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강동원
강동원
‘검사외전’ 꽃미남 죄수 한치원(강동원) 이전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 2006)의 사형수 정윤수(강동원)가 있었다. 죄수번호 3987이라 불린 사나이.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커서는 사랑하는 애인의 수술비를 마련하려다 돌이킬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른 비운의 남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이 남자, 세상의 비극을 모두 짊어진 듯 애달프다.

경상도 출신인 강동원은 한치원과 정윤수 모두에게 자신의 친근한 사투리를 이식했다. 다만 한치원에게 경상도 벙언이 펜실베니아 악센트를 구사하는데 커다란 장애로 작용하며 웃음은 안긴다면, 정윤수에게 사투리는 세상에 가시 돋친 그의 내면을 한층 풍부하게 전달하는 매개로 반응한다. 사투리 외에도 강동원의 몸을 빌린 두 죄수는 죄수복의 핏도, 분위기도, 성격도 극과 극을 달린다. “붐!바!스!틱! 붐붐붐!”마저도 요령껏 요리해 내는 치원과 달리, 윤수는 죽은 동생이 좋아했던 ‘애국가’만을 가슴에 품고 사는 정적인 남자다.

‘검사외전’은 치밀한 서사가 주는 긴장감보다, 캐릭터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화학작용에 무게 중심을 둔 오.락.영.화.다. 현실과 동떨어진 아늑하고 자유분방한데 흡연까지 가능한 교도소 내부(이런 교도소라면 대한민국은 범죄자로 들끓을 게다)와 죄수복이라기보다는 마린룩(S/S신상설이 나돌았던)에 가까운 의상들은 코믹물이라는 장르 안에서 면죄부를 입었다. 특히 강동원의 죄수복은 그 자체가 판타지라 할 만한데, 그는 죄수복을 명품 생X랑-디X옴므로 둔갑시키는 신공을 발휘한다.

검사외전 vs 우행시
검사외전 vs 우행시

이와는 완전 다른 결을 지니고 있는 게 바로 ‘우행시’다. 소설가 공지영의 동명소설을 영화화 한 ‘우행시’는 사형제도에 대한 논쟁을 이끌어내기도 한 작품. 묵직한 메시지의 작품인 만큼 영화는 내내 진중하고, 영화 속 소품과 의상들 역시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애쓴 느낌이다. ‘우행시’의 감옥은 음습하고 침침하고 우울한 기운을 잔뜩 분출한다. 특히 볕이 들지 않는 좁디좁은 독방에 감금된 윤수의 전신을 카메라가 부감샷으로 잡을 때, 서럽게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윤수의 모습에서 꽃미남 강동원은 찾아볼 수 없다. 그곳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 여린 내면의 상처를 짊어진 한 남자가 있을 뿐이다. 이는 윤수가 되기 위해 수갑을 차고 생활하거나 교도소를 방문해 사형수를 직접 만난 강동원의 노력이 뒤에 있었다.

실제로 ‘검사외전’을 찍으며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는 강동원은 ‘우행시’를 찍을 당시엔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잠시 ‘우행시’의 결말을 살펴보자. 사형수에게 마지막 날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3987번 면회 왔다!” 이 면회가 진짜 사람이 찾아 온 면회인지, 죽음이 그를 부르는 면회인지, 윤수는 직감으로 알아챈다. 형장으로 향하는 복도. 그 길을 걸으며 윤수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두려움이 찾아들자 다리가 풀린 윤수는 급기야 신고 있던 신발을 놓치는데, 카메라가 비추자 드러난 신발의 존재는 나이키 운동화. 윤수로 하여금 생애 처음 간절히 살고 싶어지게 한 그 여자, 유정(이나영)이 준 선물이다.

검사외전 vs 우행시 2
검사외전 vs 우행시 2

‘검사외전’에서 한치원이 변재욱(황정민)의 아바타로 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뛰어다닌다면, ‘우행시’에서 윤수의 억울함(극중 윤수는 지인이 살인협의까지 자신이 떠안았다)을 풀어주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것은 유정이다. 하지만 유정의 노력은 윤수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사형대 위에서 사라질 운명을. 사형 집행 직전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고마웠습니다. 사랑합니다. 누나”라고 윤수가 외칠 때 스크린을 향하던 전국 수많은 누나들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 넘쳤다.

‘검사외전’은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매력이 작품의 단점마저도 덮어버리는 영화다. 그러니까 ‘검사외전’을 통해 강동원이 증명한 것은 아마 스타파워일 것이다. 강동원은 영화시장에서 스타파워가 지니고 있는 힘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반면 ‘우행시’를 통해 강동원이 증명했단 것은 대중이 외면했던 그의 숨겨진 면모다. ‘외모에 가려 연기력이 저평가 되는 게 아닌가’라는 강동원을 따라붙는 지리멸렬한 이 의문은 ‘우행시’ 앞에서 무력해 진다. 스타성과 그 안에 내재돼 있는 여러 가능성들. 강동원이라는 배우을 지금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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