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카이/사진제공=E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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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포기하지 않기에 부담감도 상당하다. 포기를 모르는 면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고 말하는 카이. 팝페라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이기도 한 그는 서울예술고를 거쳐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삶엔 늘 음악이 있었다.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올라가는 일에만 집중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어느 순간, 한계와 마주했고 목표 지점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몰라 막막했다. 음악이 미웠지만, 그때도 음악을 찾았다. 친숙한 팝페라를 꿈꾸고, 관객들에게 최상의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하염없이 고민도 한다. 스스로도 감당이 안될만큼 공허한 순간이 찾아오지만, 이 역시 숙명이라고 받아들인다. 오랜시간이 지나도 듣기 좋을 노래, 친한 동료와 따뜻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만든 ‘모두 사랑인걸’을 주머니에서 툭하고 꺼냈다. 카이의 또 다른 시작이다.

10. 약 1년 만에 신곡을 발표했다. 프로듀서 쿠시와의 만남이 신선하다.
카이 : ‘모두 사랑인걸’로 호흡을 맞췄다. 곡을 녹음한 건 지난 봄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도 쿠시와 같이 보냈다.(웃음) 겨울부터 이야기를 나눴고, 노래 준비를 했다. 날이 따뜻해지는 봄에 내놓자고 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늦어져 이번에 나왔다.

10. 듣기 편안했다. 뮤지컬 넘버같은 느낌도 들었고.
카이 : 어떤 곡이든 듣는 사람의 느낌이 맞는 것이고, 최대한 존중한다. 사실 웅장하고 거창하게 만든 건 아니다. 쿠시는 ‘히트곡 메이커’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프로듀서이고, 그간 작업한 곡들도 음원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지만 ‘모두 사랑인걸’은 만들 때부터 그런 생각이 전혀 없이, 행복한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프로젝트를 위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불려질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완성된 곡이다. 쿠시 역시 이 곡을 만들 때 웅장함, 이런 것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악기 구성도 최소화 했고, 노랫말도 단순하다. 누군가는 ‘너무 단순한 거 아니야?’라고 할 정도로 최소한의 것으로 차려보자고, 그렇게 시작하고 접근했다.

10.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곡 작업으로 발전했나. 두 사람이 통한 지점이 있었을텐데.
카이 : 쿠시도 그간 강한 비트, 중독성 강한 후크송 등의 음악만 했는데 다양한 장르의 곡을 하고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우연히 ‘헤어지자’를 감명깊게 들었는데, 그 노래를 쿠시가 만들었더라. 이후에 직접 말을 했더니, 컴퓨터에서 작업한 곡들을 들려주는데 정말 다양한 음악이 있는 거다. 블루스, 재즈, 힙합부터 클래식, 카스펠 느낌의 곡도 있고. 나도 한 번 해보자고 말했고, 쿠시도 평화로운 음악을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참이었던 거지. 그렇게 출발했다.

10. 작업 방식은 어떻게 이뤄졌나. 과정이 궁금하다.
카이 : 이전까지는 작곡가의 데모 테이프를 듣고 결정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 쿠시와는 조금 달랐다. 개인 스튜디오에 자주 가는 편인데, 아무 목적 없이 놀러가서 이야기를 하며 곡이 만들어지는 식이다. 누군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기타를 치고 거기서 떠오르는 멜로디로 곡이 완성되는 거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왔다.

10.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라 애착도 크겠다.
카이 : 노래의 탄생부터 완성까지가 감성으로 시작해서 감성으로 끝났다.

10. 노래할 때도 편했겠다.
카이 : 사실 녹음이란 것 자체가 최고의 기량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다. 성악과 팝페라가 대중들에게 친숙한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힘을 빼고 불러야되는 건지, 늘 고민했는데 쿠시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좋다’고 하더라. 어떻게 하면 친숙하게 부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오히려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나만의 장점을 살리라는 말이 큰 힘이 됐다.

10. 평소 쿠시와 곡 작업을 하는 쿠시는 다르던가.
카이 : 평소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 순간적인 감정에 충실한 친구다. 머릿 속에 큰 것을 계획하거나, 각본대로 써내려가는 게 아니라 지금 느껴지는 솔직한 감정들을 자신의 음악을 통해 표현해내려고 노력하고, 그런 부분이 나라는 사람으로서는 참 배우고 싶고 부럽더라.

10. 그런 점이 카이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카이 : 생각이 많은 편이다. 계획을 다 짜서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이지. 사실 내 성격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색깔이 다를 뿐이지. 누군가는 ‘예술하는 사람은 최소한 쿠시같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야한다’고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 있는가하면, 또 계획에 충실하게 실행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내게는 없는 부분이니까 쿠시의 그런 점을 닮고 싶다.

10. 곡을 내놓기 전 떨리지는 않았나.
카이 : 그렇지는 않다. 대중들에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만한 음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자극적이고, 유행을 따르는 음악이 아니다. 만약 히트곡을 발표한 경험이 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포기를 한 건 아니고(웃음) 순위를 위해서 하는게 아니라, 음악을 계속 해오다가 음원을 주머니에게 톡 꺼내놓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인생이 바뀌거나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이고, 일상이기 때문에. 그저 많은 분들이 들어주시길 바랄 뿐이지.

10. 뮤지컬 이야기를 해보자면, 유독 에너지 소모가 큰 작품을 해오고 있다.
카이 : 대형 작품에 설 수 있다는 게 기적같은 일이다. 누군가는 나의 가창력과 연기력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을 할 수 있다. 혹 쉽게 판단하기도 하고. 하지만 길가에 핀 들꽃이 어딘가 피어있는 장미보다 가치가 덜하지 않듯, 사람들의 눈엔 또렷하고 선명한 장미가 더 들어올 수 있겠지만 생명력을 갖기 위한 몸부림은 들꽃도 덜하지 않다. 뮤지컬을 한 연차에 비해 감사하게도 빠르게 큰 역할, 대작들을 맡은 과분함을 알기 때문에 에너지를 더 폭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10. 누군가는 처음일지 모르기 때문에, 어느 회차든 최상을 보여줘야한다는 부담이 항상 있을 것이다.
카이 :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 중 하나다. 지금 연습 중인 ‘몬테크리스토’의 경우에 다른 배우들은 100회 공연을 해본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다. 사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어느 지점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 결국에는 도달할 자신이 있고, 그렇게 하고 싶다. 사실 옆에서 교과서 같은 분들을 직접 보고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가르침이다.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10. 관객들의 평가가 때로는 아프기도 했나보다.
카이 :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사실 항상 우월감보다 열등감이 많았다.

10. 늘 칭찬을 받으며 탄탄대로를 밟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카이 : 전혀 그렇지 않다.(웃음) 1등보다는 2, 3등 그리고 탈락을 많이 했다. 잘한다는 소리를 못듣는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은 아니다. 의미 없는 비판보다는 정확히 부족함을 알려고 노력한다. 개선해야하 하니까. 그간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다. 그런데 포기가 안된다. 그런 성격이 장점이자, 또 단점인 것 같은데 내려놓으면 수월할텐데 그게 잘 안된다.(웃음) 어떻게 하면 채워넣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 끊임 없이 노력한다.

카이/사진제공=EA&C
카이/사진제공=EA&C

10. 사실 음악이라는 장르를 선택했기에 열등감과 한계는 늘 짊어지고 가야하는 숙명이 아닐까.

카이 : 음악에는 순위가 없다. 하지만 이런 말도 1등인 사람은 하지 않는다. 스스로 부족함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혼란스럽고 고민되고 정체성이 흔들릴 때도 많다. 놓고 싶은 순간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음악에 순위는 무의미하다는 거다.

10. 대답을 할 때도 생각을 많이 하는 성격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작품에도 깊게 몰입해서 힘들 것 같다.
카이 : 장점이자 단점인데, 빙의를 잘 한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때도 지나치게 몰입을 해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진심으로. 작품을 할때도 유독 힘들다. ‘아리랑’ 때도 힘들었고, ‘레드’는 매우 고민스럽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잭더리퍼’는 광적인 집착에 대한 부분을 노력하지 않아도 느껴져서 심적으로 힘들다. ‘삼총사’라는 작품을 선택한 건, 행복해지고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서 잊으니까, 연이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웃음)

10. ‘잭더리퍼’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야 해서 감정 컨트롤이 관건이다. 무대를 내려온 뒤의 호흡도 중요할 것 같은데.
카이 : 많이 아프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오히려 묻고 싶다.(웃음) 끝나고 맥주 한 잔을 하며 털어버리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그게 안 된다. 풀지를 못하니까 더 힘든 걸지도. 가끔 스스로도 감당이 안될 만큼.

10. 이제는 습관이 된 자기관리도 있겠다.
카이 : 온도가 30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 이상 반팔을 입지 않는다. 목을 감싸는 건 기본이고, 이제는 약에 의지하게 됐다. 보약, 홍삼 이런 것들.(웃음) 많은 뮤지컬 배우들의 숙명인 것 같다.

10. 자기관리도 능력이 한 부분일테니.
카이 : 굉장한 압박이다. 사실 관객들에게 용납해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관리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10. 쉬는 날, 스트레스를 풀어야하지 않을까.
카이 : 그러니까, 쉬는 날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고.(웃음) 종종 전시장에 가서 아무런 상관없는 것들을 보곤 한다.

10.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을 것 같다.
카이 : 옛날에는 음악을 되게 잘 하고 싶었다. 지금은…물론 잘 하고 싶지만(웃음) 점점 한계를 느끼게 된다. 아직 변하지 못했고 미비하지만 음악을…뭐랄까, 즐긴다고 해야할까. 편안하게 내려놓고 싶다. 5, 6년 전에 혼란이 찾아왔을 때가 있었다. 성악을 선택했고, 서울예고에서 서울대를 가야겠다고 목표를 잡았고 또 대학원에서 공부를 해야지란 계획도 세웠다. 콩쿨에서 1등을 하겠다는 목표 지점을 위해서 노력하고 또 결과를 받는 삶을 살았다. 이후엔 팝페라 가수가 돼 봐야 겠다고 마음을 다잡았고 수많은 노력 끝에 음반도 나왔다. 그러고 나니, 목표 의식이 없어진 거다. 자, 이제는 히트곡을 만들어보자? 그건 내 능력이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대중의 몫이기도하고, 하늘의 뜻인 것만 같고.(웃음) 거기서 부터는 방법이 없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이젠 뭘 위해 살아야 하지?’란 고민에 빠졌다. 오랜 기간이 걸렸지만, 결국은 음악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거구나를 그때 느낀 거다. 사실 아직 완전히 바뀌었다고는 못 한다. 계속 노력하고 있다. 이젠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겠다는 가시적인 변화보다, ‘나’라는 자아를 위한 스스로의 행복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한다. 진실에 가까운 음악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10. 뮤지컬 배우로서의 목표는 세워가고 있는 중일 것 같은데.
카이 : 해보니까, 관객에게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더라. 신뢰라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것이고, ‘신뢰’라는 말과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시간’이다. 단번에 믿음이나 신뢰가 생기지는 않는다. 류정한 배우는 올해로 20년이 됐다. 엄기준 배우 역시 1995년에 데뷔해 22년이 됐고. 갓 시작한 내가, 천재도 아닌데 어떻게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있겠나. 물론 지금 이순간도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잘 해내고 싶어서 수도 없이 채찍질하고 노력하지만 내겐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꾸준히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건 감사하다. 관객들에게 최고의 공연을 보여줘야 하는 책임이 있고, 꾸준히 걸어가야 하는 거다.

10.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카이 : 목표 의식은 없어졌지만, 그냥 최고의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마음가짐, 꺼지지 않는 불과 같은 마음을 지키고 싶다. 이건 경기가 아니라 예술이니까, 예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목표다.(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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