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수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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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는 일찍이 많은 소년-소녀들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이었다. 음악무대 위에 머무르던 아이돌은 그러나 ‘건축학개론’을 통해 어떤 ‘아이콘’이 됐다. 그녀는 원하든 원치 않든 전 국민의 첫사랑으로 불렸다. 그것은 축복인 동시에 족쇄이기도 했다. 대중은 실제의 수지와 그들이 바라보고자 하는 수지를 혼동했다. ‘건축학개론’에서 긴 생머리 나풀거리며 새침하게 웃던 첫사랑이, ‘도리화가’가 그리는 조선말기로 날아가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을 연기한다는 것은 그래서 일종의 모험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과적으로 영화에 대한 만듦새는 다소 아쉽고, 평가 역시 호의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혹평이 수지가 선택한 모험에 대한 실패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의 욕망이 만들어 놓은 상상계에서 용감하게 뛰쳐나온 수지는 분명 한 뼘 성장해 있다. 그것이 국민첫사랑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할지라도, 그러하다. 어쩌면 배우 배수지의 시작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다.

Q. 캐스팅의 역발상이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란 생각이 들어요. 수지는 지금 춤과 노래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아이돌 중 한명이잖아요? 그런 수지가 노래를 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진채선을 연기하다니.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수지: 와, 너무 서러웠을 것 같아요. 노래를 너무나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상황. 노래에 대한 열정과 열망. 그런 부분들이 감정이입에 도움이 됐어요. 채선이 소리가 하고 싶어 애쓰는 과정이, 제가 가수가 되기 위해 연습생 시절을 거친 과정과 닮았거든요. 실제로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어요. 서러운 감정들이 특히나 많이 떠올랐죠.

Q. 뭐가 그리 서러웠어요?
수지: 서러움, 너무 많았죠. 막연히 노래가 좋고 춤이 너무 좋아서 가수를 꿈꿨는데, 부모님 반대가 굉장히 심했어요. 속상하고 힘들어서 연습실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도 했어요. 그때의 서러웠던 감정들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Q. 진채선을 보면 꿈에 대해 독한 면이 있는데, 수지도 그랬나 봐요.
수지: 주변에서 무섭다고 할 정도로 제게 독기가 좀 있어요. 지금도 독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런 말이 기분 좋아요.(웃음)

Q. 그때의 열정과 지금의 열정은 조금 다른 온도이지 않을까 싶어요.
수지: 그때는 막연하게 내가 남들보다 일찍 연습실에 나가고, 가장 늦게 나와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었어요. 괜히 누가 먼저 연습실에 와 있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고 그랬죠. 지금은 뭐랄까. 열정의 크기는 같은데 노하우가 조금 생긴 것 같아요.
수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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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테크닉적인 노하우요?
수지: 네. 이전보다는 덜 힘들이면서 활동하는 방법을 터득한 기분이에요.(웃음)

Q. ‘건축학개론’ 차기작으로 ‘도리화가’를 선택한 건 일견 놀라워요. 진채선이라는 캐릭터가 도전이라는 생각, 해봤어요?
수지: 그럼요. 완전 도전이라고 생각했어요. 판소리도 해야 하고…여러 가지로 제겐 도전이었죠.

Q. 도전이고, 위험요소도 있는데 선택을 했네요. ‘도리화가’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목표했던 게 있나요? 이 작품을 통해 얻고 싶었던 거나, 어떻게 비춰지길 원했거나.
수지: 목적 같은 건 없었어요. 그냥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나 하고 싶었어요. 눈물이 쏙 나올 정도로 너무나 인상 깊었죠. 놓치기 싫었어요. 음…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Q. 전략적인 선택은 아니었다는 얘기네요.
수지: 그렇죠. 제가 뭔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따로 있었다면 이런 모험은 하지 않았을 수 있어요. 사실 (류)승룡 선배님도 그랬거든요. “이걸 하다니! 넌, 참 똑똑한 아이구나!” 선배님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셔서 놀랐어요. 저에게는 이 작품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어떤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게 없었거든요.

Q. 의외의 말이네요.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이 작품에 도전한 게 일견 배우로서의 전략으로 읽히기도 했거든요.
수지: 네. 어떤 의미로 말씀들을 하시는지 잘 알아요. 영화를 통해 배운 것도 많고, 성장을 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제겐 후회 없는 작품이에요.

Q. 새 앨범을 내고 무대에 서는 것과 영화를 처음 공개하는 건, 느낌이 많이 달라요?
수지: 비슷한 것 같은데…아, 그런 건 있어요. 지금까지 했던 가수 활동에는 컨셉적인 게 많았어요. 제가 드러나는 게 크게는 없었죠. 영화의 경우 캐릭터를 연기하기는 하지만 저의 모습이 어느 정도 투영돼요. 또 무대 위에서는 진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으로 저를 감추는 기분이라면, 영화는 맨얼굴로 서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수지(3)
수지(3)
Q. 채선은 시대의 금기에 맞서는 여자죠. 조금 다른 의미로 수지에게도 넘어서고 싶은 어떤 금기가 있을까요?
수지: 크게 없는 것 같은데요?

Q. 오, 행복한 사람이네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넘어서고 싶은 것들이 있잖아요? 특히 아이돌에게는 하지 말라고 규정되어진 것들이 꽤 있고요.
수지: 어쩌면 너무 많아서 그런 지도 몰라요.

Q. 아, 많아서 그렇다….
수지: 직업상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 혹은 해도 되지만 하면 피곤해지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깨 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피곤해지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도 많아요. 가령 밖에 안 나가면 사진 찍힐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 괜히 길거리에 떡볶이 먹으러 갔다가 사진이 찍혀서 올라오면 곤란해지니까…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냥 다 안고 사는 거죠.

Q. 답답함을 푸는 나름의 방법이 있겠죠?
수지: 운전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이전에는 팔당댐을 자주 갔어요. 가기 쉽거든요. 차도 안 막히고.(웃음) 요즘은 그냥 동네 한 바퀴를 도는 편이에요.

Q. 류승룡, 송새벽, ‘응답하라 1988’로 최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동휘-안재홍 등 남자 배우들과 긴 시간 호흡했어요. 예쁨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수지: 현장에서의 저는 거의 남동생이었어요.(웃음) 제가 애교가 있는 편이 아니에요. 선배님들도 털털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애교와 밝은 건 다르잖아요? 촬영장에서 밝게 행동하고, 마침 남장을 하는 부분도 많아서 다들 남동생처럼 잘 챙겨주셨어요.

Q. 배우로서의 재능을 처음 알아봐준 사람은 누군가요?
수지: 제가 알기로는 박진영 PD님인 걸로 알요. PD님이 수지는 연기를 시켜야 한다고 우기셨다고 들었어요.(웃음)
수지(4)
수지(4)
Q. 타의에 의해 시작한 셈이니, 처음엔 배우에 대한 열망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은 좀 바뀌지 않았을까 싶고요.
수지: 네. 많이 달라졌어요. 작품을 하면서 느꼈던 아쉬움들이 저에게 굉장히 크게 왔던 것 같아요. 오기가 생기고, 욕심도 생겼죠. 연기에 대한 재미도 알게 됐고요.

Q. 많은 여자들이 수지를 부러워해요. 그런 수지는 어떤 여자를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어요?
수지: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분들이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 그게 여유로움 일수도 있고, 당당함 일수도 있어요. 또 여유롭고 당당하기 때문에 각박함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런 생각을 스무 살 때부터 했어요. 스무 살, 인터뷰 때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당시, 제 삶의 여유가 없어서 막연하게 ‘속도’라고 표현했던 것 같아요. 주변의 그런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던 것 같고요. 지금도 그 생각엔 변화가 없어요.

Q. 그렇다면 지난 2년간의 스스로의 속도는 어땠던 것 같아요? 만족해요?
수지: 조금 빨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그게 맞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은 그렇게 빠르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 그때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살고 싶어요.

Q. 여유로움을 찾는 수지만의 방법이 있어요?
수지: 가사 쓰는 걸 좋아해요. 음악을 들을 때도 가사에 집중해요.

Q. 어떤 가사에 끌려요?
수지: 위로해 주는 듯한 가사. 무조건 ‘괜찮아, 수고했어’ 하는 가사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가사에 끌려요. 그러니까, 자기를 드러내는 생활가사들. 그런 가사를 들으면 ‘너도 이렇게 느꼈구나’ 공감이 가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노래들은 인디음악에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인디 음악을 자주 듣죠.
수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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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가사가 좋았던 음악, 기억나는 거 있어요?
수지: 있어요! (핸드폰을 뒤지더니) 아프로디노(Afrodino)가 부른 ‘휴’요. “제발 어디라도 기대 쉴 곳 하나 있으면 좋겠네~” 이 부분이 특히 좋아요.

Q. 지금은 어디에 기대 쉬고 있어요?(웃음)
수지: 음…벽에 기대 쉬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Q. 수지가 가는 곳마다 관련 기사가 쏟아져요. 이젠, 익숙해 졌나요?
수지: 아니요. 익숙하지 않아요. 그래서 굳이 나가지 않는 것 같아요. SNS에도 친구들과 찍은 사진은 안 올려요. 괜히 비연예인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잖아요. 근황을 알리는 정도죠.

Q. 과거 출연한 작품들, 챙겨 봐요? 배우들은 보통 과거의 자기 모습이 부끄럽다고 잘 보지 않던데.
수지: 아니요. 저는 챙겨 봐요. 이상하게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아쉬운 부분들이 많지만, 그런 것들은 고쳐나가면 되는 거니까. 최근에도 드라마 ‘구가의 서’와 ‘빅’을 다시 봤어요.

Q. 과거의 작품을 보면 점점 성숙해져 가는 본인의 얼굴이 느껴져요?
수지: 하하하. 그보다는, 더 성장하고 더 발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그러고 싶어요.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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