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출연한 배우 김희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출연한 배우 김희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시작은 마술사였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좋아하던 소년은 대학에서 마술과 연기를 전공했다. 그렇게 13년 동안 마술사로 살던 소년은 스물 여섯 살 되던 해, 마술 기획사를 떠나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연극 무대에서 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읊는 배우들에게 마음을 뺏겨 여러 연극과 드라마의 단역을 거치며 연기가 주는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알게 됐다.

20대가 끝날 즈음에야 그는 이재한 감독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대형 상업 영화에 데뷔할 기회를 잡았고, 림계진(이범수)의 오른팔 ‘류장춘’을 맡았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김희진은 아주 특별한 배우로 태어났다. 시나리오 속에서 먼저 류장춘을 만났을 때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던 김희진은 굵직한 배우들과 맞붙었을 때도 바래지 않는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류장춘 그 자체가 됐다. 그렇게 천천히 ‘내 것’을 찾아가는 신예 김희진을 만났다.

10. ‘인천상륙작전’에서 연기를 본 감회가 어땠는가.
김희진: 무엇보다 부모님이 좋아해주셔서 기뻤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면 큰 마술 기획사에 있었는데도 연기를 하겠다고 말씀 드렸을 때 의외로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던 분들이었다. 남들보다 배우의 길을 늦게 시작한 감도 있지만 빠르게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3년밖에 안됐는데도 정말 영광스럽게 큰 영화에 참여하게 됐으니까. 또 배우 선배들 앞에서 무대 인사를 드릴 때 기분이 되게 묘했다. 꿈인가 싶기도 하고.(웃음) 아직도 눈 떠보면 믿기지 않는다.

10.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당신의 비행기 신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을 거다. 고소고포증 같은 건 없었나.
김희진: 원래는 자이로드롭도 못탄다.(웃음) 사실 대역도 있었는데, 그날은 왠지 별로 안 높아 보이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혼잣말을 했는데 그걸 누가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감독님이 “저건 장춘이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내가 하게 됐다.(웃음)

10. 실제로 올라가보니 어땠나.
김희진: 건물 7~8층 높이 정도 됐다. 크레인을 엄청 높이 띄웠는데, 바로 아래 낭떠러지가 있고 산이 다 보여서 체감적으로는 더 높게 느껴지더라. 30~40분 동안 떠 있었다. 그날 내가 미쳤었다.(웃음)

10. 한 테이크로 완성된 장면인가.
김희진: 그렇다. 내가 현장에서 막내이다 보니 어떤 장면이든 허투루 할 수 없어서 어떤 장면이든 혼신의 힘을 다해서 했다. 끝내고 나니 선배들이 정말 고생 많았다고 해주셨는데, 즐거웠다.

10. 류장춘 역을 위해 준비했던 것이 있다면.
김희진: 오디션을 준비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먼저 봤는데, ‘류장춘 내 껀데?’하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평소에 하고 싶기도 했었고 나한테 잘 어울릴만한 캐릭터였다. 류장춘이 어떤 인물일지,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공부를 많이 했다.

그래서 오디션 볼 때 군복도 빌리고, 승마부츠도 신고, 비비탄총도 옆에 채우고, 셀카봉을 개조해서 전시 작전을 설명하는 데 쓸 지휘봉도 만들었다. 사실 ‘인천상륙작전’ 대본에서 류장춘이 안경을 썼다는 것이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지만 안경도 착용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동대문 일대를 다 뒤졌다. 그런데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없어서 최대한 류장춘이 썼을 법한 안경을 사서 옛날 안경처럼 보이게 손으로 꾸겨서 착용하고 오디션을 보러갔다. 그 이미지가 다행히도 감독님이 원하셨던 이미지였나 보더라. 3차 오디션까지 본 후 합격이 됐다.

배우 김희진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배우 김희진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영화 안에서 대적했던 해군 첩보부대 대원 강봉포(신수항)는 당신이 속해있는 테스피스 엔터테인먼트의 동료이기도 하다. 선배이자 소속사 대표인 이범수도 현장에서 함께했다.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희진: 대선배들이 많이 계셨지만 현장에서 연기 들어갈 때 빼고는 경직되지 말라고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주셨다. 그래서 나와 수항이 형은 신인이었음에도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우리가 이범수 선배에게 연기 지도를 많이 받았지 않았나. 그런데 오히려 현장에서는 터치를 안 하시더라. 마치 호랑이가 자기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크면 풀어놓고 독립성을 키우는 것처럼, 우리가 나름대로 열심히 배웠으니 현장에서는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거지. 그게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선배가 봤을 때 연기 면에서 아쉬운 게 아예 없을 수는 없다. 그럴 때는 조용히 둘이 있을 때만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또 현장에서 배워가는 것이 많았다.

10.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희진: 롤모델이기도 한 이범수 선배. 군대를 다녀온 후 연극을 자주 보러 갔었다. ‘햄릿’처럼 방대한 분량의 대사를 어떻게 저렇게 한번도 안 틀리고 무대에서 안 떨고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마술사로서 무대에 수천번 올랐었지만 과연 내가 연기를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13년간의 마술사 생활을 접고 얼마 안 있다가 선배가 진행했던 연기 수업을 받았었다.

선배랑 같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 100여명 정도와 같이 MT를 갔었는데, 선배가 지나가다가 나를 보고서 멈추고 위아래로 보시더니 “너 이리로 와봐”라고 하시더라.(웃음) 그러더니 이따가 잠깐 보자고 하셨다. 한두 시간쯤 흘렀을까. 다시 만났더니 대뜸 “너 ‘아이리스2’에 나갈거야. 일주일 뒤에 바로 촬영 들어갈 거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정말 일주일 뒤에 촬영에 들어가게 됐다.(웃음) 그 때 정말 열심히 하니까 선배가 나한테 연극을 해보라고 추천했다. 그래서 그 해에 연극을 두 편, 단편 영화를 한 편, 드라마를 한 편했다. 어느 순간 무대에서 열심히 빠져들어서 연기를 하고 있는데 ‘카타르시스’가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이래서 연기를 하는 거구나’라고. 그때부터 점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10.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나.
김희진: 액션. 운동도 좋아해서 많이 하는 편이고, 액션 스쿨을 다니기도 했다. ‘짝패’처럼 정말 좋은 액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사실 몸 쓰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잘 뛰어다니다 보니까 ‘인천상륙작전’에서 액션 촬영 4주 앞두고 다리가 부러졌다. 그래서 못할 뻔 했는데 감독님과 다른 스태프분들이 기다려주셔서 하게 됐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10.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는 무엇인가.
김희진: 현대판 나쁜 놈. 예를 들어 재벌집 아들인데 싸움도 잘하는 ‘베테랑’ 조태오처럼.

10. 김희진표 조태오도 잘 어울리겠다.
김희진: 주변에서 그런 이미지가 잘 어울리겠다고 많이 말씀도 해주시고 나도 내 외모의 장점이 뭔지 알기 때문에.(웃음) 신인으로서 내가 제일 잘 표현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10.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김희진: 배우라는 말을 듣기에 아직 부끄럽다.(웃음) 주변에서 ‘배우 김희진’이라고 불러주실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배우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잘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어떤 배우에게든 그만의 매력이 있는 것처럼, 나만의 매력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김희진’이라는 사람만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그게 좋은 연기라고 생각한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