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브로커들이 수백대의 휴대폰을 동원해 스트리밍을 하고 있다.
브로커들이 수백대의 휴대폰을 동원해 스트리밍을 하고 있다.
음원사재기, 과연 해결책은 있는 걸까?

가요계 음원사재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왔을 뿐이다. 오죽하면 사재기를 두고 ‘공공연한 비밀’이라고들 말할까.

그러나 지난 9월, 종합편성채널 JTBC ‘뉴스룸’의 대대적인 보도 이후 음원 사재기 문제는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강도는 셌다. ‘뉴스룸’은 한 그룹의 팬으로 등록된 아이디를 전수 조사했고, 그 결과 상당수의 아이디가 의심쩍은 패턴을 보였다. 바로 특정 그룹과 팬 관계를 맺으며 해당 그룹의 음악에만 ‘좋아요’를 누른 것. 일반 이용자들이 여러 아티스트와 팬을 맺고 다양한 음악에 ‘좋아요’ 표시를 한 것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더욱이 이러한 아이디 대부분은 동일 패턴 아이디(abc1, abc2, abc3과 같이 앞쪽 영어 조합은 같고 뒤의 숫자 조합만 다르게 한 아이디)로 나타났다. 사재기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나아가 ‘뉴스룸’ 측은 이것이 팬클럽의 ‘총공’이 아닌, 전문가들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업계 종사자들의 증언도 잇따랐다. 특히 박진영은 ‘뉴스룸’에 출연, 음원 사재기 브로커 고발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지난해 JYP 직원이 브로커를 만나 음원 사재기 제안 내용을 녹취한 바 있다”면서 “이후 해당 녹취 파일을 근거로 JYP, SM, YG, 스타제국 등 4개 사가 검찰에 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고 전했다. 브로커 이상의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설명. 실질적으로 차트 판을 조작하는 ‘꾼들’을 잡진 못했다는 게다.

반응은 뜨거웠다. 방송 이후 (사)한국음악콘텐츠협회(이하 음콘협)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재기 근절 대책을 내놓았고, (사)한국레이블산업협회(Record Label Industry Association of Korea)는 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끝장 토론을 열었다. 합의점을 찾은 사안도 있고, 합의점을 향해 가는 사안도 있으며, 일부는 합의점이 도출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도 한다.

음원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차트. 추천곡이 차트 최상단에 위치해 있다.
음원사이트 멜론의 실시간 차트. 추천곡이 차트 최상단에 위치해 있다.
◆ 추천서비스 폐지

추천서비스는 끼워팔기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13년 업계 관계자들은 차트 전곡 재생 시 추천곡이 함께 플레이된다는 점을 지적, 추천서비스가 차트 왜곡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각종 온라인 음원사이트들은 추천곡 자동 재생 서비스를 폐지하고 추천곡의 수를 1곡에서 4~6곡으로 늘려 공정성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했다. 추천서비스가 남아있는 한, 부작용이 말끔히 해소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민용 교수 : “대부분의 음원사이트에서 추천곡을 차트 최상단에 올려둔다. 이로 인해 추천곡은 위치 편의를 얻게 되고, 이는 편승 효과를 유발해 결과적으로는 추천곡이 특혜를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선정 기준 또한 알 수 없다.” (15.10.13. 음원사재기 끝장토론)

지니, 엠넷, 벅스뮤직 : “끼워 팔기 형 추천서비스를 폐지한다. 공정 차트 만들기에 주력하겠다.” (15.11. 공식 보도자료)

멜론 : “업계의 걱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당사는 폐지가 아닌 방향으로 개선책을 찾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소비자의 음악 취향을 파악, 개인화된 큐레이션으로 추천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시스템 개발 중에 있고, 내년 중에 선보일 수 있을 전망이다.” (15.12.21. 텐아시아와의 통화)

◆ 사재기 방지를 위한 정책적/기술적 가이드

복수의 음원사이트들은 “사재기가 의심되는 동일 패턴 아이디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필터링 작업이 이뤄진다. 해당 아이디의 재생 내역은 순위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순위 반영이 안 된다면 사재기 문제가 불거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는 상황. 더욱이 사 측의 방어와 브로커의 공격은 끝이 정해지지 않은 싸움인 터라, 업계 전반에 걸친 공동대응이 절실하다.

김민용 경희대 교수 : “현재 사재기와 관련해 유통사들이 나름의 방어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인 걸로 안다. 그러나 한 업체가 막기는 역부족이다. 국가적인 R&D, 소프트웨어 구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각 유통사들끼리의 공동대응, 이를 테면 블랙리스트 아이디 공유라든지 각 사의 노하우를 모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재기를 시스템적으로 막을 수 있는 하나의 축이 필요하다.” (15.10.13. 사재기 끝장토론)

음콘협 : “음콘협이 유통사와 문체부를 연결해 공동의 논의를 진행한다. 현재 각 유통사 별로 사재기에 대응하고 있으나 정책적인 부분, 기술적인 방법론이 조금씩 상이하다. 그 부분을 맞춘다는 거다. 더불어 연구 진척 사항을 공유하고, 사재기 징후가 감지됐을 때도 유통사들끼리 내용을 공유해서 대응 방안을 이끌어 나갈 예정이다. 위원회 형식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15.12.21. 텐아시아와의 전화통화)

◆ 사재기 처벌 법안

현재 국내에는 음원 사재기에 대한 처벌 기준이 없다. 물론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은 있었다.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제출한 것. 해당 법안은 음원 사재기를 금지하고, 위반 시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과 과태료 부과처분을 내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음콘협 : “지금까지는 무엇이 사재기인지도 규정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트래픽이 과다하게 발생하는 사례를 패턴화해서 사재기를 규명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고, 사재기로 판정됐을 때에는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법안의 목적이다. 현재는 기획사들이 차트에서 얻는 사업적인 이익이 무척 크다.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면 뭐든지 할 유인이 있다. 브로커들이 노리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사재기가 불법이 아님을 강조하는 거다. 이 법안은 그런 꼼수를 미리 봉쇄하자는 거다. 실효성을 떠나서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장하고자 한다.” (15.12.21 텐아시아와의 통화)

그러나 2016년 6월, 19대 국회의 임기가 종료되면 현재 계류 중인 이 법안은 자동적으로 폐기 처분된다. 현재의 진척상황은 어떨까.

음콘협 : “현재 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이미 충분히 문제 상황을 인지, 공감하고 있고 여론 또한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법제사범위원회가 여야 대치로 열리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번 회기 안에 법안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5.12.21 텐아시아와의 통화)

엠넷 모바일 앱 화면.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메인 페이지에서 실시간 차트를 지울 수 있다.
엠넷 모바일 앱 화면.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메인 페이지에서 실시간 차트를 지울 수 있다.
◆ 실시간 차트 폐지

사재기의 사전 예방 방법으로 실시간 차트 폐지가 논의되기도 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음악을 취사선택해 듣는 대신, 실시간 차트에 오른 음악을 전체 재생해 듣는 실정. 제작자들은 자연히 차트 순위에 목을 매게 되고, 나아가 사재기를 벌일 유인이 생긴다. 토론 당시 신대철 이사장은 “실시간 차트를 폐지하고 세일즈(다운로드) 기준으로 차트를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바 있다.

멜론 : “실시간차트는 정보를 제공해주고 시장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순기능적인 역할을 잘 활용하는 게 옳지 않겠냐.” (15.10.13. 음원사재기 끝장토론)

엠넷 : “개선 방향을 논의 중이다. 물론 폐지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실시간 차트가 소비자들에게 상당히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바, 폐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차트를 뒷 페이지에 배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각도로 개선 방향을 고민 중이다.” (15.12.21. 텐아시아와의 통화)

음콘협 : “실시간 차트가 주는 순기능이 분명히 있고, 후에 경쟁과다로 인해 생기는 단점도 있다. 그런데 ‘단점이 있으니 차트를 폐지시키자’는 건 이분법적인 흑백 논리로 보인다. 단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0시 음원 오픈 금지’ 등이 그것이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브로커들의 접근법이 문제인 건데, 이건 정책적으로 해결해야지 폐지를 논하기엔 과하다.” (15.12.21 텐아시아와의 통화)

◆ 음원 가격 인상

결국 해답은 음원 가격 인상에 있다. 사재기를 원천 봉쇄하려면 그 비용을 높이면 된다는 것. 실제로 국내 음원 가격은 무료에 가까울 정도로 낮게 책정돼 있다.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 대부분이 이 같은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이탈, 불 보듯 빤한 일이다. 결국 음원 사재기 문제 또한 누구도 넘지 못했던 벽에 직면했다. 음원 가격이라는 거대한 벽.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 “책의 사재기가 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건 결국 비용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음원가격은 사실 상 공짜나 다름없다. 한 달에 몇 천원이면 음원을 무제한으로 스트리밍할 수 있다. 브로커나 기획사의 입장에서는 투자되는 비용이 낮고 얻을 수 있는 가치는 크다. 음원 가격의 현실화가 음악계의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15.09.23. JTBC 인터뷰)

엠넷 : “음원 가격이 싸다는 것에는 업계 종사자 모두가 공감한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공감을 못한다는 거다. 가격을 올리면 분명 소비자들의 반발이 있을 거다. 무엇보다 음원 시장은 블랙마켓(불법 다운로드 시장)이라는 대체재가 존재한다. 때문에 가격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서 모두가 공감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다.” (15.12.21. 텐아시아와의 통화)

멜론 : “당 사는 징수 규정에 맞게 음원 가격을 책정하고 있고, 가격 문제에 있어서는 업계 공동의 논의와 고민이 더욱 필요하다. 유료 음원 시장의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권리자와 소비자 사이에 온도 차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다고 생각한다.” (15.12.21 텐아시아와의 통화)

익명(관계자) : “실제로 내년 2월부터 음원 가격이 인상될 전망이다. 문체부가 발표한 ‘음원 전송사용료 개선방안’ 때문인데,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음악 시장에도 파레토 법칙이 적용된다. 상위 20%의 히트 작곡가/히트 가수가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인 셈이다. 음원배분율을 높여봐야 기존에 수익을 올리던 사람들이 가져가는 거지, 인디뮤지션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차트 중심으로 음악이 소비되고, 그마저도 가격이 너무 싸다는 게 문제다. 그런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고민보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에 집중하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음원 수익 분배를 60%에서 70%로 올렸다는 것과 같은. 그보다는 시장 파이를 키우고 음악 다양성이 통용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진짜 어려운 숙제는 도외시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 위주로 하는 것 아닌가 싶다.” (15.12.21 텐아시아와의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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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JTBC ‘뉴스룸’ 방송화면, 멜론 홈페이지 화면, 엠넷 모바일 앱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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