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 박정범 감독.
‘산다’ 박정범 감독.


‘산다’ 박정범 감독.

[텐아시아=황성운 기자]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절한 삶 속에서 뭘 해도 꼬이기만 하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산다. 남루하고 희망이라곤 없을 것만 같지만, 그래도 살아간다. 그게 삶이다. 박정범 감독의 영화 ‘산다’는 우리 모두에게 이같이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영화가 더 따갑다. 눈에 보이지도 않은, 그래도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희망을 찾아 살아가는 삶을 날 것 그대로 표출한다. 많은 이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리고 말한다. 이게 산다는 것이라고.

매일 아침이면 ‘팍팍한’ 소식이 주를 이루는 현재, 영화라도 밝고 희망차면 좋으련만 박정범 감독은 이를 거부했다.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었고, 이 때문에 본인 역시도 만들면서 힘들어했다. 연출뿐만 아니라 극 중 정철을 통해 영화가 그리는 삶의 한복판에 서 있었으니 어쩌면 힘든 게 당연하다. 그리곤 “내공 부족”이라며 웃음이다. 몸서리치게 힘든 영화를 만든 감독의 웃음,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한 꺼풀 벗겼다.

Q. ‘산다’의 출발은 무엇이었나. 뭔가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박정범 감독 : ‘무산일기’의 실제 모델인 승철과 절친했던 후배 배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가족같이 친했던 친구인데 세상을 뜨고 나서 산다는 게 뭔지 생각해보게 됐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죽는 게 뭐고, 행복은 뭔지, 또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겪게 되는 고통 등을 생각하다가 지금의 영화까지 이어졌다. 그게 5년 걸렸다.

Q. 장편 데뷔작인 ‘무산일기’가 해외를 워낙 많이 돌아다녀서, 두 번째 작품을 시작하는 데 부담이 엄청나게 많았을 텐데.
박정범 감독 : 당연히 많다. 우선 해외 영화제를 다니면, 다른 나라의 동시대 감독들의 영화를 보게 된다. 자극도 되지만, 나도 저만큼 만들 수 있느냔 두려움도 생긴다. 그리고 두 번째 작품이란 부담감도 있고. 시나리오를 오래 고친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 찍는 순간 다짐한 게 ‘어차피 아무리 고민해도 내가 하루아침에 (유명한 감독) 누군가 될 순 없으니까 지금 최선을 다하자’는 거였다. 이상하면 매를 맞겠지만, 그걸 두려워하면 영화를 직업으로 삼지 못할 것 같았다. 조금씩 노력하고 발전하는, 그런 걸 증명하는 과정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Q. 기본적으로 영화는 일종의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주의다. 영화를 통해 뭔가 희망을 얻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그런데 ‘산다’는 너무 처절하다. 현실도 각박한데 영화는 더 처절해서 보는 동안 내내 불편했을 정도다.
박정범 감독 :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만들면서 얼마나 힘들었겠나.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를 찰리 채플린처럼 밝게 그리고 긍정적인 면을 내세운 영화가 있는 반면 이런 영화도 있는 거다. ‘무산일기’도 그랬고, ‘산다’까지는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걸 가공하고, 그 안에서 선함을 끌어내고, 긍정적인 것을 만들어 내길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반문해보면, 이 사회에 분노가 있는 거다. 앞으로 (사회를) 좀 더 이해하고, 해석이 유연해지면 언젠가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사회의 아픔을 전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만들고 싶은 영화도 그런 거다. 쉽게 말하면 내공 부족이다. 하하.

Q.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힘들어도 어떻게든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극 중 모든 인물이 그렇다.
박정범 감독 :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조건이 극한에 있는데, 원래는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느껴보라고 만든 영화는 아니다. 만들면서 느꼈다. 찍는 동안 정말 힘들었고, 안 좋은 일도 많았고, 많은 사람이 혹사당했다. 영화 끝난 1년 후인 지금도 느껴질 정도다. 여름에 찍었으면 이렇게 혹독한 그림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시나리오도 고통스럽고, 과정도 그러다 보니 영화 자체가 점점 더 그렇게 된 것 같다. 7kg 감량하고 들어갔는데 끝나고 나니 13kg이 빠졌다. 촬영감독은 8kg, 조감독은 7kg. 촬영 끝나고 사진 찍은 거 보면 탄광에서 노동하다 나온 것 같이 퀭하다. 하하. 죄송하고 고맙고 그렇다.

박정범 감독.
박정범 감독.
박정범 감독.

Q. ‘산다’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인물이 ‘나의 일부’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박정범 감독 : 극 중 수연(이승연)은 롤 모델이 있긴 하다. 그런데 그분만이 아니라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 역시도 그랬고. 즉, 누군가의 특수성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우울과 공포 등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사실 너무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고, 나한테도 그런 기억들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저소득층, 빈민층 등 사회 취약계층이 이런 삶에 노출돼 있다. 또 정리해고, 부당해고 등 역시 너무나 흔한 이야기다. 그걸 축소화시켜 된장 공장으로 치환했을 뿐이다. 나 역시 막노동 하고 돈 못 받아서 잡으려 다녀보기도 했고. 그런 보편적인 의미에서 ‘나의 일부’라고 한 것이다.

Q. 극 중 된장 공장이 실제 아버님이 운영하는 거라고. 그럼 꽤 유복하게 자란 거 아닌가.
박정범 감독 : 유년시절은 가난했다. 그리고 단편을 찍으면서 돈은 벌어야 하니까. 막노동도 하고, 배도 타보고, 공장에서 일도 해봤다. 그리고 집이 부자인 것과 내가 부자인 건 별개니까. 하하.

Q. 최근 사회에 ‘갑을’이 화두였다. 정철 역시 어느 순간 갑이 됐다, 다시 을이 된다.
박정범 감독 : 존재를 위해 뭔가 소비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가 생겼고, 계급이 나뉠 수밖에 없다. 그런 근본은 이기심의 충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나는 인간의 ‘선’ 의지를 믿는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기본 조건은 인간이 인간을 믿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 상층부로 갈수록 갑의 권력을 휘두르면 그 폭력성이 어마어마해지고, 파급효과가 다르다. 된장 공장이 아니라 대기업이라고 생각해 보면 된다. 그렇지만 본질은 똑같다. 그건 이기심과 탐욕의 결정물인 거지 자본가만이 가진 속성은 아니다. 단순히 대기업이 나쁜 게 아니라, 도덕성이 깨지고 있는 게 문제다. 무엇보다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더 모순이고, 문제다.

Q. ‘무산일기’도 그렇고, 이번에도 연출과 출연을 동시에 했다. ‘나에게 영화는 한 덩어리’라는 말을 했는데, 나눠서 해볼 생각은 없었나.
박정범 감독 :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일 때 하는 것뿐이다. 꼭 배우를 하기 위해 영화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한 덩어리라는 것은 내가 연출을 하지만, 촬영이 도와달라고 하면 촬영하고, 조명이 도와달라고 하면 조명을 도와준다. 이처럼 영화 만드는 일에 있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의미다.

Q. 본인의 출연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 캐스팅도 흥미롭다.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촬영 1년 전에 캐스팅했다고.
박정범 감독 : 2~3년 전부터 그분들을 생각했다. 톱 배우나 알려진 사람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분들이 나오면 일상성이 깨질 것 같았다. 그래서 대학로에서 좋다는 연극은 다 보러 다녔다. 열심히 찾았는데 운이 좋게도, 정말 자기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사람을 만난 거다. 명훈 형은 주먹으로 100대는 맞았을 거다. 승연 선배는 채찍질 때문에 등에 상처가 어마어마하게 났다. 그런 육체적 고통도 있고, 시간의 고통도 있고. 여기에 내러티브가 가진 우울함 때문에 정신적 고통까지 여러 가지를 잘 인내하고, 소화해주신 분들이다.

Q. 너무하다 싶던데. 이승연 배우는 극 중 역할을 위해 옥탑방에 몇 개월 살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박정범 감독 : 해명하고 싶은 건 옥탑방에서 혼자 살아보라고 한 적은 없었다. 스스로 그렇게 결정하고 준비한 거다. 물론 방조죄는 있다. 하하. 알고 있었는데 하지 말라고는 안 했다. 정말 고마웠다.

Q. 물론 그 덕분에 정말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그런데 극 중 수연이 터미널에 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또 정신이 온전하다가도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변하고.
박정범 감독 : 공황장애는 그런 발작적인 증세로 나타난다. 한번 그러고 나면 한동안 잊고 살고, 또 터지고. 여기에 약간의 우울증 기조가 있다. 또 터미널을 가는 이유는 앞서 실제 모델이 있다고 했는데 그분이 그랬다. 섹스를 통해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증명함과 동시에 그게 나쁜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하는 거다. 근데 그게 이 세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극 중 수연은 잘못인 걸 알면서도 저지르고,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그 일을 반성한다. 근데 현실에선 저지르고 나서 반성하지 않는다. 그게 문제다. 이 시나리오를 쓸 때 가지고 있던 질문이었다.

박정범 감독.
박정범 감독.
박정범 감독.

Q. 또 정철이 수연의 딸인 하나(신햇빛)를 알뜰살뜰 보살피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철이 하나를 보살필 만큼 여유가 있는 삶은 아니다.
박정범 감독 : 아버지도 없고, 누나는 정신적으로 안 좋고, 지켜줄 사람은 정철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등을 달면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이야기다. 영화 시작할 때 뜯었던 문짝을 다시 달아주는 게 그런 의미다. 물론 ‘급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 있지 않나. 나쁜 짓을 하다가도 갑자기 뭔가 깨달음이 전해질 때 말이다. 그런 도화선이 된 게 하나고, 하나를 지켜주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만약 하나가 없었다면 살인을 했을 수도 있다.

Q. 처음 접해보는 호흡이라는 이은우 배우의 말은 어떤 의미인가.
박정범 감독 : 내가 하는 연기가 한 템포 느리다. 바로바로 주고받는 호흡이 아니라 나는 어떤 식의 대사건 한 번 생각하고 뱉는다. 그걸 버거워 하는 것 같다. 단순히 물리적 시간을 넘어 사고의 시간인 것 같다. 나는 이야기를 할 때 뭔가 생각하고, 호흡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연기할 때 엇박자가 많다. 어떤 분은 어색하다고 하고, 또 어떤 분은 사실적이라고도 한다. 나중에는 은우 씨가 이해했다. 내가 감독인데 이해해야지. 하하.

Q. 명훈 역의 박명훈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박정범 감독 : 멀쩡한 사람 바보 만들었다고. 하하. 명훈 형 아내, 즉 형수가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박 감독님하고 있으면서 바보가 됐다’고 한다.

Q. 아버지의 출연도 그렇다. 원래 연기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박정범 감독 : 전혀 없으셨다. 아버지는 체육학과를 나왔고, 테니스 선수였다. 평생 운동만 하셨던 분이다. 또 강원도에서 된장 만드시는데 육체노동을 직접 다 하신다. 또 젊었을 때 운동을 했기 때문에 몸으로 살아낸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런 것들이 내가 만들려고 하는 이미지와 닿아 있었다. 영화에서도 사장이지만, 부르주아 느낌은 아니다. ‘무산일기’ 형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 때도 이야기했던 건데 사실 몇 년 동안 가족들과 대화를 안 했다. 소통이 없었던 시간에 대한 죄스러움 등이 있다. 그런데 같이 영화를 하면 이야기도 많이 하고, 또 아버지와 나의 시간이 고스란히 영화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 의미도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에 위안이 생긴다. 상황들이 안 좋아지면 나쁜 마음이 들다가도 아버지가 있으니까 좀 더 이해하는 방향으로, 견디는 방향으로 간다. 아버지 계시는 데 나쁜 사람이 될 순 없으니까. 하하.

Q. 그런데 사실 연기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박정범 감독 : ‘무산일기’의 전신인 단편 ‘125 전승철’을 찍을 때 아버지께 도와달라고 했다. 그땐 돈도 없고, 스태프도 3명 정도여서 부담감 없이 편하게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무산일기’는 2~30명, ‘산다’는 4~50명이니까 부담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거다. 계속 그럴 테니 조금 즐기시라’고 했다. 아버지도 평생 기억에 남는 경험을 하셨을 것 같다.

Q. 만약 아버님이 다른 작품에 캐스팅된다면.
박정범 감독 : 그럼 그땐 내가 매니저로 가야지. 하하.

Q. 처음에는 ‘도와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면, 지금은 연기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나.
박정범 감독 : 농담처럼 장편 영화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왔다며 스스로 연기자라고 인정하고 계신다. 가족들이 봐도 신기하다. 무대 인사도 하시고, 해외 영화제도 가신다. 아버지는 배우 자격으로, 어머니는 매니저 자격 그리고 나는 감독으로. 소중한 추억이다. 로카르노 영화제는 큰 영화제라서 레드카펫 밟을 때 어마어마하게 플래시가 터진다. 그걸 보고 어머니가 정말 소녀처럼 좋아하시더라. 또 부모님하고 같이 나가는 영화제에선 다 상을 탔다. 그래서 더 기분 좋다. 부모님 때문에 주시는 건가. 하하.

박정범 감독.
박정범 감독.
박정범 감독.

Q. 해외 영화제 이야기가 나왔으니, ‘산다’도 ‘무산일기’ 못지않게 해외를 많이 돌아다녔다. 해외에서의 반응이 궁금하다.
박정범 : 우리나라 관객하고 똑같다. 우울한 장면, 폭력적 장면에서는 눈 돌리고. 그런 보편적 정서는 같다. 한 가지 차이는 서유럽 국가, 흔히 말하는 선진국의 일반 관객들은 영화를 들여다보는 자세가 다르다. 그들은 우리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제3세계 또는 후진국 누군가의 이야기라고 보는 것 같았다. 그들에겐 같이 살아가는 느낌이 아니라 영화적 텍스트로서 읽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제에 초청받나 싶기도 하다. 참 아이러니하다. 로카르노 영화제였는데, 4,000석 규모 극장에 2,000명 이상 관객이 들어왔다. 끝날 때까지 남아 있던 분들은 나가면서까지도 박수를 친다. 로카르노는 관광도시인데, 다들 여유로워 보인다. 그래서 어둡고, 우울한 영화를 볼까 싶었는데, 이걸 텍스트로 읽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아이러니했다. 그 경험이 상당히 쇼크였다.

Q. 그렇다면 ‘산다’를 통해 전달됐으면 하는 게 있나.
박정범 감독 : 산다는 게 뭐냐, 이런 거창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며칠 뜯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잘못은 하지만 제로섬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을 믿는 것, 그 믿음이 이 세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영화에선 그게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Q. 지금도 러닝타임이 긴데, 원래는 더 길다고.
박정범 감독 : 지금 버전이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오랫동안 봤고, 많이 잘라보기도 했는데 버리고 싶지 않은 게 많다는 거다. 영화를 보신 이창동 감독님이 ‘얘기를 많이 할까 봐 안 보여줬느냐’고 하시더라. 그런 것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감독님이 이야기하면 파급효과가 크다. 마치 필살기를 맞은 느낌이랄까. 하하. 그걸 떠나서 5시간짜리 영화, 말이 안 되더라도 한 번쯤은 내 맘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것 같다. (참고, 박정범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시’의 조감독을 맡았다.)

Q. 그렇다면 이번에 보여주지 못한 뒷부분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나.
박정범 감독 : 역시나 긍정의 힘은 허락되지 않는다. 다시 파멸로 간다. 파멸 속에서도 또 희망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영화 전체 엔딩에서는 정철이 누군가에게 구원을 받는다. 그게 정반합이라고 생각했다. 힌트는 강 사장 가족에게 뭔가가 있다. 10년 후에 감독판을 개봉하게 되면 봐 달라. 하하.

Q. 박정범 감독에게 영화는 무엇인가.
박정범 감독 :
나한테는 천직이다. 이 일을 하고 있을 때,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그러므로 가치 있게 한 작품 한 작품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직업도 그렇겠지만, 영화라는 일이 깨끗하고 순수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돈을 내고 영화를 보지 않나. 로비나 뇌물을 먹여서 되는 게 아니다. 그 과정이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다. 물론 돈이 있어야 찍고, 찍고 나서도 돈이 있어야 살아가니까. 하하. 많은 사람이 보면서 가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다. 지금 그 절충점을 찾고 있다.

Q. 어떤 영화를 하고 싶은 건가.
박정범 감독 : 앞서 말했던 ‘인생은 아름다워’, 채플린이 했던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등 그런 영화를 하고 싶다. 영화제를 많이 가는 게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님과 손잡고 봤던 ‘구니스’ ‘이티’ 등도 정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긍정적 가치를 치우침 없이 다루면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영화를 하고 싶다.

Q. ‘무산일기’ ‘산다’ 등 두 편의 영화는 저예산 독립영화다. 소위 말하는 상업영화에 대해 생각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정범 감독 : ‘산다’도 독립영화치곤 돈을 많이 썼는데 회수가 어렵다. 어떤 영화를 만들건, 손익분기점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남의 돈을 마구 써서 자기 혼자 예술을 하고, 그런 건 안 하고 싶다. 이번에도 예산이 많이 오버됐는데,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상당히 안 좋다. 꼭 사기 치는 것 같고. 그리고 흥행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의 재분배를 할 수 있게 되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Q.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박정범 감독 : 몇 가지 아이템이 있다. 사극 액션도 있고. (Q. 사극 액션?) 거창해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산다’도 어느 정도 액션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하. 그 시대에 어떤 격정적인 한 때를 다큐처럼 보여주는 영화가 될 것 같다. 또 미스터리 스릴러, 누아르, 휴먼드라마도 있다. 여러 가지 아이템 중에 뭘 할지 고민 중이다. 다 하고 싶은 아이템이다. 그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황성운 기자 jabongdo@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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