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손승연
손승연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사건 혹은 인생의 흐름이 바뀌는 지점. 물론 의도된 터닝 포인트도 있지만, 때론 예상치 못한 시점에 찾아와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터닝’할지는 각자의 몫에 달렸다.

손승연은 지금 터닝 포인트를 맞고 있다. 지난 4일 발표된 ‘미스 버건디(MS. BURGUNDY)’를 통해서다. 이것은 의도된 터닝 포인트였다. 대중이 원하는 음악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으로의 터닝이었다. 그래서 가수 손승연은 지금, 행복하다.

인간 손승연도 터닝 포인트를 맞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예상치 못한 터닝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가수로서의 삶은 인간 손승연에게도 변화를 강요했고, 이는 때로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승연은 가수의 무게를, 연예인으로서의 책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나아가 가수 손승연과 인간 손승연의 다름을 인정했다. 인간 손승연은 이제 안정을 찾았고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

10. 신곡이 나온 지 약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반응은 어떤가?
손승연 : 걱정을 많이 하고 낸 앨범이었다. 스타일을 확 바꾸고 낸 거라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떡할까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호평을 많이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

10. 대변신이다. 녹음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손승연 : 랩에 중점을 뒀다. 랩 녹음을 하는 데에만 3~4일 정도 걸렸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 때문에 계속 다시 하고 다시 하다 보니 좀 오래 걸리게 됐다. (10. 평소 녹음할 땐 어떤 편인가?) 프로듀서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하루 이틀이면 마치곤 했다.

10. 전에 박근태 프로듀서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가수에 대해 계속 집중하고 생각하다 보면 그게 노래로 떨어진다”고 하더라. 당신에게선 어떤 이미지를 발견했다고 하던가?
손승연 : 처음 잡았던 콘셉트가 이름 빼고 다 바꾸자는 거였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좋은 곡을 써주셨다. 그렇지 않아도 좀 더 세련되고 트렌디한 스타일을 하고 싶었는데, 정말 세련된 트랙을 주셨다. 전부터 랩에 관심이 있다는 걸 피디님께 어필하기도 했는데, 그 역시 신경 써주셨고. 그간 계속 발라드만 했잖아. 새롭게 할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를 생각했을 때 어떤 음악으로 터닝 포인트를 줘야 되나, 많이 고민하셨더라.

10. 맞다. 인터뷰 당시에도 가수의 인생에 중요한 순간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신은 어떤가? 이 곡이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나?
손승연 : 내가 하고 싶은 음악으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큰 발걸음이 될 거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전까지의 작품이 불만족스러웠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전 작품에서는 안정된 모습의 손승연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고, 이번 앨범은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의 시작점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박근태 프로듀서님과 더 많은 작업을 하려고 생각 중인데, 그에 있어서도 그 첫 발판이 된 거 같다. 내겐 큰 의미가 있는 곡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애착도 크다. 사실 가수가 자기 곡에 애착을 갖는 게 쉽지 않거든. (10.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여서?) 그렇기도 한데, 본인이 직접 쓴 곡이 아닌 이상 내 것처럼 아끼는 게 좀 힘든 것 같더라. 다른 분에게 곡을 받아서 부르는 거니까, 내가 그리던 그림이 완벽하게 나오진 않잖아. 그런데 이번 싱글은 나 역시 애착을 많이 가지고서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10. 그간 발라드 곡을 주로 불렀던 건 대중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나?
손승연 : 그렇다.

10. 발라드, 특히 당신의 장점으로 꼽히는 고음이나 성량 등은 ‘불후의 명곡(이하 불명)’ ‘보이스 코리아(이하 보코)’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상당한 무기가 된다. 그런데 그걸 앨범으로 가져왔을 때에는 같은 수준의 인기를 얻기 어렵다. ‘불명’ 시청자도 대중이고, 당신의 노래를 듣는 것도 대중인데, 반응이 통일되지 않은 셈이다. 대중성에 대한 고민이 컸을 거 같다.
손승연 : 맞다. 굉장히 깊이 생각했다.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노래가 뭘까, 과연 손승연이라는 사람에게서 얻고 싶은 게 무엇일까를 많이 고민했다.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은 무엇이며 하고 싶은 음악은 무엇인가도 생각했다. 그 접점을 찾는 게 어렵더라. 아무래도 경연프로그램은 많이 알려진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이니까 웅장한 편곡이나 기교가 중요한 거 같다. 고음이나 성량은 그런 면에 있어서 장점이 되는 것 같고. 그런데 그걸 신곡으로 가져오면 괴리감이 생기더라. 처음 듣는 노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10.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결론을 내렸나?
손승연 :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보기로. 물론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이긴 하다.(웃음) 사람들에 손승연에게 원하는 게 딱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잡히면 그때부터는 그것을 손승연의 색깔이라고 밀어붙일 수 있으니까. 그거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로 마음먹은 거고, 그 후 만든 첫 앨범이 이번 싱글이다.

10. 만약 대중이 원하고 당신이 잘 소화할 수도 있으나,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색깔의 음악이 있다면 그 땐 어떻게 할 건가?
손승연 : 사람들이 원하고 내가 할 수 있는데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일단은 좀 밀어볼 것 같다. 그게 대중가수로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음악을 들려드리면서, 어느 정도 손승연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그 땐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좀 더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믿음이 생긴 상태에서 들려드리면 ‘그 음악도 꽤 괜찮은데?’라고 인정해주지 않을까? 사실 많은 가수들이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고.

손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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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다시 신곡으로 돌아와서, 버건디라는 색깔이 노래의 내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궁금하다.
손승연 : 곡의 가사를 처음 받았을 때 ‘사랑한다, 안 한다’라는 내용이 무척 인상 깊었다. 단순히 ‘우리 이제 그만하자’고 끝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를 끝내고 나서도 ‘나를 계속 사랑할까’에 대해서 수많은 의심을 하잖아. 그 부분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래 가사에서 색감적인 요소들이 많이 보이기에 (사랑할까 안 할까) 고민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면 짙은 버건디 컬러가 맞지 않을까 싶었다. 트랙도 딥(deep)한 스타일이라서 잘 어울릴 것 같았고.

10. 노래 속 화자가 실제의 당신의 모습과도 닮았나?
손승연 : 좀 많이 닮았다.(웃음) 보통 여성분들은 이별 당시에는 무척 슬퍼하다가 몇 달 지나면 홀가분하게 날려버리잖아. 그런데 나는 반대다. 남자 분들이 많이 겪는 현상인데, 이별한 순간에는 괜찮다. ‘솔로가 최고야’라고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괜히 헤어졌나’ 후회하는 편이다.

10. 그런데 모든 노래가 다 내 상황과 비슷할 수는 없잖아. 필요에 의해 다른 사람이 돼야 할 때가 있을 것 같다.
손승연 : 맞다.

10. 그건 노래를 할 때뿐만 아니라 연예인으로서 마찬가지 아닌가. 연예인이기 때문에 실제의 내 모습과 다르게 보일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손승연 :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나를 차갑고 센치한 이미지로 생각하더라. 아무리 많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도, 노래하는 모습 위주로 보여주다 보니 한계가 있더라고.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허술한 점도 많고 털털한 편이다. 이번에 MBC ‘사람이 좋다’에 출연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인간 손승연의 모습을 좀 더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0. 그렇지만 스스로를 100% 오픈하는 건 힘든 일이다. 어쨌든 대중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나를 맞춰가야 하는 것 아닌가. 거부감은 없었나?
손승연 : 걱정은 했다. 많은 것들을 오픈해야 하니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들도 함께 출연해야 하니까, 화살이 가족에게 가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PD님과 제작진 분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었다. 인간 손승연을 보여주고자 하는 욕심이 많으셔서 흔쾌히 오케이를 할 수 있었다. 막상 촬영하면서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방영되고 나서도 주변 분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다. 친한 사이에도 힘든 얘기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놀라신 분들이 많았나 보다.

10. 힘든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당신의 노래에 더 귀를 기울이게 할 수도 있고, 모든 노래를 당신의 배경과 관련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손승연 :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보코’를 할 때에도 집안 얘기는 안 했다. 질문도 많이 받았고, 당시 집안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안 얘기를 하는 게)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얘기로 나를 어필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과거 노래가 아닌 외모 등의 부수적인 요소로 평가받았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보코’만큼은 노래로만 평가받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나중에 오해가 생기더라고. ‘사람이 좋다’ 사전 미팅을 할 때에도 제작진 분들이 나에 대해 ‘보이스코리아에 나와서 기회를 잡은 아이’ 혹은 ‘가수 데뷔를 한 걸로 모자라 버클리까지 다녀왔으니, 저 아이는 금수저구나’라고 생각하시더라. 그 얘기를 듣고 촬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컸다.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각인돼 있으니까.

10. 방송을 보니 다이어트에 대해서도 압박감을 꽤나 느끼는 것 같더라. ‘가수는 노래를 하는 사람인데 왜 살을 빼야 하지?’라는 생각, 없었나?
손승연 : 심했다. 가장 오디션에 실패할 때마다 생각했다. ‘가수의 본분은 노래를 잘하는 건데 그게(비주얼이) 꼭 중요한 걸까’라는 생각. 물론 나 스스로도 심각하다 느낄 정도가 돼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욕심도 생기고 스트레스 해소도 되더라. 나도 사람인지라, TV 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아쉬운 부분도 있고, ‘조금만 더 빼면 더 잘 나올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보코’ 때부터 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시잖아. 그 분들은 오직 ‘노래’ 하나의 이유만으로 나를 응원해주신 거였다. 그 땐 노래로만 인정받고 싶다고 말해놓고, 지금 와서 많은 것에 신경 쓰는 내 모습이 모순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을 다 잡으려고 한다.

10. 특히 당신은 ‘연예인’보다는 ‘뮤지션’을 지향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더 궁금했다. 그 둘 사이의 괴리감이 쉽게 극복되던가?
손승연 : 처음에는 운동 외에도 당황스러운 게 많았다. ‘보코’ 당시만 해도 우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게 제작진 분들이 도와주셨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그냥 프로그램이 유명하고 우리가 잘 하고 있으니까 사람들도 좋아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앨범을 내고 정식으로 데뷔하고 나서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때부턴 선배님들, 그리고 아이돌 그룹과도 경쟁 아닌 경쟁을 해야 하는 거고 유명세로 평가받기도 하니까. ‘장난으로 해서는 안 되는구나’를 느낌과 동시에 많이 작아졌다.

10. 지금은 어떤가?
손승연 : ‘불명’을 하면서 자신감을 많이 찾았다. 무대를 통해 찾은 것도 있지만 내가 존경하던 많은 선배 가수들과 함께 방송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용기를 주더라. 녹화를 하다보면 유체이탈을 하는 것처럼, 방송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내가 보고 있을 때가 있다. 참 신기하더라. 내가 H.O.T. 희준오빠랑 같이 얘기하고 있고, 내 옆에 홍경민 오빠가 있고 김종서 오빠가 있다니. 그 때마다 ‘손승연이 가수가 되긴 됐구나’ 싶다. 데뷔 초에는 ‘가수가 됐다’는 생각이 마치 초등학생이 고등학생을 선망하는 것 같은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제자리를 찾아서 가수로서 내가 뭔가 하고는 있구나 싶다.

손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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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불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개인적으로 고(故) 신해철 편을 무척 감명 깊게 봤다. 모두들 자기 얘기 하듯 노래를 부르더라. 혹시 그 곡 외에도 가장 깊이 교감을 한 노래를 꼽는다면?
손승연 : 제일 좋아하는 무대를 꼽으라면 대답이 달라졌을 텐데, 제일 많이 교감했던 곡을 물으니 윤복희 선생님의 ‘무브(move)’가 생각난다. 나중에 선생님께 들었던 얘기인데, 청년들을 위해서 쓰신 곡이라더라. 그래서인지 가사가 굉장히 많이 와 닿았다. 내 이야기 하듯 풀어낼 수 있었다.

10. ‘불명’ 경연 무대 말고도 당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울림을 준 노래는 무엇인가?
손승연 : 내가 열네 살 때 노래를 시작했는데, 그 때 처음 불렀던 노래가 휘트니 휴스턴 ‘아이 해브 낫씽(I have nothing)’이었다. 그래서인지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감정이 다르다. 그 때의 손승연을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10. 열네 살의 손승연을 마주하면, 그 때의 자신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은가?
손승연 : 어렸을 땐 데뷔하고 가수가 되면, 당장에 콘서트도 하고 그럴 줄 알았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있는 건데, 그 생각을 못했지. 그냥 ‘가수는 너의 직업일 뿐이야’라고 말해줄 거 같다. 누구나 다 직업이 있잖아. 가수 역시 그 직업 중의 일부인 거 같다. 가수 손승연으로서 혹은 연예인 손승연으로서 사는 게 아니라, 인간 손승연으로 살다가 출근하면 가수가 되는 거고 퇴근하면 다시 인간이 되는 거고. 그런 것 같다.

10. 가수 손승연과 인간 손승연은 많이 다른가?
손승연 : 크게 다르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근데 달라지더라고. 똑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예전에는 했는데 이젠 굳이 똑같을 필요 없겠다 싶다. 어쨌든, 직장이니까.(웃음) 그리고 무대를 할 때에는 나도 모르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의도한 건 아닌데 달라지더라고. 심하게 다르진 않지만 똑같지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엄청 달라요’라고 말은 안 할 수 있을 거 같다.

10. 적어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거네.
손승연 : 맞다.

손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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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나저나 생각보다 꽤 어리더라. 원숙한 감정의 노래를 해서인지, 나이가 더 많은 줄 알았다. 실제로도 또래보다 성숙한 편인가?
손승연 : 그래도 이렇게 말하면 웃길 수 있는데, 갓 스무 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인지 또래 친구들보다는 성숙한 편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 또래 다른 친구들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사실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졸업식도 못 가고, MT도 가보고 싶은데 못 가봤고. 그런데 놀 때는 또래들보다 더 심각하게 놀기도 한다. 하하.

10. 남들보다 성숙하게 만들어준 사건이 ‘데뷔’란 말인가?
손승연 : 그런 거 같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니까,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잖아.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대하게 되니까, 그 또한 영향을 주는 것 같다.

10. 그래서 또래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기가 좀 어려울 것 같다. 실질적인 조언이 필요할 땐 누구를 찾는가?
손승연 : 음악을 하다가 막힘이 생가면, 신승훈 코치님을 비롯해 이쪽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매니저 오빠한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10. 당신을 가장 괴롭혔던 고민이나 기억에 남는 조언이 있나?
손승연 :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 개그우먼 김신영 언니가 해준 말이다. 궁상맞게 살면서 예술 하겠다고 고집 부리면, 그건 그냥 고집일 뿐이라고. 하지만 자리를 제대로 잡고서 시작하는 예술은, 정말 예술로 보일 거라고. 어떻게 보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인데, 언니도 워낙 고생을 많이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그 조언이 진심으로 들렸다. 신승훈 코치님은 박수받기 위해서 노래하지 말라고 쪽지에 적어주신 적이 있다. “박수를 위한 무대가 아닌 너를 위한 무대를 만들어봤으면 좋겠다.” 그 말도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그 쪽지를 간직하고 있다.

10. 신승훈 코치의 말처럼 당신 스스로에게 가장 위로가 됐던 무대는 언제인가?
손승연 : 아무래도 고(故) 신해철 선배님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불렀던 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무대에서 그렇게 운 적도 없을 거다.(웃음) 울면서 노래하면 많이 소리가 망가지거든. 그리고 남경주 선생님께서 “적어도 관객들이 울 감정은 남겨놔야 한다. 네가 다 울어버리면 관객들이 울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도 있어서, 무대 위에선 울고 싶은 걸 꾹꾹 참아가면서 노래할 때가 많다. 사실 신해철 선배님 무대도, 리허설 할 때는 진짜 멀쩡했거든? ‘너무 멀쩡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합창단 어린이들이 무대 위에서 긴장을 많이 하기에, 거기에 신경 쓰느라 무대에서 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본 무대 2절 끝날 때 눈물샘이 터져버린 거다. 그냥 울먹인 정도가 아니라 펑펑 울었다. 나중에 다시 모니터링을 하는데, 눈물이 다섯줄기로 흐르더라고.(웃음)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한 번에 다 터진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고 나서도 한동안 먹먹하더라. 심지어는 그날 방송 끝나고 단체 회식을 했는데, 회식을 마치고 나서도 먹먹함이 안 가셨다. 집에 와서 또 대판 울고.(웃음) 그 무대뿐만 아니라 그날 하루가 통째로 기억에 남는다.

손승연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무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손승연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무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10. 그 때 사람들이 당신의 눈물에 감동했던 건, 당신의 진심을 함께 느꼈기 때문일 거다.
손승연 : 넥스트의 현수 오빠는 처음에 “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더라. 연기하는 줄 알았대. 무대를 끝까지 보다 보니까 진심을 느꼈다고, 회식 때 말씀해주셨다. 단지 그 무대가 신해철 선배님의 헌정 무대였기 때문에 눈물이 났던 게 아니라, 뭔가 많이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10. 맞다. 그날 노래를 부른 모든 가수들이 다 그랬다. 그 노래에서 발견한 이야기는 뭔가?
손승연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가 선배님이 스물세 살 때 쓰셨던 노래라더라. 지금 내 또래인 거다. 생각을 해봤다. 내 또래의 신해철이라는 가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건 다르고 또 선배님은 워낙 철학적인 분이기도 하지만, 가수로서 생각하는 바는 비슷할 거 같았다. 그러고서 가사를 봤더니, 더 와 닿더라. 첫 소절이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인데, 내 상황과 비슷하더라고. 노래도 연기의 일부라 서글프거나 절절한 노래를 부르면서는 간혹 연기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 노래만큼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 내가 불렀던 것 같다.

10. 당신 역시 노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손승연 : 물론 사랑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많이 부르곤 하지만, 신해철 선배님 노래를 들으면서 나도 그런 가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각자 하는 일이나 직업은 다르지만, 느끼는 힘듦과 생각은 누구나 비슷하거든. 그런 것에서 공감을 얻고 싶을 때가 많다.

10. 결국 힘을 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단 거네.
손승연 : 그렇다. 그리고 요즘에는 지금 내 또래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

10. 그러려면 당신 역시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 깨달음은 어떤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일까?
손승연 : 음악하면서의 경험이 제일 클 것 같다. 이른 나이에,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들을 했잖아. 그래서 조금이나마 더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내 또래의 친구들만 봐도, 너무 많은 친구들이 좌절을 경험하고 있더라. 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하고 싶은 일을 빨리 찾은 사람으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10. 듣는 사람 말고, 훗날 후배 가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까? 당신과 마찬가지의 고민, 그러니까 대중이 원하는 음악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 사이에서 고민하는 후배가 있다면 무슨 말을 해주겠나?
손승연 :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고 할 것 같다. 그게 어떻게 보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게 가수로서 궁극적으로 가지는 목표이기도 하고. 그리고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는, 당장에 뭐라도 할 거란 말이지.

10. 하고 싶은 걸 하되, 지금 당장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손승연 : 사람은 결국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돼 있거든. 그 과정에 있어서,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고.

10. 멋진 조언이다. 혹 가수로서 하고 싶은 음악 말고, 인간 손승연으로서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손승연 : 돈도 많이 벌고 싶고 효도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건 진짜 많다. 그런데 궁극적인 걸 생각했을 때에는, 행복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큰 걸 바라지 않게 되더라.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작은 거에서부터 행복을 찾게 되더라고. 그러다보니 가족들과 볼링을 치러 간다거나 함께 저녁을 먹는 게 하루의 낙이 될 때도 있다. 덕분에 조금은 욕심이 줄어든 것 같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손승연과 인간 손승연의 차이가 그거 같다. 욕심. 인간 손승연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길 바라는 아이인 거 같고,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웃음)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다.

10. 지금은 원하는 대로 잘 되어 가고 있나?
손승연 :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준비 시간이 필요하잖아. 예를 들어 음악을 만들기 위해 합주를 한다면, 악보도 준비해야 하고 보면대도 준비해야 하고 마이크 세팅도 해야 하는 것처럼. 나는 이제 세팅을 마친, 이제 막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 같다. 조금은 안정적인 상태를 맞이한 것 같다.

10. 인간 손승연으로서도?
손승연 : 그렇다.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이젠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포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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