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영화 ‘곡성’에서 외지인으로 열연을 펼친 배우 쿠니무라 준 /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곡성’에서 외지인으로 열연을 펼친 배우 쿠니무라 준 /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영화 ‘곡성’의 중심에는 일본인 배우 쿠니무라 준이 있다. 그는 ‘곡성’에서 관객들을 현혹시키는 일등 공신. 극 중 미스터리한 연쇄 사건의 원인으로 의심받는 외지인 역을 맡은 쿠니무라 준의 열연에 관객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못한다.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일본인 배우가 낯선 관객들도 많지만, 그는 할리우드 영화까지 경험한 일본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다. 쿠니무라 준은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갈증’ ‘지옥이 뭐가 나빠’ ‘기생수 파트1’ ‘킬 빌’ ‘이치 더 킬러’ 등 80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는 등 25년의 연기 경력을 자랑한다.

일본 베테랑 배우가 경험한 한국 영화는 어땠을까. 쿠니무라 준을 만나 ‘곡성’에 출연한 소감과 함께 작업한 감독-배우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다시 한국 영화에 출연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인상적이었다.

10. ‘곡성’에 출연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쿠니무라 준: 감독이 일본에 와서 직접 시나리오를 줬다.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감독이 말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의 말을 100%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10. 나홍진 감독의 전작을 본 적 있는가?
쿠니무라 준: 나홍진 감독은 이번 ‘곡성’을 계기로 처음 알게 됐다. 출연을 결정한 이후에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황해’를 봤다. 나홍진 감독의 특징은 스토리텔링을 잘하는 감독이라기보다, 이야기의 흐름에 관계없이 관객들이 영화에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는 감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10. 전작도 안 보고 결정할 만큼 ‘곡성’의 시나리오와 외지인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나?
쿠니무라 준: 역할 자체가 내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캐릭터라 망설여지긴 했다. 영화를 봤다면 알겠지만, 내가 훈도시(일본 성인 남성이 입는 전통 속옷)만 입고 폭포 수련을 하는 장면이 있다. 내가 그렇게까지 노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심지어 처음 받았던 시나리오에는 훈도시도 없이 전라노출을 해야 했다. 솔직히 그건 좀 아니지 않은가. (웃음)

10. 완성된 영화는 언제 처음 봤었나?
쿠니무라 준: VIP시사회에서 처음 영화를 봤다. 내가 한국어를 모르다보니까 다른 배우들이 어떤 대사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초반에 관객들이 웃는 포인트도 잘 모르겠더라. 왠지 나만 혼자 남겨진 느낌이라 쓸쓸했다. (웃음)

10. 시나리오와 영화는 얼마나 달랐나?
쿠니무라 준: 구성이 많이 달라졌다. 시나리오를 읽어서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새롭고 신기했다. 자막이 없어서 스토리 전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는데도 워낙 흡입력이 좋은 영화라 영화에 점점 빠져 들어갔다.

영화 ‘곡성’에 출연한 배우 쿠니무라 준 /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곡성’에 출연한 배우 쿠니무라 준 /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10. 나홍진 감독의 현장이 한국에서도 치열하기로 유명한 현장인데, 직접 경험해보니 어땠나? 일본 영화 촬영장과는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하다.
쿠니무라 준: 나홍진 감독 촬영장이 치열한 걸 출연 결정하고 나서 알았다. 그것도 모르고 ‘아, 한국 영화는 다 이렇게 힘들게 찍는 건가’ 생각했다. 일본 영화 현장은 감독이 모든 걸 컨트롤하진 않다. 그러나 나홍진 감독의 현장은 감독이 모든 걸 컨트롤을 한다. 말을 조금 바꾸자면 제 멋대로 한다. (웃음)

10. 나홍진 감독은 배우에게 굉장히 혹독하고, 반복 촬영을 요구하는 걸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80편 넘는 영화를 했는데, 이만큼 지독한 현장이 있었나?
쿠니무라 준: 내가 80편이나 출연했나? 세 본 적이 없다. (웃음) 당연히 이런 현장은 처음이었다. 참을 때까지 참다가 육체적으로 힘에 부치면 감독에게 더 이상 못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고라니를 먹는 장면은 몇 번 하니까 비위가 약해지더라. 원래 육회 같은 걸 즐겨 먹긴 한데, 속이 안 좋을 정도로 계속 반복해서 찍으니까 감독에게 못하겠다고 했었다.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나홍진 감독은 ‘딱 두 번만 더 가자’고 말하더라고. (웃음)

10. 모든 촬영이 지방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됐다. 그런 면에선 힘들었던 부분은 없었나?
쿠니무라 준: 낯선 것보다 산 속에서 촬영이 많아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내가 폭포수를 맞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위해 꽤 높은 곳에 위치한 폭포까지 올라가야 했다. 촬영이 시작되고, 내가 옷을 벗고 폭포를 맞는데 저 멀리서 크레인으로 그 장면을 찍는 거다. 물이 차가운 것보다 ‘도대체 크레인은 어떻게 올린 거야?’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크레인 올리느라 고생한 스태프들을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내가 힘들다고 말은 못하겠더라.

10. 가장 힘들었던 촬영은 무엇인가?
쿠니무라 준: 고소공포증 같은 게 있어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좀 힘들다. 종구(곽도원)에게 쫓겨 절벽에 매달리는 신이 있었는데, 감독은 그것보다 더 아찔한 곳에서 찍으려고 하는 거다. 감독에게 부탁이니 저기서만큼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사정을 했다. 정말 힘든 경험이었는데, 막상 촬영이 끝나고 나니 그 힘들었던 걸 또 잊게 되더라.

10. 외지인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선 ‘혹시 착한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쿠니무라 준: 감독이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장면이다. 감독도 어쩌면 외지인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주고 싶어서 신경을 많이 썼다.

영화 ‘곡성’에 출연한 배우 쿠니무라 준 /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곡성’에 출연한 배우 쿠니무라 준 /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10. 곽도원이 ‘쿠니무라 준은 눈빛이 굉장히 무시무시한 배우’라는 말을 했었다. 쿠니무라 준이 생각하는 곽도원이란 배우는 어떤 배우였나?
쿠니무라 준: 곽도원과는 촬영 기간 동안 밥도 같이 먹으면서 개인적인 얘기도 나눴던 적이 있다. 그가 영화계에 들어오고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얘기를 들었다. 괜히 스타가 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곽도원 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 배우들과 연기하면서 느낀 건데, 한국 배우들은 프로정신이 있다. 미리 자기가 어떤 연기를 해야 할지 충분히 준비하고 온다. 그런 것 때문에 현장에서 감독의 요구사항을 바로 이해하고, 그에 맞게 변한다. 굉장히 기초가 탄탄하고 퀄리티가 높다는 걸 느꼈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10. 개봉 전 진행된 ‘곡성’ 무비토크에서 나홍진 감독이 “쿠니무라 준이 일본 동료들에게 한국 영화는 절대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정말인가?
쿠니무라 준: 하하, 배우를 한계점까지 몰아서 촬영한다고 말한 적은 있어도 한국 영화 찍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다. 터프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경험을 했다. 한계를 경험했지만, 또 나홍진 감독이 작품을 하자고 그러면 고민할 것 같다. 그때는 아무래도 지금보다 한계가 좀 더 빨리 올 것 같은데, 그건 감독이 고려해야 할 문제니까… (웃음)

10. 일본 사람들이 ‘곡성’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쿠니무라 준: ‘곡성’은 기승전결에 따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더 알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흐름에 맞춰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일본 관객들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다.

10. ‘곡성’이 칸 국제 영화제에 초청됐다. 칸에 가는가?
쿠니무라 준: 간다.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몇 년 전 베니스 영화제에 간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즐거웠다. 칸에는 이번에 처음 가는데, 칸에 가게 해준 영화가 한국 영화라는 점도 꽤나 만족스러운 일이다.

10. 혹시 다시 한국 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있으면 할 생각이 있는가?
쿠니무라 준: 배우들과의 작업도 굉장히 즐거웠고, 나홍진 감독과 함께 했던 것도 좋았다. 섭외만 온다면 또 한국 영화에 출연할 의향이 있다. 다만, 일본인이기 때문에 적이나 나쁜 역할로 캐스팅 되는 건 뻔한 설정이기 때문에 재미없을 것 같다. 좀 중립적인 상황에서 점차 변화하는 캐릭터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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