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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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이정화 기자] 소녀의 말투가 들렸다. 시원하게 퍼지는 웃음소리는, 소년의 것 같았다. 묘한 인상. 꽃처럼 가냘파 보이지만 바람에 쉬이 꺾일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손수현. KBS2 ‘블러드’에서 민가연 역할로 첫 드라마에 도전했던 손수현은 사실, 일본 배우 아오이 유우의 닮은꼴로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실제로 마주하니, 하얀 피부, 웃을 때면 살짝 반달이 되는 눈매가 정말 그러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녀가 누군가와 비슷하다는 생각은 자취를 감췄다. 자신만의 향기를 지닌 꽃이 눈앞에 있을 뿐. 아름다움을 과시하지도, 향기를 뽐내지도 않았다. 그저 해맑게 웃고 떠드는 동안 그 매력은 이야기를 타고 이쪽으로 천천히, 하지만 끊임없이 전달됐다.

Q. KBS2 ‘블러드’가 끝나자마자 다른 작품을 촬영한다고 들었다.
손수현 : OCN ‘실종느와르M’에서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을 맡게 됐다. ‘블러드’의 가연이랑은 이미지가 좀 다른 캐릭터다. 불량스러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 게, 극중에서 욕을 했다! 그런데 방송에선 잘릴지도 모르겠다. (웃음) 열심히 찍고 있으니 재미있게 봐 주셨으면. 5월 9일이었나? 그날 방송된다.

Q. 프로필을 보니 영화 ‘테이크 아웃’과 ‘오피스’가 필모그래피로 올려져 있더라.
손수현 : ‘테이크 아웃’은 오픈 준비 중이고, ‘오피스’는 8월 개봉 예정이다. ‘오피스’는 이번에 칸 영화제에 공식적으로 초청받았다. (환하게 웃으며 박수) 정말 잘 됐죠~ 너무 기뻤다. 고아성 씨랑 (박)성웅 선배님이 가신다고 하더라. 함께 출연한 작품이 칸에 진출하니, 더 많은 분들이 봐주실 거 같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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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출연한 영화 중 ‘신촌좀비만화'(2014)는 ‘블러드’가 방영할 때쯤에야 보게 됐다.
손수현 : (조그마한 목소리로) 안돼… 왜 보셨어용. 너무 창피하다. 왜 또 어렵게 구해서 보셨나. 어떡해.

Q. 어쨌든, 손수현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함께 접한 건 ‘블러드’가 처음이었다. ‘어, 느낌 괜찮네’ 싶었다.
손수현 : 아이구, 아니다. 감사하다. 이러다가 인터뷰 끝에 가서 연기 못했다고 막 뭐라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 하하.

Q. 자신이 연기한 모습이 브라운관에 나오는 걸 봤을 때 어땠나.
손수현 : 처음에는 거의 못 봤다. 내 모습이 너무 민망하고 어색했다. 그래도, 봐야 연기가 개선될 테니깐 진짜 눈 딱 감고 봤는데, 나중에 가서는 조금씩 익숙해지더라. 불편한 건 여전하고, 거슬리는 것들도 너무 많지만, 이젠 그걸 참고 볼 수 있게 됐다.

Q. 어떤 부분이 특히 그랬을까?
손수현 : 뭐랄까. 난 저 때 저런 감정으로 저 대사를 하지 않았는데, 약간 이런 것들 있잖아. 분명히 이 감정으로 얘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제삼자 입장에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 이게 나 혼자 뭔가를 느꼈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다 그랬지. 기술적이라 하면 (어딘가로 시선을 두며) 여기가 아닌 좀 더 위를 봐야 했다던가 하는 것들이 그랬다. 감정적인 부분에선 난 분명히 기쁘게 얘기했는데 왜 이게 하나도 안 기뻐 보이지? 또, 유리타(구혜선) 선배님한테 혼났을 때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왜 그렇게 안 보이지? 아하하.

Q. 민가연이란 역할을 통해 연기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건가.
손수현 :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 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사를 보고 어떤 방향으로 고민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전엔 어렴풋했던 것이 그나마 좀 확실해지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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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혹시, 낯선 사람들과 바로 친해지는 편인가?
손수현 : 낯은 별로 안 가린다. 지금 낯 가리는 것 같나?

Q. 아니, ‘블러드’ 끝나고 ‘실종느와르M’으로 바로 넘어가서 어색한 건 없었나 해서 물었다.
손수현 : 다들 처음 보는 거라 어색하긴 한데, 그런 걸 별로 신경 쓰진 않는다.

Q. 그런 것 같다. 직접 만나 보니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자연스러운 느낌도 있다.
손수현 : 진짜? 아하하. ‘실종느와르M’으로 바로 간 건 아니었다. ‘블러드’가 끝나고 일주일 정도 텀이 있었다. 그 사이에 인터뷰도 돌고, 속상해하기도 하고, 반성도 하고 그랬다. ‘블러드’를 하면서도 그렇고, 끝나고 나서도, 아쉬운 게 너무 많아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Q. 건실한 속상함이었네.
손수현 : 흐흐. 그런가. 그래도 오랜만에 뭔가 삶의 의지를 찾은 것 같다! (웃음) 연기를 하기 전 1~2년 동안은 권태로움 같은 것이 있었거든. 아쟁을 10년 넘게 하면서 당연히 이건 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연기를 시작하기 전 2년 동안은 ‘내가 왜 이걸(아쟁) 하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이걸 좋아서 하는 건가,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해서 익숙해서 하는 건가, 진짜 이걸 하고 싶은 건가. 이런 고민들. 이걸 하고 싶으면 뭘 어떻게 더 해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 참 많이 했다. 그래서 우울하기도 했고.

Q. 힘든 시기였겠다.
손수현 : 어렸을 땐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라는 생각도 들더라. 열정이라는 게 나이와 함께 사그라들었나 하고. 그때가 스물여섯 초반이었는데도 그런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스무 살 초반까진 진짜 열심히 했는데… 이게 어른이 되는 건가 싶기도 했고. 하하. 그런데 요즘 들어 생각해 보니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그랬던 거였다. 그때 고민을 할 때 다시 아쟁을 하는 의미에 대해서 찾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걸 하면서 무엇이 좋았는지에 대해서. 그런데 그런 생각은 못했다. 그냥 왜 하지, 해야 하나, 왜 하지, 이렇게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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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은 어떤가. ‘아쟁을 왜 해야 했나’에 대한 답은 찾았나.
손수현 : 아니. 그 고민을 하다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된 건데, 사실 지금도 약간의 책임감 같은 게 있다. 한국 음악이 너무 좋은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게 안타까웠거든. 결국 지금은 전공자처럼 하고 있진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하늬 선배님처럼 연기를 하면서 공연도 하고 싶다. 이하늬 선배님이 가야금을 한다고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잖아. 그런 것이 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 테니깐. 전공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계속해나가고 싶다.

Q.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손수현 : 도움이라 하면 내가 뭐라도 된 것 같다. 그냥, 지켜나가고 싶은 부분이 있는 거다. 아쟁은 내게 그런 식의 의미로 남게 되었다. 연기는, 지금은 멋모를 때라 그저 너무 즐거운 것 같다. 새로운 걸 하는 것의 즐거움이 크다. 뭔가 다시 (열정이) 타오르는 것 같고, 어렸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다.

Q. 연기를 해보니 한 인물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재미있던가.
손수현 : 그건, 힘들다. 이렇게까지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 고민조차 해본 적 없이 이 일을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너무 감사하지. 그런데 그만큼 내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대사 중에 “야 이 새끼야”라는 게 있다면, 이건 화난 상태에서 하는 말이잖아. 근데 이걸 화난 감정으로 읽는다가 끝이 아니라 왜 이 말을 했는지부터 시작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다 합쳐져야 하나의 사람이, 캐릭터가 완성된다. 그 과정이 너무 고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누군가를 왜곡하지 않고 잘 표현해야 하는 일이니 그건 당연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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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나저나 실제로 보니 더 말랐다. 운동 같은 건 따로 하나.
손수현 : 헬스를 하고 있다. 요가는 성격에 안 맞더라. 좀 움직임이 있는 게 좋다.

Q. 안 그래도 정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블러드’에서 나정이(홍화리)에게 핫바를 줄까 말까 할 때, 대사는 없었지만 뭔가 표정이 되게 개구졌거든.
손수현 : 아하하하. “먹을래?” 이 표정. 개구쟁이처럼 막 몸을 부산스럽게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또 진지하진 않다. (웃음)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인터뷰할 때도 그렇고, 내게 새침해 보인다고 하더라. 새침하고 까칠하고 별로 말도 없을 것 같다고.

Q. ‘진짜 나’와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내’가 다른 경우는 많다.
손수현 :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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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내가 원하는 모습과 본래의 성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손수현 :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책을 봤는데, 소명에 관한 내용이었다. 혹시 기독교신가? 난 무교인데 친구가 기독교인이라 이 책이 좋다며 권해줬다. 제목이 뭐였지. 아무튼, 거기에 진짜 인상 깊었던 말이 있었다. 기독교적인 말이었는데 꼭 기독교에만 국한된 건 아닌 것 같아서 말해보면, 주즈야라는 사람이 죽을 때 신이 자신에게 이렇게 물을 거라고 하더라. “너는 왜 모세 같은 사람이 되지 못했느냐”가 아니라 “너는 왜 주즈야 답게 살지 못했느냐”라고. 모세는 훌륭한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모세처럼 못 살았어가 아니라 왜 주즈야 답게 못 살았어라고 혼낼 거라는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Q. ‘나’답게 사는 건 정말 중요하다.
손수현 : 어떻게 보면 욕심 부리지 말란 의미일 수도 있는데 또 어떻게 보면 진짜 행복이 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만약,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라고 했다 치자. 그런데 난 수학, 과학을 진짜 못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면 그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이나 내 의지가 아닌 것들에 의해서 그렇게 말하게 돼서 하려 한다면… 과연 행복할까. 아, 내가 오늘 정말 별 얘기를 다한다. (웃음)

Q. ‘실종느와르M’까지 다 마치면 뭘 하고 싶나.
손수현 : 여행 가고 싶다. 외국은 말고. 한국인데 한국 아닌 느낌이 나는, 그런 조용한 곳으로. 사람 없는 곳을 찾아봐야겠다.

이정화 기자 lee@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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