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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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명대사를 남겼던 유지태는 이후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임을 파트너 김효진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 증명하며 (‘봄날이 간다’의) 상우를 어루만지는 듯하다. 목소리를 잃은 천재 테너 배재철의 실화를 다룬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이하 ‘더 테너’)를 들고 온 그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역시 ‘Ah si ben mio’(오 내 사랑)이란다. 이쯤이면 사랑의 화신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Q. 클래식에 원래 조예가 깊은 걸로 안다.
유지태:
조예가 깊은 건 아니고, 관심이 많았다. 원래는 인디음악을 좋아했었다. 대학 다닐 때 연극 연출을 전공했는데, 무대 효과를 위해 찾아듣기 시작하다가 음악자체에 빠졌다. 그러다가 클래식에 심취했고. 당시엔 CD 모으는 게 취미였다. 가령 루이치 사카모토가 유명하지 않았을 때, 그의 음반을 사 모으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디지털 음원 시대로 오면서 CD 살 곳이 점점 사라지더라. 많이 아쉽다.

Q 아내 김효진과의 오작교 역할을 한 것 역시 클래식인 것으로 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가까워 졌다고.
유지태:
(웃음) 한창 데이빈 린 감독의 ‘밀회’(1945)에 나온 그 음악에 빠져 있을 때였다. 멋쩍게 듣고 있다가 효진이에게 무슨 곡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단변에 맞춰서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라고 그 때 생각했다

Q. ‘더 테너’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유지태:
‘더 테너’는 일본 ‘보이스 팩토리’ 대표 와지마 토우타로(이세아 유스케가 연기한 ‘사와다 코지’의 실제 인물)와 한국이 합작한 영화다. 일본 쪽 프로덕션 문제로 4회차 촬영을 한 후 제작이 전면 중단돼서 1년을 쉬었다. 영화를 다 만든 이후에도 1년 이상 개봉일을 잡지 못하는 고난이 있었다.
유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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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서 ‘언론시사회’ 때 “애증의 영화”라고 했나보다.
유지태:
맞다.(웃음) 영화를 만들고 개봉까지 2년은 기다려 본 적이 있다. ‘내츄럴 시티’ 때. ‘남극일기’와 ‘가을로’ 때도 나름 고난이 있었지만 ‘더 테너’처럼 3년이 걸린 건 처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거, 잘못하면 개봉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개봉해서 인정받는 건 둘째고, 아내에게 이 영화를 보여줄 수 있으며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Q. 다행히 아내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됐는데, 영화를 보고 뭐라고 하던가.
유지태:
잘 했다고.(웃음) 연출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Q. 성악을 하루에 4시간씩 배웠다고 들었는데, 과정이 궁금하다.
유지태:
비록 립싱크이긴 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방법, 성악가의 애티튜드(태도), 음원에 있는 호흡까지도 다 맞추려고 노력 했다. 특히 소리 내는 방법. 성악에서는 ‘마스께라(Maschera)’라고 해서 얼굴의 모든 공간을 스피커처럼 열어야 한다. 혀나 목젖의 위치도 중요한데, 가끔 가수들 목에 핏줄이 서는 게 보이지 않나. 그건 다 가짜다. 그래서 노래를 부를 땐 한 옥타브 낮춰서 불렀다. 목젖이 흔들리지 않고, 핏줄이 서지 않아야 리얼하게 보이니까.

Q.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립싱크 실력이 정말 최고 같다.(웃음) 립싱크 가수들에게 “유지태에게 비법을 몇 달 배워보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유지태:
하하하. 좋은 레퍼런스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부르진 않지만 진짜처럼 보이게끔 하고 싶었다.

Q. 성악 못지않게 영어에도 굉장히 신경을 쓴 것 같더라.
유지태:
영어 공부를 많이 했다. 외국어 연기는 자칫하면 내수용 연기가 될 수 있다. 한국배우가 영어로 대사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영화가 개봉할 때 영어자막을 심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굉장히 굴욕적인 일이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해서 한국 배우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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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 캐릭터를 구상할 때 얼마나 영향을 미쳤나.
유지태:
배재철 선생님을 완벽하게 모사하는 게 목표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고민하긴 했다. 가령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카포티’ 속 고(故)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처럼 완벽하게 실존 인물을 모사해 볼까도 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배재철 선생님이 오페라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졌지만, 대중적이지는 않으시다. 내가 모사를 한다고 해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크게 와 닿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고민을 감독님께 말씀드렸더니, 유지태만의 배재철을 연기 해 달라고 하셨다.

Q. 사실 영화 보기 전까지는 ‘유지태가 성약가를?’ 하는 의문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유지태:
배재철 선생님도 내가 캐스팅됐을 때 우려했다고 하더라. 그런 배재철 선생님에게 김상만 감독님이 “역할 파고들기로는 대한민국에서 유지태 따라 올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잘 보신 거다.(일동 웃음) 그런데 그에 따른 부담감과 책임감이 있다. 다들 어려운 역할만 줄까봐. 쉬어가는 영화가 어디 있겠냐만, 유독 힘든 캐릭터들이 있긴 하다.

Q. 예를 들면?
유지태:
배우가 배역을 위해 살을 찌우거나 빼는 건 정말 힘든 것 같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나 ‘머시니스트’의 크리스찬 베일, 이런 배우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체중을 변화시킨다고 해서 잘 알아주지도 않는다. 가령 ‘채식주의자’라는 독립영화에 나오는 여배우가 살을 엄청 많이 뺐는데, 혹시 알고 있나?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나 역시 2004년 홍상수 감독님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30kg을 찌웠는데, 아마 잘 모를 거다.

Q. 꼭 그렇지는 않다.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의 경우 체중 감량으로 엄청난 화제가 됐었다.
유지태:
그런 걸 보면, 잘 맞아야 하는 것 같다. 명민이 형이나 ‘역도산’의 (설)경구 형의 경우 작품 콘셉트와 잘 맞아 떨어졌다. 내가 판단했을 때 ‘더 테너’의 경우 살을 과하게 찌우지 않는 게 영화 콘셉트와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무대 위에서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 질 테니까.

Q. 배재철은 목소리를 잃으면서 인생 최대의 좌절을 겪었다. 배우 유지태에게도 고난이 온다면?
유지태:
나 또한 목소리나 눈을 잃으면 꿈을 잃을 것 같다. 아직까지는 인생에서 큰 고난이 없었던 것 같다. 시련이 있다면 피해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유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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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시련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극기의 경험은 있을 텐데.
유지태:
작품 선택이 나에겐 늘 극기다.(웃음) 항상 나 스스로와 싸움을 하는 것 같다.

Q. 사실 배우는 주위 시선에 흔들리기 쉬운 존재들인데, 당신은 최대한 그런 시선에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가는 것 같다.
유지태:
나는 내 가치관대로 사는 편이다.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 스스로 벽을 세우고 온실에 갇히는 배우들이 많은데, 그것 또한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는 배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가장이고 아빠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 시선에 크게 휘둘리지 않으려 한다.

Q. 연기 외에도 연극 제작과 영화 연출 등 굉장히 많은 것들을 하고 있는데, 근간은 역시 연기인가.
유지태:
연극에 대한 미련이 항상 있다. 항상 연극이 조금 더 대중화되길 희망했다. 그래서 대중배우들이 연극을 꺼려했던 시기에, 직접 연극 연출을 하고 출연을 하기도 했다. 그 안에서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후회는 없다. 지금은 ‘연극열전’을 통해 대중배우들과 연극의 교류가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Q. 허진호 박찬욱 홍상수 등 당대의 감독들과 작업했다. 그런 감독들과의 작업이 ‘감독 유지태’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나.
유지태: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봄날은 간다’를 하면서 내 스스로 리얼리티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립했다. 박찬욱 감독님에겐 ‘미장센, 히치콕 같은 느낌의 완벽성’ 등을 배웠다. 홍상수 감독님우로부터 ‘뚝심’을 배웠고. 훌륭한 감독님들과의 작업이 나에게 좋은 배양이 됐다.

Q. 굳이 따지자면 감독 유지태는 어느 쪽인가?
유지태:
어떤 스타일이라기보다 나는 독립적인 구성의 연출을 좋아한다.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내가 힘이 없어서 영화를 못 찍게 되는 환경이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 나는 무모한 걸 싫어한다. 무슨 말이냐면, 내 꿈을 위해 가족의 인생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인 거다.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게 ‘그림자들’을 만든 존 카사베츠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했음에도 평생 독립영화의 정신을 지키며 작업을 한 배우 출신 감독이다. 클리트 이스트우드, 숀 펜, 벤 애플렉 등 여러 유형의 ‘배우 겸 감독’들이 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나는 존 카사베츠의 길을 따르고 싶다.
유지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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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굉장히 훌륭한 생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칫 배우로서 대중 관심의 사정권에서 조금 멀어질 수도 있다.
유지태:
내가 내일 모레면 마흔이다. 배우에게는 작품이 자기 얼굴이다. 결국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은 좋은 작품을 선택하는 거다. 작품에 끌려 다니기 보다는 내가 진심으로 재미를 느끼는 작품을 선택하고 있다. 그것이 내겐 굉장히 중요하다. 재미있고 좋은 선택을 하려면 까다로워 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Q. KBS2 드라마 ‘힐러’에서 기자를 연기하고 있다. 드라마 찍으면서 나름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봤을 텐데.
유지태:
평소 기자 분들에 대한 편견은 없었다. 그런데 ‘다이빙벨’이라는 영화를 보고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힐러’ 연기는 손석희 아나운서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 소신 있게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인상을 받았다. 동영상을 서치해서 그 분이 말하는 태도, 애티튜드, 특징, 버릇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Q. 2014년은 기자들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던 해이기도 하다. 최근 기자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은데 그런 영향일 수도 있다고 본다.
유지태:
우리가 목말라 했던 것 같다. 소신 있게 얘기하고, 자기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Q. 배우도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유지태:
나는 배우가 어떤 발언을 직접적으로 하는 건 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령 정치권에 참여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작품으로 말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Q. 그나저나 아까 밝혔듯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영화에 출연했었는데, 김효진과 당신을 보면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유지태:
정말 그런 것 같다. 하하.

Q. 그래서 묻는 질문인데, 그 유명한 ‘봄날은 간다’의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유지태:
나는 결혼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빼기가 아닌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지는 것이 사랑이다. 우리는 비밀이 없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모든 생각도 공유하려고 한다. 그래야 소통이 될 테니까. 아내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이나 파트너다. 내가 믿을 수 있고, 또 나를 믿어주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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