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류재현/사진제공=더바이브
류재현/사진제공=더바이브
성공으로 가는 길,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누구나 한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빛을 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작곡가 류재현은 음악을 시작한 지 15년이 훌쩍 넘었으니, 이 법칙이 충분히 성립한다. 작곡가이면서 프로듀서이고, 또 바이브의 멤버인 그는 이미 ‘음악’이란 분야에서 성공을 거뒀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도입만 들어도 무릎을 탁 칠만한 히트곡도 숱하다. 마냥 즐거워 시작했지만,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어내며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하게 받았다. 하지만 음악을 하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은 도저히 놓을 수 없었다. 류재현과 음악은 이제 애증(愛憎)이다. 세상에 내놓기 전 가장 밉고 또 가장 설레는, 그에게 음악은 그런 존재다. 마치 그가 만든 노래 제목처럼, 미워도 다시 한번.

10. 지난 4월, 정규 7집을 발표하고 바쁘게 지내는 것 같다.
류재현 : 늘 비슷한 것 같다. ‘판타스틱 듀오’ 나간 정도? 콘서트 준비도 하고 있다.

10. 여가 생활을 즐길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류재현 : 취미가 거의 없다. 레포츠를 즐기거나, 여행을 즐기는 게 아니고. 음악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비슷할 것 같은데, 뭘 하든 계속 생각하고 있을 거다. 저절로 한쪽의 뇌가 음악으로 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10. 항상 음악을 생각하고 있다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돼 버렸나보다.
류재현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음악은 점점 듣지 않게 된다. 어느 선까지는 이미 배운 것이다. 그 이상은 창작이 돼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며들어 창작이라고 착각을 하고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우려가 있다. 아마 대부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듣는 게 부담스럽다. 은연중에 멜로디들이 나올 수 있으니까,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모여 교정을 하는 작업을 거친다. 음악이 글자만큼 많은데,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면 해야지.

10.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류재현 : 처녀작 때부터 있었고, 점점 심해지는 거다. 나이가 들고 나서는 조심스러워서가 아니라, 착각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져서다. 이 멜로디는 내 거라는 착각. 3집 이후부터는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려고 했다.

10. 곡을 만드는 건 어떻게 시작됐나.
류재현 : 노래방 기계에 반주를 넣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고1 때부터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고, 교회 반주를 하고 밴드부를 하면서 음악을 접했다.

10. 음악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나 보다.
류재현 : 피아노에 재능이 있거나, 악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중3 때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시작했다. 배우는 곳이 따로 없어서 독학을 하기 시작했는데,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찾아서 한 것이 지금까지 왔다.

10. 완성된 노래는 아니더라도, 처음 만들어본 곡은 잊지 못하겠다.
류재현 : 노래방 기계에 데이터를 넣는 작업으로 무수한 노래를 접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중국, 필리핀 노래도 있었다. 그때 각종 장르의 음악을 가장 많이 배운 것 같다.

류재현/
류재현/

10. 아주 오래전부터 작곡가의 꿈을 키웠는데, 바이브의 결성이 궁금해진다.

류재현 : 고3 때 유성규(바이브 원년 멤버)를 만났다. 같은 학교의 과도 같았지만, 다른 밴드에 소속돼 있었다. 같이 음악을 하자고 뜻을 모았고, 이후 보컬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윤민수를 만났고, 바이브가 시작됐다.

10. 일사천리였네.
류재현 : 윤민수에게 같이 하고 싶다고 하고는 불러서, 노래 하나가 있는데 잠깐 기다리면 2절을 완성할 테니, 불러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그 노래가 ‘미워도 다시 한 번’이다.

10. 정말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류재현 : 아픈 발라드이고, 알앤비(R&B)를 섞어보고 싶었다. 초반 도입부가 발라드 같은 멜로디이다. 그때는 세련된 라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때였다.(웃음) 그래서 가사에 라임도 넣고, 흑인음악도 하고 싶고, 발라드도 하고 싶어 어떻게 접목을 할까 하다가 탄생했다. 희한한 처녀작이 나왔다.

10. 하고 싶은 걸 마음껏 다 한 곡이네.
류재현 : 정말 하고 싶고, 해보고 싶은 걸 다 했다.(웃음)

10. ‘잠깐 기다려’하고, 2절을 뚝딱 완성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류재현 : 윤민수의 목소리를 들으니 바로 생각이 났다. 불러봐야 하니, 잠깐 있어봐 하고는 남은 부분을 만들기 시작했다.

10. 윤민수의 목소리가 꽤나 끌렸나 보다.
류재현 : 그때 윤민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가수 같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나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고, 메인 리드보컬이니까 확연히 다르더라.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낯설고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나. 그런데 가수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다. 그때 윤민수의 목소리는 나에게 그랬다.

류재현/
류재현/

10. 곡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그때와 지금, 어떻게 달라졌나.

류재현 : 방법의 차이는 없고 그때와 똑같다. 가사가 먼저다. 한때는 가사에 굉장히 집착을 부리기도 했다. 다른 표현 방법을 찾으려고 했고, 눈에 띄게 한다든지. 좋은 가사, 글은 좀 남지 않나, 그래서. 제한적인 음악을 하고 있는 대중가수니까 고민하고 더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제한을 두지 않고 쓸 수는 있지, 그런데 그렇게 되면 혼자 음악을 하는 거지 대중음악을 한다고 볼 수는 없는 거다.

10. 늘 고민하고, 연구한다. 그렇게 1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불현듯 음악이 싫어질 때도 있겠다.
류재현 : 요즘 좀 그렇다. 또 달리 생각해보면, 숲을 보는 느낌으로 가는 거다. 예전엔 멜로디 하나하나 신경을 다 썼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관대하게 대범하게 해도 좋다는 걸 알게 됐다. 곡도 쉽게 썼기 때문에 잘 되는 거다. 내가 빠르게 이해하고 스트레스 없이 나온 곡은 대중도 역시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오래 걸릴 것 같다 싶으면 바로 접는다. 붙잡고 있지 않는다.

10. 예전과 가장 다른 부분이겠지.
류재현 : 옛날에는 가사를 쓰다가 가령 ‘그 모든 말은’ 사이의 말까지 하루 종일 고민했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안 한다.

10. 싫어졌다고 하지만, 음악 이야기를 하니까 눈빛이 반짝인다. 그래도 곡을 쓸 때 희열과 짜릿함이 있지 않나. 그래서 지금까지 음악을 하는 것일테고.
류재현 : 대중들의 반응, 그에 대한 기대가 가장 크다.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설렘, 그 쾌감이 엄청나다.

10. 그렇다면, 처녀작인 ‘미워도 다시 한 번’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받았을 때, 짜릿했겠다.
류재현 : 시대를 잘 만난 것 같다. 가장 처음이니까 더 좋았다. 거리에 내가 만든 노래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나를 모르고. 그때는 신기함에 살았다. 나 혼자 즐기는거다.(웃음) ‘내 노래가 들리는구나’라면서.

10. 바이브의 음악은 시작부터 승승장구였다.
류재현 : 1, 2집이 좋은 성과를 냈고, 3집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때는 3집 때 자리를 확실히 잡지 못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동안은 알앤비에 기초를 두고 곡을 만들었는데, 3집 때 강수를 둬야 했다. 그때, 나는 프로듀서로 빠지고 윤민수와 장혜진을 앞세워 듀엣곡으로 갔다. 그 곡이 ‘그 남자 그 여자’이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만큼 3집이 정말 중요했으니까.

류재현/
류재현/

10. 프로듀서로 빠진다는 결정을 쉽게 내린 것 같다.

류재현 : 팀을 살려야 한다는 게 가장 컸고, 그때 온전히 음악을 업으로 삼는 게 받아들여진 거다. 원래 프로듀서가 꿈이었으니까 자연스러웠다. 내 음악을 하고 싶어서 가수를 하게 된 것이니까.

10. 3집도 대성공을 거뒀고, 그때부터 류재현의 역할은 굳혀진 것 같다.
류재현 : 점점 프로듀서로 빠졌다. 4집부터도. 윤민수가 워낙 노래를 잘 부르니까, 메인보컬이 확실하고 그가 부각되는 건 당연했다.

10. 그럼 다른 아티스트에게 곡을 주기 시작한 것도 그때가 본격적이었나.
류재현 : 그건 1집 때부터 하고 있었다. 다른 가수들의 수록곡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었고. 어찌 보면 원래 직업이었던 셈이다.

10. 바이브의 곡을 쓸 때와 다른 가수들의 곡을 작업할 때 좀 달라지나.
류재현 : 곡을 미리 써놓지 않는다. 물론 머릿속에 어느 정도 그림은 그릴 수 있겠지만, 메모 정도다. 가수를 떠올리면서 곡을 쓰기 시작한다.

10. 여성 가수들과도 작업을 꽤 했다.
류재현 : 감성이 살짝 여성 감성이다.(웃음) 그래서 여성 가수들의 곡 작업이 더 편하다. 여성 가수들이 비교적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많고, 폭도 더 넓은 것 같다.

10. 드라마의 OST의 전체 프로듀싱을 맡아 작업을 하기도 했다.
류재현 : 작곡가 팀 V.I.P와 함께하는 건데, 오히려 더 쉽게 하는 것 같다. 그냥 곡 작업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선 포맷이 다 나와있다. 작품 속 감정과 상황에 맞게 곡을 작업하는 식이다. 무엇보다 OST의 무한한 감동은 영상과 붙었을 때 배가 된다.

10. 영화의 음악감독 등 도전할 분야는 더 있을 것 같은데.
류재현 : 영화음악도 한 번 해보고 싶다. 실제 구상 중인 계획도 있고, 좀 더 구체화된 이후에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적으로 좀 더 영역을 넓혀서 다양하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10. 그렇다면, 류재현의 솔로 음반의 가능성도 있나.
류재현 : 솔로 음반의 생각은 전혀 없다.(웃음)

10. 앞으로의 작곡가, 그리고 바이브 류재현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류재현 : 늘 새롭게 다양한 시도를 할 것 같다. 노래 역시 이미 대중가요가 포화 상태인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거다. 기존의 틀에 색깔을 입히고, 어떻게 하면 고유명사가 된 듯한 멜로디를 꾸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 하겠지. 그리고 바이브로는 콘서트를 마친 이후에 본격적으로 정규 음반을 준비해야 한다. 7집을 준비하면서 미처 다 채우지 못한 곡들을 중심으로 할 생각이다. 시기, 날씨에 맞을 때 내놓고 싶으니까 작전을 세워야 하고, 그에 맞는 행보도 정해야지.(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