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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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4에서 이어짐) 잘못도 없는데 왜 동아리를 나가야하는가 싶어 탈퇴했던 밴드 동아리로 돌아갔다. 직접 통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불러보니 완전 알몸 상태가 된 느낌을 받았다. 이제까지 들어왔던 노래와는 느낌이 다르고 신선했다. 친하게 어울렸던 조용호는 이미 노래를 만들고 있어 자극이 되었다. 노래를 만들기 위해 몰입하는 작업이 재미났다.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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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교대 3학년이 끝나갈 무렵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쓰기 시작한 권나무는 졸업 때까지 30곡이 넘는 창작곡을 만들어 갔다. “술 마시다 동아리 형들이 제가 만든 노래를 불러보라고 해 부르긴 했지만 본격적인 음악활동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헌데 노래를 만들면서도 저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 대한 원망은 도무지 해소가 되질 않더군요. 그 때, 제가 평소에 너무 경계 없이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오해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질책하며 스스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권나무)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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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반이 된 권나무는 임용고시 준비에 들어갔지만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워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2009년 첫 교사 임용고시에 떨어졌다. 졸업 후, 진주에 있기 싫어 김해로 돌아가 시험 준비를 했다. 아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김해에서는 집에 틀어박혀 공부하고 노래를 만들며 지냈다. 어느 날, 대학 동아리 후배가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구입해 자신의 노래를 녹음해 보았다. 재미있었다. 또 시험에 떨어지자 기간제 교사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영원히 도망자가 될 것 같은 패배감이 밀려와 삼수를 하기 위해 다시 진주로 갔다.

2010년 TRAVIS 내한공연 사진이 걸린 임용고시 공부 책상 풍경
2010년 TRAVIS 내한공연 사진이 걸린 임용고시 공부 책상 풍경
2010년 TRAVIS 내한공연 사진이 걸린 임용고시 공부 책상 풍경

“진주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끝장이란 생각에 학교 앞에 하숙집을 잡아 열심히 공부만 했습니다. 시험을 치를 지역 선택으로 고민했죠. 갈등을 빚었던 동창들이 다 경남을 지원하기에 교직에서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아 피하고 싶었고 현실적으로 경쟁률도 적당하고 여행을 가서 본 변산반도의 자연과 낮은 산세가 마음에 들어 충남을 지원했습니다.“(권나무) 세 번째 응시한 임용고시에서는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휴식 기간을 가지면서 새 마음으로 교직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곧바로 2012년 3월, 충남 서천의 한산초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기타와 이불만 달랑 들고 타지로 갔다.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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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을 타고 ‘큐브 스트리트’라는 앰프를 구입했다. “앰프를 구입하니 밖으로 나가 가슴 속 응어리를 해소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앰프를 들고 몇 번이나 서천 청소년문화회관 앞 공터와 읍내 시장 거리로 나갔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돌아왔습니다.”(권나무) 4번의 실패 끝에 권나무는 그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날에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성공했다. “한 해가 저무는데 이번에도 하지 못하면 영 못할 것 같은 조바심으로 눈이 펑펑 내리는 이브날 밤 10시에 거리로 나갔습니다.”(권나무)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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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조차 없는데도 용기가 나질 않아 망설이다 도로에서 한 참 떨어진 넓은 공터에 앰프를 세팅해 기타를 치며 자신의 노래 ‘밤하늘로’를 처음 불렀다. 그때가 자정을 넘긴 12시 5분이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가운데 겨우 노래 한 곡을 불렀죠. 제 노래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이제까지 도망만 치다가 혼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는 뭔가를 해냈다는 가슴 벅찬 감격이 밀려오더군요.”(권나무)

2011년 기간제교사로 근무(왼쪽), 2012년 첫 부임지 서천 한산초등학교 학예박표회
2011년 기간제교사로 근무(왼쪽), 2012년 첫 부임지 서천 한산초등학교 학예박표회
2011년 기간제교사로 근무(왼쪽), 2012년 첫 부임지 서천 한산초등학교 학예박표회

해가 바뀐 2013년 1월, 권나무는 군 입대 문제로 김해 화정초등학교 학습 도움실에서 장애아들을 돌보는 공익근무를 2년 동안 했다. 근무를 하지 않는 주말에 본격적으로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혼자서 부산 해운대로 원정공연을 가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경기도 부천에 있던 만화가 사촌형 권기현의 작업실에 보내준 자신의 음원을 듣고 마음에 든 형 의 만화가 친구가 결혼식 축하공연에 초대했다. 느닷없이 홍대 앞 클럽 바다비에서 열렸던 축하공연에서 권나무는 펑크밴드 요괴인간 등과 함께 공식 데뷔무대를 가지게 되었다.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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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결혼식 축의금으로 5만원을 낸 하객에겐 신랑의 만화와 권나무의 cd를 함께 선물로 주기로 했다. 신랑이 음반 70장을 주문을 해 임용고시 수험생활 중 녹음해 둔 12곡을 묶어 가내수공업으로 첫 비공식 EP를 제작했다. 이후 클럽 바다비에 오픈 마이크를 통해 음악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공연을 다니며 서울 뮤지션들의 활동을 보고 음반 200장을 더 만들어 주변 친구에게 선물로 보냈습니다.”(권나무) 이후 여기저기서 그를 찾기 시작했다.

2011년 진주에서 거리공연 (왼쪽), 2012년 지로 조용호와 함께
2011년 진주에서 거리공연 (왼쪽), 2012년 지로 조용호와 함께
2011년 진주에서 거리공연 (왼쪽), 2012년 지로 조용호와 함께

경남 창원에 공연하러 내려갔다가 조용호를 다시 만났다. 공연을 함께 한 것을 계기로 한동안 함께 진주, 창원, 마산 등지에서 공연을 했다. 이후 2014 어라운드 캠핑 페스티벌, 괴산 페스티벌 등 다양한 공연 무대와 경남MBC 라디오 ‘오후의 발견’을 6개월 동안 진행도 했다. 서울과 지역에서 한 달에 10회 정도의 공연을 치르면서 녹음해 두었던 7곡을 모아 2014년 2월에 두 번째 EP를 제작했다. 그러다 우연하게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전했다. “함께 공연했던 밴드가 헬로 루키에 도전한다는 글을 SNS에서 봤습니다. 솔직히 뭔지도 잘 몰랐지만 음원을 제출하면 된다고 해 2번째 EP에 수록된 ‘어릴 때’, ‘노래가 필요할 때’, ‘내 탓이 아니야’, ‘여행’을 제출했습니다. 저 같은 무명 뮤지션의 노래를 누가 들어줄까 기대가 전혀 없었는데 1차 음원심사에서 붙었다는 연락을 받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권나무)

클럽 바다비 (2013년), 벨로주 아메노히 공연 (2014년)
클럽 바다비 (2013년), 벨로주 아메노히 공연 (2014년)
클럽 바다비 (2013년), 벨로주 아메노히 공연 (2014년)

역대 최고의 경쟁 속에 홍대 앞 V홀에서 경연을 치렀다. ‘여행’, ‘어릴 때’를 불러 밴드 크랜필드와 더불어 5월의 헬로루키로 선발되었다. 이후 바다비에서의 레코드 페허 때, 북극곰사운드 송대현대표가 음반제작을 제의했다. 함께 뽑힌 크랜필드 멤버들에 대한 호감으로 합류해 2014년 11월 20일에 첫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평단과 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나름 상승하는 분위기 속에서 앨범을 제작했기에 조금은 기대했지만 2015년 2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어릴 때’로 최우수 포크노래 부문을 수상을 하자 얼떨떨했다. “이제는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 되는구나하는 격려 같더군요. 다음 앨범부터는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무게감도 느껴집니다.”(권나무)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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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를 구원하고 치유해 준 것은 자신의 노래였다. 하지만 자신의 노래가 청자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노래는 계속 하고 싶어요. 지금 권나무라는 뮤지션은 내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기에 이야기 거리가 고갈되던지, 없는 걸 억지로 만들어낸다던지, 예술적 관점에서 진정성이 훼손되는 거짓말 같은 노래를 만들게 되면 더 이상 활동을 못할 것 같습니다. 그게 유일한 두려움입니다.”(권나무) 그의 창작 샘에선 아름다운 곡들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계속 곡을 쓰고 있지만 예전에 만든 노래가 많아 여름에 녹음해 금년 내로 2집을 낼 계획입니다. 3집을 만든다면 포크에 기반을 둔 신디사이저가 들어가는 세련된 곡도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권나무)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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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지만 큰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고 싶은 욕망이 생긴 그는 좋은 음악을 계속한다면 근사한 음악동지와 친구들을 만날 것이란 기대감을 품고 있다. “저란 인간은 엄청 대단한 걸 만들겠다, 대가가 되겠다는 열망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얼마나 또렷하게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먼 미래에는 아름다운 것들을 제 음악에 배치할 수 있는 멋진 음악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살짝 생기네요.”(권나무)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ldh@naver.com
편집. 최진실 기자 true@tenasia.co.kr
사진제공.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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