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정화 기자]
‘60초면 충분한 스토리 내 맘으로 넌 들어왔어’ 누군가가 눈 안에 ‘콕’ 들어오거나 가슴에 ‘콱’ 박히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진다. 하루에도 수많은 연예인이 브라운관과 스크린 속에서 웃고 울고 노래하며 우리와 만나지만, 그 중에서도 제대로 ‘필(feel)’ 꽂히는 이들은 손에 꼽힐 정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어느 순간 그야말로 내게로 와 꽃이 된, 꽂힌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 편은 능력자들이다. tvN ‘응답하라 1988’의 바둑 능력자, 천재바둑기사 최택 역을 연기 중인 박보검, KBS2 ‘오 마이 비너스’에서 황금수저 물고 태어난 것도 모자라 한 달 만에 한 여성의 몸무게를 15kg이나 감량하게 한 스타 트레이너 존 킴 역을 맡은 소지섭, SBS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절대기억력을 지닌 서진우를 연기하는 유승호다. (*나열은 이름 가나다순) 능력도 출중한데, 잘생기기까지 했다.

# 박보검, ‘최택’ 그 이름 길이길이 기억되리

tvN ‘응답하라 1988’에서 최택을 연기 중인 박보검
tvN ‘응답하라 1988’에서 최택을 연기 중인 박보검
박보검의 양가적 매력은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이전, KBS2 ‘너를 기억해’에서 이미 빛을 발했다. 그가 연기한 정선호가 감정을 지운 무표정한 얼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드리울 때면 주변 공기마저 서늘해졌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워하던 형과 마주해 아이처럼 눈물을 쏟아내면서는 ‘순수’ 그 자체만을 남겼다. 선과 악, 양극을 오갔지만 결국 그것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던 남자, 박보검. 강아지처럼 선한 눈망울을 지녔음에도, 감성의 완급조절을 통해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 만약, ‘너를 기억해’가 ‘응팔’ 만큼 인기가 있었다면, 그는 진작에 스타로 떠올랐을 것이다. ‘응팔’에서 박보검이 맡은 천재바둑기사 최택 역시 ‘너를 기억해’에서와 같이 상반된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예민함과 날카로움을 지닌 반면, 한없이 천진하다. 이런 역을 연기할 때 배우에게 요구되는 것은, 두 성향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넓혀 더 극단적으로 보이게 할 것인가, 그러면서도 그것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떻게 자연스럽게 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할 것인가, 이다. 박보검은 가면의 앞 뒷면을 바꿔 쓰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말투, 행동, 눈빛, 모두 다 다른 사람 같았지만 결국엔 최택 한 사람으로 귀결되게끔. 그러니 잘생긴 얼굴뿐이었다면 그가 연기하는 최택에게 이리 열광하진 않았을 게다, 분명.

# 소지섭, 멜로 왕자의 눈빛은 사랑입니다

KBS2 ‘오 마이 비너스’에서 존 킴 역을 맡은 소지섭
KBS2 ‘오 마이 비너스’에서 존 킴 역을 맡은 소지섭
KBS2 ‘오 마이 비너스’를 보며 소지섭의 매력이 뭘까, 라고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보이는 그대로, 소지섭 그 자체로, 모든 게 설명되었다. 소지섭이 연기하는 캐릭터, 존 킴이 강주은(신민아)에게 “황금 수저 물고 태어난, 있는 집 자식”이라고 말해도, “설마 내가 베고 덮는 걸 내줬을까”라고 해도, 잘난 척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얄미워 보이지 않았던 건, 소지섭이란 배우 자신이 풍기는 신뢰감에 기인했다. 드넓은 어깨에 다부진 몸매가 빚어내 전달하는 든든함과 저음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완성되는, 어떤 탄탄한 믿음. 여기에 깊은 감성이 깃든 그의 눈빛이 더해지면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하나의 완벽한 장면을 완성해내게 된다. ‘너한테 반했어’라거나 ‘네가 좋아’라는 말로 누군가에게 빠져든 순간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누워 눈으로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고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만으로도 멜로가 완성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게, 소지섭이다.

# 유승호, 변호사가 된 승호 ‘넘나 멋진 것’


SBS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서진우 역을 연기 중인 유승호
SBS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서진우 역을 연기 중인 유승호
SBS ‘리멤버-아들의 전쟁’ 1화 도입 부분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아빠(전광렬)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기 위해 변호사가 된 서진우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 앞에 앉아 변호인이라고 소개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 장면 말이다. 서진우를 연기한 유승호가 그리 연기를 잘하는 줄, 미처 몰랐다. 그의 눈엔 내내 슬픔이 깃들어 있었고, 그 와중에 한없이 공허하기도 했다. 이후, 처절할 땐 너무나 처절하게 상황에 몰입해 극의 집중도를 높였고, 인물의 감정을 표백시켜야 할 땐 철저하게 거둬내 깔끔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일례로, 명탐정 셜록에 빙의한 듯 자신의 기억을 확인해 소매치기범을 밝혀나갈 땐 추리 소설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클라이막스 장면을 읽는 기분마저 느끼게 했다. 통쾌했다. 그는 한 드라마 안에서 여러 장르를 경험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쯤 되면 다양한 상황과 정서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만능 배우라 불러줘야 하는 건 아닌지. 군대도 다녀왔으니 이젠 그의 연기를 지켜볼 날만 남았다.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이정화 기자 lee@
사진. 드라마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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