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20
인디 20


인디 20

[텐아시아=권석정 기자] 90년대 중반은 가요계 격변기였다. 크게 두 개의 새로운 흐름이 있었다. 1996년에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H.O.T.와 이주노가 키운 영턱스클럽이 나란히 데뷔하면서 10대를 중심으로 구성된 아이돌그룹이 본격적으로 가요계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그보다 조금 앞선 1995년 4월 5일 홍대 인근의 라이브클럽 드럭에서는 커트 코베인 사망 1주기 추모공연이 열렸다. 그로부터 발화하기 시작한 인디 신의 음악들은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음악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계의 주요 움직임으로 자리하게 된다. 시장의 측면이 아닌 앨범 수, 장르의 다양성 측면에서 봤을 때 지금의 인디 신은 가요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봐도 허언은 아니다.

인디 20주년을 기념해 최근 발표된 컴필레이션 앨범 ‘인디 20’은 그래서 묵직하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황신혜 밴드, 이장혁 등 1세대부터 갤럭시 익스프레스, 장기하와 얼굴들, 피아, 트랜스픽션, 요조, 최고은 등 인디 신을 대표하는 20여 팀이 참여했다. ‘처음엔 다 낯설었었지, 모든 게 이상해보였어, 때로는 이해 할 수 없지만, 모든 게 그래 처음이었지, 마치 지금처럼’(갤럭시 익스프레스 ‘다시 처음으로’)라는 가사처럼 모든 게 이상했지만, 그 모든 것이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소중한 창구가 돼줬다.

김웅
김웅
김웅

‘인디 20’을 기획한 김웅 모스핏 대표는 전 드럭레코드 대표로 인디 신에서 20년 이사 몸담으며 산전수전 다 겪었다. 김웅 대표는 “우리는 기존 시스템이나 메이저 자본에 구애받고 싶지 않아서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어 녹음을 시작했고 공연장에, 행사장에 들고 다니며 팔고 알리기 시작했으며, 독립적인 유통망을 구축해 가기 시작했다. 밖에서 또는 사회에서 우리를 ‘인디’라고 불렀다”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인디 20’을 기획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죠. 작년부터 뮤지션들을 섭외해 준비를 시작했어요. 방향은 신구 뮤지션들을 골고루 섞어서 다양한 장르를 담고 싶었어요. 인디 신이 지난 20년 동안 성장한 모습을 이 앨범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스무 살 생일을 축하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박종현 군이 ‘인디 20주년은 우리가 자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20주년을 지켜봐온 선배들은 물론이고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최고은과 같은 동생 라인들까지 무척 뿌듯해했어요.”

노브레인
노브레인
노브레인

본래 그림을 그렸던 김 대표는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공연 기획 일을 시작했다. 재즈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이 속한 야타재즈밴드를 시작으로 일을 시작해 밴드들과 자연스레 섞이게 됐다. 일이 잘 풀리자 창작 일은 뒤로 하고 90년대 중반에 공연 일에 투신하게 됐다. 그때 만난 사람들이 김종휘 당시 ‘인디’ 대표, 김영도 재머스 대표, 이성문 카바레사운드 대표 등이었다. 이후 록밴드 마루의 매니저를 맡으면서 앨범, 공연을 본격적으로 기획하게 된다.

인디 신 초기의 중요한 공연으로 회자되는 ‘록닭의 울음소리’의 홍보를 맡다가 드럭의 이석문 대표를 만나게 된다. 연세대 대극장에서 이틀 동안 한 ‘록닭의 울음소리’가 대박이 나자 이석문 대표가 러브콜을 했고, 이후 드럭레코드에 들어가 크라잉넛 등과 함께 일하게 된다.

김영도 재머스 대표가 기획한 ‘록닭의 울음소리’에는 크래쉬, 자우림, 크라잉넛, 힙포켓, 아무밴드, 고스락, 악마야, 청년단체 등이 무대에 올랐고, 이틀 동안 1500명의 관객이 몰렸다. “사실 돈을 벌려고 했으면 다른 일을 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쪽 동네 일이 정말 재밌었죠. 그래서 푹 빠져들었어요. 불모지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좋았어요.”

김웅 대표는 크라잉넛 외에 레이지본, 18크럭, 새봄에 핀 딸기꽃, 쟈니로얄 등 여러 밴드들과 일했다. 이석문 대표에게서 드럭레코드 대표 자리를 물려받은 이후에는 크라잉넛과 동고동락했고, 크라잉넛이 군대 간 사이에는 델리 스파이스와 일하며 ‘고백’이 히트하는데 일조했다.

가장 짜릿한 순간은 현장에서 느꼈다.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짜릿한 때가 있었어요. ‘록닭의 울음소리’, 크라잉넛 데뷔 15주년 콘서트 등이 성공했을 때가 그랬죠.”

김웅 대표는 1997년경 자신이 맡았던 마루의 기획공연이 매진됐을 때를 잊지 못한다. 마루의 대학로 라이브홀 공연을 추진했지만 300만원 정도 되는 대관비가 없었다. 당시 대학로 라이브홀은 신인밴드가 서기 힘든 무대였다. 김웅 대표는 주머니에 있던 20만원 전부를 꺼내 계약금으로 걸었다. 이를 보고 맥랑하다고 여긴 당시 라이브홀의 이종현 대표는 대관을 수락하고 “공연 전까지 돈을 만들어오라”고 했다.

김웅 대표는 그날부터 대학로 마로니에 공연에서 마루를 데리고 매주 공연을 열었다. 팬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몇 개월을 공연하자 50명 정도 됐던 마루의 팬클럽이 만 명 가까이 불어났다. 지금처럼 SNS가 없던 시절, 몸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던 때였다. 결국 대학로 라이브홀을 매진시켰다. “정말 기분이 좋았죠. 방송도 한 번 못 탄 무명의 밴드가 그런 식으로 성장을 해나간 거죠. 그땐 그게 가능했어요. 악으로 깡으로 하면 통하던 시절이었죠.” 이러한 수완을 통해 김 대표는 여러 인디 밴드들의 성공을 견인했다. 인디의 방식으로 말이다.

크라잉넛
크라잉넛
크라잉넛

‘인디20’은 기록으로서 의미하는 바도 크다. “우리에게는 음악이 곧 역사적인 자료인 거죠. 20주년을 기념해 역사를 기록한 책을 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저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이런 앨범입니다. 음반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20년을 이 동네에서 달려왔어요. 청춘을 달렸죠. 이 앨범은 그 산물입니다.”

권석정 기자 moribe@
사진제공. 모스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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