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누구나 한 번 쯤 무심결에 CM 송을 흥얼거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짧은 멜로디를 통해 제품이나 브랜드를 연상시키고 친숙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징글(jingle)은 이미 오래 전부터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치 판도 다르지 않다. 제 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 경쟁 만큼이나 치열했던 것이 바로 로고송 전쟁. 잘 만든 로고송 하나가 의원석 하나를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로고송은 중요한 선거 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가장 인기 있었던 로고송은 무엇이었는지, 또 로고송 선정 과정에서 어떤 해프닝이 있었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자.

새누리당 픽미
새누리당 픽미
# “날 뽑아줘요”…최고 인기곡 ‘픽 미’

Mnet ‘프로듀스101’의 ‘픽 미(Pick Me)’는 태생부터 선거를 위한 곡이다. 국민 프로듀서에게 ‘선택’를 호소하는 연습생들의 모습은 유권자에게 ‘한 표’를 호소하는 총선 출마자들과 여러모로 닮았다. 그래서일까. ‘프로듀스101’의 주제가 ‘픽 미’를 둘러싼 각 정당 및 후보자들의 경쟁이 대단했다는 후문이다.

“날 뽑아줘요(Pick Me)”라는 제목부터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든다. 여기에 반복되는 후렴구와 쉬운 멜로디로 중독성을 더한다. 짧은 시간 내에 후보자를 각인시키기에 이만한 노래가 없다. 프로그램의 화제성에 힘입어 젊은 세대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새누리당이었다. 일찌감치 ‘픽 미’를 공식 로고송으로 채택하고 제작까지 마쳤다. “픽 미”라는 가사를 일부 차용한 것은 물론 “심쿵 심쿵” 등 최신 유행어를 가사에 삽입해 ‘젊은 층’을 공략했다.

크라잉넛
크라잉넛


# 크라잉넛이 뿔났다

잡음도 있었다. 새누리당이 홍보자료를 통해 “크라잉넛의 ‘오 필승 코리아’를 총선 로고송으로 채택했다”고 발표하자, 원곡자 크라잉넛이 즉각 반론을 펼쳤다.

크라잉넛은 지난 15일 공식 홈페이지에 “4.13 총선용 새누리당 선거 로고송 선정 관련 보도에 관한 해명”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 “우리는 새누리당에 ‘오 필승 코리아’를 선거 로고송으로 사용토록 승인해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오 필승 코리아’는 크라잉넛이 연주·가창한 버전과 2002년 월드컵 응원가로 쓰인 버전,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크라잉넛의 노래 ‘필살 오프사이드’에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 앞부분을 편곡해 넣은 것으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는 원제 ‘필살 오프사이드’로 등록돼 있다.

크라잉넛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승인을 얻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긴 것 같다. 협회에는 ‘오 필승 코리아’의 저작권자가 이근상, 붉은악마로 돼 있는데, 새누리당 측은 이 분들의 동의를 구하려 한 모양”이라며 “크라잉넛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 목적으로는 우리 곡의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홍보국 측은 아직 별다른 입장표명을 하지 않은 상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오 필승 코리아’를 로고송으로 사용하겠다고 공표했으나, 아직 사용 신청은 들어오지 않았다. 신청은 접수 마감(~30일) 이후에도 가능하기 때문에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김형석
김형석


# 김형석, 더불어민주당의 든든한 지원군

크라잉넛과 달리, 정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인사도 있다. 바로 작곡가 김형석. 그는 평소 자신의 SNS를 통해 정치·사회적 이슈에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에 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취업률, 등록금 인상 등 현실적으로 닥친 문제들이 있다. 그 부분에 있어서 20대가 투표를 해야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고 지적하며 정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김형석의 이 같은 행보는 몇 년 전부터 이어졌다. 지난 2012년에는 문재인 의원의 시민캠프에서 활동하며 선거송 ‘사람이 웃는다’를 작곡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온라인 입당 절차를 거쳐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 가입했다.

20대 총선에도 김형석이 힘을 보탰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로고송 ‘더!더!더!’를 작곡한 것. 경쾌한 멜로디와 반복되는 가사(“더더더”)가 특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공개 직후 ‘더더더’ 콘서트를 개최해 로고송 홍보에 나섰으며 최근 뮤직비디오 촬영도 마쳤다.

강동원
강동원


# 한 번 더 ‘붐바스틱’!

배우 강동원, 숨만 쉬어도 고마운 그가 춤까지 췄다. 영화 ‘검사외전’을 통해서다. 강동원의 농염한 춤사위에 힘입어 배경곡 ‘붐바(bomba)’, 일명 ‘붐바스틱’ 역시 인기 상승 가도에 올라탔다.

사실 이 장면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온라인을 강타했던 한 선거 운동 영상을 오마주(?)한 것. 영상의 주인공은 광주 동국 국회의원 이병훈 후보의 선거인단으로, ‘차진’ 댄스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무아지경에 이른 선거인단의 춤사위와 흥을 주체하지 못한 행인의 합류, 태연하게 손을 흔드는 이병훈 당시 총선 후보의 모습은 삼합 못지않은 ‘꿀조화’로 웃음을 선사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제시 마타도르의 ‘붐바’를 20대 총선 로고송으로 채택하고 다시 한 번 ‘붐바스틱’ 열풍을 노린다. 물론 강동원 같은 선거인단은 현실에 없겠지만, 영화 속 강동원의 파격 댄스가 실제 표심 잡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애란
이애란


# ‘백세인생’ 5억 달라 전해라

지난해 최고의 유행어를 꼽자면 단연코 “~라고 전해라”고 할 수 있겠다. “못 간다고 전해라”, “재촉 말라 전해라”, “또 왔냐고 전해라” 등 ‘백세인생’의 가사를 담은 ‘짤방’이 온라인상에서 급속도로 인기를 끌면서 원곡 역시 국민가요로 탈바꿈했다.

새누리당은 이번에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당 최고 위원회에서 ‘백세인생’을 총선 로고송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제시됐고, 논의도 긍정적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 저작권자 김종완은 무려 5억 원의 사용료를 요구했다. 결국 새누리당은 부푼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정당용 로고송 사용 비용은 통상 200만 원 선에서 결정되기 마련. 김종완 작곡가는 왜 이렇게 큰 액수를 부른 걸까? 그는 다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백세인생’은 대중가요이지 않느냐. 노래가 필요하다면 누구든 쓰게 해주는 것이 내 기조다. 5억 원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독점 사용은 안 된다는 상징적인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국회의원이나 예비후보자 개인이 ‘백세인생’ 사용을 원할 경우 통상 인격권료인 150만 원 선에서 계약을 체결할 용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호 기자 wild37@
편집. 이은호 기자 wild37@,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텐아시아DB, CJ E&M, 김무성/김을동/원유철 의원 SNS,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명품가요쇼’ 방송화면, 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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