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윤성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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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발랄함으로 영화계에서 사랑받던 윤성호 감독이 인터넷 세상에 뛰어든 건 지난 2010년.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라는 5~7분 분량으로 구성된 시트콤이 윤성호의 이름을 달고 온라인에 공개됐다. ‘불펌’을 ‘권장’하는 이 요망한 시트콤은 ‘웹드라마’라는 용어자체가 없었던 시기에 나온 콘텐츠였다. 이후에도 윤성호 감독은 ‘출출한 여자’(2013), ‘썸남썸녀’(2014), ‘출중한 여자’(2014)를 연이어 웹 공간에 선보이며 영화와 드라마의 모바일의 경계파괴를 이끌었다. 그런 그를 두고 어떤 이는 ‘웹드라마의 선구자’라 했다. 하지만 정작 윤성호 감독은 자신을 ‘소규모 분식점을 운영하는 골목장사꾼’이라고 말한다. 확실한 것은 그는, 사람들을 하나 둘 불러 모아 얼굴 마주보고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들을 사랑한다.

윤성호 감독이 영화 ‘오늘영화’를 통해 오랜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 서울독립영화제 프로젝트 ‘오늘영화’는 윤성호 감독의 ‘백역사’, 강경태 감독의 ‘뇌물’, 구교환·이옥섭 감독의 ‘연애다큐’ 등 3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백역사’에서 윤성호 감독은 공장을 조퇴한 남자와 중국 만두집에서 일하는 여자를 극장으로 초대한다.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확인하시라.

Q. 옴니버스 영화 ‘오늘영화’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오늘영화’도 의뢰로 참여한 건가.
윤성호: 아, 이건 의뢰가 아니다. 공모에 지원해서 참여했다. 공모할 당시 내가 많이 지쳐 있었다. 근 2년간 웹드라마와 모바일 드라마에 매달렸다. 동시에 몇 가지 드라마 기획과 캐스팅에도 관여했고. ‘출중한 여자’ ‘출출한 여자’ ‘썸남썸녀’ 모두 개인적으로 뿌듯해 하는 시리즈이긴 한데 신경 써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다. 시청자가 작은 모니터에 집중할 수 있게끔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자막, CG 등 다양한 효과를 넣어야 하거든. 계속해서 데코레이션 가득 들어간 음식들만 먹다보니 단순한 음식이 그리웠다. ‘자질구레한 액세서리를 모두 빼고 담백하게 만들어 보자’ 해서 나온 게 ‘백역사’다.

Q. 그래서, 만들고 나서 지친 심신은 위안 받았나.
윤성호: 아니, ‘오늘 영화’에 참여한 감독님(강경태, 구교환-이옥섭)들이 너무들 잘 만들어서.(웃음)

Q. 작품 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옴니버스 영화에서 항상 막내 축에 속했던 윤성호가 이번엔 아니네’였다.(웃음) 작품 내적으로는 이전과 달리 담백해 진 게 눈에 띄었고.
윤성호: 으허허허허. 그렇게 돼 버렸더라고. 말한 대로 옴니버스 영화에 참여하면 항상 막내였는데 이번엔 가장 연장자다. 이전에는 가장 발칙한 편에 들었었는데, 이번엔 가장 보수적인 축에 들고. 하하하하.

Q. ‘오늘영화’에 참여한 목적 자체가 ‘작품을 담백하게 만들어 보자’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 같다. 그리고 연출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면 덜어내고 싶어지는 게 있지 않다.
윤성호: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 매체의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이쪽에서는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만, 그 다이어트가 허약한 느낌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면 안 되는데, ‘심심하다’ 여기실 분들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나에겐 너무 고마운 기회였다. 생각보다 재미있게 봐 준 분들, 여러 피드백을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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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늘영화’ 시나리오 공모주제가 ‘나의 영화, 나의 영화제’였다. 그중 극장이라는 공간을 ‘백역사’에 담은 이유는.
윤성호: 영화관련 콩트들을 워낙 많이 만들었었다. ‘은하해방전선’을 비롯해 단편영화 ‘두근두근 배창호’ ‘두근두근 시네마떼크’(2008) 모두 영화 만드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었으니까. 또 다시 필름 메이커들의 이야기를 하면, 내가 굳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강경태 감독(‘뇌물’), 구교환-이옥섭 감독(‘연애다큐’)이 쓴 시나리오를 보고는 더더욱 영화 만드는 사람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Q. 덕분에 전체적인 균형이 맞는 느낌이다.
윤성호: 말씀하신 것처럼 균형을 맞추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나머지 두 작품이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나는 ‘영화가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야겠다 싶었다.

Q. 영화가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데리고, 영화가 그들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날을 담아냈다. 그게 좋았다. 많은 연인들에게 극장은 어떤 추억일 테니까.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 남자 주인공 박종환의 의상이다. 나팔바지의 정체는 도대체 뭔가.(웃음)
윤성호: 사실 ‘백역사’는 영화 세 편을 모티브로 삼아 섞은 거다. 먼저 나팔바지는 ‘버팔로66’(1998)의 빈센트 갈로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가죽점퍼와 나팔바지를 입은 박종환 배우가 뭔가 시대에 뒤처진 듯한 촌스런 느낌과 불안한 눈빛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대놓고 빈센트 갈로 캐릭터에서 따왔다.

또 하나, 가져온 영화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텐 미니츠-트럼펫’(2002)에 수록된 ‘개들에겐 지옥이 없다’다. ‘텐 미니츠-트럼펫’은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비롯해 짐 자무쉬, 빔 벤더스, 스파이크 리, 첸카이거 등 7명의 세계적인 감독들이 참여한 프로젝트 영화다. 참 대단한 게, 보통은 최고(의 작품)가 맨 끝에 배치되는데 이 영화는 최고가 제일 앞에 있다. 다른 감독들이 10분이라는 시간에 전착했다면,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그 10분이라는 아이디어를 버려버린다. 그러니까 10분짜리 영화라면 10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감독은 연연하지 않는다. 이런 거다. 유치장에서 나온 남자가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로 떠나기로 하는데, 남은 시간이 30분 남짓이다. 그런 남자가 회사를 찾아가 자신이 투자한 돈을 받아내고, 과거 여인을 찾아가 청혼을 하고는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와서 기차를 타는데, 이 모든 게 10분이라는 시간 안에 일어난다. 사실, 불가능한 일이거든. 삶의 순환을 압축해서 보여 준 아주 성숙한 영화라 생각한다. ‘백역사’ 구조가 이 영화와 똑같다. ‘백역사’도 공장에서 떠밀려 나온 남자가 여자를 만나기 위해 돈을 구하고 그녀와 낮 1시 10분에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가는 영화이지 않나. 자세히 보면 남자가 일한 공장은 구로 쪽 느낌인데 갑자가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여자를 찾으러 갔다가, 밀린 돈을 받으러 인덕원으로 간다. 극장은 또 부평이고. 결코 시간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일들이지.(웃음)
백역사 촬영
백역사 촬영
마지막으로 영향을 받은 게 ‘그들 각자의 영화관’(2007)이다. 정말 위대한 옴니버스 영화인데, 대미를 켄 로치 에피소드가 장식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영화관에 줄을 서서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가 표 끊을 차례가 왔을 때 “에이, 그냥 축구나 보러 가자!”하면서 끝난다. 켄 로치는 영화란 어쩌면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영화라는 것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다루는 것이 영화라는 걸 알려준 거다. 그걸 ‘백역사’에서 따라했다. 영화를 보러 간 남녀가 영화는 안 보고 바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웃음) 아, 분위기 면에서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쓰리 타임즈’(2005) 기운을 빌리기도 했다.

Q. ‘그들 각자의 영화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윤성호에게 영화관이란 어떤 의미인가. 이 공간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
윤성호: 태어나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존 휴스턴의 ‘천지창조’다. 7살 때 대한극장에서 봤는데, 그게 60년대 영화였으니 재개봉작을 본 셈이다. 그게 내 인생 최초의 영화관 경험이었다. 이후 다시 극장에 가기까지 6년이 걸렸나?(웃음) 왜 많은 감독님들이 ‘어린 시절 학교 빼먹고 극장에 갔다든지, 홍콩 영화에 빠졌다든지’ 하는 회고를 하지 않나. 나는 그런 씨네키드는 아니었다. 심지어 부모님이 TV도 못 보게 했다. 엄밀히 말해 나에게 영상은 익숙하지 않은 매체였던 셈이다.

Q. 그럼 어린 시절 뭘 탐닉했나.
윤성호: 책! 소설, 에세이, 수필 온갖 것들을 읽었다. 문자중독에 가까웠다. 초등학교 때 본 책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본 책보다 더 많을 거다. 도서관에서 살았다. 지금 성격이 워낙 외향적이어서 다들 안 믿는데, 어릴 땐 대인관계도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내성적임/사교성이 부족함/애들과 말을 안 함’ 같은 선생님들의 코멘트가 적혀 있다.(웃음) 그땐 학교가 끝나면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책 속에 달타냥도 있고,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있고, 빨강머리 앤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 탁 끊기더라고. 내 인생이 참 재미있는 게, 초등학교 땐 책에 빠졌고, 중고등학교 땐 록에 빠졌고, 고3때부터 농구에 빠졌다. 극장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아니었던 거다. 유년기엔 특히나.

Q. 책과 록, 농구를 탐닉했던 윤성호가 영화판에 들어오게 된 계기를 안 들을 수 없겠다.
윤성호: 사실 통상적 의미의 영화감독이 될 생각은 없었다. 전공이 신방과인데, 대학 때 동아리 활동을 안했다. 토익도 한번 안 보고. 정말이지 이기지 못하는 농구만 매일 했던 것 같다.(웃음) 대학 졸업할 때가 되니까 허망하더라고. 그래서 졸업 직전에 친구들과 “우리가 어차피 방송국 입사시험을 볼 텐데, 학교에 새로운 장비도 생겼으니 단편영화나 만들어보자”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지금 같으면 유튜브나 몬캐스트-피키캐스트 같은 공간에 올리고 끝냈을 것 같다. 그런데 당시엔 그런 루트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제에 응모를 했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라기보다 상영이력이라고 있으면 입사할 때 프로필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낸 건데 그게 덜컥 상을 탄 거다.

‘오늘영화’ GV 현장
‘오늘영화’ GV 현장
Q. 그러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 거군.(웃음)
윤성호: 내 작품을 틀어주니까, 그때부터 영화가 좋아진 거다.(웃음) 나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할리우드영화, 홍콩영화, 한국상업영화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독립영화에서 시작됐다. 나와 체급이 비슷한 영화들을 보면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거든. 가령 ‘타이타닉’을 보는 게 나에겐 의미가 없었다. 별로여서가 아니라 어차피 내가 못 만드는 류의 영화니까. 어떤 의미에서 나에게 영화관은 ‘또 하나의 도서관’이었다. 좋은 의미에서의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내가 가기로 한 길의 전공서적이나 실용서적을 미리 꺼내 볼 수 있는, 내가 가기로 한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의 후기들을 읽을 수 있는, 내가 업계로 갔을 때 만날 사람들의 작품을 미리 보는, 그런 거였다. 지금은 또 다르다. 지금은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영화관을 밥 먹듯이 간다.

Q. 영화가 도서관이면 지금 당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모바일은 어떤 의미인가?
윤성호: TV보다는 모바일이 영화관과 가까운 것 같다. TV의 경우 주변의 온갖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여러 노이즈들이 방해를 하지 않나. 함께 사는 사람의 의향도 채널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런데 모바일은 온전히 혼자 집중할 수 있는 매체다. 더 개인적인 매체이고. 그런 의미에서 모바일이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 더 맞지 않나 싶다.

Q. ‘두근두근 배창호’ ‘두근두근 시네마떼끄’ ‘두근두근 영춘권’ 등 ‘두근두근’이라는 표현을 제목으로 자주 사용했다. ‘두근두근’에 특별히 꽂힌 ‘두근두근’한 이유가 있을까.
윤성호: 하하. 사람들이 삼성(두근두근 Tomorrow 캠페인)이랑 인연이 있는 줄 오해하더라.(일동웃음) ‘두근두근’은 ‘두근두근 Tomorrow’ 이전부터 사용한 거다. 그땐 ‘두근두근 내 인생’(소설/영화)도 없었고. ‘두근두근’이라고 하는 순간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 일단 ‘두근두근’하면 뭔가 예쁘지 않나. 글씨도 예쁘고, 어감도 예쁘고, 의미도 예쁘고. 그리고 두근두근 탄산수, 두근두근 인터뷰, 두근두근 노트북 등 그 말 하나로 시동을 그냥 걸어준다. 씬 하나의 역할을 해 주는 거다. ‘두근두근 배창호’ 하는 순간, 뭔가 로맨틱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나. ‘두근두근 영춘권’ 하는 순간에 ‘아, 남녀가 썸 타는 이야기구나’ 바로 ‘요이 땅!’ 하게 되고. ‘두근두근’ 사음절이 너무 좋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 나온 이후 안 쓰고 있지만.(웃음)

Q. 이 인터뷰에 붙을 것 같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윤성호①]‘직업이 뭐예요?’ 전천후 플레이어(인터뷰)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제공. 인디플러그, 상상마당, MBC에브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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