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주원(1)
주원(1)
주원(29)에게 ‘서른’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는 유독 각별해 보였다.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서른’이었고, ‘서른’을 앞둔 배우 혹은 남자로서의 다짐들이 이어졌다. 주원의 시간을 마치 서른을 향해 하루하루 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 ‘그놈이다’는 그런 그가 서른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선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를 테다. 20대의 마지막을 아낌없이 불태우고 있는 주원을 보며 생각했다. 뜨겁게 불태워라. 서른 즈음에, 새로운 것들이 다시 차오를 테니.

Q 말투에 애교가 넘친다. 듬직한 느낌의 작품 속 말투와는 사뭇 다르다.
주원: 하하. 자주 듣는 말이다. 영화 관계자들도 그런 말씀을 종종 하신다.

Q. 일할 때는 일부러 어른스러워 보이려 할 법도 한데.(웃음)
주원: 그러면 내가 힘들 것 같다. 그냥 나 같은 게 좋다. 일상에서마저 연기를 한다면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 거다.

Q. 스트레스 많이 받나 보다.
주원: 모든 일이 그렇지 않나. 하하하.

Q. ‘그놈이다’ 얘길 해보자. 안 그런 작품이 없겠지만, 이번 작품은 특히 뭔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확고하게 가지고 뛰어든 작품처럼 보인다. 단순히 흥행을 말하는 게 아니다.
주원: 얻고 싶은 게 확실히 있었다. 하고 싶은 장르였고,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진중한 캐릭터를 만나야 훗날 내가 좋아하는 선배들의 나이가 됐을 때, 그분들처럼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다.
주원(2)
주원(2)
Q. 좋아하는 선배들이라 함은?
주원: 왜 거친 느낌의 배우가 있고, 섹시한 느낌의 배우가 있고, 여유로움이 매력적인 배우가 있지 않나. 여러 가지 색을 지닌 선배들이 계신데, 아직은 내가 그렇게 하기엔 억지스러운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런 모습을 갖추려면 ‘그놈이다’ 같은 역할이 과정에 있어야 한다고 봤다.

Q. 사실 스릴러는 30대를 앞둔 남자배우들이 이미지 변신을 위해 자주 시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시도가 전형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본다.
주원: 음.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서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풍기는 이미지가 달라졌달까. 5년 전에는 마냥 앳되기만 했는데, 지금은 짧은 시간이지만 지나온 세월이 내 안에 어느 정도 쌓인 느낌을 받았다. 변한 내 모습이 좋았다. 배우는 또 대중이 찾아줘야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에 맞춰 나가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놈이다’는 그런 변화의 시점에서 선택한 작품이기에 굉장히 신중했다.

Q. 신중하게 선택한 작품, 기대했던 것과 비교해서 결과는 어떤 것 같나.
주원: 시사회 날, 유난히 떨렸다. 일단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다. 정말이지 내 얼굴만 봤다.(웃음) 연기적으로는 아쉽다. 아쉽기는 한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던 것 같다. 만약 촬영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더 잘할 자신은 없다.

Q. 아까 배우의 여러 가지 색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제로 로버트 드니로 같은 연기파 배우가 있고, 조지 클루니 같은 섹시한 배우가 있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같은 유머가 매력적인 배우들이 있는데, 주원이 지향하는 건 어느 쪽인가.
주원: 나는 100%! 100% 로버트 드니로 쪽이다.

Q. 굉장히 확고하네.
주원: 내가 로버트 드니로 광팬이다. 그래서 ‘인턴’도 개봉하자마자 봤다. 보면서 혼자 어찌나 박수를 쳤던지.(웃음) 로버트 드니로처럼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 저런 표정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정말이지 살짝의 미소, 살짝의 손동작만으로도 감정을 풍성하게 표현해 낸다. ‘인턴’ 자체가 따뜻함을 주는 내용이어서 더 그랬겠지만, 그 분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주원(3)
주원(3)
Q. 어떤 작품을 보고 로버트 드니로에게 빠진 건가.
주원: 너무 많다. 하하. 그를 보면, 뭔가 인품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한국배우 중에서 안성기 선배님을 정말 존경한다. 시상식장 같은 곳에서 가끔 만나서 인사를 드리면, 원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너무 잘 해주신다. 말도 먼저 걸어주시고. 자기 관리도 철저하시지 않나. 선생님을 보면 뭔가 모를 믿음과 신뢰가 생긴다. 결국, 나는 그런 신뢰감을 내는 배우가 되고 싶은 것 같다.

Q. 20대 배우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다보면, 20대의 얼굴을 보여줄 작품이 별로 없어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충무로에 존재하는 시나리오의 폭이 넓지 않다는 의미다. 주원은 그런 아쉬움, 없었나.
주원: 물론 나의 20대를 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잠시 생각) 사실 나는 20대를 돌아봤을 때 후회되거나 아쉽거나 한 게 없다. 나름 열심히 갈등하고 고민했다. 많은 배우들이 물론 그렇겠지만, 남들이 두려워하는 역할도 주저 않고 도전했다. 가령 ‘굿닥터’ 같은 작품은 내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많은 분들이 ‘과연 이 캐릭터를 20대 배우가 할까’ 했다는데, 나는 대본을 보자마자 “저, 할래요!” 했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려 했기 때문인지 후회와 아쉬움은 덜할 것 같다.

Q. 출연한 드라마들(‘제빵왕 김탁구’ ‘오작교 형제들’ ‘각시탈’ ‘굿닥터’ ‘용팔이’)에서 대부분 좋은 석정을 거뒀다. 그에 반해 영화(‘미확인 동영상’ ‘캐치미’ ‘패션왕’ 등)에서는 다소 아쉬운 게 사실이다.
주원: 영화는 참, 어려운 부분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같다. 다른 게 없는데 성적이 엇갈리니, 왜일까 고민도 했었다. 블라인드 시사회 때 평점이 만점 가까이 나온 것도 있었다. 무대인사 때 마치 천만 영화 같은 환호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도 드디어 영화에서도 빛을 보겠구나’ 했는데 결과는 빗나가곤 했다.(웃음)

Q. 만점이 나온 작품이…
주원: ‘패션왕’. 그게 만점이 나왔었다. 팬들은 “왜 ‘패션왕’을 하려고 하느냐” 반대를 했지만 나에겐 어떤 믿음이 있었다. 블라인드 시사회 반응을 보고 ‘내가 밀어붙이길 잘 했다’는 생각도 했었고. 그런데 ‘인터스텔라’를 만나서 주저앉았다.(웃음)

Q. 팬들은 왜 ‘패션왕’ 출연을 말렸던 건가.
주원: 그게 약간 ‘병맛’이지 않나. 하하하. ‘패션왕’ 전 작품이 ‘굿닥터’였다. ‘굿닥터’를 잘 해냈는데, 왜 ‘병맛’을 하려고 하느냐가 팬들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나는 또 나름의 생각이 있었거든.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 위험 부담은 있었지만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신선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배우로서 당연히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봤고. 그런데 팬들은 내가 만화에서와 같은 웃기는 포즈를 하는 게 상상이 안 갔던 모양이다.(웃음) 결론적으로 영화가 나왔을 때 내 팬들은 좋아해줬다. 흥행이 아쉽긴 했지만.
주원(4)
주원(4)
Q. 드라마와 영화 성적이 갈리는 이유를 고민했다고 했는데, 이유는 찾았나.
주원: 아직 잘 모르겠다. 그 이유를 연기하는 형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형들이 “앞으로도 잘 되는 작품은 잘 되고, 안 되는 건 또 쫄딱 망할 거다. 별의 별 작품이 다 있을 테니, 미리부터 걱정하지 마”라고 하더라. 사실 이전에는 ‘영화에서 날 안 써주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모든 것을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Q. 영화 속 장우처럼 가까운 사람을 잃어서 슬픔에 빠진 경험, 있나.
주원: 있다. 음… 말로 표현하기 힘든…어떻게 말해야 하지…? 정말 가까운 친척이었다. 당시에는 못 믿었던 것 같다. 너무 멍해서 ‘에이. 말도 안 돼’ 이러다가 나중에야 사실을 받아들이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장우가 죽은 여동생을 발견했을 때 비슷한 느낌이었다. 죽은 동생을 보는데 너무 끔찍했다. 슬프다가, 화도 나다가, ‘이게 뭐지? 이게 꿈이야 생시야?’ 했다가, 이전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이랬었지’ 하기도 했다. 동생의 죽음을 마주하는 장면은 내 감정이 흐르는 대로 연기했던 것 같다.

Q.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는 편인가.
주원: 시간을 가진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촬영할 때는 주로 차로 대피한다. 혼자 열심히 쏟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곤 한다.

Q. 더 멀리 가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많아서 답답할 때도 있겠다.
주원: 아무래도. 촬영장을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

Q 지난 해 뮤지컬 ‘고스트’로 무대에 복귀했다. 개인적으로 당신을 처음 본 건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2009) 때였다. 김무열에 이어 주인공 멜키어 역을 맡았는데, 사실 당시만 해도 당신은 그리 널리 알려진 배우는 아니었다. 김무열의 뒤를 잇는다는 부담이 없지 않았을 거다. 반면 ‘고스트’의 경우 당신을 보기 위해 많은 팬들이 몰린 경우다. 이건 또 다른 느낌의 부담이었을 것 같다.
주원: ‘스프링 어웨이크닝’ 때는 정말 욕심이 하늘을 찔렀던 시기다. 그래서 언더스터디(메인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투입되는 배우)라도 계약을 했었던 거고. 무대가 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정말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고민을 다 했던 것 같다. ‘나라면 어떻게 표현할까, 어떻게 해야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매일 부지런히 했다. ‘고스트’의 경우, 내가 뮤지컬을 다시 하면 초심으로 돌아갈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 예상대로 정말 그랬다. 촬영 때문에 연습을 2주 늦게 들어갔는데, 승부욕이 발동해서 들어가자마자 정말 열심히 했다. 무엇보다 “쟤는 티켓파워가 있으니까 캐스팅 됐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뮤지컬을 했던 사람으로서 다시 복귀를 했을 때, “아 주원은 역시 뮤지컬을 잘 하는구나” 인정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때도 미친 듯이 했다. 나는 무대에 섰을 때의 내가 가장 빛난다고 생각한다.
주원(5)
주원(5)
Q. ‘스프링 어웨이크닝’ 언더스터디에서 주인공을 꿰차게 된 사연도 흥미롭더라.
주원: 그땐 공연이 없어도 항상 공연장에 일찍 가서 걸레질을 하고 대본을 하루에 두 번씩 보며 공부했다. 형들이 농담으로 “그만 좀 와. 너 공연도 안 하는데 왜 자꾸 와~” 이럴 정도였다.(웃음) (김)무열이 형 100회 공연 중에 92번을 봤다. 2층 맨 꼭대기에 앉아서 매일매일 배우일지를 쓰면서 봤다. 그러다가 우연히 리허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무리 없이 해냈다. 그걸 보고 제작사 분들이 나를 세워도 좋겠다는 판단을 하셨다. 그렇게 무대에 설 수 있었다.

Q. 김무열의 92회 공연을 지켜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웃음)
주원: 정말 너무 서고 싶었다.

Q 그렇게 해서 처음 선 무대를 기억하나.
주원: 기억난다.(웃음) 긴장을 굉장히 많이 했었다. 내가 공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계원)예고 후배 1,2,3학년이 단체로 왔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선배들이 뮤지컬 무대에 서는 걸 보면서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는데, 내 후배들이 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좌석에 또르르르 앉아 있는데, 와~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Q. 참, 최근 한 방송을 통해 과거 혼성그룹(프리즈)으로 활동했던 게 다시 화제가 됐다.
주원: 본의 아니게. 하하하. 소속사와의 불공정 계약 등으로 5년간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었다. 아픔이 컸던 시간이고, 서로 ‘닥치고 살자’하면서 끝냈던 사건이다.

Q. 그때 그룹이 오래 유지됐다면, 지금 인생이 달랐을까.
주원: 달랐을 거다. 그런 질문도 받았다. “흑역사인가요?” 당당하게 말했다. “네! 흑역사에요!”(일동웃음) 그만큼 아픔이 컸던 시기다.
주원(6)
주원(6)
Q. 잠은 언제 자나 싶을 정도로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잠에 예민한 스타일로 아는데, 요즘도 잘 못 자나.
주원: 신기하게도 지금은 너무 잘 잔다. 저희 집은 아버지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누우면 1초 만에 잠드는 스타일이다. 내가 요즘 그런다. 이전에는 초침 소리에도 잠을 못 자고, 누가 살짝만 움직여도 못 잤다. 지금은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눕기만 하면 잠이 든다.(웃음)

Q. 30대, 국방의 의무도 이행해아 한다.
주원: 어차피 가야 하는 거니까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막상 입대 상황이 오면 모르겠는데 현재로서는 두렵지 않다. 다녀와서 상황이 안 좋아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고. 초심에서.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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