 않나.
문근영 : 전혀. 나이 먹는 게 정말 좋다. 좀 더 인생에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좀 더 삶을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이 이상하게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굳건해진다. 그래서 변화가 있는 내 모습이 좋고, 이게 나이때문이라면 나이 먹는 것도 좋다 .

10.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문근영 :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웃음) 항상 그게 첫 번째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늘 1번이었다. 바라는 건, 무색무취의 배우였으면 좋겠다. 감독, 작가, 제작사, 상대 배우, 그 누가 됐든 나로 하여금 영감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10. 그런 의미에서 롤모델이 있다면?
문근영 : 정말 좋아하는 선배님들이 있다. 송강호, 전도연이다. 전도연은 배우인 것 같다. 여배우라는 말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고, 좀 다른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는데 전도연은 그런 점에서 여배우가 아닌 배우에 어울리는 것 같아서 같은 여성으로서 닮고 싶은 선배님이다. 송강호는 그냥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정말 좋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좋다. 그런 힘을 가진 분인 것 같다.

10. 내년 1월 15일 ‘로미오와 줄리엣’이 막을 내린다. 작품을 끝내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문근영 : 또 연극을 하고 싶어질 것 같다. 지금 마음은 그렇다.(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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