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나무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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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에서 이어짐) 청소년기의 권나무는 항상 귀에다 mp3 플레이어를 꽂고 다니며 유행가와 팝송들을 들었다. 누구나 아는 인기차트 위주로 흔한 노래를 들었던 학교 친구들과는 달리 그는 나름 숨겨진 비장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박혜경 노래는 타이틀곡 위주로만 듣는데 저는 버려지는 나머지 노래까지 찾아 들었죠. 그래서 제 가요 파일 중에는 또래 아이들이 잘 모르는 언더가수 문명진의 노래까지 있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는 제 mp3에는 귀하고 좋은 노래들이 많다는 소문이 나 제 mp3플레이어를 돌려 듣느라 건전지가 닳아서 돌아왔을 정도였으니까요.”(권나무)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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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임호중을 졸업한 권나무는 지역에서는 명문인 김해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시절 내내 신체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그에게 반전의 기회가 왔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키가 쑥쑥 크기 시작했던 것. “단숨에 160cm에서 180cm로 훅 컸습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제 몸이 늘어나는 게 느껴질 정도라 신기하면서 날아갈듯이 기뻤습니다. 키가 크니까 그 모든 열등감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죠. 저도 이제 남들처럼 싸움도 잘하고 왠지 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아질 것 같아 세상의 중심이 된 기분이었습니다.”(권나무)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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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권나무는 눈물이 날 정도로 자기 개발을 했었다. 키가 크고 싶어 매일 같이 물구나무를 서고 구슬땀을 흘려가며 팔굽혀펴기도 죽어라 했다. “저는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놈들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 서러움을 알기 때문이죠. 키는 작아도 공부는 잘했기에 어쩌면 귀여움을 받는 아이로 보였을 수도 있지만 그땐 속으론 칼을 갈고 살았습니다.”(권나무) 고작 키가 훌쩍 컸을 뿐인데 사람대접이 달라지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졌다. 사람은 고작 이런 가벼운 존재일 뿐인가 하는 실망감이 엄습하며 사람의 관계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너무 커버리자 세상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든 게 시시해 졌습니다. 덩치 큰 놈이 작은 놈을 놀리고 패거리를 만들고 말이죠. 저는 학교 친구들과 잘 지냈지만 마음의 적을 두는 패거리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권나무)

김해고등학교 시절 권니무
김해고등학교 시절 권니무
김해고등학교 시절 권니무

당시 김해고에는 ‘대한민국’이란 스쿨밴드가 있었다. 신입생 권나무는 오디션을 보러 갔다. “어떤 선배가 발성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제 눈에는 별로 대단하지도 않아 보이는데 잘난 척하는 모습과 고압적으로 진행된 오디션 자체가 거슬려 그냥 나와 버렸습니다. 저는 진짜 잘 난 사람은 좋아하지만 잘 난체 하는 놈들을 억수로 싫어했습니다.”(권나무) 고집불통의 독불장군 기질이 있었던 권나무는 장난기는 많았지만 굉장히 진지한 아이가 되어갔다. 변하지 않은 교사의 꿈을 지녔던 그는 잠시 언론사 기자가 되고 싶어 세상의 모든 뉴스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세상에 불만이 많았던 자신의 고민을 해소할 직업이라 생각했던 것.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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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낸 권나무는 단 한 번의 사고도 친 적이 없는 모범생이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어릴 때 아버지는 근엄하지만 따뜻한 분이셨어요. 그런데 군에서 나오신 후, 집에만 계시면서 저와 사사건건 부닥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서로를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권나무)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생긴 권나무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음악만 들었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그의 아버지는 화를 냈다.
권나무
권나무
억울한 감정이 들었던 권나무를 위로해 주었던 것은 음악뿐이었다. “일본의 엑스재팬, 쿠루리 같은 밴드 노래도 들었는데 그때부터 노래가 아닌 머라이어 캐리가 몇 집을 냈다는 걸 알 정도로 앨범개념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인상적인 노래는 별로 없지만 국내가요는 나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가요 톱10’ 같은 TV에 나오는 노래는 10곡 밖에 없는 지라 관심이 없었죠. H.O.T., 서태지 정도는 이게 무슨 노래야 했던 기억이 날 정도로 문화적으로 강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권나무)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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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나무는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교대 진학을 생각했지만 성적이 부족해 경북대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했다. 면접은 보았지만 결과를 보지도 않고 재수를 택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던 권나무는 부산시 서면에 있는 혜화사관기숙학원에 들어갔다.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는 고된 수험생활을 기꺼이 감수했다. “교대를 가고 싶어 독기를 품고 열심히 공부만 했습니다. 정말로 하루에 2시간 반만 자면서 1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그렇게 공부한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권나무)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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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수능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그토록 원했던 진주교대에 합격했다. 대학동문인 어머니가 강단에 선 모습을 보고 동경했던 교사의 꿈에 성큼 다가간 셈이다. “집에서 빨래하고 청소하는 엄마의 평범한 모습과는 다른 프로페셔널한 교사의 모습이 참 근사하고 좋았습니다.”(권나무) 대학진학 후, 자존감이 확 올라갔지만 자신의 그렸던 교대의 풍경과는 달리 고등학교 때와 비슷한 분위기에 실망해 자퇴를 생각하기도 했다. 4인조 메탈 스쿨밴드 ‘사이클론’에 1/11 경쟁을 뚫고 보컬로 들어갔던 것은 일종의 돌파구였다.

진주교대 스쿨밴드 싸이클론 2007년 공연과 권나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동아리 연습실
진주교대 스쿨밴드 싸이클론 2007년 공연과 권나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동아리 연습실
진주교대 스쿨밴드 싸이클론 2007년 공연과 권나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동아리 연습실

밴드에 들어가면서 20대 권나무의 과업이 펼쳐졌다. 모든 게 바뀌었다. “퀸이나 비틀즈 같은 고전은 솔직히 잘 몰랐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는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저 유명한 너바나의 음악도 그 때 처음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죠.”(권나무) 공부하는 마음으로 각종 장르음악을 2년 동안 열심히 들었다. 3학년이 되어서는 나이 많은 후배 조용호 등과 함께 밴드활동을 했다. “당시 동아리는 제 모든 것이었기에 후배들에게 완전 갑질을 했습니다. 나이가 많은 형님이 밴드에 들어왔지만 저는 선배처럼 행동했습니다. 고압적인 것은 질색했던 저인데 이 동아리는 지켜야한다는 태도가 문제였습니다.”(권나무)
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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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활동을 하면서 연애문제도 얽히고 교수들에 반항해 대학생활은 원활하지 않았다. 그래서 권나무는 학업보다는 밴드 동아리 실에서 노래 연습만 주구장창했다. “잘 부르지는 못했지만 노래 스펙트럼은 넓었습니다. 열심히 연습을 하다 보니 통도 커지고 음역이 올라가더군요. 당시 드림씨어터, 스키드 로우, 메탈리카 같은 터프한 노래들까지 불렀습니다. 짬밥이 차고 난 후인 4학년 때는 그동안 불러보고 싶었던 트래비스, 오아시스, 콜드 플레이의 노래를 불렀습니다.”(권나무) (PART4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권나무
편집. 최진실 tru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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