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뢰’ 김상경.
‘살인의뢰’ 김상경.
‘살인의뢰’ 김상경.

[텐아시아=황성운 기자]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은 배우 김상경에게 ‘형사 전문 배우’라는 이름표를 달아줬다. 그에게 있어 형사는 ‘살인의 추억’이 처음이었다. 김상경은 이후 형사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상경은 형사 전문 배우다. 그만큼 ‘살인의 추억’은 강렬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영화 ‘몽타주’(2012)를 통해 김상경은 두 번째 형사를 만났다. 무수히 쏟아진 형사를 대부분 거절했던 그는 운명처럼 ‘몽타주’에 끌렸다. ‘살인의 추억’에서 끝끝내 잡지 못했던 범인을 ‘몽타주’에선 잡았다. 10년 전 서태윤(‘살인의 추억’)이 청호(‘몽타주’)가 된 것처럼 묘하게 겹쳤다. “10년 동안 쌓인 체증이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는 게 당시 그의 소감이다.

그리고 12일 개봉된 ‘살인의뢰’에서 김상경은 세 번째 형사로 돌아왔다. “진짜 (형사를 다시 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던 그가 3년 만에 형사로 돌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했던 형사들하고 감정선에서 완전 다른 이야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번에는 형사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다. 범인은 손쉽게 잡았다. 이번엔 동생 수경(윤승아)의 시신을 어떻게든 찾고 싶은 형사, 아니 동생을 잃은 피해자다. 그 감정은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그런 점에서 김상경에게 ‘살인의뢰’ 태수는 전혀 다른 형사였다.

Q. ‘살인의 추억’과 ‘몽타주’는 10년 걸렸다. 또 10년 후쯤이나 볼 줄 알았는데 3년밖에 안 걸렸다.
김상경 : 그래서 거의 마지막이 아닐까. ‘살인의뢰’ 제작자가 ‘몽타주’ 제작자인데 재밌는 시나리오가 있다는 거다. 뭐냐고 물었더니 형사라는 거다. 순간 욕할 뻔했다. 10년 만에 두 번 하고 형사 전문이라고 하는데 또 어떻게 (형사를) 하느냐고 했더니 일단 보라는 거다. 그래서 보게 됐는데 내가 했던 형사들하고 감정선에서 완전 다른 이야기였다. 또 스릴러 공식을 따라가지도 않는다. 범인도 다 밝혀놓고, 반전도 없고, 형사가 죽이기까지.

Q. 실제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떤가.
김상경 : 궁금했다. 원래 시나리오와 찍었던 것 그리고 최종 편집이 다르다. ‘몽타주’는 찍을 때 느낌이 있었다. 그 틀을 80점 정도 생각했는데, 영화를 봤더니 120점이 돼 있는 경우였다. 이번에는 그 틀을 90점 정도 생각했다. 그래서 편집을 못 했으면 70점대, 잘했으면 100점을 넘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건 생각했던 틀이 아닌 거다. 생각지도 못한 다른 틀이 나온 거다. 그래서 점수를 매길 수가 없다. 언론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봤는데 이 때문에 멍했다. 완전 다른 식으로 해체해서 붙여 놨더라.

Q. 다시 형사를 선택했다는 건 매력을 느꼈다는 건데.
김상경 : 3년 전후가 있다는 게 좋았다. 아무래도 입체적으로 변할 수 있는 거에 욕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몸무게도 10kg을 찌웠다 빼고. 그리고 확실한 결론을 내리는 게 좋았다. 중간 만듦새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결론은 확실히 쏘는 거다. 과감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연기로 표현할 게 많았다. 형사인데 동생이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이렇게 묻고 있으니까.

‘살인의뢰’ 김상경.
‘살인의뢰’ 김상경.
‘살인의뢰’ 김상경.

Q. 3년 전후, 그 시간의 변화를 어떻게 주고자 했나.
김상경 : 일단 살을 찌우고 빼는 데 초점을 맞췄다. 맨날 먹고 자고. 그러다가 5일 만에 7kg 뺐다. 내 체중으로는 왔는데 나머지 3kg이 너무 힘들었다. 기존 유지하던 몸무게에서 늘어난 건 금방 빠졌는데, 그 밑으로 가는 건 쉽지 않더라. 앞으로 ‘보이후드’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겠다. 12년 정도 시간을 줘야지 10일 만에 빼라 하고. 하하.

Q. 외형 말고 성격적으로도 변하지 않나. 3년 전 모습은 능글능글하고, 헐렁한 형사 느낌이다. 3년 후엔 피폐해진 모습인데.
김상경 : 능글능글한 형사에서 완전히 달라지는, 그래서 몸무게도 정리하고 싶었다. 특히 3년 후 강천(박성웅)과 처음 만날 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정말 어려웠다. 외형은 변했는데 대사 톤은 어떻게 할지, 또 초콜릿을 주는 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는 거다. 3년이란 시간 동안 협박도 해보고, 때려도 보고, 별짓 다 했을 거다. 아마 그 마지막 단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3년이지만, 실제로는 며칠 안 되는 기간에 그걸 찍어야 하니까 심정적으로는 초콜릿 주는 걸 못하겠는 거다. 고민 많이 했다.

Q. 영화 보면서 정말 궁금하긴 했다. 왜 태수가 강천에게 초콜릿을 주는지. 한두 개도 아니지 않나.
김상경 : 뭔가 다 끝난 느낌을 주는 의미 아닐까. 어떤 영화에서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물어보진 않았다.

Q. 그리고 또 한 가지 궁금했던 건, 극 중 태수는 왜 솔로인가. 베테랑 형사 설정이면, 나이가 꽤 있다는 거 아닌가. 근데 3년 전후 태수의 가정은 나오지 않는다.
김상경 : 원래는 있었다. 3년 후 이혼하는 등 가족이 붕괴되는 게 있다. 그런데 어차피 3년 후 피폐해지는 데 가족 붕괴까지 나오면 군더더기 같은 느낌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살인의뢰’ 김상경.
‘살인의뢰’ 김상경.
‘살인의뢰’ 김상경.

Q. 이번 영화에서는 단순히 경찰이 아니라 경찰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다.
김상경 : ‘살인의 추억’ ‘몽타주’에서는 내가 당한 일이 아니다. 그땐 남의 일인데 너무 열심히 수사하는 경찰이다. 그래서 대본 보면서 실제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찾아보니 정말 있는 거다. 그런 분을 토대로 연기했다. 근데 이번에는 내 일이니까. 이전에는 감정적으로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마음껏 했다. 감정적으로는 더 끝까지 가본 것 같다.

Q. 감정적으로 끝까지 가면 아무래도 후유증은 더 크게 남지 않나.
김상경 : 원래 3월에 시작했어야 했는데, 5월에 시작했다. 그러면서 후반부가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하고 겹쳤다. 확연히 다른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영화 찍다 드라마 현장에 오면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살인의뢰’에서 심각하다가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웃다 갈 수 있으니까 편했다.

Q. 마지막엔 사적 복수, 사형제도 등 화두를 던진다.
김상경 : 아직은 태수의 입장이라서 말하기 어렵다. 이 작품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성적으로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다.

Q. 연출을 맡은 손용호 감독은 어떤 사람인가.
김상경 : 손 감독은 허허실실을 잘한다. 배우들의 말을 잘 듣다가도 실실 웃으면서 자기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집 완전히 세다. 자기 주관이 확실하다. 그리고 인상 쓴 걸 못 봤다. 인상을 쓰지 않는데 끝끝내 원하는 방향으로 다 찍었다. 샤워신도 촬영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자기 원하는 대로 다 했다고 하더라.

Q. 김성균 박성웅과도 처음 호흡을 맞추게 됐다.
김상경 : 둘 다 궁금한 배우였다. ‘범죄와의 전쟁’ ‘이웃사람’ 등을 보면서 김성균에 대한 궁금함이 많았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놀랐는데, 만나서 더 놀랐다. 배우 중에 자기 것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와 다른 걸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성균은 자기랑 다른 것을 잘 표현한다. 현실은 아주 상냥하고 순한, 본성이 착한 청년이다. 애가 셋인데, 청년은 아니고 착한 아빠다. 하하. 성웅은 반대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쪽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몰입할 때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표정이 없을 때가 있다. 그걸 극대화한 거다. 그리고 욕심이 대단히 많다.

‘살인의뢰’ 김상경.
‘살인의뢰’ 김상경.
‘살인의뢰’ 김상경.

Q. 무엇보다 박성웅의 악역이 인상적이다.
김상경 : 연기하면서 사람을 올려다본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번엔 올려다보게 되더라. 하하. 절대 악이면서도 도저히 깰 수 없는 느낌, 큰 키가 많이 작용한 것도 있다. 나조차도 왜소하게 만드니까. 그리고 실제 그런 범인이 있다. 설명이 안 되는 사람. 극 중 강천이 그렇다. 보통 사람들은 기대고 싶은 게 있다. ‘그러니까 나쁜 짓을 했겠지’라고.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덜 무섭게 된다. 근데 그런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Q. 악역에 대한 욕심은 없나.
김상경 : 왜 없겠나. 그런데 만약 한다고 해도 ‘양들의 침묵’ 쪽이 아니겠나. 하하. 고등지식을 가진, 정말 안 그럴 것 같은데 알고 보니 너무너무 무서운 그런 사람 말이다. 액션도 마찬가지다. ‘순수의 시대’ 신하균처럼 몸을 만드는 건 아니겠지만. ‘테이큰’의 리암 니슨처럼 되지 않을까. 그런 역할을 줄지 안 줄지 모르겠는데 상투적인 배우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요즘은 막연하게 사극이 하고 싶다. 며칠 전에 ‘대왕세종’이 일본에서 방영됐나 보더라. 그래서 일본 잡지 인터뷰를 하다 보니 사극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보고 있는 건 없는데 막연하게 그러고 싶다. 하하.

Q. 이제 세 번째 형사를 끝냈다. 김상경에게 형사 캐릭터는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김상경 : 숙명. 질문이 ‘라디오스타’나 ‘힐링캠프’ 같다. 하하 ‘살인의 추억’이 매우 큰 작용을 했다. 그게 어찌 보면 평생 이름표를 달아줬을 수도 있다. 첫 번째가 홍상수 영화고, 두 번째가 ‘살인의 추억’이다. 예술의 최고와 상업의 최고를 한 거다. 한 명은 너무 치밀한 시나리오, 한 명은 대본을 전혀 안 쓰는, 운이 좋게도 그 중간에 있다. 첫 단추를 잘 끼었고, 이름표를 잘 달았다. 최고인 두 감독님의 작품으로 시작하다 보니 예전에는 기준이 높았던 것도 있다. 그렇다고 지금은 그 기준이 족쇄가 되진 않을 것 같다. ‘가족끼리 왜 이래’도 있고. 이 드라마는 40대를 지나가는 이름을 또 한 번 준 것 같다.

황성운 기자 jabongdo@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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