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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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정시우 기자]유아인은 인터뷰를 할 때 뿐 아니라, 인터뷰 후에도 상대를 긴장시키는 배우다. 그가 쏟아낸 ‘솔직한 날것의 언어’들은 자칫 인터뷰어의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변형되거나 왜곡돼 전달될 수 있기에, 인터뷰 기사를 쓸 때 더 예민하게 신경 쓰게 된다. 무엇보다 말하는 이의 뉘앙스나 분위기가 바싹 거세된 ‘글’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오해를 낳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와의 흥미로웠던 대화가 굴절되지 않도록 인터뷰 녹취파일을 여러 번 되감기 하며 글을 썼고, 그러면서 다시금 감탄했다. ‘솔직함’이라는 게 날카로운 부메랑이 될 수 있는 쇼비지니스 세계에서 이토록 자신을 신념과 견해를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그러니까 사유하는 배우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하고.

Q. 뭐랄까. ‘베테랑’은 “완전 새로운 유아인을 보여줄게”라는 마음으로 임한 작품 같았다.
유아인: 하하.그렇게 대단한 각오는 아니었다. 음… 이런 얼굴은 조금 새롭죠?

Q. 조태오(유아인)는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일 수 악역인데, ‘새롭다’라 함은?
유아인: 악인이라 했을 때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걸 내 식으로 변주해서 신선하게 만들어내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전형적인 캐릭터라 도리어 해석의 여지가 있는 느낌이었달까. ‘완득이’(2011)나 ‘깡철이’(2013)는 그냥 유아인의 고정화된 얼굴이었다. 선하고, 수더분하고…아, 실제의 나는 그렇지 않지만.(웃음) 아무튼 이전의 영화 속 내 모습이 가난하고, 꼬질꼬질한 모습이었다면 조태오는 광이 반짝반짝 나고, 악행을 저지르고, 시가를 피우고, 외제차를 몬다. 그런 것들을 흉내 내기가 아닌, 내 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결국 장르영화로 넘어온 셈인데 장르물에 도전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조심스러웠고 꺼려하기도 했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하면서.

Q.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가령?
유아인: 가령…남자배우가 할 수 있는 장르물이라는 게 다채로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폭력, 액션, 스릴러! 선 굵은 사극 정도도 될 수 있겠다. 이전엔 그걸 신선하게 해 낼 자신이 없었다. 그 전형 속으로 들어갈 도전의식도 없었고. 그러다가 ‘베테랑’을 만났는데, ‘밀회’라는 전작이 있어줘서 조금 더 편하게 연기 할 수 있었던 것도 있다. 도장을 한 번 찍고 넘어온 느낌이었거든.
유아인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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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밀회’의 어떤 지점이 당신을 충족시킨 건가.
유아인: ‘밀회’의 이선재(유아인)는 내가 해오던 연기 스타일, 혹은 내가 좋아하던 캐릭터들의 방점이었다. 오래 전부터 나 스스로 고수해오고, 나름 기특하다 할 정도로 우직하게 해 온 뭔가가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방점을 찍고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고. 그런 갈증이 있었을 때 ‘밀회’라는 작품을 만났고 운명적으로 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다.

Q. 영화 데뷔작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여서 그럴까. 당신에겐 불안한 청춘의 느낌이 있다.
유아인: 그런 욕심은 있었다. ‘한류스타가 되리라’는 욕심은 없었어도, 그 시대 20대 청춘의 얼굴을 대변하는 아이코닉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야심이. 동년배 배우들 중에서는 그래도 깊이 있는 작품들을 추구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20대 배우들이 출연할 만한 작품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기획성이고, 이벤트성이고, 뭔가 너무 전략적이다. 타깃도 명확하고. 시대가 그런 얼굴을 안 만드는 것 같다. 가령 제임스 딘으로 대변되는 미국 청춘의 표상, 장국영 양조위 금성무로 이어지는 홍콩의 아이콘 같은 얼굴들 말이다.

Q. 우리나라에도 90년대에 ‘청춘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배우들이 있었다. 정우성과 이정재라는 아이콘이. 이후 한동안 끊겼다가 근 몇 년간 다시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는 게 당신이다. 모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유아인: 거론해 주시는 분들은 거론해 주셨다. 모두가 공감하지는 않았겠지만.(웃음) 사실 그런 말들을 들어서 더 갈증이 있었다. 그 말에 내가 불충분하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결국 작품이거든. 화보도 아니고, 잘 찍은 한 장의 사진도 아니다. 20대 연기자가 충분히 배우로 살아가게끔 하는 것은 결국 작품인데, 그런 작품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걸 위해 준비된 배우들도 많지 않은 것 같고.

Q. (다른 질문을 던졌으나, 유아인은 앞 질문을 연이어 곱씹었다.)
유아인: 영화 ‘완득이’ 찍을 때 김윤석 선배랑 그런 이야기를 몇 번 했었다. ‘완득이’가 몇 백만 관객을 동원하고, 내가 간절하게 두드리고 두드리면 그런 작품 제의가 들어올까? 그런 작품이 만들어질까? 이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같은 이치 같다. 배우가 입증을 하고 두각을 드러내야 그를 중심으로 시대상이 담긴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작품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청춘의 얼굴을 만들어줘야 배우가 두각을 나타내게 될 것인가. 정말 정답이 없다.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 안에서는 더욱 더. 그렇기 때문에 나의 욕구를 어느 정도 내비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Q. 그랬을 때 ‘베테랑’은 유아인의 어떤 욕구가 크게 작용한 것인가.
유아인: 음. ‘청춘, 청춘! 20대, 20대!’를 외치다보니 어느 순간 일관성이 생겼던 것 같다. 어떤 인터뷰에서는 “30대로 넘어가는 포문을 열어주는 작품이에요”라고 하기도 했는데, 그보다는 20대 배우가 품을 수 있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아인이 꺼내드는 또 다른 패(牌)랄까. 새로운 모습으로 조금 더 단단해지고 신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했다.
유아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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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또 보여주고 싶은 패는 어떤 건가.
유아인: 로맨틱 코미디! 하하하. 이제 와서 로코가 하고 싶다. 이래서 난 청개구리야, 청개구리. 안 그래도 ‘해피 페이스북’이라고 옴니버스 영화를 준비 중이다. 한류스타로 나온다. 그것도 새로운 얼굴일 것 같지 않나?(웃음)

Q. ‘베테랑’ 안에서 굉장히 신나서 연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유아인: 신, 안 났다.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보면서도 내내 불안했다.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좋다, 좋다” 해 주시니까 괜히 ‘업’ 된 척 하는 것일 뿐.(웃음) 영화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다. 다만 조태오라는 인물을 연기한 나에 대해서는 조금 더 분석하고 파악해봐야 할 것 같다. 연기할 때의 나는 분석하거나 계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결과물에 대해서는 굉장히 분석적인 편이다.

Q. 분석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진행되나.
유아인: 다양하다. 연기 그 자체이기도 하고, ‘이 지점이 이질감을 만들어내네?’ ‘어떤 부분이 놀라움을 주네?’ ‘이랬기 때문에 큰 파장이 전달되네?’ 추측하고 살펴본다. 류승완 감독님이 굳이 유아인이라는 애를 조태오에 캐스팅 했을 때는 빤하지 않은 신선한 파장에 대한 기대를 하셨을 거다. 나 역시 그래야 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이 작품에 임했다. 그래서인지, 출연작 중에서 가장 긴장하며 결과물을 봤다. 새로운 패를 꺼내들었는데 그게 ‘이 판에서 먹힐까 안 먹힐까’ 연신 땀도 났고. 이전의 나와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면, 그 누구보다 이질감을 느낄 사람은 아마 나일 거다.(웃음)

Q. 조태오라는 인물은 당신에게 확실히 모험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유아인: 있다. 선택할 때는 전혀 갈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모험적인 부분이 있다. 물론 CF를 놓칠까봐, 누가 돌맹이를 던질까봐 이런 건 아니다.

Q. 그렇다면?
유아인: 결국은 가능성에 대한 부분인 것 같다. 20대에 고수했던 내 취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자리였으니까. 그러니까 이전과 다른 모습이 주효하게 먹혀들지, 명감독-명배우들 사이에서 겉돌지 않을지, 내 색깔로 그 곳에 있을 수 있을지, 신선하게 연기 하겠다 했어도 행여 전형화 된 부분은 없는지, 사람들은 신선하게 느낄지…정말이지 오만가지를 눈치보고 계산하고 분석하고 인터넷을 찾아 헤매고 그랬다.
유아인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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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실 아티스트로서의 욕심이 더 반영된 작품은 ‘베테랑’보다 9월에 개봉하는 ‘사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니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아인: 맞다. 반대일 수도 있다. 조태오를 연기하면서 정말 많은 걸 느꼈다. 이전에는 계산적으로 인물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내 욕망을 투영하는 식으로 연기를 해 왔다. 나를 반영하고 표현하는 것에 집착해 왔다. 20대에 내 취향을 고수해 왔다면, 이제는 내가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방향성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Q. 왜 그렇게 스스로를 반영하고 투영하는 것에 집착했을까.
유아인: 내가 연기를 하고 남들 앞에 서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이자 원천이 결국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은 그걸 ‘관종’이라고 한다지? ‘관심종자’.(일동 웃음) 어지간한 ‘관종’이 아니고서는 배우 하기 힘들지 않나 싶다. 조금 다른 얘기인데 Mnet ‘슈퍼스타K’에서 굉장히 조용조용한 참가자가 “제가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되게 두렵고요~”라고 하더라. 그러니까 윤종신 아저씨가 “그래서 여기 나왔니?”라고 했는데(웃음) 그게 사람의 이중적인 마음인 것 같다.

Q. 숨길 수 없는 마음이고.
유아인: 맞다. 숨길 필요 없는 마음인 것 같고. 숨길수록 창피해지고 오그라드는 것 같다. 그냥 나는 대단한 ‘관종’이고 외롭고 사랑받고 싶은 존재이기 때문에, 나를 드러내고 싶고 남들과 나 사이의 선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규정하고 싶다. 본능적으로 그렇다. 아티스트의 본능은 선대가 원시시대에 동국에 벽화를 그리듯 나를 드러내며 기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배우로서의 그 욕망은 자칫 과욕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것이 어떤 매력을 만들어내고,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재미를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영화는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니까. ‘배우의 욕망이 캐릭터를 오염’시키는 건 지양해야지.

Q. 최근에는 트위터 글이 뜸해졌지만, SNS를 통해 당신의 신념을, 견해를, 태도를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겸손이 미덕으로 평가받는 쇼비지니스 세계에서 당신의 행보는 분명 남다른 면이 있다. 그로인해 응원도 받지만 비난을 받기도 한다.
유아인: 나는 그걸 어느 정도 퍼포먼스라고 여기는 것 같다. 자극을 전달한 후 리액션을 받아내는 게 퍼포먼스이지 않나. “장난쳐?” 이런 건 절대 아니다. 내 나름대로는 새로운 시도이고,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니까 결국 아트라는 게,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어떤 프레임을 뒤집어씌우고,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떻게 상승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거든. 배우도 어떻게 보면 대중예술가다. 현실에 편승해서 머물고 싶지 않은 이유다. 나는 너무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당당하게 맞설 수 있으니까.

Q. 연약한데 연약한 척 안 하는 사람인건가.
유아인: 되게 강인한데 연약하다. 진짜 센데 진짜 연약하다.
유아인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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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모순적인 말인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유아인: 음. 되게 많이 센 사람들이 많이 연약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연약하고, 나약하고, 심약하고, 병약한 것 같기도 하고. (물을 들이키며) 이건, 사약!(일동 웃음)

Q. 유아인이 나약하고 심약하다니! 믿어 말어?(웃음)
유아인: 이런 말 하면 다들 “네가?” 하면서 안 믿는데, 어릴 때의 나는 마마보이였다. 엄마 젖도 오랫동안 물고 있었다. 친척 집에 가면 화장실도 혼자 못가서 엄마에게 “(소근 소근)화장실 가고 싶어~”하던 굉장히 소심한 아이였다. 살면서 변했다. 남 심경 많이 쓰고, 소심하고, 트리플A 형인데, 그런 것들을 극복하려다보니 많이 세진 것 같다. 누구보다 강해야, 누구보다 나약한 나를 넘어설 수 있으니까.

Q. 극에서 “재벌이 이렇게 놀 줄은 몰랐는데?”라는 서도철 형사(황정민)의 말에 조태오가 “재벌은 어떻게 놀아야 하는데?” 하면서 반감을 표한다. 대중이 재벌에 대해 지니고 있는 선입견. 그런 선입견은 배우에게도 향한다.
유아인: 배우의 삶을 조태오의 삶과 비교해서 보게 되는 게 분명 있다. 재벌 3세로 태어나, 그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괴물이 태오라고 생각한다. 내가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그 ‘자연스러움’이었던 것 같다. 비슷하게, 연예인으로 살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 버리면? 왜 ‘연예인병 들었다’고 하지 않나.(웃음) 그런데 그걸 극복하면 진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 또 배우인 것 같다. 세상에 사람을 배우만큼 관찰하는 직업군도 드물다. 배우만큼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도 드물 거고. 그러니 잘 극복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Q. 방금 ‘징그럽다’는 표현. 당신이 굉장히 즐겨 쓰는 표현인데 정확하게 어떤 의미를 담아 사용하는 건가.
유아인: 아!(웃음)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뭉뚱거려서 징그럽다고 얘기한다. 부자연스럽고, 오글거리고, 의도가 너무 드러나고, 촌스럽고. 그런 모양새, 그런 자세를 모두 ‘징그럽다’고 표현해 온 것 같다.

Q. 디자인도 하고, 잡지도 발간하는 등 다른 분야에도 활발하게 도전중이다. 그건 어떤 의미인가.
유아인: 배우로서의 삶과는 무관한 것 같다. 혹은 배우생활로서의 삶에서 느끼는 갈증을 해소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림 그리는 친구, 사진 찍는 친구, 파인 아트 하는 친구 등 여러 명이 모여서 아티스트 그룹을 만들었다. ‘우리 돈도 벌고 재미있는 일도 하자’는 꿈만 같은 취지다. 혹은 동료의식? 거창하게는 시대정신도 있는 것 같다. 조금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직업이어서 똑같이 일해도 내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누리는 게 있다. 똑같이 대단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시장 논리로, 나이로, 혹은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상황이 갈라지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물감 사기도 어려운 친구들이 있는데, 좀 나눠서 하면 좋지 않나.
유아인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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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유아인에게 시대정신은 뭔가.
유아인: 요즘은 정신이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정신은 너무들 있는 것 같고, 진짜 중요한 건 행동이다. 음…사치스러운 말들로 들릴까봐 조심스러운데, 분노 절망 좌절 슬픔 등 내가 동시대에 느끼는 감정들은 굉장히 많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고 움직이며 사느냐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동지애가 조금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나 우리 세대들은. 형제가 하나 둘 밖에 없는 세대니까. (잠시 멈칫) 아…갑자기 이야기가 너무 깊어지는 것 같은데…

Q. 좋다, 이런 말들. 더 듣고 싶다.
유아인: 자본주의에서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건 없다. 결국에는 누가 못 먹고 살아서 내가 잘 사는 거거든. 부익부빈익빈이고. 그런 면에서 ‘내가 능력이 있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거야’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건 아~주 어글리(ugly)한 일이라고 본다. 결국에는 돌고 도는 거니까. 그래서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본다. 타인에게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게 또 우리나라인데 못난 관심 말고, 예쁜 관심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 말은 자칫 허세스럽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웃음)

Q. ‘소신’으로 바라볼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유아인: 스무 살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진지했다. 유머도 없었고. 온갖 세상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 많은 애였다. 스무 살 짜리 애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찰싹 안 달라붙지 않나. 너무 부자연스러워 보이고. 연예인에 대한 선입견도 없지 않았을 텐데, 그러다보니 ‘유아인 허세’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물론 허세스러울 때도 없지는 않았다. 뭔가를 설정해 놓고 거기에 쫓아가고 싶어 하던 시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설정해 놓은 목표에 내가 다가설 수 있는 인간이냐 아니냐인 것 같다. 허세가 중요한 게 아니고.

Q. 당신도 벌써 서른이다. 서른으로 8개월을 살았는데, 어떤가. 생각했던 것보다 별거 아니던가.
유아인: 아니, 별거다!(웃음) 오늘도 박카스 두 병 먹고 인터뷰 중이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하하하. 내가 세련되고 쿨하지 못한 게, 이런 숫자에 집착한다. 괜히 서른에 어울리는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어른 흉내를 내야할 것 같고 그렇다.

Q. 모든 배우의 40대가 궁금하지는 않은데, 당신은 진짜 궁금하다. 마흔의 유아인.
유아인: 굳이 생존해 있기를!(웃음)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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