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클릭비
클릭비
13년이다. 일곱 명의 클릭비가 하나로 뭉치까지 꼭 13년이 걸렸다. 1999년 꽃 같은 미모를 자랑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들은 밴드와 댄스를 결합한 새로운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확실히 얼굴과 이름을 알린 건 ‘백전무패’로, 2000년 ‘서울가요대상’ 인기상과 2003년 ‘코리안 뮤직 어워드’의 올해의 가수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안았다. 전에 없던 콘셉트와 끼, 비주얼을 갖춘 이들이 돌연 팀 탈퇴와 활동 중단을 선언해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유호석, 노민혁, 하현곤 등이 음악적 성향을 이유로 팀에서 나갔고, 남은 네 명의 멤버들은 완전한 댄스그룹으로 음반을 내고 활동을 펼쳤지만, 일곱 명의 클릭비를 향한 그리움을 채우진 못 했다.

클릭비가 2015년, ‘재결합’을 알렸다. 각기 다른 소속사에 거처를 두고, 각자 꿈꾸던 일도 자리를 잡은 지금. 그때의 그리움이 서로를 존중하게 만들었고, 오롯이 클릭비만의 색깔을 내기 위한 목표 하나로 뭉친 일곱 남자.

‘클릭비’로 돌아왔고, 비로소 ‘하나’가 됐다.

Q.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어떤 기분인가요?
김상혁 :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인 이 시간이 너무나 감사하고, 뜻깊습니다.
하현곤 : 솔로로 활동을 계속했는데, 모이니까 든든한 것 같아요.

Q. 13년 만입니다. 재결성 과정이 궁금해요. 어떤 논의 끝에 다 같이 활동하게 된 건지.
김상혁 : 그동안 개인적으로 학업이라든지, 음악 활동, 다른 성향 등을 이유로 일부 멤버들이 탈퇴를 하고, 이후 저와 오종혁, 우연석, 강후 등 형들과 ‘카우보이’로 활동을 했죠. 다 같이는 매년 만났어요. 언젠가는 ‘완전체’로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계속했어요.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웠던 건 추억이 퇴색될 만큼 망가지거나, 어설프게 하지는 말자는 게 공통 의견이었어요. 2년 전, 연말에 DSP 미디어 합동 콘서트를 통해 무대에 올랐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결정됐습니다.

Q. 팀 결성을 할 때, 소극적인 멤버도 있을 테고 반면 적극적인 멤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땠나요?
오종혁 : 매년 바뀌었어요(웃음). 어떤 해에는 제가, 또 어떤 해에는 에반이, 후 형이. 각자 개인의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 하나 끝까지 부정적인 건 없었고요. 각자 상황에 따라 달라졌던 거죠. 가장 큰 역할은 민혁이었던 것 같아요.
노민혁 : 저를 포함해 세 명이 팀에서 탈퇴를 하고 각자 열망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걸 하나로 취합하기까지 13년이 걸렸던 것 같아요. DSP 공연 이후 멤버들이 그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소중을 찾고 알게 된 시점이 있었어요. 제가 연락을 하긴 했지만,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우리는 모두 뜻을 모으고 있었고, 이번에는 우리의 의견보다 각자 다른 회사의 의견, 클릭비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이냐에 대한 외적인 부분을 신경 써야 했어요. 준비단계에서 조금 더 신경을 쓰고, 한발 더 내디뎠을 뿐이지, 제가 주도적으로 한 건 아니에요.(웃음)

Q. 추석 때 방영된 ‘심폐소생송’으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어요.
강후 : 솔직히 기대를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오랜만에 서는 무대이다 보니까, ‘기억을 해주겠지?’ ‘방송은 잘 나올까?’라는 정도의 궁금증만 있었는데, 예상 밖으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셔서 당시 음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큰 힘이 됐죠.
유호석 : 방송이 끝나고 상혁이가 전화가 와서 울더라고요.(웃음)
김상혁 : 방송을 할 때는 감회가 없었어요. 근데 본 방송을 모니터 하는데 객석의 팬들의 표정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보이더라고요. 13년이라는 시간, 또 그동안 말하지 못 했던 게 눈빛에서 다 느껴지고 그걸 보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Q. 방송에선 노민혁 씨가 많이 울었어요.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나요?
노민혁 : 방송을 진행한 곳이 탄현이었어요. 요즘엔 많은 방송국들이 상암으로 옮겼으니까, 거길 가겠구나 싶었는데 일곱 명이 다 모여 차를 타고 가는데 밤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옆으로 너무나 익숙한 길이 보이는 거예요. 등촌동에 있는 SBS였어요. 그 때부터 ‘뭐지?’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주차 요원이 있는 장소, 행동도 똑같고 대기실도 변한 게 없더라고요. 마치 지난주에 온 것 같은 느낌으로 추억을 밟아나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또 13년 만에 모인 것도 신기한데, 나온다니까 찾아주는 분들이 있다는 게 더 신기한 거예요. 문이 열리고, 팬들을 보는데 눈물이 났죠. ‘진짜 잘해야겠다’는 마음도 들었고요.

Q. 뭉친 것도 이슈가 됐지만, 어쩜 이렇게 관리가 잘 됐느냐에 대한 관심도 컸어요.(웃음)
유호석 : 그건 아닌 것 같고요. 가까이 옆에 있으면 티가 나요. 어쩔 수 없죠, 나이를 먹었으니까.(웃음) 사실 외모보다는 음원과 공연에 초점을 맞춰주시면 좋겠어요.

Q. 따로 준비한 건 없고요?
김상혁 : 마침 뮤직비디오를 찍는 시기도 있어서 살은 조금씩 뺐고요.
노민혁 : 그렇다고 오랜 시간 준비를 한 건 아니고, 2주 정도의 관리 시간은 있었죠.
김상혁 : 다행히 형들이 곱게 늙어주신 덕분에(웃음).

Q. 사실 데뷔 당시, 클릭비는 어렸죠.
유호석 : 우리 또래의 친구들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어렸어요. 한참 뒤에 나온 그룹도 동갑이거나, 형이었죠.
김상혁 : 저희는 1.7 세대 정도일 것 같은데.(웃음)
클릭비
클릭비
Q. 컴백을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염두에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노민혁 : 초점을 맞춘 건, 어떤 식으로 대중들에게 음악이 전달돼야 할까라는 부분이에요. 동시기에 활동했던 팀들은 그만의 색깔과 느낌이 있잖아요. ‘클릭비는 있었나?’라는 고민을 해봤어요. 그때는 프로듀서가 있었고, 음악을 그분들에게 맞췄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색깔, 라이벌을 찾기가 힘들어요.

클릭비는 밴드와 댄스의 조합을 처음 시도한 팀이었고,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요. 음악은 트렌디함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대에 조금은 선구적일 수 있는 음악을 추구했고, 밴드를 녹여내는 연구를 한 팀이었죠. 게다가 대형 기획사에서 만든 그룹이고. 나오자마자,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험적인 구성, 음악을 하다 보니까 처음에는 크게 반응이 없었어요. 이후 2001년 ‘백전무패’ 때 빛을 본 거죠. 이번에도 그때 시행착오를 겪었 듯 한 번 나왔다고 이슈가 되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공연을 하고 싶다는 소소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의외로 큰 반응을 얻고 있어서 무거워요. 밴드의 음악을 녹여내자는 생각으로 준비했어요.
유호석 : 향수를 드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뒤떨어지는 음악을 들려드리지는 않을거예요. 향수만을 위해 나온 것도 아니고요. 새로운 클릭비의 느낌과 요즘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묵묵히 우리의 것을 계속하면서 공연을 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려고 해요.

Q. 노민혁 씨의 말을 듣고 보니까, ‘백전무패’가 3집이었군요.
유연석 : 1, 2집은 실험적이었어요. 실제로 ‘백전무패’가 데뷔 음반이라고 아시는 분들도 있어요.
유호석 : 1, 2집의 경우에는 실험적인 부분이 이었어요. 완성도를 올린 게 3집에 나타나 빛을 발한 것 같아요.

Q. 또 당시에 김상혁 씨가 예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고요.
유호석 : 다른 방향으로 이슈를 의도했다기 보다, 상혁이가 끼도 많아서. 방송에 나가면 반응이 좋았죠.

Q. 이번 음반을 준비하면서 새삼 다시 예전 노래들을 들어봤겠어요.
오종혁 : 예전 노래를 들어볼 기회가 잘 없는데(웃음), 좋은 노래가 은근히 많더라고요. 실력적인 부분이 성숙하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요. 대중들도, 우리도 ‘클릭비 음악은 이거다’라는 게 없었어요. ‘백전무패’가 히트를 쳤지만, 그 후 음반은 또 다른 색깔이었어요. 매번 다른 색깔의 음반을 내놓으니까요. 2집은 메탈이고, 3집은 인기 팝이었어요. 매 음반마다 색이 다 달라서, 우리가 들으면서도 ‘색깔이 없을만하다’ 싶을 정도죠. 그런데 수록 곡들은 우리의 색이 있어요.
노민혁 : 공연을 준비하면서 듣고, 새 음반을 준비하면서 들어보니 색은 잡혔는데 많은 분들이 갈피를 못잡았구나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밴드와 댄스를 어떻게 섞을까를 고민한 흔적이 보였고요. ‘드리밍’에서 ‘환영문’, ‘백전무패’ 등 라인의 뼈대는 있어요. 트랜디함과 밴드를 녹여내는 고민을 했는데, 3집은 운 좋게 유행을 잘 좇은 거죠. 색깔을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클릭비의 것을 만들 수 있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Q. 그럼 이번에는 어떤가요? 13년 만에 나오는데.
유호석 : 클릭비의 모습을 충분히 음원을 담으려고 했고요. 유행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유행을 잃지 않고 향수도 가져갈 수 있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노민혁 : 이번에도 실험은 있어요. 밴드와 댄스의 결합을 살리고, 포인트를 찾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지금의 것들을 계속 찾아나가는 거죠.

Q. 사실 클릭비만의 색깔이 없다는 것, 어찌보면 당시 시대 상황도 한몫한 것 같아요.
노민혁 : 예전에는 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비주얼이 우선이었어요. 한 번은 ‘인기가요’에서 밴드 합주를 해보려고 시도를 한 적 있어요. 라이브를 하자, 신나서 음향 장비를 싸 들고 가서 카메라 리허설을 마치고 내려오니, 대기실에 책임프로듀서(CP)가 내려와서 ‘라이브를 못하게 됐다,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시에는 방송 시스템적으로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어요.
김상혁 : ‘너희 한 팀 때문에 드럼 세트를 빌려야 해’라는 말을 들었죠.
유호석 : 다른 팀들의 댄서 준비 시간에 저희는 악기를 트럭에 싣고 다녔기 때문에.

Q. 각자 음악 활동을 해온 멤버들도 있어서, 이번 음반 준비가 그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유연석 : 각자 개인적인 활동을 10년 이상 해왔어요. 개인의 성향이 짙어서 클릭비 색으로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작업을 많이 했는데, 우리가 다 하기에 과정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곡은 외부에서 받아서, 선별했어요. 그리고 디테일한 부분은 수정을 거치지만, 큰 그림은 좀 더 좋은 곡으로 분산되지 않게 하려고 작업을 했죠.
오종혁 : 곡을 다 쓸 수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 곡을 맡기면 분명 서운한 사람들이 생겨요. 곡을 쓰는데 있어서 욕심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모두가 힘들어지니까요. 최대한 우리가 다 같이 만들자는 취지로, 대신 좋은 곡을 받아보자고 의견을 모았죠. 개인적인 욕심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노민혁 : 2011년의 실패가 밑거름이 됐어요. 욕심을 부렸던 한 사람으로서(웃음), 그때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멤버들이 모일 때도 엄포를 했어요. ‘아무도 곡 쓰지마’라고요. 너무 자기 색깔이 들어갈까 봐 그랬어요. 객관적인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자, 그래서 나온 곡을 들어보고 싶었어요. 안에서 보는 우리가 아니라, 밖에서 보는 우리들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죠. 대신을 곡을 받고 디테일한 작업은 같이 했어요. 작곡자와 의견 나누면서 만들어졌어요. 기타도 처음에는 다 맡겼다가, 다 엎고 녹음도 수정하고 그랬어요.
유호석 : 과정 속에 재녹음, 소스와 악기에 클릭비의 색을 내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개개인의 색은 내려놓고. 같은 마음으로 탄생한 음반이죠.

Q. 이번 음반으로 방송 활동이 없는 게 아쉽기도 해요.
김상혁 : 필요한 활동만 하겠다고 했어요. 음악 프로그램보다, 공연은 콘서트를 통해 팬들에게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가벼운 예능이나 라디오는 하자고 했는데,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간소화해서 잡은 건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주시고 주의 깊게 바라봐주셔서 고맙고 행복해요.

Q. 각자 활동을 하면서 힘들기도 했겠죠.
노민혁 : 가족들에게 미안한 부분도 많았고, 사실 연예인, 가수라는 직업을 하다가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하면서 사회란 곳에 스며드는 장벽도 쉽지는 않았어요. 일련의 사건이 생기면서 가능해지더라고요.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후 개인 레슨도 시작하게 됐고, 그동안 등지고 살았던 가정 경제도 돌아보게 됐죠. 제가 하는 음악에 대해서 꾸준히 명맥을 잇고,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으니까 음악 심리상담사 자격증도 땄어요. 좋아하는 일을 놓기는 싫어서 관련된 걸 많이 알아봤죠. 트위터에 처음 개인 레슨을 한다는 공지를 올렸어요. 아버지가 당시 암 투병 중이셨는데, 글을 올리기 전에 얼마나 썼다 지웠나 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레슨을 시작했어요. 2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가시기 전에 아들 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가신 것 같아요.
김상혁 : 가정 경제에 대한 책임감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하던가라, 형과 사업도 해보고 가게도 냈죠. 다만 방송을 많이 못하고부터는 미안하긴 했어요. 가정이 기울고, 그때부터 물질적인 걸 어떻게 해야 하나 연구도 했고요.
오종혁 :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든 일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잖아요.
클릭비
클릭비
Q. 공연에서는 어떤 모습을 볼 수 있나요?
유호석 : 이번 공연은 눈이 즐거운 공연이라기 보다, 전체적인 곡의 편곡 작업을 멤버들 내에서 이뤄지고 있어요. 음악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준비하려고 노력했고요. 큰 욕심보다는, 꾸준히 이렇게 하고 있다고 보여주고, 그 후 반응이 온다면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오종혁 : 주 목적이 공연에서 만나기 위해서니까, 생각한 것만 하자고 해서 휘둘리지 말고 공연만 하자고 이야기를 맞췄어요. 공연을 토해 클릭비 밴드의 모습, 각자의 모습 등을 다 보여드릴 생각이에요. 일곱 명 그대로의 모습, 모든 노래를 일곱 명이서 다 같이 부를 거예요. 시간 때우기 식의 영상과 유닛 무대 등은 없고, 20곡 정도의 곡을 일곱 명이 무대 위에서 보여드릴 생각이에요. 팬들을 위한 선물이니까, 다 보여줄거예요.
김상혁 :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주셨고, 아직도 마음속에 있는 글귀가 ‘7-3=7’이에요. 일곱 명의 모습을 위주로, 예전 곡들은 시간이 많이 흘러 올드하게 들릴 수도 있어서 그런 부분은 재해석했고, 새롭게 들어보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Q. 사실 9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들이 대거 쏟아지고 있는 추세라, 흐름에 동참했다는 의견도 있어요.
김상혁 : 그들이 나와서 우리도 해보자는 생각은 없었어요. 동료로서 응원은 했죠. 앞서 말했듯 팬들에게 언젠가는 보답을 해야한다는 건 계속 이야기를 했었고, 완벽한 모습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가 공유한 추억을 망가진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서 시간이 많이 걸린 거예요. ‘토토가’ 열풍 등 때문에 우리를 그리워하는 시선이 생기는 건 물론 고맙지만, 그것에 편승하는 게 아니라 언제라도 준비가 되면 나오자고 해서 나온 겁니다.
강후 : ‘심폐소생송’에도 나간다는 마을 주위에 안 했어요. 동료나 팬,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반갑다’였어요. 우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셨기 때문에 작업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일곱 명의 클릭비를 계속 볼 수 있는 거죠?
유호석 : ‘리본’이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할 음악이라고 결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고민을 더 해서 다음엔 좀 더 완성도 높은 음악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민혁 : 13년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클릭비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와 우리를 기다려주신 분들, 우리로 인해 행복한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싶다는 게 가장 커요. 시작점에 보답의 의미만 충족시켜고 충분히 성공한 음반이 될 것 같습니다.
유호석 : 음원 발표에 이어 공연까지 계속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에요.
김상혁 : 클릭비의 활동을 이어가려면, 개인적으로도 걸어오던 길에서 두각을 내고 힘을 갖춰야 할 것 같아요. 그걸 위해서 멤버들도 더 노력하는 계기가 될 것 같고요. 클릭비를 위해서, 개인을 위해서 여러 가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
사진. DSP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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