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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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창욱은 안전지대에 올랐다. 전작 MBC 사극 ‘기황후’의 성공 뒤에 지창욱이 있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반신반의의 존재였다. 하지만 KBS2 ‘힐러’ 속에서 날고 기는 지창욱을 보고나면, 누구도 그의 역량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힐러’는 다양한 장르가 버무러진 드라마였고, 특히 그가 연기한 서정후가 액션, 멜로,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 적 요소까지 넘나들면서도 극을 이끌어가야만 하는 캐릭터였다.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거리던 ‘힐러’ 속 지창욱은 보는 이에게 그의 활력을 전염시키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그러나 지창욱은 쏟아지는 칭찬, 세간의 평가에 그저 미소로 답하는 이다.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웃는 것이 더 옳다. 어쩌면 그것이 지창욱이 가진 활력의 원천 아닐까.

지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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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단, ‘힐러’에서 당신의 체력이 참 좋아보였다(웃음).
지창욱 : 남들보다 체력이 좋다고는 생각한다. 실제로도 잘 버틴다. 이번 현장에서는 더더욱 ‘웃자, 웃으면서 하자. 행복하게 하자’고 마음 먹었는데, 그렇게 행복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몸은 힘들었으나 너무나 행복했다.

Q. 그 행복이 느껴졌다(웃음). 그런데 서정후 캐릭터가 워낙에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인물인터라, 표현하기는 결코 쉽지가 않았을 것 같더라.
지창욱 : 많이 혼란스럽고 쉽지 않았다. ‘기황후’의 타환은 명확하고 또렷했다. 나약했고, 많이 흔들렸고 컴플렉스가 대놓고 드러나는 그런 인물이었다. 인물의 행동이 명확할수록 캐릭터 잡기는 쉽다. 하지만 정후는 상처에서 비롯된 콤플렉스와 트라우마가 있지만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 아이었다. 서정후가 처한 환경을 떠올려보면, ‘정신병마저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초반에는 어둡게 잡았다. 정후 캐릭터를 잡는 와중에 정신과 전문의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었고. 우울증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런 심리에서 비롯된 버릇, 습관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대본을 다시 보는데, 정후는 너무나 밝더라. 내가 잡은 캐릭터와 텍스트의 차이가 컸고, 그래서 작가님과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작가님은 ‘그냥 차라리 웃었으면 좋겠다. 정후는 그런 티가 하나도 나지 않고, 도리어 시니컬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Q. 초반 캐릭터 연구에 치열한 편인 듯 하다.
지창욱 : 아무래도 뿌리가 되는 작업이 아닐까 한다. 가장 공을 많이 들이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작업이다. 하지만 만들어가는 것이 재미있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많이 찾는데,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Q. 정후는 사실 시대를 반영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지창욱 : 작가님이 처음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했던 이야기가 있는데, 서정후라는 아이는 ‘이 시대의 어른없이 자란 젊은이들의 표본이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다. 그 말씀이 캐릭터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큰 지표가 됐다. 서정후라는 인물은 정의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아이이고, 나의 목표와 나의 꿈이 중요하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거야 하는 아이었다. 사회적 정의나 도덕보다는 개인이 중요한 그런 모습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성향이나 특성의 단편적인 부분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 역시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과거 세대의 젊은 모습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 자유에 익숙해져 있는 세대라,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못 느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후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를 반영하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한다.

Q. 그런 정후가 영신과 문호를 만나 변화하게 된다. 정후의 변화 속에 지창욱의 변화도 있었나.
지창욱 : 체감할 만한 변화는 없었으나, 그런 것은 있었다. 그냥 내가 답답하고 억울하더라. 문호가 한 말 중에 ‘나도 어쩔 수 없었어’라는 뉘앙스의 대사가 있었다. 그 때 울컥했다. 사회 안에서 개인의 한계를 느끼게 했던 대사였기 때문이다. 공감도 가면서 울컥 했다.

Q. 혹시 정후와 같은 처지가 된다면, 정후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지창욱 :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내 대답은 ‘솔직히 힘들다’였다. 나라면, 겁이 나서 못할 것 같더라. 그렇지만, 그것이 또 드라마 속 인물에 열광하는 이유 아닐까. 일반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마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면 열광하게 될 것 같다.

지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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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하지만 개인과 개인이 뭉치면 할 수 없는 것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드라마 역시도 개인의 작업이 아니기에, 팀워크의 힘을 실감할 것 같다.
지창욱 : 그렇다. 그런데 ‘힐러’의 경우, 분위기 자체가 워낙 좋았던 것도 있다. 사실 드라마는 시청률에 현장 분위기가 좌우되는데, 이번에는 그것과 별개로 즐겁게 하자가 모두의 모토였던 것 같다.

Q. 당신의 행복한 마음이 화면 밖으로도 드러날 정도였다.
지창욱 : 하하. 굉장히 행복했고, 다 드러냈다. 스태프들에게도 다 드러났다. 항상 웃었다. 스태프와 배우의 관계에 있어, 아무래도 벽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 벽을 먼저 걷는 것은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모두가 다 함께 일하는 형, 누나라고 생각하며 다가갔다. 아무리 피곤해도 웃기는 일도 생기고 그렇게 되더라.

Q. 그러고보면 SNS에 재미있는 사진을 그렇게 많이 올리더라. 당신의 또 다른 면을 본 기분이었다.
지창욱 : 쓸데없는 짓 많이 한다. 일상 속에서의 일탈이자 활력이다. 말도 안되는 짓을 해서 사진 찍어 올려본다. 누가 보면 왜 저럴까 할만한 일이지만, 하는 우리끼리는 그저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SNS에 거창한 가치관과 신념을 아는 척 하며 올리고 싶지는 않고, 셀카나 가볍게 노는 광경을 올리는 것이 내게는 더 맞는 것 같다.

Q. 예능도 잘 할 것 같다.
지창욱 : 예능 울렁증이 있어서 과거에는 안했다. 예능은 이상하게도 말을 못하겠고 떨려오는 압박이 느껴지더라. 내가 다 까발려진다는 느낌이 무섭기까지 한다. 요즘은 가끔 한 번은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역시 인간 지창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배우 지창욱에게는 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업으로 돌아왔을 때, 배우가 연기하는 역할로 쉽게 몰입하는 것에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예컨대, 내 주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면 오글거린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시청자들과는 그렇게 만나고 싶지는 않다.

Q. 트렌디한 미니시리즈는?
지창욱 : 하고 싶다, 당연히. 그런 드라마로 인해 갑자기 인기가 많아지고 일약 스타가 되는 욕심을 부렸던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는 일일극, 주말극, 사극을 해왔고 그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도 한다.

Q. 지금까지 해온 작품들의 무게 탓인지, 사실 지창욱하면 뭔가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힐러’ 서정후를 통해 장난기있는 새로운 모습도 보여준 것 같았다.
지창욱 : 박민영 누나가 처음에 내가 되게 고지식하고 딱 바를 것 같은 느낌의 사람이었다고 하더라. 내가 그런 이미지였나보다. 사실 난 매번 똑같았고,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리광도 많고 투정도 부리고 많이 까부는 사람인데 남들이 봤을 때는 바르고 정직하고 곧은 사람이더라. 그렇지만 내게서 못 본 면이 많다는 것은 즐거운 일인 것 같다.

지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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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 지창욱은 섭외 1순위 배우다.
지창욱 : 이전에 비하면 많은 작품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감사한 일이고, 배우로서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다.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나를 선택해준 분들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 신중하게 보고 또 보고 있다. 그리고 작품은 운명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기황후’만 봐도 처음에는 내것이 아니었는데 내 것이 되더라. ‘힐러’ 역시도 수많은 선택의 고비에서 작가님이 날 마음에 들어해주셨고, 타이밍 등 수많은 요소 속에 하게 된 작품이었다.

Q. 누군가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말도 못할 행복이긴 하다.
지창욱 : 이번 작품이 그러했다. 작가의 믿음을 받는 배우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비단 작가님 뿐 아니라, 나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날 믿어주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미묘하게 눈빛과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지만 그 진심의 응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반면, 신뢰를 받지 못할 때 역시 미묘하게 느껴진다(웃음).

Q. 가벼운 질문 하나. 최근 밸런타인 데이에는 어떻게 지냈나.
지창욱 : 친한 형들과 2차, 3차 밤새 마셨다. 또 ‘맨 프럼 어스’라고 이원종 형이 제작을 하는 연극을 봤다. 사실 그 연극은 나도 너무 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힐러’와 ‘그날들’로 시간이 겹쳐 끝내는 고사하고 만 작품이었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느낌이 이상하더라. 아무튼 그 날은 연극보고 나서 다 같이 회식하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았다. 그 춤추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웃음).

Q. 끝으로,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지창욱 :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보내주는 칭찬과 인기는 다 지나가는 것이다. 내게 ‘기황후’라는 작품이 전환점이 됐다고 많이 말씀해주시지만, 실은 내 인생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이제는 ‘기황후’도 ‘힐러’도 다 지나간 작품이고 내게는 좋은 추억이다. 내 가슴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이지. 그 작품을 통해 내가 돌연 바뀌지는 않는다. 꾸준히 멈추지 않고 걷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칭찬해주시면 보람을 느끼게 되지만 그마저 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날의 술자리처럼 사람들과 즐기면서 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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