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배우 박근형이 최근 서울 울 낙원동 프레이저 스위트 서울 호텔에서 텐아시아와 영화 ‘그랜드파더’ 인터뷰를 가졌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박근형이 최근 서울 울 낙원동 프레이저 스위트 서울 호텔에서 텐아시아와 영화 ‘그랜드파더’ 인터뷰를 가졌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10. 얼마 전 연극 무대에도 오랜만에 올라갔었다.
박근형: 연극에서 처음 배우를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그동안 연극과 거리가 멀었다. 몇 번 무대를 복귀하려고 시도했었는데, 그때마다 경제적 사정이라든가 다른 부분들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게 계속 미루고 미루다 40년 만에 겨우 명동예술극장에 ‘아버지’란 작품을 올렸다. 연극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그랜드파더’가 개봉하게 돼서 기쁘다.

10. 연극대본을 한 번에 외웠다고 들었다.
박근형: 딱 일주일만 딱 대사를 맞추고, 그 다음부터는 동작까지 같이 연습하니 자연스럽게 대사가 외워진다. 어릴 적에는 기억력이 좋기도 했고, 따로 하는 것이 없으니 24시간동안 대본만 보니까 남의 대사까지 외웠다. 지금은 너무 바쁘기도 했고, 이번 작품은 대사가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달라서 외우는데 오래 걸렸다.

10. 그동안 연기 인생에서 슬럼프는 없었나?
박근형: 많았다. 1969년에 프리랜서 선언했다. 당시엔 각 방송국 배우마다 전속 배우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작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다른 배우들은 일일극·주말극 하면서 3~6개월 동안 고정적으로 수입이 생기는 데 반해 난 작품성을 좋은 걸 찾아서 단막극 위주로 출연했다. 그런데 나한테 매번 작품이 들어올 일이 없으니까 경제적으로 상당히 큰 타격이었다. 그래도 전속배우면 시키는 걸 했어야 했다. 난 그 구속에서 벗어난 거다. 한 번은 KBS에서 방송되는 김수현 작가 작품에 김혜자와 함께 출연하기로 했었는데, 다른 방송국에서 교도관 얘기를 다룬 4부작 단막극이 끌리는 거다. 그래서 김수현 작가 작품을 포기하고 단막극을 선택한 적이 있었다.

10. 집에서는 싫어하지 않았나?
박근형: 당연히 싫어했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한 게 37~38세쯤이었다. 풍족하게 번 건 아니지만, 않았지만 아이들 교육 시킬 정도는 됐으니까. 거기에 만족하고 있으면 동료들이 “왜 바보같이 작품성을 따지냐. 가정을 안심시켜놓고 작품을 선택해야하지 않겠냐”고 해서 연속극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게 불과 20년 전 이야기다.

배우 박근형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박근형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작품성이 좋은 작품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드라마들은 ‘막장드라마’가 워낙 많다.
박근형: 이제는 ‘막장’이라고 해서 너무 비난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막장’이 하나의 드라마 장르로 우뚝 서게 될 지 누가 알았겠느냐. 대중예술에서는 어떤 게 환영을 받을지 모르니까 배우는 백가지 역할이 있으면 다 도전해야 한다.

10. 영화에서의 역할은 외롭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박근형: 손자가 다섯이다. 아들이 넷이고, 막내가 여자아이다. 큰 손자는 지금 스무 살인데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장학금도 타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연극 보는 걸 좋아해서 2주에 한 번씩 연극을 보러 가더라. 셋째 아들도 배우를 하고 있어서 가끔은 3대가 연극을 보러 간다.

10. 손자는 좋은 연기 선생님이 있는 셈인 것 같다.
박근형: 대학 들어갈 때 실기 시험을 치르는데, 선택 연기, 자유연기 등 네 가지를 준비해야 하더라. 할아버지로서 궁금하기도 하니까 한 번 연기를 시켜봤는데 내가 보기엔 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몇 가지를 가르쳐줬는데, 며칠 뒤에 엄청 고민을 하더라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연기 학원 선생님한테 가르쳐준 대로 안 한다고 지적을 받았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가르쳐준 건 모두 잊고, 선생님이 시켜준 대로 하라고 했더니 합격을 했더라. 내가 연기를 배우던 시절과 지금의 표현 방법이 달라졌다는 걸 새삼 느꼈다.

10. 과거 인터뷰에서 은퇴를 하게 되면 고향에 내려가 연기 서당을 차리고 싶다는 말을 했더라.
박근형: 고향이 정읍이다. 고향 모임에 내려가면 지방이 문화적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고향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옛날 서당에서 훈장님이 천자문을 가르치듯 고향 사람들에게 연극을 가르쳐주고 싶다. 지역 학교에서 재능이 있는 친구들을 추천 받거나 가정이 있고, 직장을 가진 사람들 중 연극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놀듯이 자기의 재능을 실험해보는 모임을 갖는 거다. 실력을 잘 갈고 닦은 다음에는 극단을 세워보고 싶다. 그들과 함께 지역 문화회관 같은데 작품도 올리면 좋을 것 같다.

10. 60년 가까운 세월을 연기하면서 느낀 연기자의 필수 덕목은 무엇인가?
박근형: 드라마든 영화든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공동의 작업이기 때문에 배우 역시 철저하게 준비돼 있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본을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는 애들이 제일 싫다. 배우라면 대본을 손에 항상 붙들고 연습을 해야지. 연습을 안 하니까 연기 안 되는 것이고, 자꾸 NG를 내고, 현장 스태프들을 불편하게 하고, 스타라는 이름 하나로 그렇게 행동하는 건 횡포다. 그래서 후배들한테 작품과 작품 사이 쉬는 시간에 연극을 보든, 독서를 하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라고 항상 강조한다.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있으면 뭐하냐. 배우가 준비가 안 돼 있는데 무슨 역할을 표현할 수 있을까.

배우 박근형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박근형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연기로 더 이룰 것 없는 것 같은데.(웃음)
박근형: 끊임없이 일을 하는 것이 꿈이다. 배우에게 은퇴는 쓰임새가 없어 더 이상 부르지 않을 때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은퇴다. 그럼 그 때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면 되는 거다. 날 계속 찾는 곳에 쓰이기 위해선 배우는 계속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필요가 없다고 할 때까진 계속 배우를 하고 싶다. 대신 만약 다음 생에 배우를 하라면 안할 거다.(웃음) 너무 고생했다. 외롭기도 했었고, 나는 잘하고 있는데 캐스팅하지 않는 것에 원망도 있었다. 그런 것 때문에 우울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배우들도 있었다. 정상까지 갔다 떨어지면 자기 조절이 잘 안 된다.

10. 그런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근형: 훈련밖에 없다. 연극이 좋은 훈련이 된다. 40~50명이 모여 앉아 6~8시간 연기에 대해 토론하고, 40일에 한 작품씩 하면 막힌 기분이 해소가 된다. 아무 것도 안 하고 감나무 아래 누워있는 사람들이 위험한 거다. 자기 방식대로 역할을 만들려면 내 걸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후배들한테도 작품을 얘기할 때 어떻게 하라고 안 한다. 연기에서 1더하기 1은 2가 아니다. 각자 방식대로 보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살 수 있는 방식을 택하면 된다. 남의 것은 절대 하지 말고.

10. 57년을 배우로 살아왔다. 배우에게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박근형: 쓰임새가 적어진다는 생각에 불안하다. 나와 같이 출발한 배우들 중에서 직업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 살아남는 게 4~5명밖에 안 된다. 나 같은 경우엔 연극·영화·TV를 옮겨다닐 수 있으니 좋은 경우인데, 만약 TV 드라마만 했으면 정말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난 정말 행운아다. 앞으로 계속 작품이 있으면 좋겠다.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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