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비지/사진제공=필굿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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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 어쩌면 모든 뮤지션들의 꿈일 것이다. 래퍼 비지(Bizzy) 역시 이 같은 마음으로 8년 만에 솔로곡 ‘검은머리 파뿌리’를 발표했다. 정성스레 빚은 노래를, 당당하게. 이 곡은 부모님,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훗날 결혼할 부인과 아이에게도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매일 쓰는 일기가 켜켜이 쌓이듯, 가수들의 음반도 오랫동안 기록된다. 비지는 그렇다면, 오래도록 남길 수 있는 곡을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 8년이란 공백을 깼고, 홀로 시합에 나섰다. 편안했던 그늘이 새삼 고맙기도 하고, 무거워진 책임감에 어깨는 뭉치지만, 무대 위 관객들과 교감하는 그 순간의 쾌감을 떠올리며 ‘기분 좋은 음악’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10. 오랜만에 신곡을 내놨다. ‘검은머리 파뿌리’라는 제목이 참 신선하다.
비지 : 2008년 내놓은 EP 음반이 ‘헤어진 다음날’이다. 당시에 지인들이 축가를 불러달라고 하는데, ‘헤어진 다음날’을 부를 수는 없지 않나(웃음). 새 EP 작업을 하면서 Mnet ‘위키드’에 출연하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더뎌지더라. 강하고 하드코어 한 노래를 준비하다가, 아이들의 순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물론 힙합이 저항적인 부분이 있지만, 저 역시도 예전에 그랬고. ‘위키드’를 통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에게도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축가로 불러줄 수 있는 노래, 또 부모님이 친구 분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곡을 작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 번만 내고 말 것이 아니니까, 스스로는 굉장히 만족스럽고 기분 좋은 음악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10. 제목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나.
비지 : 어렸을 때부터 일기를 썼는데, 일기장에서 가사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홀로 새벽에 여러 가지 걱정, 고민을 털어놓으면 써놓은 것들이 가사가 된다. ‘나는 걱정 태산이라, 걸음걸이도 팔자야’같은 가사를 쓰다가, 따뜻한 곡을 작업하자고 한 뒤부터 ‘너와 함께 끝까지 하고 싶다’부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을 상상하며, ‘같이 살자’ 등이 이어지면서 ‘검은머리 파뿌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제목이 됐다.

10. 첫 번째 EP 음반에 이어, 무려 8년이나 걸렸다.
비지 : 2008년에 EP 음반이 나왔고, 털어버리고 움직여야 했는데 계속 얽매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들어보면서 놓친 부분이라든지 목소리 톤, 라임들이 아쉬웠다. 그러다가 걸음도 같이 느려졌다. 자랑스럽게 만들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10.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나. 이번엔 음악 방송에도 출연하고, 홀로 무대에 서는 부담이 클 텐데.
비지 : 음악적인 파트너이기 전에 가족 같은 타이거JK형과 (윤)미래 형수님 덕분이다. 같이 MFBTY라는 팀을 이뤄 음악 활동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좀 더 빛을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니’라는 이야기도. 막상 솔로 활동을 하려니까 두 사람의 그늘이 참 편안하고, 따뜻했구나 싶어서 새삼 감사하다.

10. 그 부담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나.
비지 : 2, 3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다 개리 형의 추천을 받아 복싱을 시작했다. 바로 불면증이 없어지더라. 처음에는 개리 형이 다니는 곳을 갔지만, 워낙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라 지금은 동네에 있는 곳을 다닌다. 생활체육을 하는 분이 재미있게 가르쳐줘서 흥미를 갖게 됐다. 또 하나, 어릴 때부터 왼손잡이라 꾸중을 많이 들었는데 복싱을 하면서 그게 득이 된다는 걸 알았다. 어릴 땐 항상 왼손은 소외된 반대쪽인 줄만 알았다. 늘 혼나는 손. 근데 이젠 운 좋은 왼손잡이가 된 거다. 복싱을 통해 변한 게 많다.

비지/사진제공=필굿뮤직
비지/사진제공=필굿뮤직
10.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스스로도 변한 걸 느끼겠다.
비지 : 예전의 나는 행복을 업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을 벌면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마음이었는데, 최근 TV를 보는데 어떤 분이 ‘행복을 직업에서 찾지 말라’고 하더라. 순간, 잘못 살았나 싶었다. 예전 같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했겠지만, 이제는 이해를 할 나이가 됐다.

10.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2000년)와 지금, 1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생각이 변할 만도 하다.
비지 : 음악을 통해서 분명 위로받는 부분도 있고, 그럼에도 힘들어서 ‘이제 그만 할래’ 할 때도 있었다. 술을 마시고, 속이 쓰린 상태로 일어나자마자 스테레오에 버튼을 누른다. 음악 없으면 뭘 하려나라는 생각이 들면, 풍선이 터지듯이 다시 깨닫는다.

10. 업이 행복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면, 쉽지는 않았겠다(웃음).
비지 : 취미로 음악을 했고, 처음에는 DJ로 시작했다. 그러다 피처링 제안이 들어왔는데, 이전까지 잘해오던 것이 오히려 잘 하려다 보니까 못쓰겠더라. 예전에 누군가가 음악을 취미로 하기 위해서 다른 직업을 택했다는 말을 했다. 그땐,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

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분명 있겠지.
비지 : ‘검은머리 파뿌리’인 것 같다. 이번 신곡을 내놓고 음원차트 순위를 보고 아쉬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꺼지더니 미래 형수님이 케이크를 준비해서 ‘실시간 급상승 1위’를 했다고 축하해 주시더라. ‘1위 가수야’라며. 형수가 1위를 할 때, 전혀 신경을 못 썼는데 다른 스케줄을 뒤로하고 축하를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순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셨다. 복싱으로 비유를 하자면, MFBTY 활동이 합을 맞춘 상태에서 나오는 스파링 같은 거라면, 솔로는 홀로 시합에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깨에도 긴장이 확, 그래서 단순한 순위에 집착을 했나 보다.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지코나 비투비 친구들이 ‘형 노래 많이 들었어요’ 해줘서 처음엔 놀리는 줄 알았는데(웃음), 고맙더라. 먼저 기억해서 알아주고. 나가기 전엔 전쟁터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겠더라.

10. 달라지고,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늘어가는 중인 것 같다. 그럼, 예전과는 다른 음악을 하는 건가.
비지 : 예전에는 위트 있는 말장난을 하는 식이었다. 이제는 좀 더 솔직한 마음, 그런 것들이 잘 표현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내 이야기인가?’라고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쓰고 싶다. 늦은 새벽 집에 들어와서 어머니께 음원차트 순위 이야기를 하면서 투덜댔더니, 한마디 하시더라. ‘100위 안에 들어가려고 음악 하는 거 아니잖아’라고. 그때 또 한 번 풍선이 터졌다(웃음).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거고, 그 음악이 100위 안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그저 다음 주 결혼하는 친구들에게 축가 선물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10. 음악을 놓을 수 없는 이유 또 하나, 공연과 무대도 빼놓을 수 없겠지.
비지 : 무대에 오르기 전 준비해놓은 걸 능청스럽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무대 위에서 흥분하는 편이라, 무슨 이야기 하는지도 모른다(웃음). 관객들과 교감하는 느낌이 정말 좋다.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무대를 꾸미는 게 즐겁다.

10. 그렇게 좋은 음악이지만, 점점 책임과 부담이 동반하겠다.
비지 :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부담이 책임감으로 변하면서, 하던 만큼도 못하는 거다. 이번 음반을 만들면서도 그랬다. 지금은 어깨에 힘을 빼고 복싱하듯, 그렇게 하려고 한다.

10. 뮤지션으로서의 고충이 늘 따라다니겠다. 곡을 쓰는 사람으로서 영감도 얻어야 하고.
비지 : 작업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저는 영감을 찾아 돌아다니는 스타일이다. 새벽에 댐 밑에도 가고, 오전에 백화점도 간다. 운이 좋게도, 주위에서 영감을 주는 일들이 많아 다행이다. 음악 동료들이 있어서 같이 가사 작업도 하고, 요즘에는 어머니와 통화하다가도 떠오른다.

10. 부모님에 대한 생각도 변했겠다.
비지 :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는데, 아버지가 젊었을 때 악기 공장을 하셨고 기타를 잘 치셨다고 하더라. 하모니카도 잘 부셨고. 지금은 연세가 드셔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음 음반을 준비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아버지가 기타를 치시고, 허밍을 하는 걸 녹음했다. 기타 치시는 모습을 처음 봤다. 또 어머니는 작가가 꿈이셨다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비지/사진제공=필굿뮤직
비지/사진제공=필굿뮤직
10. 아버지의 기타와 허밍이라니, 기대된다. 언제쯤 새 EP 음반을 만날 수 있을까.
비지 : 올 하반기 안에는 나오지 않을까. 다른 일 때문에 늦어진다고 해도, 이번에 낸 ‘검은머리 파뿌리’와는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은 바람이 있다.

10. 그동안 다른 뮤지션들과 협업을 많이 했다. 느끼는 점도 많을 것 같은데.
비지 : ‘검은머리 파뿌리’로 호흡을 맞춘 범주는 워낙 목소리가 독특해서 먼저 제안했다. 음색이 굉장히 다양한데, 힘 빼고 부를 때는 마치 뮤지크 소울 차일드 같은 느낌이 확 난다.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하니, 흔쾌히 승낙해줘서 고마웠다. 방송 활동도 도와주고. 갚아야 하는데(웃음). 알고 지낸지 15년이 넘은 도끼는 워낙 형 같은 동생이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게 보일지 몰라도, 옛날부터 알았던 내가 볼 때는 중심이 변하지 않고, 초심이 그대로인 아이다.

10. 타이거JK와 윤미래도 빼놓을 수 없겠다.
비지 : JK형과 형수의 오랜 팬이었다. 형이 처음부터 두 팔 벌려 다가와 줘서 많이 따랐다. 다른 동료들이 시샘할 정도로(웃음). 친구 같기도 하고, 형 같은 때도 있고, 가끔 아버지 같을 때도 있다. 이제는 가족이고, 워낙 서로의 스타일을 잘 알아서 선을 잘 지킨다.

10. MFBTY의 새 음반도 기대된다.
비지 : 준비된 곡들은 있다. 일정을 정해놓고 하는 것보다 즉흥적으로 구상되는 식이다.

10. 음악 하는 재미는 여전한가.
비지 : 8년 전 음반을 꺼내보면서 초심이란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을 하게 되는데, 지금 와서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까 조심스럽게 되고, 소심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번에는 친구, 형들에게 축가를 불러줄 수 있고 부모님이 자랑하실 수 있는, 그리고 내 마음에도 드는 노래를 내놓게 돼 기분 좋다. 1, 20년 후에도 자랑스럽게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내놓은 것만으로도.

10. 앞으로의 비지는 어떤 모습일까.
비지 : 필굿뮤직의 가족들과 지치지 않고, 진짜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 서로 치유도 해주고, 웃을 수도 있고 회사 이름처럼 기분 좋은 음악으로. 선물과 위로가 될 수 있는 좋은 음악, 랩하는 아이로(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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