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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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이정화 기자] 두 여자의 치열한 생존기, 혹은 ‘그럼에도’ 살아가는 누군가의 이야기. 영화 ‘차이나타운’의 두 축 김혜수와 김고은 사이, 한 줄기 빛처럼 존재했던 이가 있다. 일영(김고은)을 뒤흔든 남자, 석현. 지난해 영화 ‘명량’과 KBS2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로 차세대 청춘스타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박보검은 석현을 거치며 “큰 성장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어느 신에서는 “너무 힘들어서 다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든 적도 있지만, “그때 이후로 연기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하게 됐다”며 결국엔 소중한 경험에 감사해 했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악인이 아닌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밝은 미소 속에 드리운 인물의 아픔과 어둠을 놓치지 않았다. 석현을 통해 배우로서의 성장의 씨앗을 움 틔우기 시작했음을, 확인케 했다. 최근엔 KBS2 음악프로그램 ‘뮤직뱅크’ MC도 맡아 다재다능한 면모를 뽐낼 예정이니, 더 많은 이들이 박보검의 매력에 ‘심쿵’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이 인터뷰에는 ‘차이나타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 ‘차이나타운’ 언론시사회에서 인상적이었다. 포토타임을 위해 무대를 정리할 때, 먼저 아래로 내려간 당신이 계단을 내려오는 배우들을 잡아주더라. 김혜수 김고은뿐만 아니라 엄태구까지!
박보검 : 아하하.

Q. 그 행동이 영화 속 석현과 겹쳐 보였다. 그래서 묻는데, 박보검은 친절한 사람인가?
박보검 : 친절한 사람… (몇 번 이 말을 읊조리며 생각한 후) 난, 친절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다.

Q. 배우들이 당신의 손을 어색해 하지 않길래 평소에도 저런 식의 매너를 보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구나 생각했다.
박보검 : 모두와 진짜 잘 지냈다. (김)혜수 누나, 혜수 선배님은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계시지만 (‘명량’의) 최민식 선배님처럼 되게 잘 챙겨주셨다. 날 “자기야” 라고 부르셨다. “자기야 (연기) 잘했다”라며 토닥여주시기도 했고. ‘자기야’가 하나의 애칭이었던 것 같다. 그 말에 가끔 설렐 때도 있었다. 으헤헤. 선배님과 같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어서 참 영광이었고, 행복했다.

Q. 정작 김혜수와 함께 찍은 건 한 신이었다. 엄마가 석현의 목을 긋지 않았나.
박보검 : 그래서 많이 아쉬웠다. 그 촬영 때 혜수 누나의 눈을 보는데 감정이 막 올라와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누나도 울 것 같으시다면서 자신의 눈을 보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때, 전율을 느꼈다. 내가 석현이란 인물에 정말 빠져있구나, 서로 호흡을 잘 맞춰서 하고 있구나. 그 후에 찍은 장면이 더 있었는데 그건 잘렸다.

Q. 죽음을 앞둔 석현의 공포감이 상당했을 것 같은데.
박보검 : 그랬지. 석현이는 일영(김고은)이가 찾아와서 도망치라고 했을 때만 해도 현실을 믿지 않으려 했다. 일영이의 신발 끈을 묶어주던 것도 상황을 회피하며 자기 최면을 거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홍주(조현철)가 칼을 들고 나타났고, 일영도 자신의 품에서 칼을 꺼냈으니, 정말 내가 죽는 건가 하고 많이 떨렸을 거다. 그 뒤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선 감독님이 석현이의 쌓여있던 감정이 그때 폭발하지 않을까 라고 말씀해 주시더라. 이번에 언론시사회에서 혜수 누나가 “뺨 맞고 칼에 찔릴 때, 너 그때 표정 정말 좋았다”고 말씀해 주셔서 또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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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장에서 연기할 때 표출한 감정들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겨 있던가.
박보검 :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감정에 빠지려고 노력했다. 진심으로 연기한다면 카메라 안에 담길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연기에 백 퍼센트 만족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난 언제나 조금씩은 아쉬운 점들이 남는 거 같다. 그래도 이번 작품을 통해서 연기적으로 조금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한준희 감독은 뭐라고 말해줬나.
박보검 : 감독님이 계속 잘했다고 해주시는데, 이게 진심이신가 했다.

Q. 왜, 그 칭찬을 믿지 못했을까.
박보검 : 확신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모든 캐릭터가 어두운데 나만 너무 밝았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나랑 비슷하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밝음을 유지하면서 감정선을 지니고 가는 게 쉽지 않았다. 너무 밝으면 “왜 이렇게 오버하지? 쟤는 누구지?” 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톤을 다운하자니 어두운 배역들과 함께 같이 묻혀 버릴 것 같았다. 그 중간을 찾는 과정이 힘들었다. 감독님이랑 같이 상의를 많이 했다.

Q. 석현은 결국 어떤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나.
박보검 : 누구에게나 다정다감하지만 큰 아픔을 지닌 친구. 그 아픔을 내색해서 보여주기를 꺼리는 아이였다. 혜수 누나의 대사 중 “끔찍할 땐 웃어, 그래야 편해”가 석현에게 딱 맞는 것 같다. 온 집안엔 차압 딱지가 붙어 있고, 아빠가 남긴 빚 때문에 매번 이자를 갚아 나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석현이는 웃어야 편했을 거다. 처음에 사채업자들이 집을 찾아왔을 땐 무서웠을 테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까지 묻게 된 거다. 이렇게 무뎌진 석현이가 안타깝기도 했다.

Q. 석현을 보며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내면에 커다란 어둠이 존재하지만 그걸 더 큰 빛으로 애써 가리고 있는 것 같다는 거였다.
박보검 : 헉, 맞다. 아빠에 대한 미움도 있었을 거고, ‘그냥 여기서 끝내 버릴까? 라며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르 꼬르동 블루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인데 그걸 포기하는 게 아깝다고도 생각했을 거다. 석현이는 똑똑했던 친구일 것 같다. 그렇기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다 안으로 감춰버리고 더 큰 빛으로 채워 넣으려고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어두움은 죽기 직전에 터진 것 같다. 복면이 벗겨질 때 보였던 석현이의 얼굴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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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곤(엄태구)이 석현이 일하는 레스토랑으로 찾아와 폭력을 행사했을 때, 우곤을 쳐다보던 눈빛도 기억에 많이 남았다.
박보검 : (고개를 숙이며) 아… 감사하다.

Q. 자신의 세계를 깨뜨리려고 하는 침입자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빛으로 가리며 만들어온 세계가 힘에 의해 깨지는 순간이었다.
박보검 : 와… 비유가! 정확하게 보셨다. 그런데 감정을 잡을 땐 단순하게 생각했다. 셰프님과 밥 뭐 먹을까란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채업자가 찾아와서 ‘퍽!’ 때리면 진짜 스트레스 받지 않나. 더군다나 기름까지 부으려고 하니, 화가 치밀어 오르지. 말씀하신 것처럼 침입자, 맞다.

Q. 그때 실제로 조리대에 머리를 박은 건가.
박보검 : (테이블을 손으로 쾅쾅 치는 시늉 하며) 진짜 ‘빵!빵!’ 박았다. (일동 웃음)

Q.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액션을 따로 배우진 않았겠다.
박보검 : 맞는 것도 잘 맞아야 되기도 하고, 하하, 기초 체력을 준비하려고 초반에는 액션 스쿨에 나갔다. 고은 누나나 태구 형을 처음 만난 것도 액션 스쿨이었거든. 거기에서 같이 뒹굴고 땀 흘리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난 나중에 합이 짜지면 그때 다시 부르시겠다고 하셔서 초반에만 나가다가 후반부에는 자연스럽게 빠졌다.

Q. 체력적으로 좀 힘들었을 것 같았던 게, 아파트 7층에서 뛰어 내려오는 장면 있지 않았나. 한 번에 오케이 났나.
박보검 : 그랬었나. 아, 아닌가. 한 번에 오케이가… (소속사 관계자: (박보검을 향해) 몇 번 찍었지. 밥 많이 먹고 뛰었어. 하하.) 맞다, 맞다. 진짜 더운 날 그랬지. 작년 8월에 찍어서 10월에 촬영이 끝났는데 감독님이 생각하신 회차에 딱 맞게 끝난 것도 되게 신기했다. 대단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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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때 같이 뛴 일영 말이다. 사실, 일영에게 있어 석현은 자신을 뒤흔든 존재였지만, 막상 석현에게 일영은 어떤 의미였는지 끝내 알 수 없었다.
박보검 : 석현이는 일영이를 사채업자 중 한 명으로 봤을 거다. 자기 꿈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보니 바쁘게 살았을 테고. 빨리 이자를 갚아서 이 상황을 해결한 뒤에 요리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 오로지 그 목표 하나만 바라보느라 다른 건 신경을 못 썼을 거다. 그런데, 또래를 만난 게 처음이라 궁금했겠지. 얘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일영이 입장에서도 돈을 받으러 다닐 때마다 겪던 욕과 폭력이 아닌, 선뜻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는 석현에 대해 ‘얜 뭐지?’ 싶었을 거다. 아마 그런 감정이지 않았을까.

Q. 석현이가 죽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두 사람만의 이야기로 스핀오프가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전개될 것 같나.
박보검 : 나도 그게 궁금하기는 하다. 그런데 사랑까지 갔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그냥 석현이는 일영이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자신의 삶에 한 여자가 들어와서 인생을 바꾼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이다. 동정심이었을지도 모르겠고.

Q. 석현이란 역할에선 금방 벗어날 수 있었나.
박보검 : 나랑 석현이는 비슷한 부분도 많아서 빠져 나왔다고 말하기엔 뭐하지만, 햄버거 얘기를 하던 신은 힘듦의 피크, 절정이었다. 크흐. 이제서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땐 너무 힘들어서 다 내려놓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모든 배우 분들과 스태프 분들이 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감정을… 아… 진짜 어려웠다. 나는 감정이 올라오는데 너무 올라오니 감독님은 내리라고 하시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감정선도 유지해야 되고 톤도 유지해야 되고 신경 써야 될 게 너무 많다 보니 혼자 끙끙 앓았던 것 같다. (매니저) 형이 나보다 더 힘드셨을 거다. 옆에서 “왜 그래 보검아, 왜 그래” 이러는데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더라. 성장통이었다.

Q. 6개월 전 일인데 마치 어제 겪은 것처럼 말한다.
박보검 : 진짜 크~은 성장통이었다. 흐흐. (일동 웃음) 그때 이후로 연기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하게 됐다. 진짜 ‘쪼끔’이겠지만 연기에 대해 성장한 것 같다. ‘명량’을 비롯해서 ‘내일도 칸타빌레’도 그렇고 이번 ‘차이나타운’도, 한 인물을 만들어 나가는 게 굉장히 재미있고 매력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앞으로도 연기할 때 이렇게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접근한다면 연기에 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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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다가 보니 SNS에 여행을 다녀온 사진이 올려져 있더라. 올 초에 다녀온 건가.
박보검 : 네~! 학교(명지대학교)에 해외 문화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지원했는데, 합격해서 다녀왔다. (선발할 때) 성적도 봤고, 면접도 보고. 뮤지컬과 동기 4명이 지원했는데 다 합격했다. 같이 간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지.

Q. 오, 좋았겠다. 어디어디 다녀왔나.
박보검 : 영국이랑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스위스도. 2주 동안 네 나라의 도시들을 다녀왔다. 런던, 파리, 피렌체…. 진짜 감사했고 소중한 추억이었다. 그때가 아니면 갈 수 없잖아. 게다가 우리 학교가 용인에 있어서 애들은 다 자취를 하거나 기숙사 생활을 한다. 나만 집에서 통학해서 동기들과 살을 맞대며 자거나 밤 늦게까지 작업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두 시간 가량이 걸리거든. 밤 10시에는 버스를 타야 12시에는 도착하기 때문에 매번 그렇게 늦게까지는 학교에 남아있지 못했다. 그래서 동기들과 얘기를 해도 약간의 벽이 있었다. 서로 반갑게는 인사하지만 그렇게 가깝지 않은, 그런 느낌. 그런데 이번에 여행을 갔다 오니 동기들과 더 가까워지고 유대감이 형성되고 서로 뭔가 말이 더 잘 통하는 것 같다. 소중한 친구들이 되었다. 나랑 동갑인 친구 한 명에 스물 둘, 스물 다섯, 우리 넷이 나이도 성격도 다른데 싸운 적 한 번 없이 잘 다녔다. 값진 경험이었다.

Q. 2015년을 뜻깊게 시작한 것 같다.
박보검 : 여행에서 보고 느낀 걸 잘 간직해서 연기로 다양하게 표출할 수 있는 배우가 되어야지! 하하.

Q. 이번에 KBS2 ‘뮤직뱅크’ MC도 됐다.
박보검 : (박수 치며) 와아아~ 진짜 감사한 일들이 많다. 많이 떨린다. 5월의 첫날, 첫 방을 하게 되어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많이 된다. ‘뮤직뱅크’의 한 식구로서 프로그램을 잘 표현해야 하고 잘 알려야 할 텐데. ‘연기대상’ 밖에 생방송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이 크다. 세계 114개국에서 동시 생방송 된다~

Q. ‘114개국’까지 외우고 있었나. 하하.
박보검 : 잘해야지. 누를 끼치지 않도록.

Q. 얼마 전 ‘어벤져스’도 개봉을 했는데…
박보검 : 아~ 아직 못 봤다. 보셨어요? 내가 1탄을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

Q. 앗, 그게 아니라, (웃음) 어른들이 ‘차이나타운’을 봐야 하는 이유는 뭘까. ‘호객’을 해 본다면.
박보검 : 아… 호객. 어떻게 해야 될까. 음, 여배우 분들의 변신을 통해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석현이는 진짜로 실존하는 인물일 것 같다. 어딘가에 이런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아서… 만약 현실에서 힘든 상황이나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 있을 때 석현이처럼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그 삶을 바꿔 나갔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기도 하다. 비록 마지막 결말은 그렇게 되지만, 그런 메시지가 누군가에게는 꽂히지 않을까.

이정화 기자 lee@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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