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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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에서 이어짐) 대학생이 되어 독립을 한 권나무는 ‘세상에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노상방뇨를 하고 화분을 깨고 자동차 백미러를 부수는 객기도 부렸다. “분노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도 해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담배도 피고 폭음도 해보고 수업도 빼먹는 일탈적 생활을 해봤죠. 덕분에 졸업도 못할 뻔 했지요.(웃음)”(권나무) 밴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여자 보컬후배와 연애도 했다. “처음 연애했던 여학생은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는 아이었고 동아리에서 사귄 여자 친구는 부잣집 딸이었죠. 살아온 삶 자체가 저와는 다른 아이였습니다. 밴드가 제 삶의 중심이었던지라 과외를 4~5개나 해 돈을 벌어 밴드 후배들에게 무엇이든 사주는 게 좋았습니다.”(권나무)

권나무 대학시절 동아리친구들과 여행 2011년
권나무 대학시절 동아리친구들과 여행 2011년
권나무 대학시절 동아리친구들과 여행 2011년

가족 같이 생각했던 동아리 멤버들로 인해 권나무 인생을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인생에서 만약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지만 만약 그의 인생에서 이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는 싱어송라이터 권나무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교양이 넘쳤던 여자 친구가 갑자기 “너 쓰레기 같은 놈이야!”라고 말을 해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동아리 내에 동갑인 여자 선배가 그를 사실과 다르게 나쁜 놈으로 매도를 하며 그녀를 괴롭혔던 것.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여자 친구가 저를 믿는 다면서도 저에 대한 나쁜 말들이 너무 힘들었던 거지요. 이야기를 다 듣고 저도 펑펑 울었습니다. 그런 과정이 일주일에 2~3번이나 계속되어 여자 친구의 말을 A4용지 2~3장에 적어 이거는 이게 사실이라는 반박 편지를 썼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저를 믿지 못하니 결국 헤어졌습니다.”(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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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권나무에게 충격을 안겨준 헛소문은 무수했다. 그 중 자신을 음해했던 여자선배가 사는 원룸에 찾아가 맥주병을 깨는 소란을 부려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던 ‘바나나 사건’은 지금도 그가 지워내질 못하는 아픈 기억이다. “당시 비 오는 어느 날, 저녁 8시에 동아리 여자후배가 우산을 가지러 제가 사는 옥탑 방에 왔습니다. 비를 맞았기에 수건을 주고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친구 집에 바나나를 주러 간다고 하더군요. 5분 정도 이야기하고 바나나 반 만 준다고 해 받은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자후배를 집으로 불러 나쁜 짓을 하려고 해 억지로 반항해 겨우 빠져나왔다는 식으로 소설을 쓰더군요.”(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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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사람에 대한 배신을 처음 느꼈다. 이성을 잃은 권나무는 도저히 참기가 힘들어 동아리 전원을 모아놓고 따졌다. “인간관계, 이해타산 때문에 다들 거짓말들을 하더군요. 한 명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더군요. 선배 후배 할 것이 욕 퍼 붙고 집에 와서 흰 종이에다 이런 쓰레기 같은 곳에서 너희를 가족으로 믿었다는 게 수치스럽다고 적어 동아리 연습실 문에 붙여놓았죠. 같은 기수 아이들은 보컬이 나간다고 하니 당황하면서도 제가 광분을 하니 아무도 제 편이 되 주질 않아 외로웠습니다. 그때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감에 학교를 그만두고 동아리도 나가려했습니다.”(권나무)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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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동아리를 탈퇴한 2학년 말부터 수업도 가지 않고 집에서 술과 음악에만 빠져들었다. 대인기피증세도 찾아와 1년 넘게 사람 얼굴을 보지 못했다. “죽고 싶었습니다. 아니 그 아이들 모두를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지만 그땐 사람관계에 너무 민감해져 몸까지 아파지더군요. 그래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철학책을 읽고 글 쓰는 일에 몰두했습니다.”(권나무) 어릴 때 권위에 대항해 자유롭게 살려고 노력했던 권나무는 너무나 외로웠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한동안 칩거를 했다. 그때부터 듣는 음악도 복잡한 마음을 위로해 주는 편안한 노래를 찾아 듣게 되었다. “다 착했던 아이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는지 너무 슬펐습니다. 심사가 너무 복잡하니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음악들을 찾게 되더군요.”(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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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홍역을 겪은 후, 대학 4학년 때부터 헤어진 여자 친구가 선물했던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기본 코드도 몰라 스트로크부터 했는데 코드 몇 개를 짚기 시작하면서 바로 곡을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제목도 없는 동요 같은 노래들이지만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말아요’ 등 40~50곡이나 만들었습니다.”(권나무) 권나무는 5살부터 어머니가 동네 피아노 학원에 보내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헌데 지금도 악보를 쓸 줄 모른다. “피아노 학원가는 걸 너무 싫어했어요. 체르니40 중간 정도까지 쳤는데 학원에서 너무 때리면서 가르쳐서 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악보 없이 연주하고 가사에 코드만 표기해 멜로디를 외워서 부릅니다.”(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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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옥탑방에서 샤워를 하다 거울을 보았다. 자신의 눈이 분노의 화신처럼 불타오르는 걸 보고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새로운 사랑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싶더군요. 무엇보다 건강해지기 위해 펑크 음악을 들으며 쌍욕을 하던 혈기와 객기에서 이별하려 노력했습니다. 폐쇄적인 생활이 너무 싫어 외출할 때 바람소리를 들으려 그 좋아하는 이어폰도 벗었습니다. 그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콤플렉스에 빠져 좋아하지도 않는 ‘시크릿’ 같은 힐링 소설들까지 많이 읽었으니까요.”(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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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기 극복과정은 눈물겨웠다. 거울을 보고 억지로 웃는 연습을 하고 옷도 의식적으로 밝은 색을 입었다. “마음 속으로는 저를 음해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싶었지만 다 잊은 척하며 동아리에 다시 들어가 제가 먼저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만나면 다시 설득을 하는 제 모습에 스스로에게 회의감이 들었습니다.”(권나무) 좋은 사람은 변명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확실한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년 동안 수없는 상처들이 반복되었을 때, 나이 많은 동아리 후배 조용호가 함께 눈물을 흘려주었다.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용호 형의 위로로 서러움을 어느 정도 날려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형의 음악에 영향을 받아 악을 쓰는 밴드음악이 아닌 사람의 마음의 위로해주는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1집에 있는 ‘노래가 필요할 때’, ‘밤하늘에’ 같은 곡입니다.”(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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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홍역을 치른 권나무는 노래할 때 움츠러드는 버릇이 생겼다. “솔직히 처음 노래 시작할 때 여자 팬들만 보면 대학시절 동아리 사건이 생각나 겁이 덜컥 났습니다. 제 노래를 좋아해주는 감사한 여자 팬들인데 뭔가 엮일 것 같으면 한발 빼버리고 뒤풀이도 의도적으로 참석하지 않게 되더군요. 바나나를 주고 간 그 여자아이와 제 여자 친구는 저를 음해했던 선배 언니의 울타리 밑에 있어 그랬으려니 이해합니다. 5~6년이 지난 지금은 그 여자아이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으니까요.”(권나무) (PART5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최진실 기자 true@tenasia.co.kr
사진제공.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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