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만쥬한봉지

(파트3에서 이어옴) 의기투합한 최용수와 한준희는 여성보컬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 음악 커뮤니티 ‘뮬’에 구인광고를 냈다. 22명의 지원자가 데모를 보내와 최종적으로 2명의 후보를 놓고 고민했다. “지원자 중에서 제가 만든 멜로디에 어울리는 소울풀한 음색과 탁월한 가창력을 가진 만쥬를 선발해 3인조 라인업을 구축했습니다.”(최용수)

카페 인공위성에서 만쥬한봉지의 짤방
카페 인공위성에서 만쥬한봉지의 짤방
카페 인공위성에서 만쥬한봉지의 짤방

쉐이커, 템버린, 카주를 연주하는 리드보컬 만쥬(본명 조아라)는 은행원 집안에서 1남1녀 중 막내로 1987년 1월 2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만쥬는 자신의 ‘짤방(유머러스한 사진)’이 모두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것을 즐긴다는 유쾌한 성품의 소유자. 그는 평탄한 가정에서 아낌없는 지원과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만쥬의 음악적 DNA는 모태시절부터 어머니가 즐겨 들었던 심수봉의 트로트 가락일 가능성이 크다. 동네 노래자랑대회를 휩쓸었던 어머니는 넘치는 끼로 학창시절에 오락부장을 도맡았다고 한다. “제 ‘뽕끼’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형성된 것 같아요. 별명이 ‘이다도시 아줌마’일 정도로 엄마는 말이 빠르고 흥이 넘치는 분입니다.”(만쥬)

만쥬 가족 사진 모음
만쥬 가족 사진 모음
만쥬 가족 사진 모음

고등학생 밴드부에서 알토색소폰을 연주했던 만쥬의 아버지도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가 수준급인 음악애호가다. “노래방을 가면 열창을 하실 정도로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이세요. 제 끼와 음악적 감수성은 자신을 닮은 것이라고 주장하실 정도죠.”(만쥬) 집안의 반대로 연극영화과 지원을 포기한 어머니와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자수성가를 한 아버지는 은행에서 만나 가정을 꾸려 각자의 숨겨진 끼와 음악적 감수성을 만쥬에게 물려주었다. “피아노, 미술학원은 물론이고 수영, 산수, 서예, 영어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평화로운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피아노는 콩쿠르에 나가 몇 번씩 수상하기도 했죠.”(만쥬)

만쥬의 똑똑했던 어린시절 사진
만쥬의 똑똑했던 어린시절 사진
만쥬의 똑똑했던 어린시절 사진

막내딸 만쥬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는 컸다. “어린 시절에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오빠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죠.(웃음) 하지만 의사가 된 모범적인 오빠 덕에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오빠와의 좋은 우애는 제게 큰 행복이고,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만쥬) 등촌초등학교에 입학한 만쥬는 3학년 때 미국 시카고 지사로 발령이 난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갔다. 3년 남짓한 여러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이 즐겁게 섞였던 미국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능력을 배양했다. 미국에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만쥬의 청소년기 사진
만쥬의 청소년기 사진
만쥬의 청소년기 사진

만쥬는 시카고 미도우브룩(Meadowbrook)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어린이뮤지컬, 합창단을 했다. 피겨스케이트를 배워 대회에 출전했고, 노스브룩 주니어 하이(Northbrook Junior High)에 다닐 때 배운 바이올린 실력으로 교내 오케스트라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음악과 가창의 즐거움을 알았습니다. 교내에서 합창 및 뮤지컬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 노래가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특기는 ‘바이올린’, 취미는 ‘노래’가 되었습니다.”(만쥬) 귀국 후, 목동 목일중학교로 전학한 그녀는 오빠가 다니던 명덕외국어고등학교 영어과에 입학했다. “외고에서 좋은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많이 만났지만 워낙 학업경쟁이 치열해 탈모 증상과 시험기간에는 구토증상까지 오는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만쥬)

만쥬한봉지 클럽공연에서 만쥬
만쥬한봉지 클럽공연에서 만쥬
만쥬한봉지 클럽공연에서 만쥬

만쥬는 학창시절, 관현악단의 악기들과 보컬로 구성돼 연주곡과 팝송을 커버하는 세미클래식 동아리 ‘우리’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혼자만 부르던 노래를, 다른 악기들과, 사람들 앞에서 부르고 싶은 마음에 오디션을 보고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정말로 동아리에서 노래하는 낙으로 치열했던 외고 생활을 버텼던 것 같습니다.”(만쥬) 미국에 살았고 외고에서 공부한 덕에 영어 성적은 토익 만점이 나올 정도로 좋았다. 어학에 관심이 있던 만쥬는 영어선생님을 꿈꾸었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교사의 꿈을 접었다.

강원도 대관령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대관령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대관령에서 만쥬한봉지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제2 전공으로 심리학을 선택한 것은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면 발달심리학, 언어심리학 공부가 양육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세대 발달심리학 대학원에서 학부생 연구조교로 2년 남짓 근무하며 심리학도로서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었습니다.”(만쥬)

강원도 강릉 선교장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강릉 선교장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강릉 선교장에서 만쥬한봉지

대학 시절 만쥬는 펑크밴드 ‘그루비 가자미’를 시작으로 모던 록밴드 ‘카르맨’ 등 다양한 밴드활동을 했다. 2학년 때는 팝 밴드 ‘좌락단’ 멤버로 대학가요제 예선에 나갔으나 탈락했다. 3학년 때도 흑인음악동아리 ‘알와이유(RYU)’의 랩퍼 2명과 함께 재도전했지만 또 탈락했다. “그때까지 시험에서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데 음악으로는 두 번이나 탈락하면서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랩 동아리 ‘알와이유’에서 알앤비, 소울 같은 흑인음악을 많이 접해 지금의 음악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만쥬) 만쥬는 졸업을 앞두고 어떤 직업으로 살아갈지 고민했다. 이전까지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좋다는 길을 걸어가는 수동적 삶을 살았던 그는 자신의 삶과 진로를 스스로 결정해야 된다는 현실에 불안감을 느꼈다.

강원도 강릉 선교장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강릉 선교장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강릉 선교장에서 만쥬한봉지

이후 만쥬는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들어갔다. 장학금을 받고 미국 미시건대 교환학생과 여러 기업의 인턴과정을 거쳤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안전하게 대학원에 진학해 좋아하는 심리학 공부를 계속해 대학교수가 될 결심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만쥬는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지원해주신 부모님에게, 자신의 대학원 진학이 부담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힘이 되고 싶어 2010년 외국계기업 존슨앤드존슨 마케팅 부서에 입사했다. “취직 후, 집과 회사를 도는 반복적인 삶에 취미생활과 연애도 변변하게 못했지만 열심히 일했던 직장생활에 의문을 품지는 않았습니다.”(만쥬)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만쥬한봉지

2012년 만쥬의 심경에 변화를 안겨준 사건이 벌어졌다. 지인 두 사람이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연이어 자살을 했던 것. 또한 좋은 감정으로 만나던 남자친구도 갑작스럽게 사고사를 당했고 대학선배 언니까지 위암으로 사망했다. 충격을 받은 만쥬는 진지하게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 인생의 중심은 나’라는 자의식이 생겨나면서 좋아하는 일에 눈을 돌렸습니다. 만쥬한봉지 보컬 오디션을 본 것도 나를 사랑하고 현재를 만끽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만쥬)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만쥬한봉지
강원도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만쥬한봉지

만쥬가 음악을 하겠다며 회사를 그만두자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이어졌다. “의사가 되고 최근 결혼까지 한 오빠는 늘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장남이지만, 저는 멀쩡한 직장 그만두고 나와 음악을 하겠다니 얼마나 걱정이 많으실지 알고 있습니다.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기보다 더욱 더 열심히, 행복하게 해나가는 좋은 모습을 부모님과 저를 아껴주시는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만쥬)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사진제공. 만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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