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나무
권나무
권나무



[텐아시아=권석정 기자] (PART1에서 이어짐) 어린 시절부터 권나무가 품었던 오랜 꿈은 뮤지션이 아닌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현재 교사와 뮤지션이라는 멀티 인생을 살아가는 그가 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공간과 일상의 모습이 궁금해 충남 서천의 오성초등학교로 찾아갔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시골학교지만 시설 면에서는 도시 학교에 비해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가 9명 아이들의 담임을 맡고 있는 4학년 교실을 찾았다.
권나무 서천 오성초등학교 4학년 교실 48
권나무 서천 오성초등학교 4학년 교실 48
권나무는 사진촬영을 위해 휴일에 다시 찾은 교실에 들어서자 촬영보다 컴퓨터를 커고 밀려 있는 일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 모습에서 뮤지션보다 선생님의 존재가치가 더 커보였다. 교실을 둘러보니 뒤쪽에 아이들의 그림이 전시된 게시판에 시선이 갔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살펴보니 역시나 ‘나무’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다. 아이들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자 권나무가 함박웃음을 머금고 다가왔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너무 행복합니다. 그림들이 더 모이면 어린이 그림 수필집을 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권나무)
권나무 피쳐사진45
권나무 피쳐사진45
교실 촬영을 마치고 복도로 나섰다. 마침 도서실에서 책을 읽던 아이들이 선생님을 발견하고 반갑게 달려왔다. 해맑은 표정으로 반기는 총각선생님의 얼굴은 아이들과 꽤나 닮아보였다. 아이들은 이미 수업시간에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는 선생님의 노래 실력을 알고 있었다. 시골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즉석 미니공연이 벌어졌다. 선생님이 기타를 꺼내 동화 속 이야기 같은 1집 첫 트랙 ‘마부의 노래’를 부르자 진지하게 듣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 화려하고 많은 관객이 운집한 공연보다 감동적인 한 폭의 그림이었다.
권나무 피쳐사진40
권나무 피쳐사진40
권나무의 본명은 권경렬이다. 그는 직업군인 출신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어머니의 2남 장남으로 1986년 9월 30일 강원도 원주의 귀둔 군인병원 막사에서 태어났다. 근무지 이동이 잦았던 아버지의 직업특성으로 인해 어린 시절 권나무는 이사와 전학을 반복했다. 4살 즈음에는 부산 덕천동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1년 반 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성장했다. “늘 부모님이 찾아오시는 주말을 기다렸지만 정작 오시면 부끄러워서 숨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셨다가는 금방 떠나셨기에 늘 울면서 지냈었습니다.”(권나무) 이 같은 가정환경 탓에 권나무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감정의 기복이 극심했었다.
권나무 부모님 동생과 함께
권나무 부모님 동생과 함께
5살 때, 경상북도 영천시로 이사하면서 부모님과 다시 살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 절반은 영천에서 보냈던 취학 전의 추억으로 온통 채색되어 있다. “부모님과 다시 살게 된 그 시절이 제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권나무) 당시 권나무는 어머니가 교직생활을 했던 영천 고경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다녔다. 어머니의 동료교사 아들 박균호는 그의 단짝친구였다. “저보다 한 살 어렸는데 제 인생 최초의 친구였습니다. 함께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엄마가 퇴근하시는 시간까지 정말 실컷 놀았습니다. 학교 담장 너머에 있는 과수원에서 복숭아 서리를 하다 혼났던 기억도 나네요. 정말 정서적으로 풍요롭고 즐거웠던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권나무)
권나무 유치원시절 모습
권나무 유치원시절 모습
경상북도 경산시로 다시 이사를 간 권나무는 단포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곧바로 김해로 이사해 외동초등학교로 전학했다. 그곳에서 비로소 많은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공부와 운동을 잘했던 권나무는 초등학교 내내 반장을 했던 모범생이라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단다. 그의 집안은 음악을 많이 듣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클래식을 좋아한 부모님이 틀어놓은 음악을 듣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엄청난 영향을 준 곡은 없었지만 가사가 없는 외국 경음악 CD는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해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3학년 무렵인가? 남들처럼 TV에 많이 나오는 H.O.T.,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노래를 즐겨 들었죠. 개인적으론 박혜경, 주주클럽, 쿨의 노래를 좋아해 1집부터 계속 들었습니다. 팝송은 머라이어 캐리 정도였을 정도로 미디어 영향을 많이 받았던 평범한 리스너였습니다.”(권나무)
권나무 5살 때 부산에 살 때 할아버지 첫 친구 박균호와
권나무 5살 때 부산에 살 때 할아버지 첫 친구 박균호와
5학년 때 인천시 부평의 동수초등학교로 또 전학을 했다. “1년 넘게 인천에 있었는데 위쪽(대도시)에 대한 로망이 있어 새로운 친구들이 촌놈이라 무시할 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권나무)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근사하게 생각했던 권나무는 이때 자의식이 생겨났다. 좋아했던 여선아 담임선생님으로 인해 처음으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음악적 취향 또한 다소 진보되어 솔리드의 음악을 즐겨 들었던 6학년 때 예전에 다녔던 김해시 외동초등학교로 다시 전학을 갔다. “다시 돌아가니 친구들이 너 아파서 입원했었냐고 묻더군요.(웃음)”(권나무)
권나무 피쳐사진47
권나무 피쳐사진47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김해시 임호중에 진학하면서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정신적 사춘기는 빨리 왔지만 신체적 사춘기가 늦어 콤플렉스를 안겨주었던 것. “중학생이 되면서 성장이 더뎌 왜소한 체구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연 학업 성적도 부진해졌고 활발했던 성격도 내성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실제로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제 키는 160cm도 되지 않은 꼬마 같았으니까요.”(권나무) 신체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권나무는 의식적으로 똑똑해지려고 노력했다. 공부를 잘하고 싶고,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고 싶었던 그는 그때부터 ‘데미안’ 같은 문학책을 즐겨 읽기 시작했다.
권나무 피쳐사진34
권나무 피쳐사진34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권나무는 중2때 친구들과 처음 노래방에 갔다. “당시 친구들 대부분은 플라이투터스카이의 히트곡을 좋아했는데 저는 유명가수 노래가 싫어 아이들이 잘 듣지 않는 이소라나 k2의 노래를 찾아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노래가 제한적이었지만 저만 아는 노래들을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권나무) 학교에서는 장난기 넘치는 쾌활한 아이였지만 이미 자의식이 성숙했던 권나무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에는 우울한 아이였다. “고민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 또래의 남학생처럼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고 싶지만 누가 날 좋아해줄까? 앞으로 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식적으로 친구들에게 선물도 줘보고 의리도 가져보려 노력했지만 청소년기는 모든 게 불만족스러워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권나무)(PART3로 계속)
권나무 피쳐사진38
권나무 피쳐사진38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권나무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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