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박혁권은 아직도 사진 촬영은 어색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올라프와 함께라면 괜찮을지도
박혁권은 아직도 사진 촬영은 어색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올라프와 함께라면 괜찮을지도


기승전결(起承轉結). 동양의 전통적인 시작법 중 하나로, 작품 내용의 흐름을 뜻한다. 오늘 날 온라인 상에서는 ‘기승전XX(결국엔 XX더라)’로 변형돼 자연스런 흐름을 강조하는 말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감히 ‘기승전’을 붙이고 싶은 배우가 있다.

박혁권. 1993년 데뷔한 그는 어느새 23년차 중견 배우. 박혁권은 단역부터 주연까지, 차근차근 연기자의 길을 밟아왔다. 독립 영화계에서는 영화 ‘은하해방전설’의 ‘혁권 더 그레이트’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인사. 허나 드라마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병맛’ 연기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검객까지, 전천후의 변신이 가능한 보석 같은 배우를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케이블채널 MBC 에브리원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부터 KBS2 ‘프로듀사’까지. 박혁권의 23년차 연기 생활을 증명하듯, 말하고 싶은 작품들이 많다. ‘기승전결’에서는 그의 작품들 중, 시청자에게 각인을 시킨 작품들로만 엄선해서 소개한다. ‘병맛’ 연기의 달인에서 드라마 속 독보적인 ‘신스틸러’가 되기까지. 박혁권의 ‘기승전결’을 살펴보려 한다.

UV 신드롬 비긴즈 박혁권
UV 신드롬 비긴즈 박혁권
일어날 기(起) : 2011년 케이블채널 Mnet ‘UV 신드롬 비긴즈’ 기소보르망 박사
기소보르망 박사? ‘UV 신드롬’? 생소한 단어들에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UV 신드롬 비긴즈’의 기소보르망 박사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박혁권 표 ‘병맛’ 연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전 작품인 KBS2 ‘드림하이’에서 일명 ‘수지 아빠’로 얼굴을 알린 박혁권은 차기작으로 ‘UV 신드롬 비긴즈’를 택했다. UV를 분석하는 문화인류학 박사 기소보르망으로 분한 박혁권은 지적인 모습부터, ‘빵셔틀’까지 완벽히 소화해냈다.

유세윤, 뮤지가 출연한 ‘UV 신드롬’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말도 안 되는 상황과 설정으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그야말로 ‘병맛’ 드라마인 것. 개그맨, 가수, 일반인 등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에 정극 배우인 박혁권이 출연했다. 박혁권은 기소보르망 박사로 분해, 특유의 진지함으로 반전의 웃음을 자아냈다. 박혁권은 진지한 ‘드립(애드리브)’은 시청자들을 말도 안 되는 시트콤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기가 막힌 ‘드립’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진짜인 것처럼 표현해 의외의 웃음을 선사하는 것. 이것이 ‘박혁권 표 병맛 연기’였다. 이후 박혁권은 페이크 다큐멘터리인 ‘엔터테이너스’에 출연해 또 다시 ‘병맛’ 연기를 선보이며 ‘명드립’을 날렸다. “수지랑 스캔들 내 줘~!”
밀회 박혁권
밀회 박혁권
이을 승(承) : 2014년 종합편성채널 JTBC ‘밀회’ 강준형
MBC ‘하얀거탑’, ‘아내의 자격’ 이후 또 다시 안판석의 남자가 됐다. 박혁권은 김희애의 남편이자 음대 피아노과 교수 강준형으로 분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독립영화, 각종 드라마와 영화 속 조연으로 활약해오던 박혁권은 극의 중심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찌질한 남편. 박혁권이 연기한 강준형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딱 이랬다. 아내 오혜원(김희애)에게 떼를 쓰고, 징징거리고. 시청자들은 준형에게 ‘중2병 걸린 남편’이라고 칭했다. 중학생 2학년처럼 사춘기를 겪고 있는 남편. 박혁권은 이 짜증나는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당시 ‘밀회’는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웰메이드 드라마란 평을 얻으며 극 중 모든 캐릭터들이 사랑을 받았다. 박혁권 역시 ‘중2병’ 남편으로 인기를 얻었다. 허나 또 다른 인기 포인트가 생겼다. 바로 닮은 꼴. 박혁권은 영화 ‘겨울왕국’ 속 눈 사람 캐릭터인 ‘올라프’ 닮은꼴로 주목을 받았다. 진지한 ‘밀회’의 신드롬과 달리 박혁권은 귀여운 닮은꼴로 시청자들의 미소를 자아냈다. ‘밀회’가 방영되던 그해, 박혁권은 여러 가지 매력으로 자신만의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시청자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펀치 박혁권
펀치 박혁권
바꿀 전(轉) : 2014-2015년 SBS ‘펀치’ 조강재
분위기가 바뀌었다. 구차하고 찌질한 건 여전했지만, 그 속에 비열함을 발견했다. 원하는 결과를 위해 증거를 조작하고 증인을 회유시키는 악행을 저지르는 조강재. 박혁권은 조강재를 통해 비열한 악역으로 완벽 변신했다. 박혁권은 이전, 찌질한 모습과는 다른 분노 유발 연기로 단숨에 배신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조강재처럼 악역다운 악역은 처음이었다. 박혁권은 그동안 눈꼬리가 처진 선한 눈매로 선한 역할이나 무능한 역할을 맡아왔다. 조강재는 달랐다. 포마드로 머리를 넘긴 날카로운 인상과 함께 악어의 눈물, 비열한 웃음으로 비리 정치인을 완벽히 표현했다. 박혁권 역시 조강재는 이전의 역할과 분위기가 달랐음을 알고 있었다. 박혁권은 종영 소감으로 ‘펀치’를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이처럼 변신의 시도는 배우 본인에게도, 시청자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선사했다.
육룡이 나르샤 박혁권
육룡이 나르샤 박혁권
맺을 결(結) : 2015년 SBS ‘육룡이 나르샤’ 길태미
주연 유아인보다 공들여 분장하는 배우. 유아인이 20분 정도 분장을 한다면, 박혁권은 2시간 정도 분장을 했다. 그도 그럴것이, 박혁권이 맡은 길태미의 아이메이크업이 화려한 팝 가수 못지않았다. 비욘세도 울고 갈 정도. ‘육룡이 나르샤’ 박혁권은 길태미를 통해 뷰티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뜬금없었다. 40대 남자 배우가 뷰티 아이콘이라니. 뷰티뿐만이 아니었다. 길태미 댄스, 길태미 화법을 유행시키며 신드롬에 가까운 길태미 열풍을 일으켰다. 2015년 하반기 톱스타 유아인의 출연으로 주목받을 줄 알았던 ‘육룡이 나르샤’는, 박혁권이라는 의외의 잭팟을 터트렸다.

길태미로 박혁권의 연기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기엔 일렀다. 박혁권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오히려 그의 연기인생의 ‘터닝포인트’ 중 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올초 SBS 라디오 ‘컬투쇼’에 출연한 그는 자신의 터닝포인트를 ‘밀회’로 꼽은 바 있었다. 허나 시청자가 느끼기엔 박혁권은 매 작품마다 터닝포인트를 갱신했다. 그만큼 매 작품 인상적인 모습을 남긴 것. 이번 ‘육룡이 나르샤’ 길태미도 화려한 분장뿐만 아니라, 잔인한 검술과 1인 2역까지 소화해내며 변신의 끝을 보여줬다. 길태미는 박혁권 연기 인생에서, 변신에 있어서도 정점의 가까운 역할이었을 것이다.

23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간. 박혁권은 23년 연기 생활로 탄탄한 내공을 쌓았다. 내공은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뒷받침이 돼 주었다. 허나 박혁권의 매력은 10분의 1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 오랜 시간 쌓아온 경력처럼, 그가 앞으로 보여줄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아마 박혁권은 이제부터 새로운 ‘기승전결’을 만들어낼 것이다. 박혁권이 보여줄 새로운 모습에 날로 기대감이 더해진다.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Mnet ‘UV 신드롬 비긴즈’, JTBC ‘밀회’, SBS ‘펀치’, ‘육룡이 나르샤’ 방송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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