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하지만, 지난해 MBC ‘기황후’를 비롯해 현재 방송되고 있는 KBS2 ‘왕의 얼굴’, MBC ‘빛나거나 미치거나’처럼 실존 인물에 픽션을 가미한 경우라면 역사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실제 역사와 드라마의 내용을 일일이 따지려고 하면 끝이 없지만, 재미와 별개로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가끔 아는 것도 좋을 듯하다.

MBC 월화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고려시대 저주받은 황자와 버려진 공주가 궁궐 안에서 펼치는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다. 여기에 역사 속 실존인물을 차용해 몰입도를 높였다.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태조 왕건과 KBS1 ‘제국의 아침’에서도 다룬 광종(왕소)이 그 주인공.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는 왕소(장혁)를 저주받은 황자로 표현하며 어린 시절 궁에서 쫓겨났다 왕건(남경읍)의 진심을 알고 꿈의 고려를 위해 힘을 비축하는 모습이 담겼다. 실제 역사에서 왕건과 왕소는 어떨까?

* 팩션(Faction) :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

‘빛나거나 미치거나’ 캡처
‘빛나거나 미치거나’ 캡처
‘빛나거나 미치거나’ 캡처

‘빛나거나 미치거나’ vs 실제 역사, 길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왕소, 즉 훗날 광종은 드라마처럼 태조 왕건이 꿈꾸던 고려를 건설했다. 태조 왕건의 호족 융합책이 만들어낸 위험을 광종이 모두 제거하고 왕권 강화에 성공한 것이다.

역사에서 왕건이 고려 건설하고 삼국을 재통일할 수 있었던 데는 지방 호족들의 역할이 컸다. 왕건은 각자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호족을 융합시키고,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왕건은 호족융합책으로 정략결혼과 함께 사심관과 기인 제도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그들의 권력을 존중하는 한편 견제했다. 그 결과, 왕건은 무려 29명의 부인을 두게 됐고, 왕자 25명과 공주 9명을 낳았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빛나거나 미치거나’ 속에서 왕건은 왕소에게 황보여원과 국혼하게 되면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이 장면은 왕건을 둘러싼 실제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광종의 첫 번째 부인인 대목왕후 황보씨는 왕건과 신정왕태후 사이에 태어난 딸로 광종의 이복누이다. 동시에 황보씨는 황주를 기반으로 탄탄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유력한 호족 세력이다. 광종은 황보씨와 결혼을 통해 호족 세력의 힘을 얻는다. 동시에 이복누이와의 족내혼으로 외척세력 개입을 차단하는 효과도 누리면서 왕권 강화를 위한 밑거름을 만들게 된다. 드라마에서처럼 말 그대로 호족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힘을 기르게 된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왕소를 두고 ‘피의 군주’라 표현한 것도 광종의 왕권 강화와 맞물려 있다. 광종은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호족세력을 대폭 약화시켰다. 노비안검법은 노비가 다시 양인이 될 수 있도록 조처한 법으로 국가의 세수 확대에 주효했으며, 과거제도로는 호족이 아닌 왕에 직접 충성하는 신하를 뽑을 수 있었다. 이후 광종은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펼치며 권력 위계 질서를 재편해갔고, 혜정과 정종의 아들마저도 죽였다. 정말 ‘피의 군주’였던 것이다. 덕분에 고려시대는 광종 이전에는 호족연합정권이었다면, 광종 이후 본격적인 왕권 강화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고려 제6대 왕 성종에 이르러 최승로의 시무 28조와 더불어 정치기구를 마련하는 등 국가의 기틀을 제대로 마련한다.

참고로 드라마에서는 왕건의 사후 정종이 즉위하지만, 정종은 고려 제3대 왕이다. 제2대 왕은 혜종으로 왕건의 맏아들이다. 혜종의 즉위 후 정종과 광종이 왕위를 엿보았으며 혜종은 재위 3년만에 병으로 죽었다. 이에 대해 병인지 살해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빛나거나 미치거나’ 속 왕건은 호족 세력으로 인해 독에 중독돼 병사한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 역사 속 왕건은 66세의 나이로 천수를 다하고 비교적 평안하게 죽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마도 드라마 속 왕건의 죽음은 태조와 혜종의 상황을 적절히 섞은 것으로 보인다.

즉, 저주 받은 황자나 독살 당한 왕건은 없었지만, 꿈의 고려를 세우기 위한 그만의 노력을 했던 왕소는 존재했다. 실제 역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새로운 판타지 왕소의 재미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사진제공. MBC ‘빛나거나 미치거나’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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