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박기헌 음악감독이 한경텐아시아와의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박기헌 음악감독이 한경텐아시아와의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노래를 들으면 장면이, 장면을 떠올리면 음악이 동시에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림과 흐르는 음악이 하나가 돼 가슴에 남을 때, 우리는 ‘명장면’이라고 표현한다. 하나의 명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땀과 열정이 녹아드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음악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 중심에는 반드시 음악을 진두지휘하는 감독이 존재한다.

박기헌 음악감독 역시 장면과 하나 됐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음악에 매료됐다. 그저 음악이 좋아 시작한 일이지만,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의 매력에 흠뻑 빠져 영화, 드라마, 뮤지컬까지 장르를 넓히며 ‘명장면’의 탄생을 돕고 있다.

10. 지난주에는 한 작품을 마무리 한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가.
박기헌 : 웹드라마 ‘통메모리즈’라는 작품의 음악을 맡아 진행했다. 지난 금요일부터 다음 카카오를 통해 시작됐고, 영화 버전도 준비하고 있다.

10. 웹드라마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박기헌 : 지인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됐다. 최종 영화로 가기 전 단계로, 작품을 같이 하는 식이다.

10. 먼저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박기헌 : 사실 대학 때 철학을 전공했다. 당시 교수님이 조성우 음악감독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약속’ ‘봄날은 간다’ 등의 작품에 음악감독을 한 분인데, 철학과 교수님이었다. 그전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기회가 닿지 않다가, 조성우 감독을 만난 이후로 도움을 얻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다.

10. 사실 음악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모두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지는 않는다.(웃음) 전부터 홀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었나 보다.
박기헌 :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현실화된 건 조성우 감독을 만난 뒤부터다. 90년대 초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학원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그러면서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 등에 나가기도 했다. 조성우 감독의 수업 시간에 매일 앞에 앉아, 시간이 나면 음악 이야기를 했다. 종종 가진 술자리에서는 데모 음악을 만들어서 들려드리기도 했다.

10.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부터 OST가 좋았나.
박기헌 : 시작은 그냥 음악이었다. 조성우 감독을 보면서 영화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10. 첫 시작은 어떤 작품이었나. 가슴이 벅찼을 것 같은데.
박기헌 : 영화 ‘용가리’라는 작품의 스태프로 들어갔다. 영화 음악에 대한 시스템이 활성화되기 시작할 때였다. 그때는 그저 청소만 했지.(웃음)

박기헌 음악감독이 한경텐아시아와의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박기헌 음악감독이 한경텐아시아와의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특별히 영화 음악에 매력을 느낀 이유가 있을까.

박기헌 : 내가 만든 음악이 그림과 붙었을 때, 짜릿함과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야 할까. 장면마다 목적이 있는데,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을 때 오는 벅차오름이 크다.

10. 영화 음악으로 시작했지만, 드라마도 다양하게 참여했다. 최근작은 ‘신의 선물-14일'(2014)과 ‘용팔이'(2015)가 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또 다를 것 같은데.
박기헌 : 물론 두 장르 모두 그림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건 같다. 다만 접근 방식이 많이 다르다. 드라마의 경우, 모두 완성된 뒤 시작하는 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시놉시스를 읽고, 그 상황의 음악을 생각하고 떠올린다. 여러 가지 다양한 템포의 음악을 미리 만들어두고 시작한다. 방영을 시작하고는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하다. 어떤 작품은 편집본이 날아오고, 6시간 뒤 방송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웃음) 방송을 하는 동안 음악 작업을 계속하기도 했고.

10. 영화는 어떤가? 비교적 여유로울 것 같기도 하고.
박기헌 : 시나리오를 보고 현장 스태프들이 촬영하고 있을 때, 대략적인 테마를 만들고 멜로디도 구상을 해둔다. 편곡 여부도 그림이 그려진다. 스릴러 등 계산적인 영화는 그림이 나와야 작업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때문에 그런 장르 영화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10. 아무래도 여유를 갖고 작업하는 편이 수월하지 않나.
박기헌 : 동전의 양면이다. 규모가 큰 작품은 개봉일을 잡아놓고 시작하지만, 중·저예산 영화는 시작한 뒤에 개봉일을 확정한다. 개인적으로는 집중할 때 바짝 하고 작업을 끝내는 게 좋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늘어질 때가 많다. 그러면 수정도 거듭하게 되고.

10. ‘용가리’ 스태프 이후 본격적인 시작은 언제 했나.
박기헌 : 첫 작품을 빨리했다. 2002년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가 입봉 작품인데, 20대 후반이었으니 당시에는 최연소 음악감독이었다.

10. ‘죽어도 좋아!’는 개봉 당시에도 주목받은 작품이다.
박기헌 : 사실 시나리오를 보고 깜짝 놀라긴 했다. 3시간 분량의 편집본을 먼저 봤는데, 고민이 되더라.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영화적이기도 하고. 음악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박진표 감독과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그때 조성우 감독이 ‘그냥 멜로 영화’라고 말씀하더라. 노인이지만 남녀의 사랑 이야기니, 그렇게 접근하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술술 풀렸다. 뭔가 한꺼풀 덮여 있는 상태에서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게 막이 벗겨졌다.

박기헌 음악감독이 한경텐아시아와의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박기헌 음악감독이 한경텐아시아와의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드라마의 첫 작품도 궁금하다.

박기헌 : 단막극을 해오다, 정극은 2008년 ‘일지매’가 시작이다. ‘일지매’는 작품도 컸고, 일본 작곡가 요시마타 료와 컬래버레이션 형식으로 진행해서 더 기억에 남는다. 음악도 잘 나왔다.

10. 영화를 해오다가, 드라마 음악의 시작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분명 시행착오도 있었을 텐데.
박기헌 : 곡을 다 써놔야 하는 구나…싶어서 많이 헤맸다.(웃음) 시놉시스를 보고 그림을 그려도 감독과 같은 생각일 수만은 없고, 뭔가 부족할 것 같아서 많이 만들어 둔다. 그렇게 만들어놓고 안 쓰인 음악도 많다. 지금도 한 작품을 끝내놓으면 쓰지 않은 곡들이 수두룩하다.

10. 당연하겠지만, 힘든 작업일 것 같다. 장면을 상상하면서 음악을 만든다는 게.
박기헌 : 콘셉트를 잡는 것이 힘들다. 음악은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완성된 뒤 들어야만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연출자와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그럼에도, 말로는 ‘맞아!’하지만 곡을 들으면 ‘이게 아닌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0. 작품에 돌입하면, 다른 일상을 즐기기 힘들겠다.
박기헌 : 드라마를 하는 동안, 방영을 보통 8주 정도 하는데 그때는 거의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간다. 동시에 여러 작품을 못 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10. 배우, 연출뿐만 아니라 음악 감독 역시 작품을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기도 하다.
박기헌 : 하는 중에는 ‘언제 끝나지? 쉬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막상 끝나면 정말 허전하다. 감독도 보고 싶고.(웃음)

10.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
박기헌 :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대진운이 좋지 않아서 힘들게 시작했고, SBS에서 장르물을 한 건 처음이기도 해서, 2회를 찍으면 마치 영화를 두 편 찍는 것처럼 힘들었다.

10. 어렵고 힘들수록 완성본을 보면 뿌듯하겠다.
박기헌 : 아쉬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의 선물’의 경우에는 마니아층이 생겼는데, 본방송 이후 재방송을 보라는 말도 나올 정도로, 재방송 때는 믹싱을 다시 했다. 편집도 조금씩 달라지고.(웃음) 재방송 완성도가 더 높아지는 거다.

박기헌 음악감독이 한경텐아시아와의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박기헌 음악감독이 한경텐아시아와의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박기헌 : 우선 이 작품의 음악을 담당했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음악을 아무리 잘 해도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쉽게 손길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작품이 좋아야 음악도 빛난다고 생각하니까, 결국은 시나리오와 대본이 좋아야 한다. 그 점이 와 닿지 않으면 시작하기 힘들다.

10. 지치고 힘들 때마다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되는 작품이 있나. 다시 꿈꾸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박기헌 : 영화 ‘색.계’의 음악을 담당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를 좋아한다. 정말 깔끔하면서도 모든 장면을 다 살려주는 음악이었다.

10. 영화, 드라마, 그리고 뮤지컬까지 섭렵했다.
박기헌 : 뮤지컬 ‘풍월주’를 2012년부터 삼연 째인데, 사실 가장 재미있다. 뮤지컬은 음악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실시간으로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회차의 공연이 소중하다. 국악의 악기를 접목하는 등 도전을 해보기도 하고, 주 2회 이상은 직접 보러 갔다. 목표는 4연을 올리는 것이다.

10. 모든 장르를 한 것 같은데, 또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
박기헌 : 뮤지컬 영화를 해보고 싶다. 현재 ‘풍월주’를 갖고 영화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뤄지면 좋겠다.

10. 음악감독으로서의 목표는?
박기헌 : 나만의 정체성을 갖고 음악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지만, 영화 음악이라는 건, 특히 개인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나치게 독특하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멜로디나 악기 등 나만의 뭔가를 가지고 가는 게 중요하다. 누가 들어도 ‘이거 박기헌이 한거네?’라는 말을 듣고, 그게 장점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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