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 속 이제훈을 바라보자니 어떤 일을 남들보다 잘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을 가진 ‘유능하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의적이 아닌 악한 탐정 홍길동으로 변신한 이제훈의 연기는 그만큼 자유롭고 영리하다. 홍길동 캐릭터의 특색을 명쾌하게 살려내고 거짓말을 일삼는 홍길동처럼 자유자재로 표정을 바꾸며 완벽히 캐릭터에 녹아들었다.
이제훈을 단순히 유려한 연기만으로 ‘유능하다’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아니다. 이제훈은 홍길동으로 변신하기 위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탐구했다. 덕분에 이제훈은 홍길동의 심리를 완벽히 파악해냈다. 배우가 연기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이토록 치열하게 탐구하다니, 이보다 더 ‘유능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훈은 탐정 홍길동처럼 아니, 어쩌면 탐정보다 더 유능한 배우다.
※ ‘탐정 홍길동’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0. 영화 ‘탐정 홍길동’이 세상에 공개된 기분이 어떤가. 이제훈 : 촬영한 지 1년 만에 개봉하게 됐다. 배경 CG 등 후반 작업이 오래 걸렸다. 오래 걸린 만큼 공 많이 들인 작품이다. 완성된 작품이 극장에서 어떻게 보일지 두근두근하고 떨렸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매우 만족스럽다. 개인적으로 가장 뿌듯한 건 한국영화도 새로운 소재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거였다. 내게 시나리오를 안겨주신 감독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10. 드라마 ‘시그널’부터 ‘탐정 홍길동’까지, 전역 후의 행보들이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작품 선택에 있어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인가. 이제훈 : 캐릭터가 가진 진실성? 작품 속 캐릭터는 허구의 인물일지라도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연기한다. 캐릭터에 대한 진실성이 관객들에게 전달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이 연기할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진짜 같은 캐릭터,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고르는 거지. 지금까지의 선택은 성공적이었으나 이런 생각들이 나중에는 시야를 좁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려 노력 중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자고 계속 되뇌고 있다.
10. 군대의 영향이 있는 것인가. 이제훈 : 군대는 당연히 다녀와야 할 국방의 의무였다. 배우는 직업 특성상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만, 군대에 가면 그게 어려워진다. 그걸 아니까 군대 가기 전 하루하루 시간이 흐른다는 게 조급할 뿐이었다. 군대 가기 전날까지 일하고 갔다. 시간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막상 군대 가서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여태까지 연기를 해온 날보다 앞으로 배우로서 걸어갈 날이 더 많이 남았잖아. 조급해하지 말고 한 스텝, 한 스텝 차근차근히 밟아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또, 배우가 아닌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생각이 달라진 점도 있다. 군대에 있을 때 넓은 시야를 가지고 세상 사람을 만나는 거에 주저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군대가 여러모로 내 생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나는 정말 잘 다녀온 것 같다.(웃음)
배우 이제훈 / 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
10. ‘탐정 홍길동’은 이제훈의 첫 원톱 주연작이다. 부담감은 없었는가. 이제훈 : 촬영을 할 때는 부담감에 대해 잘 몰랐다. 영화는 다 같이 만들어나가는 거니까 내가 짊어진 무게에 대해서 잘 몰랐던 거지. 막상 영화가 공개되고 나니 부담감이 오더라. 홍길동이란 캐릭터가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나간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10. 개봉 시기에 할리우드 대작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이하 시빌 워)’가 있다. 이에 대해 별다른 부담은 없는가. 이제훈 : ‘시빌 워’는 솔로 무비를 충분히 책임지는 캐릭터들이 한데 모여서 나오는 영화다. 워낙 유명한 히어로들이라 팬층도 탄탄하다. 반면 ‘탐정 홍길동’은 새롭게 등장하는 영화다. 한국에서도 독특한 캐릭터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마블 시리즈처럼 시리즈를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관객분들이 ‘시빌 워’와 같이, 또 비교해주시면서 다양한 작품을 즐기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전에 관객분들에게 이런 영화가 있다고 열심히 알리고 극장으로 초대해야겠지.(웃음)
10. 자신감이 통했는지 언론시사회 이후 홍길동에게 ‘한국형 히어로’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홍길동은 서부 영웅처럼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다. 꽤나 아이러니하다. 이제훈 : 영화 전체적으로 서부적인 느낌이 난다. 할리우드 고전 누아르 영화를 보면 강한 색채를 쓴다거나 골목길, 어둠 속 그림자 등이 등장한다. 그런 영화를 보면서 ‘저런 시절에 살았다면 저렇게 옷을 입고 연기했을 텐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탐정 홍길동’에서 그걸 이뤘지. 한국에서 이런 캐릭터는 드물잖아. 표현하는 자체가 신나고 재밌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끝내기엔 너무 아쉽다. ‘한국형 히어로’로서 더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난다.(웃음)
배우 이제훈 / 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
10. 홍길동을 연기할 때 참고한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는가. 이제훈 : 딱히 래퍼런스를 둔 캐릭터는 없었다. 디테일을 생각한 건 영화 ‘타짜’의 고니였다. 영화에서 고니는 자신의 두려움을 내레이션으로 표현한다. 홍길동 역시 내레이션으로 극을 이끌어가기 때문에 고니를 많이 참고했었다. 감독님이 추천해주신 건 미국 드라마 ‘덱스터’였다. 낮과 밤이 다른 살인자인데, 사건을 파헤치며 악인들을 처단하는 살인자다. 거짓말을 일삼고 광운회를 쫓는 홍길동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10. 탐정 홍길동은 꽤나 만화적인 인물이다. 이제훈 : 여러 특징들 중 대사가 참 만화적이다. 홍길동의 비상한 능력은 바로 거짓말이다. “공무원 아저씨인데”, “경찰인데”, “검사인데” 등 온갖 거짓말을 하지. 착한 얼굴로 음흉한 마음을 감추며 사람들을 속인다. 거짓말을 할 때 대사들이 너무나 만화적인 대사들이다. “이건 홍길동에게 대든 벌이다”, “감히 나에게 덤비다니”같은 대사는 실생활에서 잘 안 쓰잖아. 어색하고 오그라들 수 있는 대사였지만 영화 톤에는 잘 맞았다. 나 역시 즐기자라는 마음으로 편하게 연기를 했다. 다음 시리즈에서도 이 대사를 또 내뱉고 싶다. 하하.
10. 배우로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언제였나. 이제훈 : 마지막에 사건이 해결되고 아이들을 차에 태워서 보내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 동이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알고 있고, 말순은 모른다. 불안해하는 말순이를 보면서 길동이가 자기 얘기를 꺼내는데, 그게 또 거짓말인지 사실인지 연기하는 나조차도 모호했다. 하지만 감정만큼은 정말 진짜 같았다. 아이들이 갈 때 캐러멜을 내밀잖아. 친구도 없고 정도 없었던 길동이에게 친구가 생긴 순간이었다. 그때의 감정과 석양이 노을 진 배경, 모든 것이 황홀하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