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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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대중친화적인 공간 아닌가. 극장에서조차 좌석에 따라 금수저-흙수저로 분류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CGV가 창조경제를 외치더니, 진짜 창조적인 것 같긴 하다.”(CGV 프라임석 영화표를 구입한 이제필(남·31)씨)

CGV의 ‘좌석차등제’가 실시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CGV는 지난 3월 3일부터 좌석에 따른 가격 다양화 제도를 도입했다. ‘비행기 좌석제’라는 닉네임까지 얻은 ‘좌석차등제’는 스크린과 가까운 앞쪽 20%, 중간 40%, 뒤쪽 40%를 각각 ‘이코노미존(Economy Zone)’ ‘스탠다드존(Standard Zone)’ ‘프라임존(Prime Zone)’으로 구분한다. 기존 관람료와 동일한 스탠다드존을 기준으로 이코노미존은 1000원 인하하고, 관객이 선호하는 프라임존 좌석은 1000원 인상한 구조다.

이를 두고 ‘소비자 선택 다양화가 아닌 꼼수 가격인상’ 아니냐는 지적이 빗발쳤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중심으로 ‘좌석차등제’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언론들 또한 이러한 현상을 집중 조명하며 문제제기에 나섰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노의 목소리들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 “좌석차등제가 뭐예요?” vs “신분 나누는 제도인가요?”

지난 3일 기자가 찾은 CGV 신촌점은 주말을 맞아 관객들로 붐볐다. 하지만 ‘좌석차등제’를 두고 CGV 측과 실랑이를 벌이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관객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언론들이 한 달 동안 쏟아낸 기사들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과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좌석차등제’ 자체를 모르고 극장에 온 사람들이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영화를 보러 왔다는 박영준(남·42) 씨는 “좌석차등제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그럼 내가 돈을 더 주고 티켓을 구매한 셈인가?”라고 오히려 되 물었다.

극장 요금은 전통적으로 버스/택시 요금과 함께 서민들의 가격 저항이 높은 요금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는 극장을 자주 찾는 관객들에게 해당하는 말이지, 박 씨처럼 석 달에 한 번 정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티켓 가격 변동을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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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상영관 모니터에 가격별로 좌석 색깔이 주황(이코노미)-초록(스탠다드)-빨강(프라임)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색깔이 다른 이유를 묻는 관객은 별로 없었다. CGV 측 역시 티켓을 구매하는 관객들에게 ‘좌석차등제’에 대한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 간혹 “왜 좌석 색깔이 다르고, 색깔마다 가격 차이가 나느냐”고 묻는 관객이 포착됐는데, 그때서야 미소지기(CGV 아르바이트)는 해당 제도를 설명할 뿐이었다.

‘좌석차등제’ 시행 한 달째에 접어들면서 이 제도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늘어난 것도 온라인과 현장의 분위기 차이를 벌리고 있었다. 물론 불만이 따랐다. 최영진(여·26)씨는 “좌석차등제에 대해 알고 있다”며 “주로 프라임존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티켓 구매에 드는 지출이 늘었다. 앞자리에서 목을 꺾어서 영화를 볼 수는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한경아(여·34)씨는 “영화를 다양하게 틀어달라고 했더니, 좌석만 다양해서 해놓은 꼴이다”며 “그렇다고 서비스가 좋아진 것도 없다. 돈은 더 주는데, 돌아오는 건 없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 제도인거 같다”고 비판했다.

가격을 올리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동우(남·28)씨는 “뭔가 묘하게 기분 나쁜 제도”라며 “앞뒤 좌석 하나를 두고 신분을 나누는 기분이 든다. 극장에서조차 등급으로 분류돼야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 ‘메뚜기족’이 나타났다

‘좌석차등제’ 시행 후 상영관 안에서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가격이 저렴한 좌석을 예매해 입장한 뒤, 가격이 높은 좌석의 빈자리로 이동해 영화를 관람하는 일명 ‘메뚜기족’들이 출몰한 것이다. ‘메뚜기족’에 대해서는 관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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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남·29)씨는 “심야 영화로 ‘배트맨 대 슈퍼맨’을 보러 갔는데, 영화 시작과 동시에 앞에 있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뒤로 이동 하더라. 제 값 주고 티켓을 산 나만 ‘호구’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메뚜기족’들로 인해 곤란에 빠진 것은 관객뿐만이 아니다. 미소지기들 역시 ‘메뚜기족’을 상대하느라 나름의 감정노동을 하고 있었다. CGV 미소지기인 A씨는 “영화 상영 중에 좌석을 살피면 다른 관람객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메뚜기족 통제가 힘들다”며 “보통 영화 시작 5분전, 영화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확인을 한다”고 말했다. “메뚜기족을 발견한다고 해서 따로 추가 요금 결제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메뚜기족’들에 대해 CGV 측은 “고객의 양심에 맡기겠다”는 대답을 내놓고 있는 상황. 이러한 대응을 문제 삼는 시각도 있다. ‘메뚜기족’ 자체가 ‘좌석차등제’로 인해 나타난 현상인데, CGV가 ‘고객 대 메뚜기족’이라는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다. 어느 쪽이 정답이든, ‘좌석차등제’가 또 하나의 논란을 양산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 CGV, “가격 인상 따른 심리적 저항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

CGV 측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성진 CGV홍보팀장은 “한 달 째 꾸준히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SNS 등을 통해 고객 분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전해 듣고 있다”며 “아쉬운 점은 ‘좌석차등제’ 시행 초기부터 가격 인상 효과도 있을 거라는 말씀을 드려왔는데, 마치 ‘다양성’을 앞세워 ‘가격 인상’ 효과를 숨긴 것처럼 비춰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어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 실질적인 가격 인상 폭이 크지 않아, ‘요금 인상’보다는 ‘다양화’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추자는 이야기가 내부적으로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아마 이번 논란을 키운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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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인상에 대한 충격파 역시 CGV가 고민한 부분이다. 조 팀장은 “일부에서는 차라리 일괄적으로 요금을 올리지 그랬냐고 하시는데, 그랬다면 불만의 목소리가 엄청났을 것”이라며 “가격 인상에 따른 심리적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민 끝에 내놓은 것이 가격 차등제”라고 밝혔다.

영화계 내부에서 티켓 가격 현실화에 대한 요구가 이어져 온 것도 ‘좌석차등제’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극장 관객 증가는 정체국면. 반면 극장 임대료와 인건비는 나날이 고공행진 중이다. 조 팀장은 “영화계 전반적으로는 우리나라 티켓 가격이 낮으니 올리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있어왔다”며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가격만 올리고, 서비스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에 대해서는 “이 제도를 통해 얻은 수익을 고객들에게 돌려드릴 다양한 방법을 고민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 ‘좌석차등제’로 CGV가 얻는 수익 효과는?

그렇다면 이번 ‘좌석차등제’로 CGV가 얻는 실질적인 이득은 얼마일까. 이에 대해 CGV 측은 “실질적인 인상 폭이 크지 않다. 기껏해야 좌석당 평균 200원 정도”라고 밝혔지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지난 3월 3일부터 9일까지 CGV 강동·구로·영등포·왕십리·용산 등 5개 극장에서 오전10시~밤10시 사이 상영되는 ‘주토피아’ ‘귀향’ 2편의 온라인 예매 현황을 공정하게 조사했다”며 “모니터링결과 CGV는 점유좌석당 약 430원 가격인상 효과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물가감시센터의 결과를 따져보면 CGV는 전국 5개 극장에서 일주일간 ‘주토피아’와 ‘귀향’ 두 영화로만 1000만 원에 가까운 이익을 본 셈. 이를 전체 상영영화와 상영관으로 확대하면, ‘좌석차등제’가 안기는 이득은 결코 적지 않다. 관계자는 “이 조사는 온라인을 통해서만 한 거다. 현장 판매까지 감안하면 추가수익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가감시센터가 ‘좌석차등제’를 두고 사실상 영화 관람료를 올리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한 이유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조슬기 기자 ke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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